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닳고닳은 뉴비-301화 (301/1,000)

302화 무엇이 달라졌는가 (1)

갓겜 ‘데우스 엑스 마키나’.

1개의 메인스트림 AI와 17개의 서브스트림 AI로 구성되어 있는 이 게임은 그야말로 가상현실의 진수를 여실히 보여 준다.

역사상 존재했던 모든 게임의 데이터, 이용자들의 흥미, 변수들을 종합적으로 학습하고 예측하여 스스로 계속 진화하는 구조.

한국에서의 시장 규모만 15조 원에 이르는 이 거대한 게임은 이제 단순한 게임이 아니게 되었다.

현실의 장벽에 가로막혀 하지 못했던 수많은 일들을 하기 위해 사람들은 이 가상현실 게임에 접속한다.

게임에서 현실을 찾는 이들도 있었고 현실에서 게임을 찾는 이들도 있었다.

단순히 민간뿐만이 아니었다.

정부나 기업, 군 또한 이 게임 시스템에 꽤나 흥미를 보이고 있었다.

현실의 제약들을 뛰어넘을 수 있는 이상 잘만 이용하면 군사적인 가치로도 환산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지금 바로 이 순간에도 더욱 커지고 있는 시장.

그 가치가 무궁무진한 것이 바로 ‘데우스 엑스 마키나’였다.

*       *       *

“이 얼마나 멋진 게임이란 말입니까!”

넓은 파티룸 중앙.

한 뚱뚱한 사내가 손에 든 샴페인 잔을 들어 올리며 외쳤다.

그는 유명 사립병원의 원장이었는데 최근 치매 노인들을 게임 속에서 요양시키는 시스템을 개발한 뒤 떼부자가 되었다고 알려져 있다.

“맞습니다. 정말 놀라운 게임이지요.”

안경을 낀 중년 여성이 맞장구치며 웃었다.

그녀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중소기업에 불과했던 식품 기업의 총수이다.

최근 그녀는 살갗에 붙이기만 해도 영양분이 공급되는 패치를 개발한 뒤 돈방석 위에 앉았다.

장시간 게임을 하는 게이머들이 이 식량 패치를 미친 듯이 구매했기 때문이다.

“허 참. 어디서 이 신통방통한 게임이 갑자기 튀어나왔을까요. 분명 VR은 아직은 먼 미래의 일이라고만 생각했었는데.”

콧수염을 길게 기른 노인이 주변 분위기에 동조하며 고개를 끄덕인다.

그는 꽤 잘 나가는 건축, 조경업체의 사장이다.

원래는 재료비나 인건비, 법과 규제 등 현실적 한계 때문에 시도해 보지 못했던 과감한 스타일의 건축을 게임 속에서 마구 시도하면서 디자인의 혁신을 이뤄 냈다는 평가를 받고 있었다.

“이 게임을 거의 혼자서 다 개발하신 분이 있다죠? ‘윌리엄 윌슨’ 씨랬나요? 그분은 정말 천재가 틀림없어요.”

드레스를 곱게 차려입은 젊은 여인이 마지막으로 입을 열었다.

그녀는 미관상 화려하고 아름다우면서도 보온성이 뛰어난 의류 브랜드 ‘노르딕페이스’의 사장이자 수석 디자이너다.

위의 인물들과 마찬가지로 그녀 또한 게임 속에서 새롭고 전위적인 디자인을 마음껏 선보이던 와중 현실에서도 대박을 친 케이스였다.

다소 특이점이 있다면, 그녀가 디자인하고 제작한 옷은 현실이 아니라 게임 속에서 훨씬 더 인기가 있다는 것 정도?

그 외에도, 이 파티룸 안에는 수많은 저명인사들이 모두 모여 있다.

게임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치는 관계자들. 그리고 간접적으로 영향을 끼치는 스폰 기업의 대표자, 혹은 관리자들.

심지어 군인이나 정치인, 기업형 조직폭력배들 역시 곳곳에서 눈을 빛내고 있었다.

뭐 주워 먹을 것 없나 기웃거리면서.

지금 이곳에 모인 사람들의 관심사는 하나였다.

‘대격변(大激變)’

바로 이것이 오늘 각 사회의 고위층들을 한 자리에 모이게 만든 공통화제이다.

데우스 엑스 마키나를 만든 뎀 사의 한국지부.

뎀 코리아가 있는 삼성동역 '메가 인터컨티넨탈 미들파르나스' 건물의 최정상 파티룸.

일곱 개의 구역으로 나뉘어 있는 이 파티룸은 각각의 방이 불규칙하게 배열되어 있었다.

한 방의 끝에서는 다른 방이 보이지 않았으며 방과 방을 연결하는 통로는 기묘한 각도로 꺾여 있어 마치 새로운 구역을 탐험하는 듯한 신비감을 준다.

