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닳고닳은 뉴비-303화 (303/1,000)
  • 304화 무엇이 달라졌는가 (3)

    ‘종족(種族)’

    [명사]

    1. 같은 종류의 생물 전체를 이르는 말.

    2. 조상이 같고, 같은 계통의 언어, 문화 따위를 가지고 있는 사회 집단.

    *       *       *

    “…종족이요?”

    기자 하나가 얼떨떨한 표정으로 물었다.

    남세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다들 데우스 엑스 마키나를 플레이 할 때 ‘튜토리얼의 탑’을 클리어 해 보신 경험이 있을 것입니다.”

    1층부터 10층까지 존재하는 튜토리얼의 탑을 클리어해야 본격적으로 게임 세계에 적응할 수 있게 된다.

    1층에는 아주 기본적인 D급 몬스터 한 마리가 출몰하며 안내말의 도움을 받아 움직인다면 탑의 보스인 C급 몬스터 역시도 비교적 수월하게 쓰러트릴 수 있다.

    그리고.

    이 튜토리얼의 탑을 클리어하면 두 진영으로부터 스카웃 제의를 받게 된다.

    현재 세계관을 양분하여 지배하고 있는 지배종 ‘용’, 그리고 ‘악마’

    최정상에 군림하고 있는 일곱 용군주 휘하의 용 군단.

    역시 최정상에 군림하고 있는 일곱 악마성좌 휘하의 악마 군단.

    튜토리얼의 탑을 클리어한 플레이어들은 이 세계관에서 강자로 자라날 가능성이 있는 ‘모험가’로 인정받아 용 진영과 악마 진영에게서 러브콜을 받게 되는 것이다.

    여기서 용 진영의 제의를 받아들인 플레이어는 악마 군단 휘하의 몬스터들을 사냥할 시 스탯 버프나 추가 경험치 등의 보상을 받을 수 있다.

    악마 진영의 제의를 받아들인 플레이어도 용 군단 휘하의 몬스터들을 사냥할 시 같은 효과를 얻게 된다.

    양 진영의 스카웃 제의를 모두 거절한다면 경험치 관련 보상을 받을 수 없다.

    “여러분들은 튜토리얼의 탑을 클리어하실 당시 모두들 어떠한 ‘선택’을 했습니다. 그리고 그 선택에 따른 권리와 혜택들을 누려 오셨다고 볼 수 있죠.”

    남세나는 단상 앞에 모인 군중들을 쭉 훑어보았다.

    가면을 쓰고 있어 표정은 보이지 않지만, 그녀의 목소리에는 사람을 납득시키게 하는 묘한 힘이 실려 있었다.

    이윽고.

    홀로그램에 세 개의 인영(人影)이 떠올랐다.

    첫 번째 홀로그램은 평범한 인간의 모습이었다.

    하지만, 두 번째와 세 번째는 조금 다르다.

    두 번째 인간은 꽤나 특이한 외형을 하고 있었다.

    마르고 단단한 체구에는 압축된 근육이 꽉 들어차 있다.

    피부를 덮고 있는 것은 녹색, 또는 황색의 비늘.

    두 팔은 다리만큼이나 길었고 손가락 끝에는 칼날처럼 날카로운 손톱이 보인다.

    눈동자는 노란색으로 빛났고 검은 동공은 세로로 길쭉했다.

    이빨은 맹수의 것처럼 예리했으며 엉덩이에는 허리를 몇 바퀴나 감고도 남을 만큼 긴 꼬리가 있었다.

    “두 번째 종족. 리자드맨(Lizardman)을 소개합니다.”

    남세나는 이 기묘한 파충류 인간을 가리키며 말했다.

    군중들은 다소 흥분한 기색으로 홀로그램 앞에 모여들었다.

    “날렵하게 생겼군.”

    “저 꼬리 좀 봐. 징그러워.”

    “이빨과 손톱 발톱이 날카롭네.”

    “비늘도 상당히 견고해 보여.”

    많은 이들이 리자드맨의 위풍당당한 모습에 감탄했다.

    남세나는 설명을 이어갔다.

