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닳고닳은 뉴비-308화 (308/1,000)
  • 309화 황금광 시대 (1)

    미리 말해 두지만…나는 회귀하기 전 지난 15년간 이 게임을 플레이해 왔고 그중 10여 년은 대격변 이후의 세상에서 보냈다.

    자연스럽게 수많은 오크, 리자드맨 유저들과 교류했으며(그것이 좋은 쪽이든 나쁜 쪽이든) 그들의 독특한 문화와 언어를 어느 정도 습득해 놓은 상태였다.

    그 왜, 일본 애니를 좋아하다 보면 일본어가 늘고 미국 드라마를 좋아하다 보면 영어가 느는 게 자연스러운 현상 아니겠는가?

    리자드맨, 오크들과 부대끼는 동안 나는 자연스럽게 그들의 말을 대충이나마 이해할 수 있을 정도가 되었다.

    그것이 아무리 지구상에서 사라진 사어(死語)라고 할지라도 말이다.

    나는 눈앞에 있는 오크들을 향해 일침을 날려 주었다.

    “E-learn ssa ga ji up nun jot man han gut dle.”

    아마 저들의 귀에는 어색하게나마 뜻은 통할 것이다.

    ‘예의를 알지 못하는 당신, 당신의 작은 성기와 비슷한 몸집을 가졌다.’

    내 입에서 오크어가 나오자 눈앞에 있는 오크들은 화들짝 놀라 내 얼굴을 들여다본다.

    “mo ji? dong jok in ga?”

    “sang gin gun bi set han de….”

    “orc ah nim?”

    오크들은 내 얼굴을 들여다보며 혹시 동족이 아닌지 의심하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그 모습에 괜히 울컥한 나는 바로 PVP를 시작했다.

    퍽!

    거꾸로 된 깎단이 마치 야구배트처럼 날아가 오크 하나의 머리통을 뚝배기처럼 깨 놓았다.

    오크 유저는 두 손으로 머리를 감싼 채 비명을 질렀다.

    그러자 다른 오크 두 명이 경계 자세를 취했다.

    파팟!

    이내 두 명의 오크와 방금 전에 머리를 맞은 오크가 반격 준비를 끝마쳤다.

    “…호오? 이것 봐라.”

    나는 눈을 가늘게 떴다.

    하기야, 이곳 어비스 터미널까지 먼 레이드를 왔을 정도면 꽤나 고수들일 것이다.

    거기에 오크 특유의 강력한 근력과 체력 버프가 들어갔으니 아마 인간이었던 시절보다 훨씬 더 강력한 힘을 갖게 되었을 터.

    내 예상대로 눈앞의 플레이어들은 갑자기 증가한 근력과 체력에 신기해하고 있는 것 같았다.

    “우어어어!”

    오크 하나가 등에 매달고 있던 거대한 도끼를 꺼내 수직으로 내리그었다.

    콰쾅!

    바닥이 두 조각으로 쪼개지며 돌과 모래가 튄다.

    도끼에서 뻗어 나온 충격파는 대지를 땅따먹으며 날아가 저 위에 있는 버섯바위의 갓을 날려 버렸다.

    우르릉…

    멀리서 무너져 내리는 바위를 보며 오크들은 환희에 젖는다.

    자신이 만들어 낸 엄청난 결과에 취한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저 혀를 끌끌 찰 뿐이다.

    ‘보아하니 아직 자기 몸에 적응도 덜 되었구만.’

    근력과 체력이 올라갔으면 공격을 할 때 적당히 힘의 완급조절을 할 줄 알아야 한다.

    특히나 괴력이 특기인 오크 같은 경우에는 평소 힘 분배를 잘해야 나중에 정말 중요한 순간에 체력이 모자라는 일이 없어진다.

    “몸은 솔직한 법이니까.”

    나는 방금 힘을 써서 축 늘어져 버린 오크에게로 빠르게 접근했다.

    사사삭-

    내가 뱀처럼 몸을 감아오자 오크는 화들짝 놀라 팔을 휘저었지만…방금 전에 너무 힘을 준 탓에 팔근육이 저려 반응이 늦고 말았다.

    우둑!

    나는 오크의 어깨를 잡고 그대로 뼈를 탈골시켰다.

    그리고 그 상태로 뒤통수를 찍어 눌러 땅바닥에 처박아 버렸다.

    “…Grrrr!”

    오크는 재빨리 고개를 들려 했지만 그것은 불가능하다.

    내가 이미 발바닥으로 놈의 머리를 콱 짓밟고 있었기 때문이다.

    바둥바둥…

    놈은 쓸 수 있는 한쪽 팔을 이용해서 내 종아리와 발목을 움켜쥐었지만…….

    미끄덩- 탁! 미끄덩- 탁! 탁탁탁탁…

    내가 숨을 참고 점액을 내보내고 있는 탓에 애꿎은 내 다리만 잡고 위아래로 열심히 흔들고 있을 뿐이다.

    마찰력을 0으로 만들어 버리는 씨어데블의 점액 탓에 놈은 나에게 짓밟힌 채 어떠한 행동도 할 수 없었다.

