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5화 닳고 닳은 뉴비 구단 (1)
“대격변이 터졌네. 새 아침이 밝았네. 너도 나도 일어나 새 마을을 가꾸세. 뛰기 좋은 레이드. 우리 힘으로 만드세~”
나는 새마을운동 노래 가사를 대격변에 맞춰 바꾸어 흥얼거리고 있었다.
부웅-
스포츠카의 묵직한 엔진음이 터져 나오며 넓은 신작로에 마른 먼지가 풀썩인다.
나는 뒤로 빠르게 스쳐 가는 가로수들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겼다.
대격변이 일어난 이후 게임 서버는 접속불가 상태가 되었다.
접속이 언제 다시 가능한지 공지도 뜨지 않았다.
게임이 터졌다더라, 영구적인 버그가 발생했다더라, 이제 다시는 접속할 수 없다더라 하는 카더라 루머들이 괴담처럼 퍼지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그따위 헛소문들에 선동되지 않았다.
이미 전에 겪어 봤던 일이기도 했고… 또 애초에 내가 일으킨 사건이니까.
나는 서버가 정상화될 때까지 걸리는 시간을 대충 알고 있었기에 그때까지 밀린 현실의 일이나 처리하기로 했다.
“먼저 주식 매입. 단타로 승부한다.”
앞으로 약 70시간 뒤에 게임이 정상화된다는 것을 알고 있기에 가능한 행동이다.
갑작스럽게 대격변 패치가 일어나며 게임에 관련된 모든 주식들의 주가가 출렁이기 시작했다.
대격변을 일으킨 장본인인 나는 당연히 이 주가 하락이 아주 일시적인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에 가지고 있는 모든 유동자산을 풀어 낙폭이 큰 몇몇 테마주들을 매입했다.
“그리고 이제 70시간 뒤에 주식들을 도로 되팔아 버리면 엄청난 수익률을 낼 수 있지.”
말하기가 무섭게 핸드폰에 알림이 떠올랐다.
인터넷 뉴스들이 너도나도 특종을 쏟아내고 있었다.
시스템에는 큰 문제가 없고 곧 게임이 정상적으로 가동될 것이라는 보도였다.
아마 GM들이 어디 비밀스러운 곳에서 셀럽들만 모아 놓고 공지를 한 모양.
동시에 천천히 하락세를 타고 있던 주식들도 다시 머리를 들고 상승세를 그린다.
주가 그래프가 상승할수록 내 양 입꼬리도 상승세를 타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바로 그때.
위이이잉-
주식 화면이 꺼지고는 전화가 걸려왔다.
나는 차를 잠시 갓길에 댄 채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구단주님. 잘 지내십니까?]
유튜뷰 전략실의 송승우 팀장이었다.
그는 나를 구단주라고 불렀는데 그 이유는 간단했다.
나는 마동왕 명의로 구단을 차렸다. 유튜뷰의 스폰을 받아서.
빠르게 커지고 있는 게임 시장 규모를 고려할 때 유튜뷰의 구단 스폰 타이밍은 오히려 늦은 축이다.
심지어 직접 구단을 차리는 것도 아니라 스폰을 주는 형태로 시장에 뛰어든다는 것도 꽤나 소극적인 태도라고 볼 수 있겠다.
하지만 이것도 다 이유가 있다.
게임 시장과는 별개로, 현재 유튜뷰는 꽤나 곤란한 상황에 처해 있었다.
과포화 상태가 된 유튜뷰 시장은 더는 블루오션이 아니었다.
레드오션, 아니 그것을 넘어선 블러드오션에 가까울 정도.
이런 상황 속에서 광고 수입 외에 뚜렷한 수입을 창출하지 못하는 유튜버들은 온라인에서의 인기와는 별개로 상황이 궁핍해져가는 것을 막을 수 없었다.
유튜뷰에서는 상당한 스타이지만 그것만으로는 수입이 충분치 못해 파티에서 음료를 나르는 알바를 하는 이들도 있었다.
물론 상위 몇 퍼센트는 엄청난 수익을 올리지만 대다수는 그것이 아니었으니까.
