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닳고닳은 뉴비-299화 (299/1,000)
  • 300화 해피엔딩(Happy Ending) (8)

    <아이들 때문에 나라는 사라진다.>

    <나라를 멸망시키는 것은 세 살 난 어린아이.>

    <구시대의 질서가 막을 내림과 동시에 새 시대를 여는 출생이 있을 것이다.>

    -니고데모가 전한 세 가지 신탁 中-

    *       *       *

    푸욱-

    보카사는 검은 씨앗을 높이 들었다.

    그것이 심어질 땅은 바로 그 자신의 가슴팍!

    선악과의 씨앗이 보카사의 심장에 틀어박혔다.

    “…세상에!”

    윤솔은 두 손으로 입을 막았다.

    저 광경을 또 보게 될 줄이야!

    이윽고. 황제 니고데모가 맞이했던, 아니 수많은 천사들이 맞이했던 엔딩(Ending)이 보카사 바리새인에게도 찾아왔다.

    우드드득!

    보카사의 몸을 뒤덮은 넝쿨들.

    이내 그의 등 뒤로 커다란 넝쿨이 자라났고 큼지막한 열매 하나가 매달렸다.

    일반적인 꿀열매는 매끈한 외형에 검붉은 빛깔을 띠지만 이 열매는 조금 달랐다.

    훨씬 더 크고 훨씬 더 검다.

    겉껍질 표면에는 핏줄 같은 것들이 징그럽게 돌출되어 있어 마치 진짜 심장처럼 보였다.

    [큭큭큭큭큭큭…]

    보카사는 나무뿌리에 휘감긴 채 비틀거리며 일어났다.

    이윽고, 그는 텅 빈 가슴을 활짝 열었다.

    심장이 있어야 할 자리는 뻥 뚫린 채 공허하다.

    투둑-

    보카사는 숨을 헐떡이면서도 더듬더듬 손을 뻗어 허공에 매달린 자신의 심장을 땄다.

    아삭- 아삭- 아그작!

    그리고 그것을 게걸스럽게 씹어 삼켰다.

    “…….”

    드레이크는 그 무시무시한 광기를 바라보며 입을 반쯤 벌렸다.

    하기야, 자신의 심장을 뽑아 먹는 이를 본다면 누구나 비슷한 반응을 보일 것이다.

    이윽고.

    뿌득- 우드득!

    보카사의 몸에서 두 가지 변화가 관찰되었다.

    하나는 심장을, 그것도 가장 효과가 좋은 자신의 심장을 뽑아 섭식했기에 일어나는 변화요, 다른 하나는 선악과의 숙주로 전락한 것에서 일어나는 변화였다.

    [그-아아아아악!]

    보카사의 전신이 점점 시커멓게 물들어 가고 있었다.

    자신의 심장을 뽑아먹은 이의 말로(末路).

    그 엔딩은 이미 예정된 수순이었다.

    <배드엔딩 나이트메어 폼(Bad Ending Nightmare form) / 일명 ‘유토피아 폴(Utopia fall)’>

    -등급: S

    -특성: ?

    -습성: 배회성

    -서식지: ‘식인황제의 제전(齋殿)’

    -발견일: 0월 0일 00시 00분.

    -…일반적인 형태의 배드엔딩과는 뭔가 다른 것 같다.

    드디어 나타났다.

    이 천공섬 최후의 진(眞) 보스가!

    나는 그 자리에서 재빨리 물러났다.

    보카사가 배드엔딩으로 전락하는 순간.

    콰콰콰콰콰쾅…!

    그의 전신을 감싸고 있던 불길이 온 사방을 죄다 태워 버렸다.

    잡티 하나 없이 깨끗하던 순백의 화염은 이제 녹아내린 아스팔트처럼 질척한 칠흑의 빛만을 머금고 있다.

    전보다 훨씬 더럽고 불길한 모양새였지만 위력만큼은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상승했다.

    “우왓!? 이 공격은 대체!”

    “…급이 다르군.”

    드레이크와 나는 잽싸게 뒤로 물러났다.

    이 칠흑불은 그야말로 어마어마한 마법공격력을 가지고 있다.

    그것은 순식간에 나와 드레이크를 한곳에 묶어 고립시켜 버렸다.

    시시각각 나를 향해 다가오는 보카사의 불길.

    “…버텨 줄까?”

    나는 불안한 마음으로 반지를 쓰다듬었다.

    번쩍!

    반지가 빛나며 나의 충직한 소환수가 소환되었다.

    <쌍뿔칠흑> -등급: B+ / 특성: 백전노장, 과식, 독 면역, 마법면역

    -서식지: 거인국, 똬리를 튼 사념(巳念)

    -크기: 20m.

    -노오란 눈알, 두 개의 뿔을 보고 있자면 저도 모르게 홀려 버린다. 사악한 주술을 이용해 자기보다 강한 적에게 맞선다.

    몸을 촘촘히 덮고 있는 칠흑의 비늘은 모든 독, 마법 데미지를 흘려 버린다.

    두 개의 뿔을 가진 뱀. 나의 펫.

