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1화 1부 완(完)
‘즉사(卽死)’
그렇다.
아기천사의 쿠잉이 주는 7차 상태이상은 무려 1%의 확률로 어둠 속성을 가진 적을 즉사시킨다.
그리고 그것에 노출된 존재들 중 이 확률에 당첨된 것은 지금껏 보카사가 유일했다.
[…컥!?]
보카사는 발버둥치던 것을 멈추고 두 손으로 목을 움켜잡았다.
날카로운 이빨과 긴 혀가 문드러진 잇몸을 넘어 입 밖으로 전부 튀어나왔다.
몇 개나 뚫린 목구멍 너머에서 검은 피가 질척하게 흘러나오고 있었다.
나는 그것을 보며 감탄했다.
“이야, 이게 들어가네.”
하필 이렇게 완벽한 타이밍에 기적이 일어나 주다니.
역시 천사들이 사는 천공섬이라서 그런가?
…아니면 누가 도와주기라도 한 건가?
나는 고개를 들어 녹아내린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열에 의해 녹아서 생긴 구멍 너머로 보이는 맑은 밤하늘.
그리고 그 하늘을 향해 하늘하늘 올라가는 신성한 불빛 불빛들…….
어느새 비도 그쳤다.
해피엔딩들은 환한 궤적을 그리며 그렇게 밤하늘 너머로 사라져 가고 있었다.
한편.
보카사 역시 고통에 몸부림치며 그 빛들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나, 나도, 나도 데려가라!]
그는 즉사 직전에야 제정신이 돌아온 듯 두 손을 하늘로 뻗고 허우적거리고 있었다.
이미 HP가 0임에도 불구하고 그는 계속해서 추하게 발버둥 치며 버틴다.
하지만 즉사 판정을 받은 몬스터이기에 따로 주변에 데미지를 뿌린다거나 하지는 않았다.
그저.
[그아아아아아아악!]
듣는 것만으로도 오싹 소름이 끼칠 정도로 비통하고 매섭게 절규할 뿐.
[…머저리들! 쇼윈도 속에 사는 가식쟁이들! 가축! 애완동물 놈들!]
보카사는 다 부러진 손톱으로 땅을 긁으며 으르렁거렸다.
그리고는 이미 저 멀리 간, 닿지 않는 해피엔딩의 빛을 향해 울부짖었다.
이미 사람, 아니 천사의 형상을 하고 있지 않은 괴물이지만 죽기 직전이라서 그런가 정신이 제법 또렷하다.
[그르륵! 그하하하! 크흑! 크흐흐흑! 끄아아아! 히히! 이히히히히! 세상이 미친 건지 내가 미친 건지 모르겠구나.]
이내, 그는 내가 있는 쪽을 돌아보았다.
그리고 비죽 웃어 보였다.
날카로운 이빨들 사이로 내장 조각과 핏물들이 울컥울컥 삐져나오고 있었다.
보카사는 말했다.
[그래. 너희 악마들이 이겼다.]
“…….”
놈은 틀렸다.
왜냐하면 나는 튜토리얼의 탑을 나설 때 악마 진영에 가담하지 않겠다고 말한 소수자들 중 하나니까.
‘하지만 뭐, 착각은 자유지.’
나는 그저 어깨만 으쓱할 뿐이다.
그동안 보카사는 한 마디를 더 내뱉었다.
[…오직 나만이 진정한 천사였고, 오직 나만이 진정한 율법주의자였도다.]
말을 마친 그는 한동안 눈을 감고(사실 눈이라고 할 만한 신체 부위도 따로 없었지만) 묵념을 올렸다.
누구에게 하는 기도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그 모양새가 꽤나 엄숙했기에 우리는 잠자코 그의 마지막을 지켜봐 주었다.
이윽고.
천상으로 올라가는 빛들이 전부 사라지고 어둠만이 남은 밤하늘 밑에서.
…번쩍!
보카사는 눈을 떴다.
그의 입에서 나온 최후의 말은 발음이 너무 심하게 뭉개져서 잘 들리지 않았지만…대체로 저주의 뜻을 담고 있는 것 같았다.
굳이 해석해 보자면….
[악마들의 세상 따위, 전부 망해 버려라.]
이 정도?
동시에.
쿠-드드드드드득…!
지금까지 일어났던 모든 자연재해는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엄청난 규모의 지진이 일어났다.
어찌나 대단한 규모였는지 왕성의 대부분이 이 한 번의 진동만으로도 우르르 무너져 버렸을 정도.
“뭐, 뭐야!?”
드레이크가 떨어지는 샹들리에를 피하며 외쳤다.
윤솔 역시도 의아한 얼굴.
하지만 이 사실을 미리 알고 있었던 나는 태연하다.
“원래 최종 보스들은 죽으면 자폭하잖아.”
내 말을 들은 윤솔과 드레이크는 황당하다는 듯 입을 딱 벌린다.
