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닳고닳은 뉴비-298화 (298/1,000)
  • 299화 해피엔딩(Happy Ending) (7)

    [끄아아아아악!]

    보카사는 입을 쩍 벌렸다.

    어찌나 크게 벌렸는지 양 입가가 찢어져 피가 흐를 정도였다.

    양측 간의 조건을 동등하게 만들어 주는 아이템 ‘영혼 천칭’

    이는 원래 저명인사가 게임 속에서 연설을 할 때나 혹은 부유한 이들의 신사다운 PVP에서 찾아볼 수 있는 소모성 아이템이다.

    주로 암살자의 무장을 해제시키거나 혹은 완벽하게 공정하고 정정당당한 승부를 해야 할 때 사용한다.

    천칭의 균형을 맞추기 위해 보카사는 지금껏 섭식했던 천사들의 심장을 전부 토해 놓아야 했다.

    그동안 감금해 뒀던 영혼들이 해방되는 것은 물론이었다.

    [끼야아아아아아아악!]

    마치 영혼이 긁히는 듯한 울음소리.

    보카사는 땅바닥에 뒤집어진 채 손톱이 벗겨지는 것도 모르고 바닥을 벅벅 할퀸다.

    동시에 보카사의 전신에서 울룩불룩한 혹이 자라나기 시작했다.

    그 혹들은 하나하나가 눈 코 입 귀를 가진 얼굴 형상을 하고 있었다.

    이내.

    뿌지지직!

    보카사의 전신이 터져 나오며 수많은 영혼들이 허공으로 떠올랐다.

    그 영혼들은 주변에 우글우글 모여들어 있던 배드엔딩들을 향해 날아갔고 이내 원래 하나였던 것처럼 덧씌워졌다.

    후두둑! 후둑! 후두두둑!

    배드엔딩들의 얼굴을 감싸고 있던 가면들이 벗겨졌다.

    [그르르륵…!]

    이미 원래의 육체는 썩어 없어졌기에 말을 함으로서 의사를 밝히거나 할 수는 없었지만, 그래도 그들은 이성을 되찾은 듯 일제히 얌전해졌다.

    [그윽! 게르륵!]

    그것은 배드엔딩 나이트메어 폼 형태인 스마일 역시도 마찬가지였다.

    “언니!”

    윤솔이 뛰어가 안기자 스마일은 눈물을 뚝뚝 흘리며 더욱 더 짙게 미소 지었다.

    모든 배드엔딩의 영혼들이 제 갈 곳을 찾아 흩어졌다.

    육체를 찾지 못한 영혼들은 잠시 지상을 아쉬운 듯 맴돌다가 이내 하늘을 향해 곧장 올라가 별이 되어 사라진다.

    …그리고 여기 아무데도 가지 못하고 바닥을 벌레처럼 기어 다니는 이가 하나.

    […큭! 끄르륵!]

    보카사 바리새인.

    식인황제로 군림하며 모든 동족들을 자신의 먹잇감으로 생각했던 존재.

    그는 불과 몇 초 사이에 수십 년은 더 늙은 것처럼 보였다.

    완벽한 균형을 이루고 있는 천칭 접시 위로, 그는 노쇠한 자신의 얼굴을 비추어 보았다.

    <식인황제 보카사> -등급: A / 특성: 대격변

    -서식지: 천공섬 ‘식인황제의 제전(齋殿)’

    -크기: 3m.

    -극단적인 율법주의자.

    “하루살이는 걸러내고 낙타는 삼키는도다.”

    -황제 니고데모가 신하 보카사에게 했던 꾸짖음 中 (23:24)-

    모든 심장을 뱉어 낸 그의 위험등급은 기껏해야 A등급.

    맨 처음 만났을 때의 A+등급보다도 낮은 위치다.

    보카사는 떨리는 손을 들어 자신의 얼굴을 짚었다.

    뼈 위에 바로 가죽이 덮인 듯한 몸, 옥수수 털처럼 푸석하게 말라붙은 수염.

    금방이라도 굴러 떨어질 듯한 안구와 청맹과니의 것처럼 퀭한 동공.

    하얗고 팽팽하던 피부 위에는 시커먼 검버섯들이 죽음처럼 피어 있다.

    [내, 내 힘…내 소망…일족의 숙원이…….]

    그는 무너져 가는 자신의 몸을 내려다보며 허탈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그리고.

    턱-

    그의 앞에 드리워지는 발그림자가 하나.

    …바로 나다.

    빠악!

    나는 주먹을 들어 보카사의 머리통을 후려갈겼다.

