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닳고닳은 뉴비-297화 (297/1,000)

298화 해피엔딩(Happy Ending) (6)

배드엔딩 나이트메어 폼(Bad Ending Nightmare form).

죽는 그 순간까지도 이타적인 마음을 간직하고 있었던 존재.

심지어 죽은 뒤에도 그 고결함을 잃지 않고 영원한 악몽에 저항해 싸우는 규격 외의 배드엔딩.

‘스마일’은 떨리는 몸으로 윤솔의 앞에 섰다.

그리고 늘 시도했었던 바와 같이, 커다란 손을 뻗어 윤솔에게 가져갔다.

사락…

그 우악스럽고 흉측하던 손은 막상 윤솔의 몸에 닿자 더없이 신중해졌다.

그리고 불면 꺼질라 쥐면 깨질라, 아주 섬세하고 부드러운 동작으로 윤솔을 살짝 움켜잡았다.

전신에 스며드는 따스한 온기를 느끼자, 윤솔은 저도 모르게 그만 울어 버리고 말았다.

그러자 스마일의 얼굴에서 미소가 더욱 짙어졌다.

모르는 사람이 봤다면 괴기스럽게 보일 만한 미소이지만…윤솔의 눈에는 더 이상 그렇게 보이지 않았다.

이내, 스마일의 검은 구멍과도 같은 두 눈에서도 시커먼 눈물이 줄줄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네티와 베티.

두 자매의 극적인 상봉이다.

한편.

[이 실패작들이 감히!]

보카사는 진노했다.

그는 핏발 선 눈을 들어 스마일의 앞으로 달려왔다.

[대체 내 일을 얼마나 훼방 놓을 셈이더냐!]

하지만 그의 앞길을 가로막는 것은 스마일뿐만이 아니었다.

콰쾅!

거대한 운석 같은 것이 날아들어 보카사를 날려 버렸다.

또다시 어금니 몇 개가 부러진 보카사는 대리석 기둥을 부수고 그 뒤의 벽에 틀어박혀야만 했다.

[…크르르르륵!]

라스트킹덤!

황제 니고데모가 부러진 목을 덜렁거리며 움직이고 있었다.

운석인 줄 알았던 것은 그의 커다란 주먹이다.

이내.

쿠구구구구구…

‘스마일’과 ‘라스트킹덤’이 내뿜는 투기가 필드 전체를 장악했다.

그 둘이 필드를 압박해 오자 우글우글 모여들었던 배드엔딩들이 주춤한다.

보카사가 부러진 이빨 사이로 핏물을 내뱉으며 외쳤다.

[뭣들 하느냐! 저 반역자들을 잡아들엿!]

그러자 주춤거리던 배드엔딩들이 꺼림칙한 기색으로 전진했다.

[그아아아악!]

몇 마리인가의 배드엔딩이 허공으로 펄쩍 뛰어올라 두 나이트메어 폼을 노렸다.

하지만, 애초에 격이 다른 것이 두 몬스터이다.

콰쾅! 우지지지직! 뿌득!

두 마리의 나이트메어 폼은 달려드는 배드엔딩들을 전부 후려쳐 날려버렸다.

그리고 곧장 길을 뚫고 보카사를 향해 달려오기 시작했다.

부웅-!

두 마리의 나이트메어 폼이 동시에 주먹을 날렸다.

쿠르륵!

보카사는 화염을 내뿜어 벽을 만들었지만 애초에 불이라는 것은 뚜렷한 형체가 없는 것이기에 물리력 그 자체를 막을 만한 힘은 없다.

우지끈!

보카사는 또다시 피를 토하며 뒤로 날아가 처박혔다.

운 나쁘게도, 벽에 툭 튀어나와 있던 뾰족한 석조상에 찔려 어깻죽지가 거의 뜯겨져 나가다시피 하는 부상마저 입어 버렸다.

[끄아아아악!]

보카사는 비명을 질렀다.

그는 스스로 힐 마법을 사용해 부상을 회복해 냈지만 상당수의 체력과 마나를 잃어버린 것은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하지만.

[…그래. 알겠어. 이제야 우선순위가 정해지는구나. 인정하지. 네놈들을 너무 얕봤어.]

보카사는 아직도 이 사태를 그저 성가신 것 취급하고 있었다.

