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닳고닳은 뉴비-306화 (306/1,000)
  • 307화 닳고 닳은 뉴비 구단 (3)

    나는 가면을 단단히 착용한 채 엄재영 감독을 안내했다.

    이윽고, 우리 ‘닳고 닳은 뉴비’ 구단에 합류하게 될 네 명의 선수가 모습을 드러냈다.

    엄재영은 그들의 면면을 보는 순간 한숨을 내쉬었다.

    ‘뭐야 이 오합지졸들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얼굴에 다 들여다보인다.

    “마왕아. 이분들은 누구시니?”

    “선수죠 선수. 우리 선수들.”

    “…실례지만 프로 데뷔는 하신 분들이니?”

    “아뇨.”

    나는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눈앞에 있는 네 명의 선수들을 쭉 돌아보았다.

    맨 처음으로 보인 얼굴은 잔뜩 긴장한 표정으로 서 있는 예쁜 처자.

    바로 윤솔이다.

    두 번째로 보인 얼굴은 휠체어 위에 앉아 있는 떡대 좋은 외국인.

    바로 드레이크였다.

    세 번째로 보인 얼굴은 아직 통통한 젖살이 빠지지 않은 작은 키의 소녀.

    유다희의 막내동생 유세희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보이는 얼굴은 무뚝뚝한 표정의 청소년.

    나를 따라 국K-1팀을 나온 투신 마태강이었다!

    이들의 면면을 본 엄재영은 곤란한 표정을 지었다.

    “아니, 태강이야 그렇다고 쳐도. 나머지 분들은 프로도 아니시지 않냐. 아마추어들을 데리고 경기에 나가겠다고?”

    “네.”

    “……자신감이 너무 과한데? 대체 무슨 근거로.”

    엄재영의 말에 나는 피식 웃었다.

    “무보수로 일해 주겠다고 하는 친구들이 이렇게밖에 없어서요.”

    “…무보수라고? 선수들 연봉 주라고 받아온 투자금은 다 어쨌는데?”

    “유튜뷰에서 준 돈이요? 다 형 연봉으로 써 버렸죠.”

    내 말에 엄재영 감독은 손바닥으로 이마를 짚었다.

    “…어쩐지 많이 준다 싶더라.”

    “염려 마요. 곧 돈 생기면 차차 다 지급할 수 있으니까.”

    “그게 문제가 아니잖아. 아마추어들을 어떻게 믿냐고.”

    “못 미더우시면 한번 면담이라도 해 보시던가요.”

    나는 어깨를 으쓱했다.

    엄재영은 나를 한번 노려보더니 이내 몸을 돌려 선수들에게 다가갔다.

    첫 번째 면접은 윤솔부터다.

    엄재영은 눈앞에 있는 윤솔을 향해 눈을 가늘게 떴다.

    그리고 딱딱한 어조로 질문을 던졌다.

    “게임 경력이 어떻게 되십니까?”

    “아, 이번이 처음이에요.”

    “?”

    엄재영은 눈을 크게 떴다.

    이번이 처음이라니?

    그는 자기가 질문을 잘못한 줄 알고 다시 물었다.

    “아뇨. 아뇨. 아뇨. 데우스 엑스 마키나를 플레이한 지 얼마나 되었냐고 물어본 겁니다.”

    “네. 이번이 처음이에요.”

    “??”

    엄재영이 입을 반쯤 벌리자, 윤솔은 멋쩍다는 듯 헤헤 웃었다.

    “…한 일주일?”

    엄재영은 손으로 이마를 짚었다.

    머릿속에서 뭔가 띵- 한 느낌이 온다.

    ‘진정하자.’

    엄재영은 속으로 자신을 다잡았다.

    ‘분명 이 여자에게도 뭔가 있으니까 멤버로 영입했겠지.’

    그는 애써 다른 질문을 던졌다.