    “튜토리얼의 탑을 클리어한 뒤 용 진영에 가담한 플레이어들은 대격변 이후, 본격적으로 준동하기 시작한 용 세력의 힘에 오염되어 전혀 새로운 모습을 갖게 됩니다. 이는 피할 수 없는 ‘진화’이자 ‘전직’입니다.”

    다음은 홀로그렘 속 세 번째 인간에 대한 브리핑이다.

    남세나는 손가락을 뻗어 맨 끝의 인간을 가리켰다.

    세 번째 인간 역시도 독특한 외형을 가지고 있었다.

    녹색, 혹은 갈색의 피부를 가진 거구의 인간.

    온몸이 터질 듯한 근육으로 가득차 있었고 험상궂게 생긴 얼굴에 위로 삐죽 튀어나온 어금니가 인상적이다.

    리자드맨보다는 키가 작았지만 어깨가 더 넓고 허리가 굵어서 체구 자체는 더 커 보였다.

    “세 번째 종족. 오크(Orc)입니다. 친숙하시죠?”

    남세나는 웃음기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군중들은 연신 감탄을 이어갔다.

    “와, 저 근육 좀 봐. 힘세겠네. 저 몸으로 망치나 도끼를 휘두른다면…….”

    “근력으로 승부하는 캐릭터인가? 마초적이구만.”

    “둔해 보이지만 장딴지 근육을 보면 또 마냥 느릴 것 같지도 않네.”

    “리자드맨이랑 붙으면 누가 이길까?”

    군중들은 오크와 리자드맨을 비교하며 저희들끼리 갑론을박이다.

    남세나는 설명을 이어갔다.

    “튜토리얼의 탑을 클리어한 뒤 악마 진영에 가담한 플레이어들은 대격변 이후, 본격적으로 준동하기 시작한 악마 세력의 힘에 오염되어 전혀 새로운 모습을 갖게 됩니다. 이 역시 피할 수 없는 ‘진화’이자 ‘전직’입니다.”

    그러자, 한 기자가 불안한 표정으로 손을 들었다.

    지금까지는 다소 날 서 있는 질문이었다면 이제는 개인적인 걱정이 담겨 있는 눈치였다.

    “…저, 실례지만 저는 오크보다는 리자드맨이 좋은 것 같은데. 하필 3년 전 튜토리얼에서 악마 진영을 고르는 바람에…그럼 서버 점검이 끝나고 접속하면 오크로 변해 있게 되는 건가요?”

    “‘특별한 경우’가 아니고서는 그렇습니다.”

    “…전직을 안 할 수는 없나요? 제가 현실을 오크로 플레이한 지 30년째인데…게임에서까지 오크로 지내고 싶지는 않아서.”

    기자가 익살스럽게 질문하자 군중 속에서 웃음소리가 터져 나온다.

    남세나는 어깨를 으쓱했다.

    “공식적으로, 전직을 피할 수 있는 방법은 아직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불가능하다는 소리다.

    기자는 실망한 표정으로 고개를 떨궈야만 했다.

    남세나는 계속해서 브리핑을 이어 나갔다.

    “여러분들은 지금까지 용군주나 악마성좌들이 주는 각종 버프와 특전들을 받아 왔습니다. 권리를 누렸으니 이제 의무를 다해야 한다는 것이 그들의 생각일 겁니다.”

    “그 의무라는 게 무엇입니까?”

    다른 기자의 질문에 남세나는 좋은 질문이라며 고개를 끄덕였다.

    “여러분도 잘 아시다시피, 세계관을 양분하는 두 세력인 용과 악마는 반목을 거듭하고 있습니다. 천공섬이 떨어져 대륙을 쪼개고 대격변을 일으킨 것은 전쟁의 신호탄이나 다름없죠. 서로가 서로에 대한 공격으로 인식했을 겁니다.”

    즉, 한 또라이 유저가 벌인 미친 짓 때문에 용과 악마 간의 냉전(Cold War) 상태가 깨진 것이다.

    천공섬의 추락.