나는 말을 이었다.
“참고로, 보카사의 자폭은 S+급의 공격이라서 아마 막기는 힘들 거야.”
무려 9클래스의 마법 ‘유토피아 폴(Utopia fall)’!
보카사의 배드엔딩 형태와 같은 이름의 마법이다.
이걸 막을 수 있는 플레이어는 과거에도 미래에도 없었다.
일곱 악마 성좌나 일곱 용군주가 와도 힘겨워할 정도의 일격.
“그, 그럼 어쩌지?”
드레이크는 답지 않게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천하의 ‘용냥’도 S+등급이라는 말을 들으니 무서운 모양.
하지만 나는 가볍게 대답했다.
대부분의 위기에서 훌륭한 해결책이 될 수 있을 만한 대답을.
“튀어야지 뭐.”
* * *
콰쾅! 우르릉…!
왕성이 무너지고 있었다.
최후의 황제 니고데모가 천재적인 능력으로 건축한 왕성.
수백만 악마들의 침공조차 막아낼 수 있을 정도로 견고한 성벽들이 대지진 앞에 모래성처럼 무너졌다.
그리고 그 여파는 왕성을 넘어 미궁까지도 번지기 시작했다.
쿠오오오오오-
시커먼 화염이 마치 쓰나미처럼 일어 온 섬을 휩쓸어 가고 있었다.
나무도 장벽도, 그 모든 것들이 화염의 파도에 먹혀 스러진다.
섬 전체가 불타오르는 동시에 붕괴되고 있었다.
한편.
“달려! 이럴 때를 대비해 미궁 마을에 비공정을 만들어 뒀으니까!”
나는 드레이크와 윤솔을 데리고 미궁 속을 달리고 있었다.
퍼석! 퍼서석!
미궁의 벽이 모래가 되어 주저앉자 길이 아주 잘 보인다.
굳이 0세대 캡슐의 버그를 이용할 필요도 없었다.
운도 좋았다.
마침 우리가 허물어진 장벽을 넘어 피난민 마을에 도착하자 마침 내가 만들어 둔 비공정에 타고 있는 천사들이 보였다.
[자네들인가!? 어서 타시게!]
장로를 비롯한 살아남은 모든 천사들이 우리를 향해 손을 뻗어왔다.
나와 드레이크, 윤솔은 비공정을 향해 냅다 달렸다.
뒤에는 시커먼 화염폭풍이 모든 것을 집어삼키며 밀려들어오고 있다.
그 순간.
휘이이이이이잉-
거센 열풍이 몰려왔다.
뜨거운 바람은 불길보다 먼저 앞서나갔고 우리를 지나 바로 코앞에 있던 비공정의 사다리를 멀리 날려버렸다.
그것도 모자라 비공정 자체를 통째로 허공에 밀어버리기까지 했다.
[안 돼!]
비공정에 탄 천사들은 안타까움에 절규했지만 이제는 어쩔 수 없다.
내가 야시장에서 산 재료로 만든 비공정은 정작 나를 여기에 떨궈 놓은 채 열풍에 휩쓸려 가 버렸다.
이게 바로 어진 없는 어진 팀이란 건가?
“…이런. 큰일났는걸?”
지각생의 최후.
나와 윤솔, 드레이크는 텅 빈 마을과 폐허가 된 미궁의 한복판에 덩그러니 남겨졌다.
콰콰콰콰콰콰…!
보카사의 자폭으로 인한 불길이 섬의 모든 것을 전부 다 집어삼키고 있었다.
이제 이 섬은 조금 뒤면 지상으로 추락할 것이다.
우르릉!
모든 것들이 붕괴해 내리는 가운데, 드레이크는 허탈한 표정을 지었다.
“여기서 죽는 건가.”
아마 여기서 죽는다면 변변찮은 시체도 제대로 남기지 못할 것이다.
꼼짝없이 최대의 사망패널티를 입게 되겠지.
“…하지만 지금 그게 문제가 아니지.”
나는 드레이크를 돌아보며 말했다.
겨우 우리 셋의 사망 패널티가 문제가 아니다.
미궁의 작은 일부가 운석처럼 추락해 내렸을 때도 지저 2만 미터의 거대한 구덩이가 생겼었다.
…그렇다면 이 천공섬이 통째로 추락했을 때 지상에 생길 여파는?
공룡을 멸망시키고 지구의 주인을 바꿔 놓았던 것이 바로 운석이다.
대지진, 대분화. 대 이상기후….
그야말로 ‘대격변(大激變)’이 일어날 것이다!
드레이크의 얼굴 표정이 핼쑥해졌다.
“…무슨 확장팩도 아니고. 대격변이 벌써?”
이제야 우리가 무슨 일을 벌인 것인지 조금 체감이 되는 모양이다.
나는 머리를 긁적였다.