방 벽은 온통 빨간색과 검은색이었으며 이글거리는 진짜 횃불들이 벽에 걸려 있는 것 외에 따로 조명기구는 없었다.

이 기묘한 분위기 때문에 파티룸에 모인 모든 이들은 동굴, 혹은 괴물의 뱃속을 탐험하는 듯한 기묘한 흥분과 공포를 동시에 느끼고 있었다.

그때.

“…지금 이게 뭐 하는 거야!”

군중들 속, 성질 급한 한 남자가 버럭 외쳤다.

그는 별 두 개가 빛나는 베레모를 쓴 남자였다.

군복에 선글라스, 군화를 신고 있었기에 신분을 쉽게 유추할 수 있다.

게스트를 뜻하는 이름표에는 ‘별님두개쨩’라는 귀여운 글씨가 적혀있었다.

“바쁜 사람들 모아 놨으면 빨리 대책을 발표해야 할 것 아냐! 언제까지 여기 모여 있으라고!”

그가 버럭 소리치는 것을 들은 대부분의 사람들은 눈살을 찌푸렸지만 개중에는 고개를 끄덕이며 동조하는 이들도 있었다.

이 파티룸에 모인 모든 이들이 공통적으로 기다리고 있는 것.

그것은 바로 GM의 입장 표명이었다.

‘대격변’

그리고 이로 인한 ‘접속 불가 오류’

근 하루가 가도록 게임은 정지되어 있었고 그동안 어떤 누구도 다시 게임 세상으로 들어갈 수 없었다.

<…대격변 패치가 진행 중입니다…>

단순히 이 알림창만이 사용자들의 시야에 가득 차 있을 뿐이었다.

무려 20시간 동안이나!

“맞아 맞아. 공지도 없이 이런 대규모 패치를 하는 게 어디 있어!”

“갑작스럽게 접속 불가가 뜨는 바람에 손해가 이만저만이 아니야.”

“내 아들놈은 이번에 중요한 아이템을 날렸다는군. 먹기 직전에 갑자기 튕기는 바람에 말이야.”

“관련 사업들이 다 올스톱 상태야! 게임이 되어야 뭘 하든 할 것 아냐!”

“주가가 벌써 3%나 빠졌어! 이사회가 난리가 나도 벌써 났을 텐데! GM은 대체 무슨 생각이람!”

단순히 게임이 멎은 것만이 문제가 아니다.

이 게임에 연결된 수많은 연관 사업들이 모조리 멎어 버렸으니 그것이 더 큰 문제인 것이다.

당연히 관계자들은 애가 탈 수밖에.

그러니 GM이 입장 표명을 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꼭두새벽부터 달려와 이 으스스한 분위기의 파티룸에 모여 있는 것이리라.

바로 그때.

유리창 밖에서 일몰이 뿌리는 마지막 빛이 스테인드글라스를 타고 파티룸 안을 붉게 물들인다.

동시에 괘종시계가 묵직한 저음의 비명을 여섯 번 내질렀다.

그 소리를 들은 모든 군중들은 얼굴에서 웃음기를 지우고 붉게 변한 얼굴을 한 방향으로 고정했다.

일곱 개의 방 가장 안쪽, 검은 휘장으로 장식된 방문이 열렸다.

끼걱…

그 문을 열고 나온 이들은 깔끔한 정장 차림의 사내들.

하나같이 ‘도깨비’ 얼굴이 그려진 가면을 쓰고 있는 이들이었다.

그 기묘한 복장에 군중들은 몸을 한번 가늘게 떨었다.

게임 회사에서 일하는 이들 중 상당수가 자유로운 천재, 혹은 괴팍한 괴짜들이라는 사실은 알고 있었지만…그렇다고 해도 이런 분위기는 조금 특이하다.

하지만, 그들의 분위기가 조금 이질적이라고 해서 상황이 반전되거나 하는 일은 없었다.

일상을 위협당한 이들.

그중에서도 가진 자들의 조급함은 꽤나 상당한 것이었으니까.

“서버는 언제 정상화 되는 겁니까!”

“대격변이란 게 대체 뭐요!”

“왜 그런 큰 업데이트를 마음대로 했습니까?”

“주가가 흔들리는 거 안 보이시오?”

“빨리 뭐라고 말 좀 해 봐!”

성난 군중들은 금방이라도 폭발할 듯 아우성친다.

그러자 깔끔한 정장을 입은 한 사내가 단상 위로 올랐다.

그는 가면 속으로 검은 눈동자를 빛내며 좌중을 돌아보았다.

“자, 친애하는 관계자 여러분. 조금 진정해 주시길 바랍니다.”

