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닳고닳은 뉴비-313화 (313/1,000)
  • 314화 카타콤 (1)

    카타콤(Catacomb).

    그리스어 ‘카타콤베’에서 유래한 단어로 ‘낮은 지대의 모퉁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지하 깊은 곳에 방, 복도, 밀실, 긴 회랑에 걸쳐 거대하고 복잡한 지하 공간을 파고 수천 개의 좁은 무덤들을 다닥다닥 붙여 놓은 공간을 뜻한다.

    말하자면 어마어마하게 많은 묘지로 이루어진 지하 네트워크인 셈이다.

    *       *       *

    -몸값. 지불. 확실하게. 우리 목숨은 보장.

    리자드맨들은 땅바닥에 글자를 써 자신들의 의사를 전해 왔다.

    나는 고개를 끄덕여 준 뒤 고개를 들어 심연의 하늘을 쳐다보았다.

    당연히 지저 4만 미터 아래에는 햇빛이 전혀 비치지 않는다.

    다만 으스스하게 떠도는 누런 안개와 부슬부슬 얼굴을 적시는 미지근한 염수의 빗방울만이 눈에 보일 뿐이다.

    “자, 그럼 들어가자고.”

    나는 윤솔과 드레이크를 향해 손짓했다.

    <황천의 유극(遊隙)> -등급: A

    부글부글 끓는 소리와 함께 누런 빛이 뿜어져 나오는 균열.

    우리는 열두 마리의 배신자가 지켜보는 가운데 그 밑으로 다이브했다.

    *       *       *

    “…….”

    카렐린 강을 비롯한 열두 리자드맨은 균열 사이를 가만히 내려다보고 있었다.

    다른 리자드맨들이 그런 카렐린 강을 독촉했다.

    “이봐 카렐린. 저놈들이 금광을 독점하게 놔둘 거야? 같은 종족 플레이어일 때야 상도의를 지켰다지만…지금 저들은 몬스터나 다름없어.”

    “지금 신의를 지킨답시고 가만히 있어 봐야 손해야. 우리가 물러나면 리자드맨 종족 전체가 물러나는 것이나 다름없다.”

    “지금 쳐야 해. 비겁하게 보일지도 모르겠지만 지금 치지 않으면 인간 종족이 너무 앞서나간다.”

    “…그리고 우리는 꼭 해야 할 일이 있잖아. 돈이 필요하다고 친구.”

    그들은 무거운 어조로 입을 열었다.

    대의(大義)를 위한 소(小)의 희생을 입에 담는 친구들의 눈에서는 돈 이상의 것에 대한 갈망이 엿보인다.

    카렐린의 노오란 동공이 흔들렸다.

    긴 침묵.

    이내, 그는 무덤 속 같은 입속에서 바짝 말라붙은 혀를 굴렸다.

    *       *       *

    한편.

    나와 드레이크, 윤솔은 금광 안으로 깊숙이 들어가고 있었다.

    “배신할까?”

    윤솔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내게 물었고 나는 두 말 하면 입 아프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하지. 아마 거리를 두면서 몰래몰래 따라올걸?”

    윤솔은 내 말을 듣고는 더욱 더 이해하기 힘들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녀는 옆에 있는 드레이크를 향해 물었다.

    “드레이크 씨는 궁금하지 않으세요? 왜 어진이가 저 사람들을 살려 주는지.”

    “단가가 안 맞는가 보지.”

    드레이크는 짧게 대답했다.

    윤솔이 고개를 갸웃하자 나는 추가적으로 설명했다.

    “드레이크의 말이 맞아. 굳이 죽이고 가려면 죽일 수 있겠지만, 그러면 비효율적이야.”

    카렐린 강을 비롯한 열두 마리의 리자드맨들은 덩치로 짐작컨대 꽤나 레벨이 높은 이들이다.

    무리의 리더인 카렐린만 해도 드레이크와 일기토가 가능할 만한 실력자인데다가 나머지 열한명의 피지컬도 꽤나 준수했다.

    피해를 입지 않고 다 죽이라고 한다면 가능성은….

    “으음. 고작 98% 정도?”

    내 말을 들은 윤솔은 황당하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98%면 확실하다는 뜻 아니야?”

    하지만 그녀가 간과하는 것이 있다.

    확실히, 일반인이라면 98%의 확률을 신뢰하고 2%의 확률을 불신할 것이다.

    …하지만 게이머는 98%의 확률을 의심하고 2%확률을 믿는 종족!