‘하긴. 원래는 게임 출시 후 5년이 지나고 나서야 나오는 빅 이벤트가 3년도 되기 전에 벌어졌으니…….’
이윽고.
쿠르르르륵-
보카사가 내뿜은 최후의 숨결, 그 끔찍한 단말마(斷末魔)가 우리에게 끼쳐 왔다.
수백 킬로미터도 넘게 치솟은 검은 화염의 파도!
우리를 죽이고 천공섬을 붕괴시킬 마지막 재앙인 셈이다.
……하지만!
“나는 안 죽죠.”
이미 이런 상황을 수백, 수천, 수만 번 넘게 가정하고 시뮬레이션을 돌려본 내가 아닌가?
지금까지는 꽤나 변수가 많았지만… 여기서부터는 아니다.
모든 것은 나의 계산 범위 안.
나는 잽싸게 인벤토리를 뒤져 미리 준비했던 아이템을 꺼내 놓았다.
비공정이 파괴되거나 그것을 타지 못하게 되었을 때를 대비해서 구비해 둔 두 가지의 아이템.
-<크라켄의 껍질 방패> 방어구 / A+
크라켄의 질긴 가죽을 햇볕에 오랜 시간 말려서 만든 가죽 방패.
성능은 좋지만 유통기한이 짧다는 단점이 있다.
-방어력 +5,800
-화염 속성 방어력 +∞ (특수)
-내구도 1/1 (특수)
-수리불가 (특수)
-<여덟 다리 대왕의 응고된 점액> / 재료 / ?
큘레키움이 타락하기 전 마지막으로 뿜어낸 점액이다.
어지간한 온도가 아니고서야 녹지 않는다.
-? (특수)
문고리 3인방.
가장 깊은 곳의 왕 ‘크라켄’
여덟 다리 대왕 ‘큘레키움’
식인황제 ‘보카사’
나는 이들 중 크라켄과 큘레키움을 잡고 얻은 아이템들을 지금 꺼내 놓은 것이다!
차악-
드레이크는 내게서 넘겨받은 크라켄의 방패를 넓게 펼쳤다.
마른오징어처럼 생긴 이 방패는 불의 냄새를 맡자마자 넓게 펴진 보호막의 형태가 되었다.
콰쾅!
뜨거운 불길이 잠시 우리를 휩쓸었지만, 이내 크라켄의 껍질은 놀라운 화염 저항력으로 보카사의 불길을 막아 냈다.
그와 동시에.
후우우우욱!
어덟 다리 대왕의 점액 덩어리가 녹아내리기 시작했다.
단단한 벽돌 모양이던 그것은 화염의 온도에 끈적끈적 녹아내렸고 때마침 불어온 열풍에 의해 풍선껌처럼 부풀어 올랐다.
그 모습은 흡사 열기구의 풍선을 보는 모양새였다.
“가자! 지금이야!”
나는 크라켄의 껍질 방패를 들고 화염에 맞서고 있는 드레이크의 목덜미를 잡아챘다.
이제는 완전히 성인 체형으로 되돌아온 윤솔 역시도 버릇처럼 등에 업었다.
동시에.
나는 거미 여왕이 만들어 낸 거대한 거미줄 풍선을 들고 천공섬의 외곽, 무너져 가는 절벽을 향해 뛰어내렸다.
후우우우욱!
뜨거운 열풍이 마치 보이지 않는 조력자처럼 내가 들고 있는 거대한 풍선을 밀어낸다.
그렇게 해서, 우리는 저 아득한 하늘의 바다로 스카이다이빙을 하게 된 것이다!
“꺄아아아아아악-!”
의외로(?) 윤솔이 아닌 드레이크가 지르는 비명소리와 함께.
우리들은 공허를 향해 다이브했다.
쿠르르르륵!
같은 시각, 천공섬이 완전한 붕괴를 시작했다.
모든 것이 아래로 무너져 내린다.
S+등급, 9클래스의 거대한 폭염이 온 하늘을 말려 버릴 듯 휘몰아쳤다.
구름들이 부글부글 끓어오른다.
뜨거운 바람이 온 세상천지를 뒤흔들고 있었다.
이 끓어오르는 공허 속.
풍선을 쥔 손에 온 힘과 신경을 집중하고 있는 내 귀에.
-응애!
문득 아기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내가 뜨거움을 참고 품 속의 인벤토리를 들여다보자, 이내 놀라운 것이 눈에 들어온다.
붉은 눈. 옥색의 몸. 앙증맞게 생긴 이목구비.
작은 간난아이 하나가 내 가슴팍에 난 버섯을 바라보며 방긋방긋 웃고 있다.
와두두 여왕 쥬딜로페.
그녀가 드디어 알에서 깨어난 것이다!
최후의 황제이자 예언가였던 니고데모.
그의 세 번째 신탁이 맞아 떨어지는 순간이었다.
구시대의 질서가
막을 내림과 동시에
새 시대를 여는 출생이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