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닳고닳은 뉴비-317화 (317/1,000)

318화 Show me the money (1)

후욱…

물담배 파이프에서 뿜어져 나온 은빛 수증기가 어둠에 젖은 황금 해골을 휘감아 흐른다.

카타콤 최후의 드워프 ‘드머프 벨럿’, 그녀는 한숨과 함께 회상을 종료했고 자연히 우리 눈앞에 재생되던 동영상 창 또한 담배연기와 함께 서서히 옅어져 사라졌다.

[그날 이후로 우리는 이런 몸이 되어 버렸지. 지하를 떠날 수 없게 된 게야.]

뼈와 살, 가죽이 약해지는 것을 막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곡괭이와 망치로 땅을 파 금속을 캐내 섭취해야 했다.

자연스럽게 햇빛은 멀어졌고 지상의 모든 것들을 등져야만 했다.

드워프라는 종족은 그렇게 해서 태어나게 되었던 것이다.

나는 눈을 빛냈다.

“…그래서. 고르딕사는 지금 어디에 있지?”

동화 속에서는 이야기의 전말과 결말이 중요하지만…현실에서 진짜로 중요한 것은 결말 이후에 펼쳐지는 후일담이다.

멀쩡한 인간들을 드워프로 만들어 버린 뒤 놈은 과연 어디로 갔는가? 바로 그것이 문제로다!

벨럿은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민감한 화제를 꺼낸 것이 불편하다는 태도.

하지만 단도직입적인 것을 좋아하는 드워프의 성질답게 호감도가 떨어진다거나 하지는 않았다.

이내 벨럿은 입을 열어 나의 질문에 답했다.

[드워프가 된 후 대부분의 사람들은 죽거나 미쳐 버렸지. 하지만 힘겹게나마 제정신을 유지한 이들도 있었다네. 바로 나처럼.]

벨럿은 카타콤의 외곽 구석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그곳에는 무쇠와 정체를 알 수 없는 검붉은 금속을 섞어 만든 병장기들이 놓여 있었다.

도끼, 대검, 창, 쇠망치…….

전부 다 육중한 무기들이다.

[우리는 땅에서 채취한 금속을 제련해 무기를 만들었어. 그리고 마을을 이 꼴로 만든 존재에게 대항해 싸웠지. 실로 오랜 시간 동안을…….]

벨럿은 뼈로 이루어진 거대한 미로를 슬픈 눈으로 바라보았다.

이곳에 있는 모든 황금 뼈들은 벨럿과 같은 마을에 살았던 이들의 것이다.

그리고 벨럿은 홀로 남아 그들의 흔적을 지키는 최후의 묘지기.

한편 벨럿의 말을 들은 드레이크는 침중한 안색으로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었다.

맨 처음 이곳 카타콤에 들어오자마자 그가 했던 일이 머릿속에 떠오른 탓이다.

“으음. 해골들에 손대지 않기를 잘했군.”

“…그러게요.”

윤솔도 반성하는 기색으로 고개를 숙였다.

이곳의 황금과 보석들은 모두 한때 인간이었던 존재들의 뼈와 살, 피였다.

게임의 맵에 포함된 오브젝트인 것을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히스토리를 알게 되자 어쩐지 슬프면서도 오싹하게 느껴졌다.

바로 그때.

오-오오오오오오!

갑자기 땅이 뒤흔들렸다.

황금향의 묘지 전체가 상하로 요동치며 황금 부스러기와 보석들이 길 위에서 심하게 날뛴다.

벨럿은 수은을 들이키며 중얼거렸다.

[또 시작됐군.]

까마득한 지하. 두터운 지층을 뚫고 올라오는 비명 소리.

벨럿은 입가의 수은을 닦으며 말했다.

[우리는 힘을 모아 고르딕사를 지저 바닥에 있는 황천(黃泉)에 봉인했다네. 뭐, 그 도중에 남아있던 생존자들마저 모두 떠나거나 죽어 버리고 나 혼자만 남았지만 말이야.]

벨럿의 말에는 지독한 고독과 옅은 공포가 함께 배어 있었다.

[그날 이후로 간간히 저런 비명소리가 들려오지. 저것이 황천의 바닥에 가라앉은 고르딕사가 지르는 소리인지, 아니면 함께 끌려간 내 동료들이 지르는 소리인지 나는 알 수 없지만…….]

그녀는 황금굴 깊은 곳에 몸을 웅크린 채 가늘게 떨기 시작했다.

오-오오오오오오……

비명 소리와 지진은 점점 잦아들었지만 벨럿의 몸은 계속 떨리고 있었다.

그녀의 사파이어 같은 눈동자가 뜨거운 알루미늄 눈물을 머금는다.

…… …… ……

이윽고 귓가에 맴도는 메아리까지 전부 사라졌지만 벨럿은 여전히 두 손으로 귀를 틀어막고 있다.

“…….”

나는 그런 벨럿을 향해 입을 열었다.

