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닳고닳은 뉴비-311화 (311/1,000)
  • 312화 황금광 시대 (4)

    인간 족 공식 랭킹 1위 ‘드레이크 캣’

    그는 훗날 랭킹에서 모습을 감추기 전까지(게임을 접었다는 설이 가장 유력) PVP나 용자의 무덤, 레벨 등 많은 부문에서 1위를 지켜왔던 유저다.

    한편 카렐린 강 역시도 그에 뒤지지 않은 커리어를 가졌다.

    미래의 일이기는 하지만 그는 리자드맨 하면 떠오르는 대표적인 인물이 될 것이다.

    그런 두 강자가 이런 곳에서 적수로 만났으니 미래를 아는 내 입장에서는 흥미진진할 수밖에.

    ‘…야, 이거 흥미로운데?’

    회귀 전이었더라면 감히 눈도 제대로 마주치지 못했을 강자들의 싸움을 불과 몇 미터 거리에서 직관 중이라니.

    새삼 감개무량한 일이다.

    한편.

    나는 냉정하게 아군의 승리 확률을 따져 보고 있었다.

    ‘인간 궁수와 리자드맨 전사라…….’

    드레이크는 날렵한 움직임으로 거리를 벌리며 쇠뇌와 마름쇠, 단검을 이용해 싸우는 메타.

    엄밀히 말하자면 궁수보다는 도적이나 암살자라고 보는 것이 더 적절하다.

    우선 인간 특유의 작은 몸집과 가벼운 체중으로 재빨리 움직여 상대와의 거리를 벌리고 양손의 쇠뇌를 이용해 화살을 퍼붓는다.

    대부분의 상대는 이 단계에서 걸러지지만 간혹 이 화살비를 뚫고 오는 적이 있다.

    적이 화살을 맞으면서 돌진해 온다면 계속 거리를 벌리면서 화살을 쏘겠지만, 만약 적이 재빠른 움직임으로 화살을 피해 접근해 온다면 바닥에 마름쇠를 깔아 움직임을 봉인한다.

    그렇게 해서 화살과 마름쇠의 피해로 적이 약해지면 화살, 혹은 숨겨 두었던 단검으로 승부를 마무리 짓는 것이 드레이크의 스타일.

    한편 카렐린 강은 근접전을 즐기는 무투가, 그중에서도 회피와 치명타에 특화된 근접 딜러다.

    흔히 회피가 특기인 무투가의 방어력이나 근력을 얕보는 이들이 있는데 사실 그것은 대단히 잘못된 상식이다.

    상대방의 공격을 피하려면 동체시력이 뛰어나야 함은 물론이요 다리와 목, 허리의 근육이 굉장히 발달되어 있어야 한다.

    순식간에 고개를 틀거나 허리를 꺾거나 발가락에 힘을 주어 몸의 방향을 전환하려면 막대한 근력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 어떤 자세에서도 자유롭게 몸을 틀어 적의 공격을 피하기 위해서는 이처럼 근력이 뛰어나야 하고 이는 곧 치명적인 위력을 지닌 반격을 가능케 하는 무기가 된다.

    기묘한 각도로 몸을 꺾어 상대방의 공격을 피한 리자드맨은 으레 날카로운 손톱이나 발톱, 굵은 꼬리를 휘둘러 반격해 온다.

    오크의 단단한 몸뚱이가 아닌 휴먼의 작고 연약한 몸으로는 이것을 받아내기 힘들 것이다.

    ‘상성으로 보면 카렐린 쪽이 유리한데….’

    나는 흥미진진한 표정으로 전장을 주시했다.

    이윽고.

    드레이크와 카렐린 강의 PVP가 시작되었다.

    …파팍!

    제일 먼저 땅을 박찬 이는 의외로 드레이크였다.

    거리를 벌려도 모자랄 판국에 그는 오히려 거리를 바짝 좁히며 카렐린 강을 향해 다이브했다.

    퍼퍼펑!

    드레이크의 양손에 들린 쇠뇌가 화살을 발사했다.