파앗-

보카사의 몸에서 뿜어져 나온 하얀 빛이 저 위 천공을 향해 반짝이기 시작했다.

그것은 마치 폭죽처럼 솟구쳐 사방에 백빛을 뿌린다.

[방금 마을을 습격하고 있던 배드엔딩들을 전부 이쪽으로 불러들였다. 네놈들은 이제 끝이야.]

보카사의 말은 죽음의 신이 내리는 심판처럼 엄숙하고 절대적인 것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두두두두두…

땅이 옅게 떨리기 시작했다.

쾅! 빠지지직! 우르릉…

조금 시간이 지나니 멀리서 문과 벽이 부서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불과 몇 분 되지도 않아 어마어마한 수의 배드엔딩들이 장내로 몰려들었다.

심지어 그 수는 지금도 계속 늘어나고 있었다.

[그르르르륵!]

[카-아아아악!]

스마일과 라스트킹덤은 두 팔을 휘저으며 저항했지만 인해전술에는 답이 없다.

그들은 몰려드는 배드엔딩들의 파도에 갇혀 짓눌려 버렸다.

“…언니!”

윤솔은 눈물을 흘리며 베티를 불렀다.

신성불가침 특성을 발현하고 싶었지만 그것은 베티와 니고데모에게도 치명적이라서 함부로 쓸 수는 없었다.

장내로 밀려들어 오는 배드엔딩들의 파도.

그 검은 물결은 온 세상을 뒤덮어 버리려는 듯 거세다.

보카사는 미쳐 날뛰는 배드엔딩들을 뒤로한 채 껄껄 웃었다.

[보아라. 이것이 유토피아다. 천사들의 신세계인 것이다.]

그는 이 수많은 배드엔딩들을 이끌고 악마들을 습격할 계획인 것 같았다.

하나하나가 막대한 전투력을 가지고 있는 살육병기 ‘배드엔딩’

거기에 이 모든 배드엔딩들의 심장을 뽑아먹고 강해진 보카사.

보카사의 몸을 두르고 있는 하얀 불꽃의 원천은 바로 그동안 흡수한 수많은 천사들의 영혼이다.

단순히 전투력으로만 본다면 보카사의 악마 토벌 계획이 아주 허무맹랑한 것만은 아닐지도 모르겠다.

“…상대가 나만 아니었더라면 말이지.”

세상 일이 마음대로만 된다면 얼마나 좋겠나?

나는 3분이 지난 것을 확인하고는 여유만만한 기색으로 보카사의 앞을 막아섰다.

자연스럽게, 보카사의 눈살은 의아함으로 찌푸려진다.

[…뭐냐?]

그는 많이 흥분한 모양인지 예의범절을 상당히 잊어버린 것 같다.

나를 노골적으로 벌레 취급하는 보카사를 보며, 나는 그동안 조심스럽게 재 왔던 각도기를 깨 버렸다.

“이게 뭔 줄 알아?”

나는 인벤토리에서 아이템 하나를 꺼내들었다.

동시에, 내 귀에 울려 퍼지는 작은 알림음이 하나.

-띠링!

<아이템 융합이 완료 되었습니다>

나이스 타이밍.

나는 보카사의 눈앞에 대고 손 안의 아이템을 덜렁덜렁 흔들었다.

그것은 기묘하게 생긴 천칭 저울이었다.

-<영혼의 천칭> / A+

-보이지 않는 것을 담아 잴 수 있는 천칭.

양쪽의 무게를 균등하게 맞추려는 성질이 있다.

-1회용(0/1)

-융합 재료(접시, 사슬, 눈금)

-특성 ‘등가교환’ 사용 가능 (특수)

※기본적으로 일 대 다수의 경우에는 적용되지 않지만 집단 대 집단의 경우에는 예외 조항이 적용됩니다

과거 유령선에 갇힌 해적들을 성불시켜 준 뒤 얻었던 ‘영혼 천칭 접시’.

뇌옥 불가해지대에 갇힌 구름 거인 골리앗을 해방시켜 준 뒤 얻은 ‘영혼 천칭 사슬’.

미궁 피난민촌의 오목 할배에게 훈수를 두다가 얻게 된 ‘영혼 천칭 눈금’.

그것들을 한데 모아 융합한 결과 얻게 된 아이템이 바로 지금 막 완성되었다!