소란이 조금 가라앉자, 그는 마이크에 대고 나직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분명 제가 이 자리의 최고 책임자이긴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제 권한은 한국 지사 경영, 그 중에서도 극히 일부의 마케팅 일정 조율에 치중된 것입니다. 이런 종류의 기술적인 일은 제가 잘 알지는 못합니다마는, 이것 하나만큼은 분명히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GM 최고 책임자는 좌중의 앞에 서서 힘 있고 분명한 어조로 말했다.

“이번 대격변은 저희 GM에서조차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것이었습니다.”

그 말을 들은 좌중은 경악에 차 술렁이기 시작했다.

대체 GM도 모르는 대규모 업데이트가 어찌하여 벌어졌다는 말인가.

거대한 혼란을 눈앞에 둔 책임자는 나직한 한숨을 쉬었다.

“그저, 이 사태는 저희의 손을 떠나. 이름도 얼굴도 모를 한 유저의 손에 의해 벌어졌다는 것 하나만큼은 분명히 해 두겠습니다.”

그것 역시 가히 충격적인 뉴스였다.

대체 누가 전 세계인을 휘말려들게 할 정도로 거대한 변화를 이 땅에 초래했는가!

엄청난 특종의 냄새를 맡은 일부 게임 매거진 편집장들이 성급하게 질문을 해 댔다.

“혹시 짚이는 유저가 있습니까!?”

“그 유저가 한국인입니까!?”

“그 유저를 평소에 모니터링하지 않고 뭘 했습니까!”

기자들의 질문공세를 받은 책임자는 고개를 저었다.

“저희 데우스 엑스 마키나는 기본적으로 자유도가 높은 게임입니다. 유저의 플레이를 실시간으로 감시, 감청하는 것은 기술적으로 불가능합니다. 직접 미행해서 지켜보지 않는 한 말이죠. 또한 이 대격변의 중심에 선 해당 유저의 신상정보를 알아내더라도 그것을 공표하는 일은 더더욱 할 수 없습니다. …물론 알아내지도 못할 것이고 그럴 마음도 없지만요.”

GM의 발언이라고 하기에는 다소 무책임한 발언일 수 있다.

하지만 뒤이어진 책임자의 말에 좌중은 또 한 번 술렁였다.

“이 모든 것은 최종 의사결정권자이신 ‘윌리엄 윌슨’ 씨의 명령이기도 합니다.”

본사, 그것도 최고위부에서 내려온 지침이라는데야 딱히 할 말 없다.

군중들은 찝찝하고 불만스러운 표정으로 제자리에서 우물거린다.

그런 그들에게, 책임자는 짧게 통보했다.

“접속불가 등 일련의 사고에 대해 본사 측은 깊이 반성하고 있습니다. 책임자인 저는 이번 사태에 대한 응당한 책임을 질 것이며, 그 전 사태의 정상화에 대해 한 가지를 확실히 약속드리겠습니다.”

책임자는 벽에 커다란 홀로그램 시계를 띄웠다.

“앞으로 72시간 안에 모든 것을 정상으로 돌려 놓겠습니다.”

그 말에 대부분의 관중들이 표정을 풀었다.

손해가 언제까지 이어질지를 명확히 해 주면 그에 맞춰 대비를 할 수 있을 터이니 한결 낫다.

몇몇 기자들이 급하게 핸드폰을 들고 어디론가 뛰어가는 것이 보였다.

아마도 이 특종을 온 세상에 뿌리려는 듯한 움직임.

책임자는 그 일련의 소란을 보며 묵묵히 다음 행동을 이어 갔다.

“다음은…대격변에 대한 안내입니다.”

홀로그램이 모양을 바꾼다.

그것은 뎀의 세계지도였다.

하지만.

그것은 늘 보던 세계지도의 모습과는 많이 다른 모습을 하고 있었다.

그 지도가 뜨는 순간 좌중들이 입에서 연달아 탄성이 나온다.

대격변 업데이트로 인해 완전히 달라진 월드맵.

책임자는 착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대격변 패치 이후 어떤 것들이 바뀌었는지, 어떤 것들이 추가되고 어떤 것들이 삭제되었는지. 모든 것을 브리핑 해드리겠습니다. 이제부터는 저보다 더 전문적이신 분의 설명이 이어질 것입니다.”

말을 마친 최고 책임자는 단상 위에서 내려왔다.

이윽고.

저벅… 저벅… 저벅… 저벅…

검붉은 휘장을 걷고 그 너머에서 흰 가면에 검은 후드를 쓴 사람들이 걸어 나와 단상 위에 섰다.

대격변에 대한 모든 정보를 대중들에게 공개할 책임자들.

맨 앞에 있던 작은 키의 사람이 마이크를 손가락으로 두어 번 톡톡 친 뒤에 낮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GM ‘처리 2반’의 반장 남세나입니다. 지금부터 대격변 브리핑, 시작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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