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닳고닳은 뉴비-310화 (310/1,000)
  • 311화 황금광 시대 (3)

    나는 눈을 가늘게 뜬 채 눈앞에 있는 열두 마리의 리자드맨들을 쳐다보았다.

    리자드맨들은 얼굴로 생김새를 구분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에 피부색과 몸집, 꼬리 길이 등등을 봐야 한다.

    대체로 리자드맨들은 레벨이 올라갈수록 덩치가 커지며 비늘이 크고 두꺼워진다.

    단순히 키만 커지는 것이 아니라 골격이 거대해지고 근육이 붙기 때문에 고레벨 리자드맨은 오크와 견주어서도 밀리지 않는 근력을 갖게 되는 것이다.

    거기에 리자드맨 특유의 민첩함과 회복력, 비늘이 가진 마법내성과 물리방어력을 생각하면 리자드맨의 종족 밸런스는 레벨이 올라갈수록 거의 황금비율에 가까워진다.

    동렙 휴먼의 피지컬로는 도저히 따라잡을 수 없다는 것이 정설.

    …물론 장점만 있는 것은 아니다.

    당연히 단점도 있다.

    1. 용 군단 휘하의 몬스터들이 아군으로 분류되어 더 이상 사냥할 수 없게 된다는 것.

    2. 소모품 아이템의 흡수율과 연비가 굉장히 비효율적이라는 것.

    3. 착용할 수 있는 장비들의 메타와 베리에이션이 상당히 좁다는 것.

    이 세 가지가 리자드맨 유저들의 가장 큰 단점이다.

    그중 가장 큰 단점은 첫 번째.

    대격변 이후 용과 악마의 신경전이 초읽기에 접어들었고 수많은 몬스터들이 용 편에 붙을지 악마 편에 붙을지를 선택해야 했다.

    따라서 몬스터들 중 거의 절반가량은 용 편에 가 붙었다.

    메인 스토리 상 용 군단 휘하에 예속된 리자드맨이라는 종족은 이러한 이유로 같은 용 군단 진영에 소속되어 있는 몬스터들을 사냥할 수 없다.

    사냥이 가능하더라도 그 보상이나 경험치가 형편없이 적어지거나 때로는 패널티까지 입게 되는 것이다.

    두 번째 단점도 만만치 않다.

    인간 종족이 경차의 연비를 지녔다면 리자드맨 종족은 스포츠카의 연비와도 비슷하다.

    인간은 도구를 쓰는 종족이고 지금껏 그래 왔듯 수많은 포션과 주문서, 각종 버프 물약들을 자유자재로 이용할 수 있다.

    물약을 쓰면 물약의 효과가 100% 발휘되고 주문서를 쓰면 주문서의 효과가 100% 발동한다.

    하지만 리자드맨의 경우에는 그 연비가 매우 떨어지는 편이었다.

    같은 포션을 먹어도 인간이 회복하는 양에 비해 절반, 그 이하의 효율을 낼 때도 있다.

    덩치가 크고 피지컬이 좋다보니 그것을 유지하기 위해 들어가는 식량과 식수의 양도 인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많았다.

    세 번째 단점 역시 많은 리자드맨 유저들을 곤혹스럽게 하는 요인이었다.

    리자드맨들은 기본적으로 덩치가 크다.

    골격이 굵고 근육량이 많아 적에게 바짝 붙어 날뛰는 스타일의 전투가 어울린다.

    그렇기 때문에 리자드맨들이 착용할 수 있는 무기나 방어구는 대부분 간단한 형태의 아이템들에 머무르는 편이었다.

    일일이 페이지를 넘겨야 하는 마도서나 부드럽게 쥐어야 하는 수정구슬, 섬세한 활시위, 복잡한 특성들이 도배된 주문서 등은 리자드맨들에게 어울리지 않는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리자드맨은 자체적으로 보유하고 있는 막강한 성능에 비해 평가가 조금 박한 편이었다.

    어찌 보면 ‘정답 스타일’이 딱 정해져 있으며 ‘돈도 굉장히 많이 드는’ 종족이라고 할 수 있겠다.

    유지비를 감당하지 못해 캐릭을 지우고 연비가 좋은 오크나 휴먼으로 종족을 다시 키우는 이들도 심심찮게 있을 정도니까.

    …그래서일까?

    지금 내 앞을 가로막은 열두 마리의 리자드맨들은 금광에 대한 열망이 상당히 뜨거워 보였다.