[…그게 뭐냐?]

보카사는 눈살을 찌푸린 채 물었다.

이 절대적인 우위의 순간에 저런 작은 저울 따위가 다 무슨 소용이냐는 태도.

‘하지만 이 저울의 진가를 안다면 절대로 그따위 경솔한 생각은 못 할 테지.’

뭐 굳이 말로만 조잘거릴 것 있나?

나는 이 일회용 저울의 효과를 아낌없이 발동해 버렸다.

그 순간.

파아아아아앗!

나와 보카사를 중심으로 한 커다란 반구형 돔이 생겨났다.

그 돔은 눈에 보이고 또 뚜렷한 형체가 없어 주변 사물들이 통과할 수 있는 가상의 벽이었다.

하지만 오로지 단 둘.

나와 보카사에게는 그 돔이 물리적인 강제력을 행사하고 있었다.

철컥! 철커덕!

내 몸에서 장비들이 벗겨져 나간다.

그동안 알게 모르게 내 알몸을 감싸고 있던 갑옷과 망토, 신발, 반지, 귀걸이, 목걸이 등등이 모조리 벗겨졌다.

심지어 가장 오래 내 곁을 지켜왔던 ‘깎단’까지도.

샤라라라라…

나는 영혼천칭이 만들어 내는 거대한 진공, 무중력 공간 속에서 완연한 알몸이 되어 버렸다.

[그르르륵…]

그것을 보고 몇몇 배드엔딩이 눈살을 찌푸렸다.

놈들이 손을 뻗어 나를 공격해왔지만.

텅! 터엉!

저울이 만들어낸 무형의 벽이 나와 보카사를 제외한 모든 생명체를 튕겨낸다.

한편. 내가 모든 아이템을 벗고 알몸이 되자.

끼이이익…

영혼 천칭의 균형이 깨졌다. 접시가 천천히 기울어졌다.

천칭에 달려있는 접시 두 개.

하나는 나를 향해 있고 다른 하나는 보카사를 향해 있다.

아래로 내려간 것은 보카사가 있는 쪽의 접시였다.

순간.

[커헉!?]

보카사는 숨을 쉬지 못해 얼굴이 창백해졌다.

자신이 있는 쪽의 공기들이 모조리 사라졌다.

황급히 손을 써 불꽃을 일으키려 했지만 모든 힘이 아예 봉인되어 버린 상태였다.

나는 그런 보카사를 보며 싱글싱글 웃었다.

“이 천칭은 상대방과 나를 완전히 동등한 조건으로 만들어 주지.”

[…뭐. 뭐라?]

“천칭의 접시들이 다시 완벽히 균형을 이루어야만 너는 천칭의 속박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말이다.”

실제로, 내 쪽의 접시가 위로 올라가 있는 동안 나는 자유롭게 행동할 수 있다.

숨을 쉴 수도, 이동할 수도, 심지어 상대방을 공격할 수도 있었다.

[크윽!]

그제야 보카사는 상황을 파악했다.

저 영혼 천칭이라는 기괴한 아이템의 속박에서 벗어나려면 상대방의 조건과 동등하게 맞추어야 한다.

[빌어먹을 놈! 내게 이런 굴욕을!]

보카사의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하지만 호흡을 하지 못하는 것에는 장사 없는 법.

그는 결국 나를 따라 옷을 벗어야만 했다.

훌렁! 훌렁! 훌러덩!

보카사는 하얀 검과 마도서, 그리고 로브와 신발을 벗었다.

그것도 모자라 안의 갑옷과 그 안의 속옷까지도 모두 벗어 버려야 했다.

[자! 이제 어떠냐! 너와 나는 완전히 같은 조건이다!]

하지만.

보카사의 저울은 여전히 아래를 향해 기울어져 있었다.

나는 그를 향해 실실 웃었다.

“아직 뭐 더 걸치고 있는 게 있는 것 같은데?”

[…….]

완전히 알몸이 된 보카사.

그는 나를 죽일 듯이 노려보더니…….

훌렁-

길고 풍성한 흰 머리카락으로 손을 가져갔다.

이윽고, 가발이 벗겨지며 보카사의 민머리가 환한 빛을 내뿜는다.

[이, 이제 됐느냐! 이 죽일…!]