    조디악의 랭커 사냥 당시 활약해 준 뒤로는 오랜만이다.

    “조금이라도 좋아. 길을 열어 줘!”

    나는 쌍뿔칠흑에게 조금 미안한 명령을 내렸다.

    지옥의 한 구석을 재현해 낸 것 같은 저 검은 불구덩이에 뛰어들어 다리를 놓아 달라고 한 것이다.

    [쉬익!]

    쌍뿔칠흑은 일말의 고민도 없이 불구덩이로 몸을 던졌다.

    그리고 놀랍게도.

    쿠르르르륵!

    녀석은 S급 몬스터의 불길에도 잘 버티고 있었다.

    물리방어는 약하지만 마법방어가 괴랄하게 높은 덕분이다.

    “고맙다! 네가 날 살리는구나!”

    나는 검은 불의 벽을 넘어가며 쌍뿔칠흑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쌍뿔칠흑은 불길을 몸으로 막는 것도 모자라 불길을 일부 먹어치우기까지 했다.

    그 덕에 나와 드레이크는 안전한 곳까지 빠져나올 수 있었다.

    “어진아!”

    윤솔이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내게 달려온다.

    나는 윤솔과 드레이크의 HP가 안정적임을 확인한 뒤 바로 고개를 돌려 쌍뿔칠흑을 회수했다.

    “고생했다!”

    [쉬이잇!]

    쌍뿔칠흑은 지옥불을 잔뜩 주워 먹고 배가 빵빵해진 상태로 역소환되었다.

    고개를 들자 그곳에는 검은 화염에 휘감긴 보카사의 배드엔딩이 보인다.

    놀랍게도, 놈은 나와 드레이크를 추격해 오지 않았다.

    다만…….

    [그에에에엥! 그악! 엄마아아!]

    보카사는 크고 시커먼 몸뚱이로 절규하고 있었다.

    심지어 한 손의 엄지손가락마저 쪽쪽 빨고 있는 모습은….

    “네티의 기억에 의하면…보카사는 세 살 때 악마와의 전쟁에서 부모를 모두 잃었대.”

    윤솔이 전해 준 정보를 듣자 고개가 절로 끄덕여진다.

    이 점은 보카사의 대사로도 충분히 유추할 수 있는 히스토리.

    아마 보카사는 부모를 잃은 것 때문에 악마들에게 엄청난 원한을 가지게 된 것 같았다.

    그리고 그 때문에 배드엔딩이 되어서도 그 시절 유아기의 기억에 사로잡혀 있는 것이고.

    드레이크는 심란한 기색으로 중얼거렸다.

    “나이트메어 폼이 된 것을 보면…놈도 나름대로 무언가를 지키기 위해 애써 왔던 건가.”

    세 살 난 어린아이의 지능으로 손가락을 빨고 있는 괴물.

    놈을 보고 있자면 최후의 황제 니고데모가 했던 ‘두 번째 신탁’이 어느 정도 맞아떨어졌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나라를 망치는 것은 세 살 난 어린아이.”

    나는 침음성을 삼켰다.

    이것으로 확실해졌다.

    보카사의 배드엔딩 악몽 형태.

    시커먼 지옥불을 전신에 겹겹이 두른 채 뚜렷한 패턴도 없이 날뛰는 괴물.

    저걸 잡아야 모든 것이 끝난다.

    “…준비한 건 거의 다 동났는데.”

    나는 이를 악물었다.

    비장의 수가 몇 개 남아 있기는 하지만 이런데서 쓰기엔 아까운 수.

    …어떻게 하면 최저의 코스트로 저 기괴망측한 괴물을 잡아낼 수 있을까?

    내가 머리를 팽팽 굴리고 있을 때.

    “내가 한 몫 할 차례야.”

    의외의 각오가 들려왔다.

    윤솔. 그녀는 굳은 표정으로 내 옆에 섰다.

    그녀는 지금껏 마나를 비축하고 있었나 보다.

    “…지금이라면 왠지 할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들어.”

    윤솔의 자신만만한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파앗!

    그녀는 다시 한 번 ‘신성불가침’ 특성을 발현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단순한 디버프 장막을 친 것이 아니었다.

    츠츠츠츠츠츠…

    윤솔이 만들어 낸 신성한 장막은 원래 ‘어둠’ 속성을 가진 배드엔딩들에게는 꽤나 치명적인 것이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보카사로부터 영혼과 심장을 되찾은 배드엔딩들은 윤솔이 만들어낸 신성한 빛에 닿자 기분 좋은 듯 눈을 감는다.

    자아를 되찾은 배드엔딩들의 몸이 천천히 변화하기 시작했다.

    검은 물이 흘러내리고 오염된 기운이 빠지자 원래의 희고 깨끗한 피부가 드러난다.

    스스스스스스…

    배드엔딩(Bad Ending)들의 상태창이 바뀌기 시작했다.

    제일 먼저 변화가 시작된 쪽은 윤솔의 옆에 제일 가까이 붙어 있었던 ‘스마일’이었다.

    <해피엔딩(Happy Ending) / 일명 ‘스마일’>

    그것을 본 드레이크가 놀라 소리쳤다.