    스슥- 척!

    그들은 다급한 태도로 우리 앞을 가로막았다.

    그리고 나는 그들 중 가장 키가 크고 덩치가 큰 정면의 리자드맨에 주목했다.

    굵은 뼈와 질긴 근육, 두터운 비늘.

    옆에 있는 리자드맨들도 일반적인 리자드맨들보다 머리 두 개는 더 컸는데 지금 눈앞의 이자는 그런 동료들보다도 머리 하나가 더 크다.

    본명 ‘카렐린 강’

    게임 상의 닉네임은 ‘슬리핑 독’

    러시아 국적의 리자드맨 유저.

    나는 그의 이름과 얼굴을 이미 알고 있었다.

    ‘회귀하기 전에 꽤나 유명했지. 괴물 리자드맨이라고….’

    그는 대격변 이전, 모든 플레이어들이 인간 종족으로 통일되어 있었을 때에는 별로 두각을 나타내지 못했던 랭커였다.

    하지만 대규모 종족 패치가 된 이후, 그는 인간의 몸을 버리고 리자드맨의 육체로 갈아타게 되었으며 그때부터 자기 자신도 몰랐던 재능을 눈부시게 개화시키기 시작했다.

    그는 항상 최전선을 맹렬하게 누볐고 수없이 많은 인간과 오크들의 목을 따며 뭇 리자드맨들의 신화로 군림했다.

    그 덕분에 일곱 용군주에게 인정받아 리자드맨 유저 최초로 작위까지 받은 인물이었다.

    ‘벌써 대격변에 적응한 건가? 대단한 재능이네. 하긴, 그러니 리자드맨 공식 랭킹 1위를 몇 년이나 지켰겠지.’

    나는 눈앞에 있는 카렐린 강을 살폈다.

    회귀하기 전 기억 속의 모습보다 덩치가 작았지만 그래도 키가 2미터 가까이는 된다.

    지금 이대로도 꽤나 위압적인 모습이었다.

    ‘내 기억으론 러시아에서 언론 쪽 일을 했었다고…그럼 지금은 아직 하는 도중이려나?’

    그래서일까? 그의 전신에서는 뭐라 설명할 수 없는 반골 기질이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왜 게임 속 닉네임이 ‘슬리핑 독’인지도 대충 알 것 같았다.

    그때.

    차앙!

    카렐린 강이 검지의 손톱을 빼들었다. 마치 장검의 날 같은 긴 손톱을.

    “……?”

    나는 눈을 가늘게 떴다.

    바로 공격해 오는가 싶었지만…그것은 아니었다.

    카렐린 강은 손톱을 들어 땅바닥에 글씨를 쓰기 시작했다.

    -Это наша область.

    뭔 소린가 싶어 재빨리 이미지 스캔으로 번역기를 돌리자 이내 심플한 메시지가 떴다.

    -여기는 우리 구역이다.

    정말로 간단한 메시지.

    천사소녀 네티가 잠들어 있던 자리에 생겨난 거대한 금광을 자신들이 독점하겠다는 것이다.

    나는 피식 웃었다.

    “너네들 거면 빨리 공략하면 되지. 그동안 안 하고 뭐했어?”

    나는 대격변 패치가 완료되자마자 게임에 접속했고 여기까지 내려오는 데 약 2주간의 시간이 걸렸다.

    이들이 어떻게 나보다 빨리 이곳에 도착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사실 그것은 별로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지금 이 땅의 주인의 누구냐는 것.

    내가 빈정거리자 리자드맨들은 내 말을 이해하지 못한 듯 서로의 얼굴을 마주본다.

    한편, 무리의 리더로 보이는 카렐린 강은 침착하게 소란을 가라앉혔다.

    그리고는 침착하게 글씨를 이어서 써 나갔다.

    -우리는 원래 이 구역의 황야에서 사냥을 하고 있었다. 격변 이후 접속했더니 우리가 있었던 평야는 깊은 구덩이가 되었고 운 좋게도 이 던전을 발견할 수 있었다. 우리는 이 던전을 공략하려 했지만 초반 난이도가 워낙에 힘들어서 전략을 다시 짜기로 했다. 그러던 도중 너희들이….

    아무래도 대격변 패치 전부터 이곳 좌표에 있었고 우연히 접속 후 바로 이곳으로 캐릭터가 이동된 모양이다.

    우연이라면 우연. 실로 엄청난 운이다.

