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닳고닳은 뉴비-314화 (314/1,000)
  • 315화 카타콤 (2)

    -띠링!

    <‘황천의 유극 2층’에 입장하셨습니다>

    <최초 방문자의 이름이 아카식 레코드에 기록됩니다>

    <고인물>

    귓가에 들려오는 알림음.

    동시에 새로운 경고들이 계속해서 빗발친다.

    <‘황금굴의 망령’을 발견하셨습니다>

    <몽유병에 걸린 ‘망령’이 지하묘지를 배회하기 시작합니다>

    알림음에 맞장구라도 치는 것일까?

    …… …… ……

    어둠에 젖은 황금굴 속에서 신음과 웃음이 반반씩 섞인 비음이 흘러나왔다.

    축축하고 서늘한 곡성이었다.

    이윽고 해골의 탑 사이로 무언가 희뿌연 것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것은 약 1미터 30센티미터가량의 높이를 하고 있는 허연 천이었다.

    마치 서양에 나오는 보자기 유령처럼, 그것은 묘지의 황금빛과 검은 그림자 사이를 미끄러지듯 부유했다.

    자세히 보니 그 천자락은 몹시도 더러웠고 여기저기 너덜거리고 있었다. 마치 커다란 걸레를 뒤집어쓴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유령은 뼈의 회랑 중앙을 춤추듯 배회하며 괴이한 동작으로 버둥거리고 있었다.

    허공을 잡으려는 듯 보이기도 했고 때로는 무언가에 쫓겨 표홀하게 움직이거나 뼈의 벽 사이에 난 깊은 골 틈으로 웅크려 숨는 동작을 반복했다.

    그 모습은 실로 오싹한 것이어서 드레이크도 윤솔도 표정을 딱딱하게 굳혀야만 했다.

    …오직 나만 빼고.

    “떴다. 보물 고블린.”

    나는 눈을 빛내며 눈앞에 있는 허연 것을 바라보았다.

    내 말을 들은 윤솔이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저게 고블린이야? 보자기 속에 숨어 있는 건가?”

    “음,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고블린은 아니지.”

    ‘고블린(Goblin)’은 원래 독일 민담에 자주 등장하는 ‘코볼트(Kobold)’를 다른 발음으로 한 것이다.

    원래의 뜻은 그리스어로 ‘아이’를 의미한다.

    주로 인간에게 사악한 장난을 치는 작은 정령을 가리키는데 현대에 와서는 조금 다른 뜻으로도 쓰인다.

    보통 ‘보물 고블린’이라고 하면 게임 속에서 랜덤으로 등장하는 이벤트 몬스터를 뜻한다.

    이 이벤트 몬스터의 핵심 특징으로는 일정 시간 내에 잡으면 희귀한 아이템이나 많은 양의 돈을 떨어트린다는 것이 있다.

    으레 보물 자루를 든 고블린의 모습으로 등장하며, 빠르게 도망다니는 이 녀석을 제한된 시간 안에 잡으면 큰 보상을 받을 수 있다는 점에서 ‘보물 고블린’이라는 유행어가 생겨났다.

    (무력은 터무니없이 약한데 가지고 있는 돈이 많거나 좋은 물건을 소유하고 있을 경우 ‘보물 고블린’이라고 놀림당하며 삥(?)을 뜯기는 경우도 있다)

    “…….”

    나는 깎단을 들고 눈앞에 있는 보자기 유령을 노려보았다.

    <황금굴의 망령> -등급: A / 특성: 할로윈, 과식, 줄행랑

    -서식지: 어비스 터미널 ‘황천의 유극 2층’

    -크기: 1.3m.

    -잠에 취한 채 지하묘지를 배회하는 망령.

    어떤 꿈을 꾸고 있는지 그를 제외한 누구도 알지 못하지만... 그것이 썩 좋지 않은 종류의 꿈이라는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이곳 미로 같은 카타콤에서만 등장하는 이벤트 몬스터!

    저 녀석을 제한된 시간 안에 잡아야 한다.

    그래야 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 있는 히든 퀘스트를 발견할 수 있다.

    “골드 대박의 문을 여는 가장 중요한 열쇠야.”

    나는 드레이크와 윤솔에게 이번 레이드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신신당부했다.

    여기에 이번 던전 레이드의 사활이 달려 있다.

    …더불어 이번 아시아 챔피언스 리그에 출전할 우리 구단의 미래 역시도.