“황천으로 안내해 줄 수 있나?”

[…뭐라?]

벨럿은 두 눈을 휘둥그렇게 뜨고 고개를 들었다.

나는 그런 그녀에게 단도직입적으로 한마디 했다.

“이 지긋지긋한 악몽을 깨트려 주지.”

*       *       *

[이쪽이다.]

벨럿은 커다란 망치를 든 채 우리를 던전 깊숙한 곳으로 안내했다.

이곳 황천의 유극은 총 3층으로 이루어진 지하 던전. 나 같은 고인물의 눈에도 이곳 카타콤의 모든 구역들은 다 똑같아 보인다.

NPC 벨럿의 자발적인 길안내가 아니고서는 지하 3층으로 가는 비밀 문을 찾을 수 없다. 오로지 그녀에 의해서만 숨겨져 있는 비밀통로가 반응하기 때문이다.

[…바로 여기야.]

벨럿은 카타콤의 묘지 가장 안쪽의 물러 보이는 땅 앞에 멈췄다.

그녀는 어깨에 짊어진 자루에서 은으로 된 말뚝 몇 개를 꺼내 땅에 대고는 손에 들고 있던 육중한 망치로 때려 박았다.

…땅! …따앙! …땅!

지반이 약한 몇 군데의 땅에 커다란 은말뚝이 틀어박혔다.

-<드워프의 은 말뚝> / A

그 무엇이든 뚫고 고정할 수 있는 말뚝.

햇빛이 닿지 않는 곳에서만 그 힘을 유지할 수 있다.

벨럿은 그 말뚝을 땅에 둥글게 박아 놓았다.

그리고.

퉁-

커다란 망치로 동그랗게 말뚝이 박힌 곳의 중앙부분을 때렸다.

그러자 땅이 둥그렇게 주저앉기 시작했다.

마치 와인 병의 코르크 마개를 뽑지 않고 아래로 꾹 눌러 버린 것처럼.

파앗!

땅에 둥글게 뻥 뚫린 구멍에서 엄청난 빛이 폭사되기 시작했다.

용암의 이글거리는 불길과 눈이 멀어 버릴 듯 찬란한 황금향의 빛!

그것은 지금껏 봐 왔던 음침한 황금 묘지의 빛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세상에.”

드레이크와 윤솔은 지저 깊숙한 곳에서 폭발하듯 솟구치는 황금의 빛에 입을 딱 벌렸다.

내가 왜 지금까지 발견했던 금화와 보석을 푼돈 취급했는지 이제는 알 것 같다는 표정.

-띠링!

<‘황천의 유극 3층’에 입장하셨습니다>

<최초 방문자의 이름이 아카식 레코드에 기록됩니다>

<고인물>

결국 나는 이 황금향의 가장 깊은 곳으로 진입했다.

이곳은 위층과 달리 제법 평범한 지하공동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가끔 용암이 떨어지는 것 외에는 별다를 것이 없는 모습.

피를 머금은 듯 붉으죽죽한 흙과 암반 위에는 정체를 알 수 없는 검붉은 금속의 광맥이 옅게 펄떡거리고 있었다.

널찍한 공동 중앙에는 커다란 호수가 자리하고 있는 것이 보인다.

취송류가 일어나지 않아 고요한 호수.

파문 한 점 없이 깨끗한 수면 위는 마치 거울처럼 반듯하다.

특이하게도 이 호수는 누런 금빛을 띄고 있었는데 눈이 멀 듯 찬란한 황금의 기운은 이 호수에서부터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우리를 뒤따라 내려온 벨럿이 호수를 보며 몸을 파르르 떨었다.

[이곳이야, 놈이 봉인된 곳이. 조심하게. 놈은 이 호수의 바닥에 엎드려 있을 거야. 놈은 아직도 자신이 정령인 줄 알고 있지만…절대로 잊으면 안 돼. 놈은 그저 추악한 악마 나부랭이로 전락한 지 오래이니.]

NPC답게 긴장감을 주는 대사를 연발하는 벨럿.

하지만 나는 크게 걱정하지 않았다.

“어차피 보스 몬스터가 나오는 타이밍은 정해져 있지. 그 전까지는 플레이어들을 위한 서비스 시간이야.”

피버 타임(Fever time)!

드디어 이곳에 온 보람을 찾았다.

피버 타임은 플레이어들이 돈을 크게 벌 수 있는 시간, 보스 몬스터가 등장하기 전의 몇 초와 보스 몬스터가 죽고 난 후의 몇 초에 해당한다.

“어진. 뭘 하면 되나?”

“피버 타임이라고 해도…이곳에는 딱히 황금이 없는데? 뭘 캐야 해?”

드레이크와 윤솔이 내게 물었다.

나는 대답 다신 행동으로 보여주었다.

퐁당!

나는 옆에 굴러다니는 돌멩이 하나를 집어 들어 호수에 던졌다.

그러자.

퐁당! 퐁당! 퐁당!