    동료가 일어나지도, 적을 잡지도 못하는 것을 본 다른 두 오크가 칼과 창을 들고 달려들었다.

    하지만 그 둘 역시도 드레이크에 의해 순식간에 제압당했다.

    퍼퍽!

    화살이 이마를 꿰뚫자 두 오크의 높은 HP도 순식간에 바닥을 드러낸다.

    땅그랑! 땅그랑!

    그들은 죽으며 아이템과 돈을 떨궜다.

    무기와 방어구 등이 바닥에 널브러져 있는 사이로 육포와 가죽 주머니에 담긴 식수, 포션과 약초 등등이 보였다.

    이제는 어지간한 병장기보다도 귀중하게 된 식료품 및 소모품들이었다.

    나 역시도 옴짝달싹 못하게 된 오크의 목숨을 정리해 준 뒤 우측상단의 종족 킬 수치를 쳐다보았다.

    종족 킬

    (Generation Kill)

    인    간          3

    리자드맨   0

    오    크          0

    그새 숫자가 올라갔다.

    아무래도 내가 선취점으로 스타트를 끊은 모양이다.

    나는 이 기록적인 순간을 동영상으로 남겨 내 유튜뷰 홈페이지에 올렸다.

    <대격변 적응 완료^^ 오크 퍼블(First Blood) 따 봤습니다!>

    몇 초도 되지 않은 짧은 영상, 하지만 조회수는 급격하게 올라가기 시작했다.

    반응은 안 봐도 뻔했다.

    -우와아아아! 고인물 님이 인간으로 남으셨다! 충성충성충성^^7

    -이 시대의 진정한 휴머니스트다, 더러운 오크, 추잡한 리자드맨 자식들아!

    -오크, 리자드맨들은 공포에 떨어라! 고인물이 인간으로 남았도다!

    -ㅋㅋㅋㅋ더러운 유사인류 놈들! 휴먼이 나가신다!

    -휴먼이 제일 개체수 적어서 걱정했는데ㅠㅠ...그나마 고인물님이 계시니 안심이 되네요 휴...

    -원래 진짜 고수들은 순정을 좋아하는 법이다...인간 만세^0^

    -아아...나 리자드맨인데ㅠㅠㅠ고인물 님 따라서 인간으로 캐릭 다시 키웁니다...

    -ㅋㅋㅋ저 고인물 님 팬클럽 회장인데...어차피 저번 정모 때 캐삭빵 져서 계정 삭제했던 참입니다! 휴먼으로 다시 육성 갑니다!

    .

    .

    순식간에 댓글들이 달린다.

    내가 인간으로 잔류한 것에 대한 희비가 엇갈리는 댓글들.

    한편, 윤솔은 고개를 갸웃했다.

    “그런데 왜 이 사람들이 갑자기 오크랑 리자드맨으로 변한 걸까? 싸우는 이유는 또 뭐고.”

    나는 그런 그녀에게 이 게임 세계관의 대략적인 요소들을 알려 주었다.

    “음. 이 게임의 세계관에서는 용과 악마가 끊임없이 세력다툼을 하고 있어.”

    “응응.”

    “두 세력은 한동안 냉전 상태였는데…우리가 천공섬을 땅에 떨어트렸잖아? 아마 그것을 시작으로 두 종족의 전쟁이 본격적으로 활성화 될 거야.”

    “아아. 서로가 서로를 향해 핵폭탄의 스위치를 누른 줄 알겠구나.”

    “맞아. 바로 그거지. 그리고….”

    나는 이 근방을 쭉 둘러보았다.

    용암과 유황이 끓는 대지. 잿가루로 뒤덮인 하늘.

    그야말로 끔찍한 지형이다.

    나는 손가락으로 우리가 서 있는 이 땅을 가리켰다.

    “여기가 용과 악마의 최고 분쟁지역이야.”

    내가 입을 열자 윤솔과 드레이크는 흥미롭다는 듯 눈을 반짝였다.

    나는 청중의 호응에 힘입어 설명을 계속했다.

    “식인황제 보카사의 몰락 이후 일곱 용군주와 일곱 악마성좌의 신경전이 초읽기에 접어들었지. 그중 가장 분쟁이 격렬한 쪽이 ‘검은 용 오즈(Odd's)’와 ‘탐욕의 악마성좌 마몬(Mammon)’의 구역이야.”

    그렇다.

    블랙 드래곤 오즈와 탐욕의 성좌 마몬의 영역이 맞붙어 겹쳐진 ‘분쟁지역’.

    그곳이 바로 여기 이 어비스 터미널인 것이다!

    어비스 터미널과 그 인근은 지하자원, 그 중에서도 황금이 많이 나오기로 소문난 곳이다.

    맵 곳곳에 수많은 폐광들이 몰려 있는 것이 이를 증명한다.

    지하광물에 관심이 많은 오즈와 마몬은 이 분쟁지역을 손에 넣기 위해 끊임없이 전쟁을 치르고 있는데 플레이어들 역시 이 흐름에 휘말려들고 있었다.