    “…그럼 데우스 엑스 마키나 전에 하던 게임이 있나요? 있다면 경력은?”

    “없는데요?”

    “???”

    윤솔이 해맑게 대답하자 엄재영은 한 번 더 비틀거렸다.

    ‘어진이는 대체 무슨 생각일까?’

    그는 나를 불신의 눈빛으로 돌아본다.

    나는 시선을 피하며 딴청을 피웠다.

    이내, 엄재영은 다 포기했다는 듯 물었다.

    “네. 전에 하시던 게임 경력 없고…뎀을 시작하신 지는 일주일…좋네요. 프로게이머가 되기에 딱 좋은 조건이죠.”

    말을 마친 엄재영은 아무런 기대도 하지 않는, 그저 지나가는 듯한 질문을 마지막으로 던졌다.

    “그래서. 레벨은 어느 정도인가요?”

    일주일 간 플레이해 봤자 레벨은 뻔하다.

    기껏해야 15에서 20 사이, 천재적인 재능이 있다고 한다면 25 내외겠지.

    하지만.

    이어지는 윤솔의 대답에 엄재영은 자신의 귀를 의심해야 했다.

    “60이요.”

    엄재영은 잠시 인상을 찡그렸다.

    …레벨 60? 지금 장난치는 것도 아니고.

    그는 허허 웃으며 윤솔을 바라보았다.

    “젊은 처자가 참…어른 데리고 농담하면 안 되는 거예요. 지금 한국 공식 랭킹 1위가 레벨 50을 넘을까 말까인데 무슨….”

    하지만 윤솔이 휴대폰에 계정 정보를 입력해서 보여 주자 엄재영은 입을 딱 벌릴 수밖에 없었다.

    “레벨 60!? 한국에 레벨 60이 있어!? 아니 해외에도 없을 텐데? 지구상에 레벨 60이 있다고!? 버그 유저 아니야?”

    엄재영이 납득을 못 하겠다는 표정을 짓는다.

    나는 그의 이해를 돕기 위해 간략하게 말해 주었다.

    “이번에 대격변을 일으킨 게 우리에요.”

    천공섬 최후의 싸움,

    그 싸움에서 배드엔딩들이 해피엔딩으로 변할 때, 윤솔은 네티와의 빙의에서 풀려나며 엄청난 폭렙을 했었다.

    배드엔딩들이 몰아 준 경험치.

    이것이 레벨 1짜리 뉴비의 몸으로 온갖 험난한 수라장을 한 번도 죽지 않고 거쳐 온 것에 대한 보상이자 특전이라고 할 수 있겠다.

    한편.

    ……!!!

    엄재영은 입가에 거품까지 물었다.

    조금 더 뜸을 들였다가 말했으면 아마 기절했을지도 모른다.

    ‘진짜 닳고 닳은 뉴비잖아!?’

    비슷한 말로는 ‘경력 있는 신입’이 있다.

    엄재영은 슬쩍 고개를 돌렸다.

    휠체어에 타고 있던 드레이크가 어색한 한국어로 입을 열었다.

    “나의 레벨. 62로 대체되었다. and I also 한.국.귀.화.”

    좀 이상하긴 했지만 문맥은 알아들었다.

    무려 62레벨!

    “혹시 성함이…?”

    “드레이크 캣.”

    엄재영은 그 말을 듣자마자 탄성을 질렀다.

    일명 ‘용냥’

    초반 랭킹에서 가장 핫했던 남자.

    어느 순간을 기점으로 랭킹에서 사라졌고 아예 소문조차도 들려오지 않았기에 그저 초반에 반짝하고 사라진 랭커인 줄 알았다.

    하지만 음지에서 활동하면서 이렇게 무수한 업적을 쌓아왔을 줄이야.

    레벨 62면 미국 랭킹 1위인 것은 물론이요 세계랭킹에서도 탑을 노릴 만한 수치가 아니던가!

    “…너는 대체 레벨이 몇이냐?”