    알몸이더라도 내게는 레벨로 인한 스탯과 호칭으로 인한 패시브 특성이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멘탈이 다 깨진 몬스터 따위는 겁 안 난다.

    뻑! 뻐억! 퍽!

    나는 주먹과 킥을 이용해 보카사의 몸을 사정없이 쥐어 팼다.

    츠츠츠츠…

    그동안, 자기의 역할을 다한 천칭은 서서히 빛을 잃었다.

    쨍그랑!

    접시, 사슬, 눈금.

    세 가지의 아이템이 각각 원래대로 떨어져 바닥에 나뒹굴었다.

    영혼 천칭의 균형이 깨지니 진공 돔도 천천히 사라져 갔다.

    차차착!

    나는 노템 존이 사라지자마자 바로 아이템들을 착용했다.

    그리고 깎단을 꺼내 멍하니 있는 보카사의 복부를 콱 찔러 버렸다.

    […큭!?]

    격통에 의해 정신이 돌아온 보카사.

    하지만 정신이 돌아왔다고 하더라도 상황은 달라지지 않는다.

    놈은 재빨리 칼과 마법서를 집어 들려 했지만.

    푸푹! 따앙!

    때마침 시기적절하게 날아든 두 발의 화살이 마도서를 땅에 꿰어 버리고 칼은 저 멀리 튕겨 내 버렸다.

    “안 되지.”

    드레이크가 두 대의 쇠뇌를 든 채 고개를 젓고 있었다.

    나는 깎단을 든 채 보카사를 압박해 나갔다.

    “자! 일단 한 대, 이건 레오나르도의 몫. 그리고 두 대, 이건 미켈란젤로의 몫. 또 세 대, 이건 라파엘로의 몫. 이어서 네 대, 이건 도나텔로의 몫. 여기에 베티와 니고데모의 몫까지 고루고루…자 토핑 추가, 요건 막둥이의 몫!”

    정신없이 이어지는 구타와 폭력!

    보카사의 얼굴이 동서남북 전후좌우로 꺾인다.

    침과 눈물, 콧물, 피, 이빨들이 퍽퍽 튀어나오고 있었다.

    [도, 도와다오!]

    보카사는 저 멀리 배드엔딩들이 있는 곳을 향해 손을 뻗었다.

    하지만 당연하게도 주변에 있는 배드엔딩들 중 보카사의 명령에 따르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다들 말없이, 죽일 듯한 시선으로 보카사를 노려보고 있을 뿐이다.

    보카사는 자신이 다루던 불꽃처럼 새하얗게 질린 안색으로 외쳤다.

    [왜 아무도 나의 진심을 몰라 주는가! 나처럼 순수하게 천사족의 숭고한 숙명과 과업에 대해 고민했던 자 누구인가! 악마를 증오하지 않는 이만이 내게 돌을 던지라!]

    그는 절규하듯 외쳤다.

    하지만 장내의 분위기는 그저 싸늘할 뿐이다.

    나는 모두를 대표해 보카사에게 물었다.

    “피고인. 할 말은 그게 끝입니까?”

    [……크윽!]

    “그렇다면 피고인 앞에 붙은 ‘피’라는 글자를 빼겠습니다.”

    나는 눈앞에 있는 보카사를 향해 묵념을 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액션빔!”

    동시에 거꾸로 돌아간 깎단의 뭉툭한 부분이 빠따가 되어 보카사의 안면을 두들긴다.

    “피를 죄다 빼 주지! 고인이 되어랏!”

    나는 앉은 자리에서 보카사를 마구 두들겨 팼다.

    [그아아악! 저리 꺼져! 나를 내버려 둬!]

    보카사는 피투성이가 된 몰골로 뒤로 물러났다.

    쿠르륵!

    딴에는 순수한 마음을 가지고 있었던 걸까?

    그가 빚어내는 불꽃은 여전히 새하얀 백색이다.

    불길의 벽이 나와 보카사를 갈라놓았다. 이것만큼은 예나 지금이나 뜨겁고 치명적이었다.

    나와 드레이크는 침음성을 삼켰다.

    “으음. 불꽃 벽 패턴은 귀찮은데.”

    “걱정 마. 어차피 오래 지속되는 패턴도 아니니까. 놈도 이제 마나 오링났어.”

    우리는 탐욕스러운 사냥꾼들처럼 눈을 빛내며 보카사의 체력이 빠지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도트 데미지는 이 순간에도 착실하게 적립되고 있으니까.

    하지만, 이내 그 약간의 기다림마저도 곧 필요 없게 되었다.

    [그르르르륵!]

    배드엔딩들이 나선 것이다.