    “몬스터들의 이름이 바뀌고 있다!”

    그렇다.

    주변에 몰려든 모든 ‘배드엔딩(Bad Ending)’들의 이름이 ‘해피엔딩(Happy Ending)’으로 바뀌고 있었다.

    동시에 대규모의 승천이 시작되었다.

    해피엔딩들은 저마다 허공으로 둥실둥실 떠올라 하늘을 향해 올라갔다.

    그리고 바닥에서 발을 떼기 직전,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하얗고 깨끗한 빛을 한 곳에 몰아 주었다.

    바로 윤솔이 서 있는 곳이었다.

    파아앗!

    수많은 해피엔딩들에게서 힘을 넘겨받은 윤솔, 그녀의 몸이 찬란한 백빛으로 빛난다.

    턱-

    그런 그녀의 어깨를 짚는 손이 있었다.

    윤솔은 고개를 돌렸다.

    스마일. 아니 베티.

    그녀가 주근깨투성이의 미소를 지은 채 윤솔을 향해 웃고 있는 것이 보인다.

    “……언니.”

    윤솔이 막 입을 여는 순간.

    핑-

    머리가 순간 어지럽나 싶더니 몸에서 무언가가 쑥 빠져나가는 것이 느껴졌다.

    네티. 천사 소녀 네티.

    천공섬에서 떨어져 지저 2만 미터 아래에 잠들어 있던.

    길고 길었던 빙의가 지금에서야 풀렸다!

    네티는 윤솔의 몸에서 빠져나와 옆에 서 있던 베티의 손을 잡았다.

    이내, 둘은 서로 마주보고 웃으며 하늘을 향해 올라가기 시작했다.

    하늘에서 작은 아기 형상의 빛덩이가 베티와 네티를 내려다보며 방긋방긋 웃고 있는 것이 보인다.

    눈부셔서 잘 보이지는 않았지만 느낌 상 ‘막둥이’임을 알 수 있었다.

    저 하늘 위 한 구석에는 네 명이 엎치락뒤치락 올라가고 있는 빛덩이들도 보였다.

    납달리를 하고 있는 모양새로 보아 레오나르도, 미켈란젤로, 라파엘로, 도나텔로로 추정된다.

    그리고.

    이 모든 ‘해피엔딩’들에게 소중한 무언가를 넘겨받은 윤솔만이 이 자리에 남았다.

    동시에, NPC와의 빙의가 풀린 그녀의 귓가에 들려오는 무수한 알림음들…….

    -띠링!

    <레벨 업 하셨습니다.>

    <레벨 업 하셨습니다.>

    <레벨 업 하셨습니다.>

    <레벨 업 하셨습니다.>

    <레벨 업 하셨습니다.>

    <레벨 업……>

    .

    .

    엄청난 기세로 레벨업하는 윤솔.

    그리고 그녀에게는 아직 해야 할 일이 남아 있었다.

    “이거나 받아라!”

    윤솔은 들고 있던 아이템을 높이 들어 올렸다.

    -<아기천사의 쿠잉(cooing)> 양손무기 / A

    멸족(滅族)의 마지막 순간까지 고결함을 잃지 않았던 한 아기 천사의 유품.

    -공격력 +12

    -귀속 (특수)

    -융합 (특수)

    -특성 ‘힐’ 사용 가능 (특수)

    -특성 ‘신성불가침’ 사용 가능 (특수)

    윤솔은 다시 한 번 ‘신성불가침’ 특성을 발현했다.

    파아앗!

    신성한 장막이 모든 것을 휩쓸어 간다.

    아직까지도 홀로 배드엔딩 형태를 취하고 있는 보카사는 이 장막의 영향을 정면으로 받아 버렸다.

    100%의 확률로 들어가는 1차 상태이상 ‘마비’

    50%의 확률로 들어가는 2차 상태이상 ‘공포’

    25%의 확률로 들어가는 3차 상태이상 ‘환각’

    12%의 확률로 들어가는 4차 상태이상 ‘실명’

    6%의 확률로 들어가는 5차 상태이상 ‘과부하’

    3%확률로 들어가는 6차 상태이상 ‘영구저하’

    .

    .

    보카사는 공교롭게도 이 모든 디버프에 모조리 노출되었다.

    먼저 간 배드엔딩, 아니 해피엔딩들이 확률 보정을 걸어 준 탓일까.

    …아니면 그냥 우연?

    어느 쪽이든 간에, 보카사는 이 모든 저주들에 속박된 채 끔찍한 절규를 내뱉고 있다.

    사지가 뻣뻣하게 굳고 몸이 덜덜 떨려와 아무것도 할 수 없었으며 가장 보고 싶지 않은 것들의 시선 속에서 눈과 귀가 멀어 버리고 전신의 힘줄이 모두 터져 나갔다.

    심지어 이 모든 효과들이 영구히 지속되게끔 되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1%의 확률로 터진다는 7차 상태이상마저 들어가 버렸다.

    ‘즉사(卽死)’

    그것이 바로 심판이나 다름없는 마지막 상태이상.

    식인황제가 짊어져야 할 최후의 굴레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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