    엄재영은 질린다는 표정으로 나를 돌아보았다.

    나는 그저 어깨를 으쓱하며 싱긋 웃어 줄 뿐이다.

    “나중에 게임 접속했을 때 상태창 한번 깔게요.”

    “…….”

    엄재영은 너무 놀라 고개만 끄덕거릴 뿐이다.

    게임 경력 일주일 차의 어린 여자, 그리고 휠체어를 타고 있는 외국인.

    무리에서 가장 구멍일 줄 알았던 둘은 알고 보니 규격 외의 사기 캐릭터였다.

    엄재영의 얼굴에는 희망의 빛이 떠올랐다.

    그는 밝은 표정으로 고개를 돌렸다.

    이제는 건강해진 유세희가 그런 엄재영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여전히 시력은 거의 없었지만 게임에 대한 흥미와 재능만큼은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아이이다.

    “얘가 그때 저번에 네가 말했던 애구나?”

    “네. 천재에요. 잘 좀 키워 주세요. 그때 그 일화…아시죠?”

    나는 유세희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아무리 방심했다고는 해도, 내가 유세희와 PVP를 하다가 하마터면 질 뻔 했다는 말을 들은 바 있는 엄재영이다.

    엄재영은 고개를 끄덕이며 유세희와 악수를 했다.

    그는 마냥 잘 하는 사람보다는 가능성이 있는 사람을 더 좋아한다.

    …그 편이 더 키워 볼 만하다나?

    유세희는 아직 백지장 같은 천재이고 나이도 어리니 가능성은 무궁무진하다고 할 수 있겠다.

    엄재영의 입장에서는 가장 탐나는 인재일 것이다.

    마지막 주자는 바로 투신 마태강이었다.

    나는 그의 앞에 서며 말했다.

    “구단 형편이 아직 피지 않아서 당분간 쪼들릴 수도 있어.”

    “…돈 보고 온 것 아닙니다.”

    마태강은 나를 똑바로 쳐다보며 말했다.

    “국K-1팀에 있을 때 느꼈습니다. 나는 당신의 동료가 될 자격이 없다는 것을.”

    “…….”

    “하지만 수제자라면 될 자신 있습니다.”

    투신 마태강.

    회귀하기 전 나의 우상이었던 존재.

    그런 사람에게 이런 말을 들으니 참 묘한 기분이 든다.

    투신은 나를 한 수 위의 존재로 인정했고 머리를 숙였다.

    그리고 자존심보다는 자신의 급을 높이는 것을 선택했다.

    ‘영리하네.’

    정말로 게임 그 자체에만 관심이 있는 순수한 사람이다.

    나는 기꺼이 투신의 손을 맞잡고 악수를 나눴다.

    투신은 엄재영하고도 악수를 나누었다.

    “잘 와 줬다, 태강아.”

    “예, 감독님.”

    투신 마태강은 명장 엄재영 감독이 발굴해 키워 낸 역작이기도 하기에 둘의 사이는 상당히 좋다.

    아마 내가 아니었어도 그는 엄재영 감독을 따라왔을 것이다.

    뭐 아무튼.

    이로서 내 직속 제자가 둘로 늘어났다.

    마태강과 유세희.

    연배도 얼추 비슷하니 좋은 친구가 될지도 모르겠다.

    한편.

    엄재영은 다섯 선수의 엔트리를 보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언제 절망적인 표정을 지었었냐는 듯 만족스러운 표정이다.

    “자, 그럼 다시 국내리그부터 시작하자고. 처음부터 말이야.”

    랭킹이 재개편되고 구단들이 새롭게 짜였으니 아마 아시아 챔피언스 리그에 나갈 팀을 다시 선출하게 될 것이다.

    ‘…시간이 많지 않으니 아마도 약식으로 할 것 같긴 한데.’

    나와 똑같은 생각을 하는 이가 있었다.

    바로 엄재영이었다.