    게임 세상에서 2%라는 확률은 상당히 크다는 것, 결코 무시 못할 정도의 확률이라는 것이다.

    2%의 확률은 50번 중에 1번을 뜻한다. 98% 확률의 강화 성공 주문서를 바른 아이템이 터지는 것도 은근히 자주 일어나는 일이다.

    나는 그런 조금의 위험조차도 감수하고 싶지 않았다.

    특히나 이런 중요한 일을 앞둔 시점에서는 더더욱.

    “저놈들은 종족이 다르니만큼 믿을 수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위기가 닥쳐왔을 때 꽤나 효율적으로 이용해 먹을 수 있지. …가능하면 그럴 일이 없으면 좋겠지만 말이야.”

    나는 리자드맨들이 추격해 올 것을 대비해 후방을 확실하게 주시하고 있었다.

    저것들은 일종의 보험인 셈이다.

    한편.

    드레이크와 윤솔은 계속 앞으로 내려가고 있다.

    이 거대한 금광은 총 3개의 지하층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지하임에도 불구하고 대낮처럼 밝은 갱도(坑道), 벽면을 타고 흐르는 용암이 눈이 멀어 버릴 듯한 적빛을 뿜어낸다.

    하지만 그 광경은 지하로 내려갈수록 바뀌었다.

    황금!

    엄청난 황금의 맥(脈)이 시커먼 지층 속에서 펄떡이는 것이 보인다.

    손가락 다섯 개를 모은 것보다도 굵은 황금의 핏줄기가 검은 지층의 단면 단면들을 관통해 흐르고 있었다.

    너무나도 짙고 선명한 황금색에 이끌린 나는 저도 모르게 금광의 벽면으로 다가갔다.

    마치 돈에 홀려 버린 망령처럼.

    그런 내 뒷덜미를 잡아채는 이는 윤솔이었다.

    “어진아! 정신 차려!”

    나는 그녀의 목소리에 정신을 차렸다.

    고개를 들어보니 내가 다가가려던 금맥 근처에는 몬스터 몇 마리가 웅크리고 앉아 있었다.

    <거꾸로 타는 귀뚜라미> -등급: B+ / 특성: 맹독, 유폭, 변온, 반전

    -서식지: 분쟁지대 ‘썩고 불타는 땅’ 전역

    -크기: 1m.

    -좀 깊다 싶은 금광에는 널리고 널린 곤충이다. 금광 안으로 들어가는 것은 본 적이 없는데 금광 밖으로 기어 나오는 것은 무수하게 많다.

    검은 광택이 반짝이는 등에 통통하게 살찐 배때기.

    몸의 검지 않은 부분은 전부 황금색으로 빛난다.

    특이하게도 이 귀뚜라미는 등과 배가 뒤집혀 있는 상태로 기어 다닌다.

    그리고 천장에 납작 달라붙어 금이 섞인 모래를 야금야금 갉아먹고 있는 것이다.

    나는 건드려서 좋을 일이 없는 이 귀뚜라미들을 피해 멀리 돌아갔다.

    “이 벌레들은 불 데미지를 물 데미지로, 물 데미지를 불 데미지로 바꾸거나 아니면 자신의 공격 패턴을 좌우로 바꿔 가면서 하는 특성이 있어. 그리고 한 놈이 자폭하면 다른 놈들도 따라서 자폭하는 성질까지 있으니 아주 귀찮지. 거꾸로 붙어서 기어 다니기 때문에 자칫 발견이 늦으면 큰일 나.”

    다행스럽게도 이 귀뚜라미들은 금광 벽이나 천장에 붙어 사금을 갉아먹는 것 말고는 별다른 관심이 없어 보였다.

    먹이활동을 하는 영역만 침범하지 않으면 딱히 공격성을 드러내지 않으니 에둘러서 피해 가면 될 일이다.

    아마 위의 리자드맨들은 금맥에 홀려 다가갔다가 이놈들의 자폭 테러에 당한 듯싶었다.

    ‘…그러니 그런 거지꼴을 하고 있었겠지.’

    나는 검댕이 잔뜩 묻어 있던 리자드맨들의 몰골을 떠올리며 픽 웃었다.

    한편, 내 옆을 따라오던 드레이크는 귀뚜라미들을 신기하게 들여다보고 있었다.

    “한번 잡아 보고 싶기는 하군. 아이템을 뭘 줄지 궁금하다.”

    “뭐, 좋은 아이템을 주긴 하지.”