    한편.

    드레이크는 다른 게임을 많이 해본 사람답게 침착한 태도로 보자기 유령을 뒤쫓았다.

    “알지?”

    “알지.”

    나와 드레이크는 서로 마주보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겜창끼리는 말하지 않아도 다 통하는 바가 있다.

    “…….”

    나는 눈을 가늘게 뜨고 보자기 유령을 뒤쫓아 갔다.

    특정한 구역 안에서 정해진 확률에 따라 등장하는 이벤트 몬스터.

    공격을 해 오지는 않지만 어떤 종류의 데미지이든 단 1의 피해라도 입는 순간 녀석은 엄청난 속도로 도주하기 시작한다.

    퍽!

    나의 깎단이 제일 먼저 선빵을 날렸다.

    그러자.

    …호다닥!

    보자기 유령은 화들짝 놀라는가 싶더니 뼈의 회랑을 달려 도망치기 시작했다.

    짤그랑! 짤그랑! 짤그랑!

    마치 이거 받고 그만 쫓아오라는 듯 약간의 골드들을 흘리면서 말이다.

    “우와, 우와, 이게 뭐야, 이게 뭐야. 대박! 돈 되게 많이 준다.”

    윤솔은 허리를 숙여 큼지막한 금화들을 집어 들었다.

    금화는 두루마리 휴지의 휴지심에 딱 들어갈 정도의 사이즈였다.

    표면에는 알아들을 수 없는 괴상한 글자들이 꼬부랑 꼬부랑 음각되어 있었지만 한눈에 보기에도 순도 높은 금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하지만.

    “솔아! 잔돈에 신경 쓸 때가 아냐! 추격! 오로지 추격!”

    놈을 때렸을 때 떨어트리는 돈이나 아이템들은 전부 미끼에 불과하다.

    모르는 사람이 봤다면 이것만으로도 감지덕지하며 줍기에 바빴겠지만…그 뒤에 뭐가 기다리고 있는지 아는 내 눈에는 그저 푼돈으로 보이는 것이다.

    “응, 알았어! 이것들 미끼구나?”

    내 말을 바로 알아들은 윤솔은 고개를 끄덕이며 나를 바짝 따라붙었다.

    …호다다닥

    보자기 유령은 점점 더 좁고 깊은 회랑으로 도주한다.

    벽과 천장, 바닥은 이미 황금 해골로 빼곡하게 뒤덮였다.

    곳곳에서 루비의 붉은빛이 횃불처럼 이글거리고 있었다.

    나는 온 힘을 다해 보자기 유령을 뒤쫓았다.

    이동속도로 따지면 놈은 나와도 거의 엇비슷한 수준.

    핑- 핑- 핑- 핑구-

    드레이크가 화살을 날려 보자기 유령의 등팍을 고슴도치처럼 만들고 있었다.

    짤그랑! 짤그랑! 짤그랑!

    유령은 공격을 받을 때마다 몸에서 황금을 떨군다.

    심지어 깎단에 의한 도트 데미지까지 들어가고 있었기에 놈이 내뿜는 골드의 양은 은근히 많았다.

    놈이 한번 코너를 꺾어 도망칠 때마다 어지간한 정예 몬스터를 처치했을 때보다 많은 금화들이 떨어지고 있었다.

    그것을 본 드레이크는 의아하다는 듯한 표정으로 나를 돌아보았다.

    “어진! 길바닥에 쌓인 골드들이 엄청나다! 정말 안 주워도 되겠나?”

    “푼돈이야! 현혹되면 안 돼! ‘진짜’는 저 안에 있다!”

    나는 보자기 유령에게 점액을 끼얹으며 외쳤다.

    제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보자기 유령은 도망치게 되는 체력 임계치가 높아서 아차하는 순간 눈앞에서 사라져 버린다.

    이 복잡한 카타콤 미로 속에서 녀석을 다시 찾으려면 시간이 얼마나 걸리게 될지 알 수 없으니 초반에 빨리 잡는 것이 상책.

    따라서 단기간에 딜을 폭발시켜서 잡는 것이 제일 좋다.

    하지만 그보다 더 좋은 방법은 몬스터의 체력과 들어가는 딜량을 딱 맞춰 계산한 뒤 시간에 맞춰서 잡는 것.