    “……!”

    카렐린 강은 기겁했다.

    궁수를 상대해 본 경험은 많았지만 이렇게 물소처럼 돌진해 오는 궁수는 처음이다.

    전진하면서 화살을 쏘니 후진하면서 화살을 쏘는 것보다 훨씬 더 빠르고 힘도 강력했다.

    “…큭!”

    카렐린 강은 완갑을 찬 팔뚝으로 화살을 후려쳐 튕겨냈다.

    하지만.

    터엉-

    화살은 카렐린 강의 완갑을 뚫고 그의 외피를 조금 찢어 놓았다.

    실로 어마어마한 힘이었다.

    ‘무슨 화살의 힘이….’

    카렐린 강은 황급히 뒤로 물러났다.

    따라서 자연스럽게 거리가 벌어졌다.

    ‘…아차!’

    카렐린 강은 화살비를 피해 뒤로 물러나는 순간 아차 싶었다.

    세상에 궁수를 상대로 거리를 내주는 바보 같은 실수를 하다니!

    상대방이 갑자기 워낙 저돌적으로 달려드니 순간 착각을 했다.

    아니나 다를까, 드레이크는 카렐린 강이 벌려 놓은 거리를 옳다구나 하고 더욱 더 멀리 벌린다.

    승부를 초반에 끝낼 생각임이 명확해 보였다.

    퍼퍼퍼퍼펑!

    화살비가 쏟아져 내리기 시작했다.

    배드엔딩들의 단단한 외골격으로 만들어진 화살이다.

    그것을 A+등급의 쇠뇌로 쏴 갈기는데 방어구가 멀쩡할 리가.

    그나마 카렐린 강이 리자드맨 특유의 유연한 몸과 천재적인 반사 신경을 이용해 화살을 빗면으로 흘려 막지 않았으면 완갑 따위는 금세 뚫려 버렸을 것이다.

    “…쉬익!”

    카렐린 강은 리자드맨 특유의 숨소리를 강하게 내뱉었다.

    이내, 그는 땅 위로 툭툭 불거져 나온 바위 뒤로 숨었다.

    당장 쏟아지는 화살비를 피하기 위한 임시방편이었다.

    “그래 봤자 시간을 조금 더 벌었을 뿐이지.”

    드레이크는 높이 솟은 바위의 양 옆을 향해 쇠뇌를 겨누었다.

    맨 처음 카렐린 강이 손톱을 휘둘러 잘라 버린 버섯바위의 기둥.

    관통 데미지를 주기에는 바위가 조금 두껍다.

    까라락-

    드레이크는 양손에 든 두 개의 쇠뇌를 널찍하게 벌렸다.

    바위의 좌측으로 튀어나오든 우측으로 튀어나오든 모두 겨냥할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은 리자드맨이라는 종족의 피지컬을 고려하지 못한 결과였다.

    파팍!

    카렐린 강은 발톱을 바위벽에 박아 넣고는 잽싸게 그것을 타올라갔다.

    그리고 바위의 좌측도 우측도 아닌, 꼭대기에서 모습을 드러내 드레이크를 향해 펄쩍 점프했다.

    “…위로?”

    드레이크는 조금 놀랐다.

    화살을 몇 대 쐈지만 그 몇 발로 상대방의 방어구와 질긴 피부를 뚫을 수는 없었다.

    …따앙!

    카렐린 강이 다섯 개의 손톱을 휘둘러 드레이크를 공격했다.

    어마어마한 물리 공격력!

    바위도 두부처럼 갈라 버리는 리자드맨의 손톱이 전후좌우로 몰아친다.

    드레이크는 몸을 숙여 카렐린 강의 품속으로 파고들었다.

    “쇠뇌는 이렇게도 쓸 수 있지.”

    드레이크는 쇠뇌의 시위를 풀고는 그것을 와이어처럼 매듭지어 카렐린 강의 손목에 대고 확 묶어 버렸다.