    “그래? 그럼 한번 잡고 가야 하는 것 아닌가?”

    “유폭 특성 때문에 골치 아파. 그리고 저놈들에게 얻을 수 있는 아이템은 밑에서 또 얻을 수 있어.”

    그때.

    쩝- 쩝쩝- 우걱우걱-

    앞에서 괴상한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금광의 코너를 돌아 지하 1층의 제일 깊숙한 곳으로 접어들자 지하 2층으로 가는 지하계단이 눈에 들어온다.

    그리고 그 앞에는 수문장 격인 중간 보스가 걸터앉아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황금광 청개구리> -등급: A / 특성: 맹독, 어둠, 절약, 과식, 역류성 식도염, 변온, 반전, 용오름

    -서식지: 어비스 터미널 ‘황천의 유극 1층’

    -크기: 4m.

    -한평생 부모가 한 말을 반대로만 들어온 청개구리가 있었다. 부모는 죽기 전 산에 묻히고 싶었기에 자신을 물가에 묻어 달라는 유언을 남겼지만 부모를 잃은 슬픔에 겨운 청개구리는 태어나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부모의 말을 곧이곧대로 따랐다.

    그리고 어느 비 오는 날, 부모의 묘지가 불어난 물에 쓸려 내려가자 청개구리는 구슬프게 울었다.

    떠내려 가는 부모의 묘를 보며 청개구리는 독한 마음을 먹었다.

    ‘그래 이제 믿을 것은 돈뿐이야!’

    청개구리라기보다는 두꺼비에 가까운 외형.

    이 거대한 양서류 괴물은 황금 광맥이 흐르는 지하통로 한가운데 떡 하니 버티고 앉아 무언가를 우물거리고 있었다.

    뭘 입안에 잔뜩 넣고 씹는가 했더니 두터운 입술 밖으로 귀뚜라미의 다리 몇 개가 튀어나와 있는 것이 보인다.

    “기분 나쁘게 생겼군.”

    드레이크는 개구리를 보며 눈살을 찌푸렸다.

    그는 쇠뇌에 화살을 먹여 바로 선빵을 날렸다.

    A급 몬스터는 많이 상대해 봤기에 그리 어려움이 없을 것이라는 계산 하에 벌인 행동이었다.

    하지만.

    ‘…힘들 텐데?’

    나는 그런 드레이크를 보며 싱긋 웃었다.

    아니나 다를까.

    펑!

    황금 개구리는 몸에 닿은 화살을 그대로 되돌려 드레이크에게 쏘아 보냈다.

    “헉!?”

    드레이크는 깜짝 놀라 바닥을 굴러야만 했다.

    화살이 같은 궤도로 180도 몸을 돌려 날아왔기 때문이다.

    그것도 모자라.

    [게에에에엑!]

    황금 개구리가 드레이크를 발견하고 공격해 온다.

    철퍽! 철퍼덕!

    놈은 입안에 넣고 우물거리던 귀뚜라미들을 토해 내기 시작했다.

    황금색 액체들이 드레이크를 향해 날아든다.

    소화가 반쯤 되다 만 귀뚜라미들의 건더기가 잔뜩 섞인.

    “앗 뜨거!”

    드레이크는 액체를 피해 바닥을 데굴데굴 굴렀지만 몇 방울이 몸에 튀는 것은 막을 수 없었다.

    상태이상 ‘맹독’에 걸렸음은 물론이다.

    나는 그것을 보며 실소를 머금었다.

    “저놈은 대격변 이후에 출몰하기 시작한 몬스터라서 일반적인 A급 몬스터보다 강해. 공격을 거꾸로 반사하는 패시브 특성하고 구토물을 멀리까지 뱉는 공격 패턴은 주의해야 하지.”

    “공격을 거꾸로 반사한다고? 황당하군. 그럼 어떻게 잡나?”

    “도트 데미지나 지형 데미지로 잡아야지.”

    다행스럽게도 그 두 가지 다 우리의 전공 분야 중 하나다.

    나는 깎단, 드레이크는 마름쇠.

    우리는 황금 개구리의 주위를 돌며 놈의 막대한 HP를 야금야금 갉아먹었다.

    윤솔의 힐 마법이 뒤에 있었기에 가끔 맹독에 걸려도 버틸 수 있었다.

    놈은 질긴 가죽과 육중한 덩치, 위 속에 저장해 놓은 용해액과 토사물로 맹렬하게 저항했지만…그래봐야 A등급의 몬스터이니만큼 오래 버틸 수는 없다.