    “아시아 챔피언스 리틀리그까지 시간이 많지 않으니 아마 예전 오뚝이배 챌린지리그처럼 큰 판을 성대하게 벌이지는 못할 거야. 베스트리그처럼 다소 약식으로 진행할지도 모른다. 어쩌면 그보다 더 간단하게 진행될 수도 있고.”

    과연 명장답게 날카로운 분석이다.

    나는 전생의 기억을 떠올려 보았다.

    예전에도 대격변이 일어났을 때 모든 대회들은 일정을 다시 짰다.

    그 새로운 일정이라는 것은 언제나 전에 있었던 일정들보다 과정이 간소하곤 했다.

    “아마 1차는 배틀로얄 그라운드제로, 2차는 승점제 각축전이나 플레이 오프로 흘러갈 가능성이 크죠.”

    “맞았어. 내 생각도 그래.”

    엄재영은 나와 하이파이브를 했다.

    다시 처음부터 국내리그를 치룰 생각을 하니 참 앞날이 멀게 느껴진다.

    ‘리자드맨, 오크로 이루어진 구단들과 붙는다니 재밌을 것 같기도 하고…….’

    악마와 용의 위세를 등에 업고 한껏 기세등등해 있을 녀석들.

    하지만 아무런 빽도 뭣도 없는 소수종족 ‘인간’의 반격은 제법 매서울 것이다.

    특히나 이번 생에서는 내가 인간의 편을 들고 있으니 말이다.

    “…아 참. 그 전에.”

    엄재영은 나를 잡아끌고 조용한 곳으로 가서는 두 가지를 물었다.

    “네가 고인물과 동일인물인 것 구단 애들한테도 비밀로 해야 하냐?”

    “…음. 세희한테만요.”

    유다희의 귀에 이 사실이 들어가면 골치아파지니만큼 미리 신신당부를 해 둘 필요가 있었다.

    엄재영은 고개를 끄덕인 뒤 다음 질문을 했다.

    “근데 진짜 연봉 어떻게 하려고? 애들 줄 돈이야 그렇다고 해도, 예비 선수들 영입하려면 자금이 꽤나 필요한데… 내가 스폰 좀 물어올까? 다행스럽게도 나랑 아직 좋은 관계로 있는 회사 임원들이 꽤 있는데….”

    하지만 나는 고개를 저었다.

    “자체적으로 해결할 수 있어요.”

    나에겐 이미 구단을 수십 년 운용하고도 남을 만큼의 돈이 있다.

    하지만 내 개인 자산을 무조건 구단에만 투자할 수는 없는 일.

    구단 자체적으로 자금을 조달할 수 있는 방법을 알아봐야 한다.

    그리고 나는 구단 자금을 구단 스스로 확보할 수 있는 최고의 방법을 알고 있었다.

    ‘레이드지.’

    그렇다.

    구단 소속 프로 선수들이 경기를 뛰지 않는 시간에 필수적으로 해야 하는 던전 레이드.

    이 레이드에서 구단을 운영할 만한 자금을 뽑아낼 수 있다면 이거야말로 최고의 자구책이 아닌가!

    하지만 내 계획을 들은 엄재영은 긴가민가하는 표정이다.

    “그런데 레이드로 구단을 운영할 만한 돈을 벌 수가 있나? 개개인에게는 큰돈이지만…단체를 운영할 정도까지의 액수는 안 나올 텐데?”

    하지만 그것은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말씀이다.

    나는 그런 엄재영의 어깨를 툭 치며 말했다.

    “지금까지의 레이드는 그랬겠죠.”

    대격변 이후의 레이드는 그 전의 레이드와는 차원이 다르다.

    레이드 한번 잘 뛰면 로또 부럽지 않다는 말이 나올 정도.

    그리고 나는 지금부터 그것을 확실히 보여 줄 생각이다.

    진짜 대박(大舶)이 뭔지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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