따라서 유튜뷰는 시장에 뛰어든 스트리머들의 수입원을 확대하기 위해 다양한 노력을 하고 있었다. 크리에이터에게 돌아가는 광고 수익의 비율을 상승 조정한다거나 다양한 혜택들을 제공하는 식으로 말이다.
그러나 이렇게 해 봐야 유튜뷰라는 회사의 운영비조차 제대로 건지기 힘들다.
벌어들인 돈을 스트리머들에게 분배하는 과정에서 회사 보유고가 점점 얄팍해져 가는 것이 유튜뷰 임원들을 다급하게 만드는 요인이었다.
결국, 유튜뷰는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다각도로 검토하기 시작했다.
영화, 다큐멘터리, 유료 동영상 시장, 다운로드 정액제….
그중의 하나가 바로 게임 구단에 스폰 형태를 취하는 것이다.
플랫폼 내에서 좋은 반응을 얻고 있는 스타 스트리머의 프로 데뷔를 중심으로 예산을 투자하고 푸쉬한다.
하지만 구단 자체의 소유권은 민간에 이양하여 핵심 책임은 회피하는 것, 이것이 그들이 택한 다소 ‘영리한’ 전략이었다.
한 마디로 성공에 대한 꿀은 빨고 실패에 대한 책임은 지지 않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는 오히려 나에게는 좋은 기회다.
왜냐하면 나는 절대로 실패하지 않을 자신이 있기 때문이다.
‘대격변에 대한 정보를 속속들이 꿰고 있는데 왜 실패하겠어.’
내 손금보다 더 정확하게 기억할 수 있는 것이 대격변 이후의 지형, 던전, 몬스터, 퀘스트, 아이템, NPC, 그리고 각종 공략법들이다.
앞으로 뎀에 대한 기억은 더 선명해지면 선명해졌지, 흐려지진 않을 것, 그렇기에…….
도저히 자신이 없다.
실패할 자신이!
[…구단주님?]
내가 혼자서 이것저것 생각하고 있는 동안 송승우 팀장이 재차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아. 네. 잠시 차 좀 대느라.”
[아아. 바쁘신 것 아니시죠? 잠시 통화 가능하세요?]
“그럼요. 우리 스폰서 님들 전화인데 시간을 만들어 내서라도 받아야죠.”
[하하하, 에이 또 그러신다! 저희가 오히려 큰 빚 집니다, 감독님. 아니, 구단주님.]
송승우 팀장은 나에게 투자하는 것을 재가해 준 유튜뷰 코리아의 박수한 대표보다 더 시장 상황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었다.
그는 훗날 미국 뉴욕에 있는 유튜뷰 본사에 진출해서도 본토 토박이들에게 기죽지 않을 만한 성과를 원했고 나를 통해 모험을 하기로 결심했다고 한다.
…그러니 이제는 한배를 탄 동지나 다름없는 셈이다.
[저 이번에 우리 구단주님에게 인생 걸었습니다. ‘닳고 닳은 뉴비’ 구단 대격변 이후 떡상 가즈앗!]
“…흠, 근데 그런 것 치고는 투자금액이 좀 적다 싶은데요.”
[흑흑흑. 그렇게 말씀하시면 저 섭섭합니다. 이것도 진짜 크게 끌어온 거라구요. 완전 신생 구단 아닙니까. 구단주님, 아니 마동왕 선수 아니면 사실상 아무도 없는 팀인데.]
뭐 그도 그럴 법하다.
감독 겸 선수인 나를 제외하면 이 구단에는 아무도 없으니까.
가뜩이나 재정난에 시달리느라 초기 리스크에 조심스러운 유튜뷰의 지침을 어느 정도는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나는 그런 송승우 팀장에게 지적질을 했다.
“틀렸습니다. ‘닳고 닳은 뉴비’ 구단 멤버는 둘입니다.”
[…네? 지금 마동왕 님 한 명이잖아요. 선수 겸 감독. 아니, 근데 애초에 그 두 포지션이 겸임이 되나?]
“겸임 안 되고. 둘입니다.”
[…또 누구 있는데요.]
송승우 팀장의 질문에 나는 씩 웃어 보였다.
“엄재영 감독님이요.”
국K-1의 명장 엄재영 감독.