    …쿵!

    결국 놈은 머리를 바닥에 찧은 채 쓰러지고 말았다.

    후두둑- 후둑-

    죽으면서 떨구는 아이템과 골드는 많지 않았다.

    “과연 ‘절약’ 특성을 가진 놈답네.”

    나는 황금 개구리가 떨군 적은 액수의 골드와 몇몇 아이템들을 내려다보며 중얼거렸다.

    -<거꾸로 정수> / D

    거꾸로 뒤집는 힘이 담긴 구슬이다. 다양한 곳에 응용된다.

    실리카겔 방습제처럼 생긴 작은 구슬들.

    황금 개구리는 죽으면서 무수히 많은 거꾸로 정수들을 토해 놓았다.

    놈 자신이 떨군 것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거꾸로 타는 귀뚜라미’들의 아이템이었다.

    드레이크는 그것들을 보며 감탄했다.

    “그래서 귀뚜라미들을 직접 잡을 필요가 없다고 했었군.”

    “맞아. 이놈 뱃속에 많으니까.”

    나는 거꾸로 정수들을 챙기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것은 재료 아이템. 훗날 요긴하게 쓰이니 미리 비축해 두면 좋을 것들이다.

    우리는 개구리와 귀뚜라미들이 남긴 아이템들을 전부 수거한 뒤 재빨리 지하 2층으로 내려갔다.

    이윽고.

    개구리가 지키고 있던 2층의 입구에 진입한 드레이크와 윤솔은 입을 딱 벌려야만 했다.

    전에 있던 곳이 제련되지 않은 금맥 층이었다면 이곳은 번쩍번쩍 눈부신 황금의 세계였던 것이다!

    “세상에! 이게 다 금이야?”

    윤솔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벽을 살폈다.

    이 거대한 지하공동의 내부는 마치 카타콤의 풍경을 재현하고 있는 것 같았다.

    수없이 많은 해골들이 늘어져 뼈의 벽, 유골의 미궁을 이루고 있다.

    특이점이 있다면 이 해골들은 인간들의 것보다 훨씬 더 크고 굵직했으며 전체가 황금빛으로 번쩍번쩍 빛나고 있다는 것이다.

    황금 해골의 미로.

    이 장엄하고도 살풍경한, 그리고 화려하면서도 음울한 위용이라니.

    “뭐지? 그냥 황금으로 만들어 놓은 조형물인가?”

    드레이크는 벽을 이루고 있는 해골에 가까이 가 머리를 대고 살펴보았다.

    반짝거리는 황금의 표면에 얼굴이 비친다.

    가까이서 살펴본 해골은 더욱 더 진짜처럼 보였다.

    검은 광택과 황금빛이 번갈아 빛나는 매끄러운 표면, 이빨 몇 개는 백금으로 때워져 있었고 개중 몇 개인가의 해골의 안와 속에는 붉은 빛깔의 루비나 푸른 빛깔의 사파이어가 자리하고 있었다.

    “…이것들을 챙길 수 있으려나?”

    드레이크는 벽에 단단히 박혀 있는 해골들을 뽑으려 했다.

    꽤나 단단히 붙어 있었지만 의외로 또 아주 고정되어 있는 것은 아니어서 뽑으려고 마음만 먹으면 뽑을 수 있을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나는 손을 뻗어 드레이크를 만류했다.

    “진정해. 지금 이런 잔돈푼에 연연할 때가 아냐.”

    내 말을 들은 드레이크와 윤솔은 입을 반쯤 벌렸다.

    이 거대한 황금향(黃金鄕)을 두고 잔돈푼이라니!

    하지만 나는 이 던전에 숨어 있는 ‘진짜배기’를 알고 있다.

    그것에 비하면 이곳에 있는 황금 유골의 카타콤은 눈에 들어오지도 않는 수준.

    나는 뼈로 된 길을 따라 안쪽 깊숙한 곳으로 들어갔다.

    어느 정도 깊이 내려오자 이내 우리의 귀에 이상한 소리가 들려왔다.

    …… …… ……

    낮고 음울한, 마치 아편에 중독된 환자가 굴속에 박혀 신음하는 듯한 소리.

    우는 것 같기도 하고 웃는 것 같기도 한 곡소리 같은 것이 어둡고 차가운 황금향의 끝에서 낮게 새어나오고 있었다.

    나는 소리죽여 쾌재를 불렀다.

    드디어 발견했다, ‘보물 고블린 (Treasure Goblin)’!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