    그러기 위해서는 해당 몬스터의 주위를 깨끗하게 청소해 둔 뒤 벽이나 구석으로 몰아서 잡아야만 한다.

    말 그대로 필드 전체를 장악하는 것이다.

    ‘이런 레이드에는 마동왕 모드가 딱인데.’

    하필 지하공간이라서 지진이나 와류 등의 광역기를 난사하기 껄끄럽다.

    별 수 없다. 거리를 바싹 좁히는 수밖엔.

    나는 계속해서 보자기 유령을 바짝 뒤쫓았다.

    “드레이크! 앞에다가 마름쇠!”

    “라져.”

    드레이크는 내 요청에 따라 앞쪽에 마름쇠를 뿌려 놓았다.

    차라라락-

    날카로운 가시가 몇 개씩 달린 압정들이 울퉁불퉁한 바닥 곳곳에 박힌다.

    나는 보자기 유령을 마름쇠 밭으로 몰아넣었다.

    만약 놈이 다른 길로 꺾을라 치면 점액을 뿌려 미끄러지게 만들어 내가 원하는 골목으로 이동하게끔 유도하는 것이다.

    비록 놈의 할로윈 특성 탓에 마름쇠 데미지는 반감되지만 그래도 도트데미지와 함께 들어가는 딜량은 무시 못할 수준.

    짤그랑! 짤그랑! 짤그랑! 쿵- 쿵-

    보자기 유령은 계속해서 금화들을 떨구고 있었다.

    처음에는 동전들이 짤짤이로 떨어지더니 이제는 제법 묵직한 금화 주머니들도 떨어져 내린다.

    ‘음…이건 좀 흔들리는데.’

    나는 뼈로 만들어진 복도를 달리며 슬쩍 금화 주머니 하나를 집어 들었다.

    더러운 가죽 자루에 감긴 매듭을 끄르자 안에서 환한 광채가 빛난다.

    오래되어 보이는 금화와 은화, 붉은 루비와 푸른 사파이어, 녹색 에메랄드와 호박색 토파즈들이 금화들 사이에서 빛을 뿌린다.

    “어, 어진….”

    드레이크가 가죽 자루 몇 개를 들고 나를 쳐다본다.

    윤솔 역시도 길에 수북하게 쌓인 금화들을 보며 갈등하는 기색.

    하지만 나는 이번에도 단호하게 유혹을 뿌리쳤다.

    “…티끌은 모아 봐야 티끌이야. 잔돈 따위에 연연하면 큰돈을 날리게 돼.”

    나는 길에 가득 쌓인 금화와 보석들을 무시하고 앞으로 내달렸다.

    잡스러운 유혹에 연연하지 않고 일로매진하는 이만이 큰 꿈을 이룰 수 있다.

    “돈 내놔, 새끼야!”

    나는 계속해서 보자기 유령을 잡아 팼다.

    짤그랑! 짤그랑! 짤그랑!

    보자기 유령은 그만 좀 쫓아오라는 듯 더욱 더 큼지막한 금화 자루들을 토해 냈지만….

    “필요 없어!”

    나는 돈에는 눈길도 주지 않은 채 계속해서 보자기 유령을 잡아 팼다.

    짤그랑짤그랑짤그랑짤그랑짤그랑짤그랑짤그랑짤그랑짤그랑짤그랑짤그랑짤그랑짤그랑짤그랑짤그랑짤그랑짤그랑짤……

    보자기 유령은 맞을 때마다 몸을 꿈틀꿈틀 뒤튼다.

    이제는 돈주머니가 아니라 숫제 금괴들을 떨구고 있었다.

    신화 속 인물들과 괴물들이 음각되어 있는 묵직한 골드바.

    그 외, 바닥에 쌓인 금화와 보석들이 낮은 구릉을 이룰 정도로 쌓였다.

    망령의 체력 바가 점점 한계에 이르러 간다.

    -띠링!

    <‘황금굴의 망령’이 괴로워합니다>

    <‘황금빛 악몽’이 옅어집니다>

    <몽유병이 사라져 갑니다>

    <망령이 제정신을 되찾습니다>

    이윽고 여러 번의 알림음이 귓바퀴를 타고 맴돈다.

    동시에.

    펄럭-

    망령의 몸을 덮고 있던 더러운 보자기가 벗겨져 버렸다.

    보물이 끊임없이 쏟아져 내리던 천 내부가 훤히 공개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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