    그리고 그것을 카렐린 강의 굵은 목에 한번 휘감은 다음 발을 그의 가슴팍에 대고 힘껏 잡아당겼다.

    “……!?”

    카렐린 강은 자기 손목이 자신을 향해 확 가까워지는 것에 당황했다.

    더 정확히는 자신의 날카로운 손톱 끝이 자신의 얼굴을 향해 쇄도하는 것에.

    까딱하면 자기 손톱으로 자기 얼굴을 꿰뚫어 버릴 상황이다.

    “젠장!”

    카렐린 강은 황급히 한쪽 손에 힘을 주었지만 그것보다는 드레이크가 와이어를 이용해 온몸으로 당기는 힘이 더 셌다.

    하지만.

    팍!

    드레이크는 자신의 몸이 갑자기 허공으로 치솟는 것에 당황해야 했다.

    꼬리.

    리자드맨에게 있어 손보다 더 자주 쓰인다는 꼬리의 존재를 잊은 것이다.

    차르륵!

    카렐린 강은 통나무처럼 굵은 꼬리를 뻗어 드레이크의 허리를 휘감았다.

    그리고 그것을 그대로….

    “크악!”

    땅에 메다꽂으려던 카렐린 강은 비명을 지르며 꼬리의 힘을 풀었다.

    툭-

    꼬리 끝, 살점 토막이 땅바닥에 떨어져 버둥거린다.

    드레이크가 피가 뚝뚝 떨어지는 단도를 들고 어깨를 으쓱하는 게 보인다.

    “즉사 특성이 발동했는데…. 어떻게 살아 있지?”

    드레이크는 위기의 순간 즉사 특성이 붙어 있는 단도로 카렐린 강의 꼬리를 잘라 버린 것이다.

    물론 그 찰나의 순간 카렐린 강이 위기의식을 느끼고 스스로 꼬리를 끊어내지 않았더라면 승패는 벌써 정해졌을 것이다.

    절체절명의 순간, 리자드맨은 꼬리를 끊어 내고 도망칠 수 있다는 것을 몰랐던 드레이크의 실수였다.

    “…제법인데.”

    “…성가시군.”

    말이 통하지 않는 두 랭커가 같은 마음, 같은 뜻으로 대치한다.

    한편.

    “…와. 이거 재밌는데?”

    나는 팝콘을 뜯으며 PVP를 직관 중이었다.

    윤솔이 나를 돌아보며 물었다.

    “어진아. 누가 유리한 거야?”

    그녀의 질문은 쉽게 대답하기 힘든 것이다.

    싸움에 대한 숙련도 자체는 드레이크가 높다. 아이템과 레벨도 드레이크 쪽이 우세했다.

    하지만 카렐린 강은 아이템과 레벨 차이를 좁힐 수 있는 종족 피지컬이 있었다.

    또한 카렐린 강은 한때 인간이었기에 드레이크의 종족 특성을 정확히 알고 있지만 드레이크는 신규종족인 리자드맨의 특성을 잘 모른다.

    방금만 해도 리자드맨들의 종족 특성인 ‘꼬리 끊기’를 몰라서 콤보를 넣을 타이밍을 놓쳤으니까.

    “…흐음.”

    약간 고민한 나는 결국 답을 내놓았다.

    “좀 더 붙어 봐야 명확해지겠지만……지금 이대로라면 드레이크가 아슬아슬하게 이길 것 같네.”

    내 말대로였다.

    시간이 흐르자 전장은 서서히 드레이크 쪽으로 기울어졌다.

    파파파팟!

    드레이크가 지면을 마름쇠로 뒤덮자 카렐린 강은 특유의 날쌘 몸놀림으로 거리를 좁혀오는 것이 거의 불가능해졌다.

    비늘이 두터워 마름쇠가 잘 박혀들지 않는 리자드맨이었지만 발바닥 가죽까지 두텁지는 않다.

    …뿍! …뿌득! …으드득!

    리자드맨들이 신을 수 있는 신발 아이템은 따로 없었기에, 카렐린 강은 맨발로 드레이크가 뿌려놓은 다양한 종류의 마름쇠를 밟아야만 했다.