    그들은 우리가 이곳까지 내려오는 2주간의 시간 동안 던전을 공략하기 위해 이런저런 시도를 해 봤었던 모양.

    ‘그래서 저렇게 거지꼴이었군.’

    나는 눈앞에 있는 운 좋은 리자드맨들을 바라보았다.

    하필 대격변 전에 있었던 구역이 밑으로 푹 꺼지더니 지저 4만 미터의 깊은 싱크홀이 될 줄이야 누가 알았겠는가?

    …하지만, 크고 맛있는 고깃덩이라고 무조건 덤벼들었다가는 이빨이 나가거나 소화불량에 걸려 체하기 마련.

    아무리 좋은 기회도 능력이 되지 않으면 잡지 못하는 법이다.

    “비켜.”

    나는 딱 한마디만을 내뱉었을 뿐이다.

    싱글싱글 웃고 있는 내 태도에 몇몇 리자드맨이 발끈한다.

    하지만 그들은 함부로 덤벼들지 못했다.

    “…….”

    카렐린 강이 손을 뻗어 뒤의 동료들을 제지했기 때문이다.

    그는 신중한 표정으로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아무래도 인기 유튜버인 내 얼굴을 알고 있는 듯하다.

    카렐린 강이 동료들을 향해 몇 마디 중얼거리자 그들의 표정도 급변했다.

    아마 내 정체를 이제야 알아본 듯싶다.

    이내 카렐린 강은 바닥에 또 한 번 글씨를 썼다.

    이번에는 숫제 어눌한 한국어였다.

    -큰 금광. 황금. 함께 나누기에 충분할 정도의 매장량.

    누가 봐도 방금 막 번역기를 돌린 듯한 말투.

    내가 한국인인 것을 알고 그에 맞춘 모양이다.

    최대한 내 심기를 거스르지 않고 사태를 수습하려는 의지가 엿보인다.

    평소대로라면 그 정성이 기특해서라도 원하는 대로 하게 해 줬겠지만…….

    “안 돼. 안 돼. 황금 나눠 줄 생각 없어. 돌아가.”

    하지만 나 역시도 돈이 절실한 상태였다.

    구단도 굴리고 애들 연봉도 빵빵하게 챙겨 주려면 돈이 많이 필요하다.

    …애초에 혼자서도 다 먹을 수 있는 알짜배기 보물을 굳이 남과 나눠먹을 건 또 뭔가?

    나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들이 선택할 수 있는 길은 둘 뿐이었다.

    “비키거나 죽거나.”

    리자드맨들은 내 말을 눈치껏 알아들은 듯싶다.

    협상결렬(協商決裂).

    문답무용(問答無用).

    팽팽한 긴장이 흐르는 전장.

    이내 열두 마리의 리자드맨이 우리를 포위했다.

    그때.

    리더 격인 카렐린 강이 무리 앞으로 나왔다.

    그는 나를 향해 손을 까닥까닥 움직였다.

    -대장끼리. 한 판. 하지 않겠는가?

    1:1 대장전(大將戰)을 하고 싶은 모양이다.

    뭐, 나에게는 딱히 나쁠 것 없는 제안.

    한 번에 열두 마리를 전부 상대해도 상관없지만…. 얻을 것 없는 귀찮은 전투를 이런 식으로 축약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자고로 대장이 잔혹하게 꺾이면 집단의 기세도 수그러드니까.

    내가 흔쾌히 앞으로 나서려는 순간.

    “어진.”

    드레이크가 나를 만류했다.

    “너는 구단의 간판이다. 간판은 함부로 나서서 이미지를 소비하지 않는다.”

    “…그러면?”

    내가 묻자, 드레이크는 씩 웃으며 앞으로 대신 나섰다.

    “잡상인은 내 선에서 걸러 준다.”

    (미래의)휴먼 족 공식 랭킹 1위

    드레이크 캣.

    VS

    (미래의)리자드맨 족 공식 랭킹 1위

    카렐린 강.

    ‘용냥’과 ‘슬리핑 독’이 한 자리에 마주하고 섰다.

    각기 인간과 리자드맨을 대표하면서도 각기 미국과 러시아를 대표하는 두 랭커.

    ‘이야. 이거 세계대전 보는 느낌이네.’

    나는 윤솔과 함께 팝콘 봉지를 뜯었다.

    개와 고양이의 신경전이 지금 막 시작되었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