    용들은 그것을 악마들이 벌인 선전포고로 여겼고 악마들은 그것을 용들이 벌인 선전포고로 여겼다.

    즉 두 세력은 이제 거대한 전쟁을 본격적으로 시작하게 된 것이다.

    남세나는 가면 뒤로 눈을 빛냈다.

    “일곱 용군주와 일곱 악마성좌는 대륙 각지에서 끊임없는 전쟁을 벌일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각각 용 진영과 악마 진영에 속한 병사로서 이 전쟁에 징집되어 각자 자신들의 왕을 섬기며 싸워야 합니다. 누군가는 포로가 되고 누군가는 영웅이 되겠죠.”

    “징집을 거부하면 어떻게 됩니까?”

    다른 기자가 손을 들고 질문했다.

    그 말에 남세나는 빙긋 미소지었다.

    “말이 징집이지 사실상 돌발퀘스트, 히든퀘스트, 일일퀘스트 형식으로 진행될 것입니다. 딱히 강제성은 없으니 도망치거나 숨어도 무방합니다. 다만 그렇게 되었을 경우 공적이나 업적에 의한 성장은 포기하셔야겠죠.”

    이번에는 다른 쪽에서 질문이 들어왔다.

    인기 패션 브랜드 ‘노르딕페이스’의 디자이너가 손을 들고 물었다.

    “그런데 상대방 진영의 플레이어를 죽이면 카르마 수치가 쌓이지 않나요? 따지고 보면 PK나 다름없잖아요?”

    남세나는 이 질문에 비교적 명쾌히 대답했다.

    “인간, 리자드맨, 오크는 서로를 몬스터로 취급하게 될 것입니다.”

    ……!

    군중들의 눈이 일제히 커졌다.

    남세나는 그들의 반응을 천천히 살피며 말을 이어 갔다.

    “각 종족은 언어가 통하지 않습니다. 제공되던 자동 통역 서비스가 중단되며 서로 다른 종족들끼리는 의사소통이 불가능하게 됩니다. 예를 들면 인간의 귀에는 리자드맨이나 오크의 말이 지구상에서 사어(死語)로 분류된 고대 그리스어나 토하라어로 들리게 되는 식이죠. 이는 전 세계 각국 언어학자 분들의 도움을 받아 고증했습니다.”

    생김새도 진영도 말도 달라졌다.

    심지어 서로 간의 살육전을 막을 만한 제도적 장치들 또한 완전히 벗겨져 버렸다.

    이렇게 되면 서로는 서로에게 있어 그저 몬스터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것이다.

    …아니, 어쩌면 몬스터보다도 더 사냥하기 좋은 먹잇감이 될 수도 있었다.

    뒤이어진 남세나의 말은 바로 그것을 증명했다.

    “또한 월드맵의 커다란 전광판 위에는 종족별 킬(Kill) 수가 실시간으로 집계됩니다. 인간이 죽인 리자드맨과 오크의 수, 리자드맨이 죽인 인간과 오크의 수, 오크가 죽인 인간과 리자드맨의 수가 실시간으로 안내되어 셋 중 어떤 종족이 최강의 종족인지 정해 줄 것입니다.”

    그러자 아까 질문을 했던 ‘노르딕페이스’의 디자이너가 재차 손을 들었다.

    “종족 간의 협력을 막고 경쟁 심리를 부추기겠다는 거군요. 한데 단순히 종족별 킬 수가 뜨는 것으로 그런 효과를 유도할 수 있을까요?”

    “…물론 가능합니다.”

    남세나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말을 이었다.

    “이 ‘제너레이션 킬(Generation Kill)’ 수치는 일정 비율로 해당 종족의 플레이어들에게 스탯 버프를 줍니다. 킬 수를 머릿수로 나눠 비율을 따지고 그만큼의 %버프가 들어가게 되죠.”

    이는 두 가지 효과를 유도한다.

    첫 번째, 다른 종족을 마구 죽이게 되는 것.

    두 번째, 같은 종족 내에서 싸움을 피하고 이종족들과의 평화를 추구하는 자들을 곱지 않은 눈초리로 쳐다보게 되는 것.