    맹독, 마나 번, 관통 등의 특성들이 카렐린 강의 몸을 침식한다.

    거기에 드레이크가 아까부터 계속 쏘아 보내고 있는 강력한 화살들은 카렐린 강을 겁쟁이로 만들었다.

    그는 화살을 피해 바위 뒤에 숨거나 움푹한 바닥에 엎드릴 수밖에 없었는데 그런 곳에는 어김없이 드레이크가 미리 깔아 놓은 마름쇠들이 음흉한 악의(惡意)를 뿜어내고 있었다.

    시간이 지나 그들이 움직이는 범위가 커지면 커질수록 전세는 점점 카렐린 강에게 불리해져 가고 있다.

    드레이크는 눈을 가늘게 떴다.

    “…이제 끝내주마.”

    방금 전 카렐린 강이 바위 뒤로 숨는 것을 봤다.

    까락-

    드레이크는 시위를 당겼다가 재빨리 레버를 당겼다.

    퍼펑!

    굵은 강전 한 발이 바위를 향해 날아갔다.

    …펑!

    바위가 폭발하듯 터졌고 그 뒤에서 카렐린 강의 비명소리가 짧게 울려 퍼졌다.

    바위가 얇다는 것을 눈치 챈 드레이크가 일찌감치 크고 굵은 화살에 한 방 데미지를 실어 관통 샷을 날린 것이다.

    “재미없군. 신규종족이라고 해서 얼마나 강할지 궁금했는데…이제 파악 끝났다.”

    드레이크는 즉사 특성이 붙은 단검을 들고 바위 뒤로 돌아갔다.

    코너를 돌자 바위를 뚫고 나온 화살에 뱃가죽이 꿰여 있는 카렐린 강이 보인다.

    츠츠츠츠…

    리자드맨답게 상처는 빨리 아물고 있었지만, 화살촉이 너무 큰데다가 미늘들이 더덕더덕 돋아 있어서 쉽게 빠져나올 수는 없다.

    카렐린 강은 핏발 선 눈으로 드레이크를 노려보고 있었다.

    “지형이 황야만 아니었어도….”

    그는 드레이크를 향해 원통하다는 듯 중얼거렸지만 통역이 안 되었기 때문에 대화는 불가능했다.

    “그럼 잘 가라.”

    드레이크는 단검을 들어 카렐린 강의 심장에 가져다댔다.

    하지만.

    …퍼펑!

    난데없이 머리를 후려치는 충격 때문에 적의 숨통을 끊어놓지는 못했다.

    “……!”

    드레이크는 완갑으로 머리를 방어한 채 저 멀리 튕겨나갔다.

    비늘 몇 장이 팔랑팔랑 나부낀다.

    흙먼지 사이로 보인 것은 리자드맨들의 노오란 눈.

    열한 마리의 리자드맨들이 어느새 드레이크를 포위하고 있었다!

    “…일 대 일 아니었나? 심지어 너희들이 먼저 제안했던 것 같은데.”

    드레이크는 방금 전 자신의 머리를 꼬리로 후려친 리자드맨을 노려보며 말했다.

    그러자 침통한 표정의 카렐린 강을 제외한 나머지 리자드맨들이 콧방귀를 뀌었다.

    뭐라뭐라 하는 게 아마 비웃는 뉘앙스였다.

    금광이 걸린 일인데 일 대 일? 그런 게 어디 있느냐, 뭐 대충 그런 느낌.

    아무튼 전세는 역전되었다.

    카렐린 강을 제외한 열한 명의 리자드맨들이 드레이크를 둥글게 에워싸고 포위했다.

    당장이라도 달려들 태세.

    하지만.

    “…이것들 봐라?”

    바위 위에서 툭 튀어나온 머리에 의해 전투는 아주 잠시 미뤄졌다.

    재미있다는 표정으로 생글생글 웃고 있는 얼굴.

    …당연히 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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