    일곱 악마성좌 중 가장 보물 욕심이 많기로 소문난 마몬.

    그는 자기 휘하의 ‘불타는 군단’을 소집했다.

    수많은 오크 플레이어들이 마몬의 부름에 의해 이곳 분쟁지대로 몰려들 것이다.

    일곱 용군주 중 가장 지하광물에 욕심이 많기로 소문난 오즈.

    그 역시 자기 휘하에 있는 ‘불사의 군단’을 소집했다.

    수많은 리자드맨 플레이어들이 오즈의 부름에 의해 이곳 분쟁지대로 몰려들 것이다.

    이곳 분쟁지역으로 몰려든 리자드맨과 오크들은 일일퀘스트를 수행하는 동시에 맵 곳곳에 숨겨진 금광을 찾기 위해 혈안이 될 것이 분명하다.

    대격변 전 쓸쓸한 폐광만이 가득하던 이곳은 이제 알토란 금광지대로 변했다.

    땅이 뒤집어지고 지층들이 뚝뚝 끊기자 그 안에서 붉으죽죽한 금맥들이 펄떡펄떡 살아 날뛴다.

    죽음의 용 VS 탐욕의 악마

    이 두 괴물을 필두로 용과 악마의 전쟁이 벌어졌고 이들의 강대한 기운은 온 대륙 전역을 뒤덮게 되었다.

    그들의 하수인으로 전락한 플레이어들은 황금의 꿈을 품고 이곳으로 몰려들어 자신들을 조종하는 왕의 뜻에 따라 목숨 건 전쟁을 벌이게 되는 것이다.

    바야흐로 ‘황금광 시대(The Gold Rush)’가 열렸다!

    이곳에서는 랜덤으로 발생하는 금광 던전에서 엄청난 양의 금을 캘 수 있으며 다른 종족을 죽였을 때는 경험치가 두 배로 들어온다.

    (심지어 분쟁지역에서는 싸움을 하지 않고 가만히 서서 숨만 쉬고 있어도 경험치가 조금씩 오를 정도이다!)

    내 설명을 들은 윤솔과 드레이크는 감탄을 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리자드맨과 오크들은 서로를 죽이라는 일일퀘스트 때문에라도 이곳으로 몰려들겠군. 보상이 워낙 빵빵하니까. 세상에 잠수만 타도 레벨이 오른다니…. 뭐, 물론 어디 하나 안전한 구역이 없는 분쟁지역이니만큼 암살을 주의해야겠지만….”

    “그 와중에 혹시나 랜덤 이벤트로 발생하는 금광 던전이라도 발견하면 로또 맞는 거겠네. 안 올 이유가 없겠다.”

    나는 그들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아직 대격변 1일차라서 사람이 조금 뜸할 수도 있겠지만 곧 어마어마한 수의 사람들이 이곳 어비스 터미널, 아니 ‘분쟁지대’로 몰려들 것이다.

    일확천금의 꿈을 품고 말이다.

    …그리고!

    “우린 그 사이에서 구단 운영비를 벌어 가야지.”

    나는 나중에 유행하게 될 두 가지 속담을 머릿속에 떠올렸다.

    ‘재주는 리자드맨이 부리고 돈은 휴먼이 챙긴다.’

    ‘오크같이 벌어서 휴먼한테 쓴다.’

    빨리 정신 차리고 움직여야 한다.

    조금 있으면 죽음룡 오즈와 탐욕의 악마성좌 마몬이 본격적으로 동원령을 내릴 테니까.

    나는 사람들이 아직 몰려들지 않아 텅텅 빈 꿀 사냥터를 독점하고 모든 실리를 가로챌 생각이었다.

    …원래 인생은 타이밍 아니겠나!

    “유사인류들 따위에게 질 수는 없지. 빨리 출발하자고!”

    나는 윤솔과 드레이크에게 손짓했다.

    우리는 리자드맨 마을을 지나 저 밑 어비스 터미널로 향했다.

    이윽고 광활한 절벽이 모습을 드러냈다.

    우리는 절벽을 타고 내려가기 위해 예전의 그 줄사다리를 찾았다.

    …한데?

    터미널 아래로 내려가는 줄사다리를 찾아 별 생각 없이 탑승하려는 순간, 내 눈에 이상한 것이 들어왔다.

    “…응?”

    나는 눈을 가늘게 뜨고 줄사다리에 떠 있는 홀로그램 글귀를 읽었다.

    그곳에는 내 눈을 의심할 만한 글자들이 적혀 있었다.

    <어비스 터미널-줄사다리>

    통행료: 성인 10,000G / 청소년 5,000G / 7세 이하 1,000G

    누적 이용자 수: 993,021 人

    인간: 993,021 人

    리자드맨: 0 人

    오크: 0 人

    ※통행료의 10%는 ‘최초 발견자’에게 귀속됩니다.

    ※최초 발견자 특전은 2년간 유효하며 타인에게 양도가 불가능합니다.

    대격변 이전까지 이곳 어비스 터미널을 이용했던 이들의 어마어마한 누적 수.

    그리고 이 줄사다리의 최초 발견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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