보카사의 얼굴은 더 이상 빨갛게 물들 수 없을 정도로 달아올랐다. 그 모습은 심지어 나까지도 약간 당황시킬 정도였다.

‘…음, 이렇게까지 할 생각은 없었는데.’

나는 보카사의 눈에 맺힌 이슬방울을 바라보며 약간의 죄책감을 느꼈다.

…하지만.

보카사가 알몸이 된 데 이어 가발까지 벗어던졌음에도 불구하고 아직 천칭은 불균형을 이루고 있었다.

저울은 여전히 보카사의 쪽으로 확 기울어져 있었고 그는 천칭이 주는 속박에 사로잡혀 숨조차 제대로 쉬지 못하고 있다.

[커, 커헉! 대체 뭐냐! 왜 천칭이 균형을 이루지 않는 것이야!]

보카사는 숨을 몰아쉬며 외쳤다.

아무리 S급 몬스터라고 해도 A+급 아티팩트가 1회용 목숨을 통째로 불사르는 힘에는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다.

놈은 절박한 목소리로 계속해서 소리 질렀다.

[뭣들…하느냐…빨리 나를….구해라!]

하지만 천칭저울의 밖에 있는 배드엔딩들은 아무리 허우적거려도 이 안으로 들어올 수 없었다.

그리고 그것은 윤솔이나 드레이크 같은 내 편들 역시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멍한 표정을 짓고 있는 드레이크과 두 손으로 눈을 가리고 있는 윤솔을 뒤로한 채 당당하게 말했다.

“옛날에 부처가 길을 가다가 비둘기와 아귀를 발견했다고 한다.”

……?

보카사의 얼굴에는 뭔 개소리냐는 표정이 역력하다.

하지만 나는 말을 계속 이었다.

“아귀는 배가 고파 비둘기를 잡아먹으려 했지만, 부처는 그것을 말렸지. 대신 비둘기의 무게만큼 자신의 살을 떼어 줄 테니 그것으로 만족하라고 했다.”

[…크, 크윽! 숨…숨이…….]

“아귀는 저울을 들고 접시 한쪽에 비둘기를 올려놓았다. 그리고 부처는 그 비둘기의 무게만큼 자신의 신체를 올려놓았어.”

[크아아악! 무슨 헛소리냐고 그게!]

“하지만 손, 발, 엉덩이의 살점을 아무리 얹어도 저울은 비둘기 쪽으로 기울어 있을 뿐이었다. 그 때 부처는 느낀 거야. 모든 생명의 무게는 결국 똑같다는 것을.”

나는 검지를 들어 좌우로 까닥거렸다.

“결국 부처가 접시 위로 온몸을 던지자, 비로소 천칭은 비둘기와 부처를 완벽한 균형 상태에 놓았고 아귀는 꽃이 되어 사라졌다고 하지. 어때, 해피엔딩이지?”

나는 보카사를 향해 윙크를 날렸다.

그리고 정색을 하며 말했다.

“네놈과 나는 둘 다 똑같은 알몸이지만, 사실 네가 더 무거울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잖아? 생명의 무게는 다 똑같으니까.”

[……!]

그제야 보카사는 내 말의 뜻을 눈치챈 듯싶다.

[닥쳐라! 이 악마 같은 놈! 어디서 그런 사악한 혓바닥으로 나를 능멸하려…!]

하지만, 굳이 내가 나서서 놈을 설득할 필요는 없다.

일정 시간이 지나면 영혼 천칭은 알아서 균형을 맞추기 위한 강제력을 집행하니까.

파아아앗!

영혼천칭에서 뿜어져 나오는 빛이 더욱 강력해졌다.

그 빛은 보카사의 전신을 태워 버릴 듯 사납게 내리쬔다.

이윽고.

이변이 발생하기 시작했다.

[까야아아아아아악!]

보카사가 지금까지 한 번도 낸 적 없던 고음의 비명을 내지르기 시작한 것이다.

동시에.

뿌득! 뿌드드득!

보카사의 몸속으로 들어갔던 수많은 심장.

그리고 그 안에 갇혀 있던 영혼들이 그의 눈, 코, 입, 귀를 통해 격렬하게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영혼들에 제일 먼저 반응을 보인 존재들이 있었다.

[그르륵…?]

마침 이 자리에 모두 모여 있던 섬 전역의 배드엔딩.

영혼의 원래 주인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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