    첫 번째야 적을 많이 죽일수록 강해지는 것이니 당연한 것이다.

    하지만 두 번째는 조금 폭력적인 변화일 수 있다.

    머릿수, 인구수는 채우면서 적을 죽이길 망설이거나 게을리한다면 그만큼 동족의 스탯 버프 비율을 깎아먹는 셈이니 말이다.

    현 데우스 엑스 마키나에는 싸움을 싫어하는 유저들도 많다.

    그들은 춤을 즐기기 위해, 그림을 그리기 위해, 등산, 혹은 낚시를 즐기기 위해 게임을 한다.

    하지만 이제 그런 이들은 동족에게 있어 걸리적거리는 짐덩이일 뿐이다.

    적을 죽이지 않으면서 적에게 죽기만 한다면 결국 동족의 발전을 저해하게 되니까.

    남세나는 머리칼을 쓸어 올리며 말했다.

    “사실 당연한 것이죠. 엄청난 자연재해가 발생해 전 대륙이 척박해졌으니 일상이 전쟁이 되는 것은 너무나도 자연스러운 현상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누군가를 원망할 필요도 없습니다. 이 대격변은 원래 게임 출시 후 5년째 되는 날 자연스럽게 일어날 현상이었으니까요.”

    5년째에 일어나야 할 그 대격변이 왜 3년이 채 되지 않아 일어났는지는 의문이었지만, 그것은 지금 상황에서는 중요한 일이 아니다.

    한편.

    리그 관계자들은 지금까지 묵묵히 끼고 있던 팔짱을 풀었다.

    그들은 본격적으로 날 선 질문들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그럼 대회는 어떻게 되는 거요?”

    “각 구단 선수들이 리자드맨이나 오크로 변했고 서로 적이 되었다면…큰일 아닌가?”

    “말도 안 통할 것 아냐? 레이드도 같이 못 뛰겠구만 이거.”

    리그 관계자, 혹은 구단 관계자들의 걱정이 이어진다.

    이 점에 대해 남세나는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그간 많은 구단들이 랭커 영입에 열성적이었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동안 선수들의 랭킹 숫자에만 연연하여 구단을 꾸리시던 구단주, 스폰서 분들께는 조금 더 까다로운 선택이 필요하게 될 것입니다.”

    즉, 픽과 조합을 싹 다 다시 짜라는 것이다.

    대회 관계자들은 발끈했지만 별 수 없다. 저 매크로 같은 답변을 최대한 따르는 수밖에는.

    “구단을 전면 재개편해야겠네.”

    “아 씨, 우리 선수들이 어느 진영 골랐으려나? 제발 한 종족으로 통일이면 좋겠는데….”

    “그렇다면 아시아 챔피언스 리그 선발전에 출전하게 된 프로팀들도 다 다시 골라야 하잖아. 프로리그가 한번 출렁이겠군.”

    “어디 프로리그만 출렁이겠어? 시장 전체가 뒤집어질 거라고!”

    “현실에서도 대격변이로군 이거.”

    군중들은 난리가 났다.

    죄다 어디론가 뛰어가 바쁘게 전화를 걸고 서류를 작성한다.

    새로운 서류가 꾸려지고 낡은 서류들은 불태워진다.

    보이지 않는 묵직한 진동이 사람들의 손과 다리를 달달 떨리게 하고 있었다.

    원래 이런 거대한 업데이트, 확장팩 추가 패치는 스폰이나 마케팅 등을 미리 다 잡아 놓고 발표하는 것이 보통이다.

    하지만 오늘 이 자리에서는 그런 것이 없다.

    갑자기 발표된 대격변 확장팩과 그로 인한 어마어마한 변화들.

    세상이 바쁘게 돌아가기 시작했다.

    한편.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여기 모인 모든 사람들은 공통적으로 한 가지 의문만을 머리에 품게 되었다.

    수많은 의문들이 꼬리의 꼬리를 물지만… 아무래도 가장 근본적인 태초의 의문은 단 하나로 귀결된다.

    ‘대체 대격변을 일으킨 X새끼가 누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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