    쾅! 쾅! 쾅! 콰쾅!

    배드엔딩들은 발을 굴러 지축을 뒤흔들었다.

    그리고 저 앞에 불타고 있는 화염벽을 향해 사정없이 육탄전을 감행한다.

    쿠르르르륵!

    화염의 벽은 순식간에 사그라들었다.

    “고맙습니다, 천사님들. 외형은 모르겠지만 마음씨는 여전히 천사 같으세요.”

    내가 건네는 인사를 받은 배드엔딩들은 낄낄 웃으며 손을 흔든다.

    나는 그들 사이를 지나쳐 곧장 보카사에게로 달렸다.

    [히이익!]

    보카사는 북쪽 문을 열고 도망치려 하고 있었다.

    “보하다, 추카사야.”

    나는 그런 보카사의 머리끄덩이를 잡고 뒤로 내팽개쳤다.

    푹! 푸슉!

    드레이크가 무표정한 얼굴로 쇠뇌를 당겨 보카사의 두 발등에 화살을 박아 넣었다.

    더는 도망갈 수 없게끔.

    [으윽! 으아아아아! 끄아악!]

    보카사는 등급답지 않게 처절한 모양새로 발버둥 친다.

    등급이 낮아지며 최대 HP도 낮아진 탓에 그간 입은 데미지들의 영향이 더욱 커진 것이리라.

    “일반 몬스터만도 못하네.”

    나는 눈살을 찌푸렸다.

    가장 인공지능이 낮은 하수인 계열이나 곤충 계열 몬스터조차도 죽을 때 이런 모습을 보이지는 않는다.

    마지막까지 필사적으로 발버둥치는 보카사를 향해, 드레이크가 싸늘하게 말했다.

    “자. 이제 모두 끝났다.”

    드레이크는 마지막 화살을 장전했다.

    그리고 그것을 보카사의 머리통에 가져다 댔다.

    철커덕-

    철거덕-

    화살 두 발이 두 대의 쇠뇌에 자동으로 장전되었다.

    배드엔딩의 외골격을 깎아 만든 화살. 보카사의 최후를 장식하기에는 딱이다.

    까락…

    드레이크는 방아쇠에 손가락을 걸었다.

    보카사의 머리통에 새로 네 개의 구멍이 생겨나기 직전!

    “잠깐만.”

    나는 손을 들어 올렸다.

    “……?”

    드레이크는 의아한 표정이었지만 잠자코 내 오더에 따랐다.

    그가 잠시 쇠뇌를 치운 동안, 나는 눈을 가늘게 뜨고 보카사의 움직임을 살폈다.

    ‘…흐음.’

    보카사 놈의 HP가 깎이는 것이 멈췄다.

    깎단이 입히는 도트 데미지는 반영구적인 것이니 시간이 다 되어 사라졌거나 할 리는 없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그 말인 즉슨… 보카사가 메인 스토리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아직 남았다는 뜻!’

    따라서 지금 화살을 머리통에 박아 넣어도 죽지 않고 버틸 가능성이 컸다.

    아니면 내가 원하는 ‘엔딩(Ending)’을 볼 수 없게 되거나.

    “괜히 지금 쏴 봐야 화살 낭비야. 깎을 수 있는 HP는 모두 깎아 놨으니 이제 우리가 할 수 있는 모든 건 다 한 셈이지.”

    드레이크는 그 말을 듣자마자 바로 쇠뇌를 거뒀다.

    한편, 나는 눈을 가늘게 뜨고 보카사의 움직임을 살폈다.

    보카사는 아직 포기하지 않았다!

    그는 필사적인 태도로 손을 주머니에 넣어 무언가를 찾고 있었다.

    …이윽고.

    [차, 찾았다! 딱 하나… 딱 하나가 남아 있었어!]

    보카사는 엄지와 검지 사이에 무언가 작고 까만 것을 집어 들었다.

    그것은 씨앗이었다.

    금단의 열매를 만들어 내는 씨앗.

    하지만, 주변에는 더 이상 비료로 쓸 천사도 없다.

    드레이크는 코웃음쳤다.

    “이제 더 뽑아먹을 심장도 없는 것 같은데. 그만 포기하지 그래?”

    하지만.

    보카사는 죄다 빠진 이를 드러내며 히죽 웃는다.

    [아니, 아직 심장이 하나 남았지.]

    말을 마친 보카사는 선악과의 씨앗을 높이 들어올렸다.

    그리고.

    푹!

    그것을 한 천사의 심장에 있는 힘껏 박아 넣었다.

    최후의 천사.

    ……바로 자신의 심장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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