그의 이름이 나오자 송승우 팀장은 깜짝 놀라 물었다.
[아니, 저번에 그분께 스카웃 제의 하셨을 때는 일언지하에 거절당하셨다고 하지 않으셨나요? 이적할 생각 없으니 빨리 꺼지라며 내쫒기셨다고.…배신자 새끼라고….]
“…음, 확실히 그땐 그랬었죠.”
[그런데 그분을 어떻게 영입하실 수 있으셨는지…?]
나는 상대에게 보이지 않을 윙크를 날리며 말했다.
“영업비밀입니다.”
[…….]
그 이후로 나는 송승우 팀장과 추가 투자금 유치에 대한 이야기를 조금 더 나누고는 전화를 끊었다.
부웅-
그리고는 다시 차를 몰고 원래 가려던 목적지로 향했다.
* * *
내가 향한 곳은 수원에 있는 한 병원이었다.
병원 주차장에 차를 댄 뒤, 나를 발걸음을 돌려 암 병동으로 향했다.
병원.
병원에만 오면 나는 이상하게도 감상에 젖는다.
회귀 후 처음으로 눈을 떴을 때도 병원이었지 않은가?
소독제 냄새, 오물 냄새, 음식 냄새, 약 냄새, 방향제 냄새….
그 모든 냄새들이 뒤섞여 나는 비릿하고 뭉근한 내음.
그것은 삶과 죽음을 갈라 놓는 경계의 냄새이다.
나는 병원 공기를 들이마시며 오늘의 목적을 다시 떠올렸다.
내가 오늘 이 자리에 선 것은 엄재영 감독을 만나기 위함이다.
대격변 직전, 내가 고인물임과 동시에 마동왕임을 밝혔을 때 그는 깜짝 놀라하면서도 많이 서운해했다.
자기한테까지 비밀을 숨겼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것과는 별개로 몸담고 있던 국K-1을 떠나고 싶지 않다고도 말했었다.
그동안 지켜온 팀에 대한 애착이 남달랐던 것이다.
엄재영이라는 사람 자체가 신의와 의리를 중시하는 성격이었으니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내가 이 사람을 좋아하는 이유가 이런 성격 때문이기도 하니까.
‘이제 다시 보기는 힘들겠다. 얼른 가라. 정 더 들라.’
그는 일부러 표정을 딱딱하게 굳힌 채 차가운 말로 나를 내몰았었다.
하지만.
지이잉-
병원 중환자실 옆의 보호자 대기실로 들어가자.
“어진아!”
눈물과 콧물로 범벅이 된 엄재영 감독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나를 향해 달려왔다.
와락-
그는 나를 보자마자 후덕한 곰 같은 덩치로 다이브했다.
“으악! 척추! 내 허리!”
나는 엄재영의 포옹을 받아 주며 짐짓 엄살을 떨었다.
전의 그 싸늘했던 모습은 간 곳이 없다.
다만…….
“으허헝! 고맙다 어진아! 네가 나를 살렸어! 다 네 덕분이야! 조금만 늦었어도 정말 큰일 날 뻔했어!”
엄재영은 나를 껴안고 굵은 눈물을 뚝뚝 떨어트리고 있었다.
“진정해요, 형님.”
나는 그런 엄재영의 등을 몇 번 두드렸다.
그의 흐느낌이 어느 정도 진정되어 갈 무렵.
지이잉-
중환자실의 문이 열리고 안에서 간호사가 걸어 나왔다.
“지금부터 면회 가능하십니다.”
그녀는 우리에게 환자의 침대 번호와 이름이 적힌 명찰 목걸이를 나누어 주었다.
나와 엄재영은 그것을 목에 걸고 간호사의 안내를 따라 중환자실 안으로 들어섰다.
손과 발을 소독한 뒤 안으로 들어가자 몇 개의 흰 침대가 보인다.
엄재영은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트릴 듯한 표정으로 달려가 한 침대 앞에 섰다.
그곳에는 산소호흡기를 달고 있는 한 여자가 밝게 웃는 얼굴로 엄재영을 향해 손을 흔들고 있었다.
오희선.
우리 엄재영 감독님의 와이프 되시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