놀랍게도, 세 개의 돌멩이가 호수의 수면을 박차며 솟구쳐 올라 내 발치에 떨어졌다.

그것은 방금 호수에 던져졌던 돌멩이와 똑같은 부피와 무게를 지닌 돌멩이들이었다.

물속에 떨어진 돌멩이와 똑같이 생긴 돌멩이 세 개.

문제는…그 돌멩이들이 그냥 돌멩이가 아니라는 것이다.

“이럴 수가! 돌멩이가 금과 은으로 바뀌었어!”

윤솔이 세 개의 돌멩이를 보며 깜짝 놀라 외쳤다.

바닥에 굴러다니는 돌멩이 셋 중 하나는 금덩이, 다른 하나는 은덩이, 나머지 하나는 원래의 돌덩이였던 것이다.

나는 씩 웃었다.

“호수에 무엇이든 던져 넣어 봐. 그러면 똑같이 생긴 금덩이와 은덩이가 튀어나온다.”

그렇다.

전래동화 속 금도끼 은도끼처럼, 이 호수에 들어간 물건들은 전부 금과 은으로 복제되어 원래 물건과 함께 도로 튀어나온다.

하나가 셋으로 변하는 기적!

이것이 이 던전의 진짜 대박, 내가 그토록 찾아 헤매던 진짜배기 황금향(黃金鄕)인 것이다!

“으아아아아!”

나와 드레이크, 윤솔은 황금 호수를 향해 정신없이 돌덩이와 쇠덩이들을 던져 넣기 시작했다.

펑! 펑! 펑! 펑!

수면이 박살나고 온갖 잡동사니들이 가라앉을 때마다.

펑! 펑! 펑! 펑!

무수히 많은 금덩이와 은덩이들이 호수 바깥으로 튀어나온다.

마치 그동안 금화나 보석 하나 안 줍고 정직하게 이곳까지 내려온 것에 대한 산신령의 보상이라도 되는 듯했다.

나는 기쁨에 겨워 소리쳤다.

“전부 주워 모아! 여기서 우리 구단 평생 운영비 다 뽑아 가련다!”

황금 정령 고르딕사.

오래 전 마을 하나를 까마득한 지저 밑으로 묻어 버린 나쁜 놈.

이런 나쁜 놈의 힘은 하루빨리 세상에서 사라져야 한다.

고로 나는 이 황금 호수에 깃들어 있는 고르딕사 놈의 힘을 오늘 죄다 소진시켜 버릴 생각이었다.

홱홱홱홱- 줍줍줍줍-

나와 드레이크는 호수 아래로 온갖 것들을 죄다 무단 투기했다.

쇠말뚝, 돌멩이, 흙과 모래, 안 쓰는 아이템…부피가 크고 무거운 것이라면 가리지 않고 닥치는 대로 집어던졌다.

윤솔은 호수에서 튀어나오는 금덩이 은덩이들을 열심히 주워 모으고 원래 물건이 튀어나오면 그것을 고스란히 다시 호수로 밀어 넣었다.

은덩이는 골라내고 알짜배기 금덩이로만 수집했음에도 불구하고 인벤토리가 어느 정도 꽉 차게 되었다.

윤솔이 깜짝 놀라 외쳤다.

“세상에! 나는 인벤토리에 한계가 없을 줄 알았는데…이게 거의 다 차네?”

“인벤토리는 레벨에 따라 늘어나지. 아마 우리들보다 인벤토리가 큰 사람은 없을걸?”

나는 금덩이를 주워 모으며 씩 웃었다.

지금껏 여기까지 오면서 보고 만졌던 모든 황금보다 여기서 얻어 가는 황금의 양이 훨씬 더 많다.

바로 그때.

콰쾅!

묵직한 지진파가 지하공동을 뒤흔들었다.

오-오오오오오!

황천의 호수 한가운데가 부글부글 끓어오르며 예의 그 소름끼치는 비명소리가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그와 동시에 피버 타임도 잠시 멈췄다.

이제는 호수에 뭘 던져 넣어도 금덩이와 은덩이가 튀어나오지 않는다.

“아아…….”

윤솔과 드레이크가 물건을 던져 넣던 것을 멈추고 안타깝다는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어쩌랴?

이제 보스 몬스터가 나올 시간인 것을.

“눈치도 없네. 조금 더 늦게 튀어나오지.”

우리는 황천의 호수 중앙으로 모습을 드러내는 고르딕사를 향해 투덜거렸다.

보스 몬스터가 튀어나온 것이 이렇게 빡쳤던 적은 처음이다.

하지만!

“…괜찮아. 고르딕사를 잡으면 피버 타임이 한 번 더 와.”

내 말을 들은 윤솔과 드레이크의 눈이 반짝 빛난다.

인벤토리를 2/3가량밖에 못 채워서 그런가? 다들 집념이 장난 아니다.

…이거이거, 맨 처음에 황금 말고 곡식 골랐던 순수한 사람들 다 어디 갔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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