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6화 미궁 속의 격리자들 (3)
[부에에에에…]
배회성 배드엔딩, 일명 ‘막둥이’
커다란 애기 얼굴에 지네의 몸을 가진 괴물.
녀석의 긴 몸뚱이 옆을 기어서 지나가는 것은 힘든 일이었다.
막둥이의 뒤를 지나 거대한 머리통의 옆을 돌아가던 중, 나는 다소 위험해 보이는 구역을 발견했고 윤솔에게 눈을 감으라고 시켰다.
하지만 윤솔은 실수로 눈을 떠 버렸고 상황은 그다지 좋지 않은 방향으로 흘러가기 시작했다.
“……!”
눈을 뜬 윤솔. 그녀의 시야에 들어온 광경은 다소 놀라운 것이었다.
막둥이의 머리가 있는 방향.
그곳에는 어마어마하게 많은 수의 ‘꿀열매’들이 열려 있었던 것이다!
꿀열매 군락.
벽을 뒤덮은 넝쿨과 잎사귀들, 탐스러운 꿀열매들이 그 사이사이에 실하게도 영글었다.
잘 익은 복숭아. 당도 높은 자두.
새콤하면서도 달달한 그 맛을 어느 과일에 비교해야 할까?
막둥이는 연신 그 꿀열매들을 게걸스럽게 따먹고 있었던 것이다.
아작- 아작- 아그작- 콰삭!
놈은 커다란 이빨로 열매들을 마구 갉아먹었다.
부드러운 과육이 씹힐 때마다 사방으로 과일즙이 튀고 있다.
배드엔딩의 식사.
그 기괴한 모습에 모두들 할 말을 잃었다.
천사들은 꿀열매를 불길한 과일로 여기고 있었기에 먹지 않는다.
자연히 막둥이가 먹고 있는 꿀열매의 맛도 모른다.
하지만.
이곳에 꿀열매의 맛을 알고 있는 천사가 딱 하나 있었다.
윤솔.
그녀는 미궁에 처음 당도했을 때 멋모르고 꿀열매를 한입 맛본 적이 있다.
나의 말을 듣고 바로 뱉어 버리긴 했지만 그 새콤달콤한 맛만은 머릿속에 남아 있었다.
아그작- 아그작- 아그작- 아각!
꿀열매의 과육을 게걸스럽게 씹어 먹고 있는 막둥이.
놈의 입가와 턱 밑으로 줄줄 흘러내리는 과일즙을 보자 윤솔은 저도 모르게 꿀열매의 맛을 떠올려 버렸다.
달콤하고 부드럽고 또 새콤한 그 맛의 기억을.
…꼴깍!
윤솔은 저도 모르게 입안의 침을 삼키고 말았다.
신 맛을 떠올리면 입에 침이 고이는 것은 당연한 조건반사다.
그리고,
그와 비슷한 조건반사를 가진 생명체가 여기에 하나 더…….
[부엣!?]
‘막둥이’가 먹던 꿀열매를 팽개치고 고개를 홱 돌렸다.
놈은 무언가를 삼키는 소리에 예민하게 반응한다.
거의 조건 반사라고 해도 될 정도.
어미의 젖을 먹어 보지 못했기 때문일까? 다른 누군가가 뭘 삼키는 소리만 들으면 질투심에 극도로 포악해지는 것이다.
“아앗! 이런! 미안해!”
윤솔은 한 발 늦게 자신의 실책을 깨달았지만 이미 늦은 뒤다.
“피해!”
드레이크가 손을 뻗어 윤솔의 머리를 눌렀다.
콰쾅!
막둥이의 통통한 손바닥이 날아들어 벽을 강타했다.
내가 재빨리 앞으로 튀어나가 놈의 손목을 후려치지 않았다면 아마 새끼손가락쯤이 윤솔의 머리에 맞았을 것이다.
파팟!
드레이크 역시 재빨리 화살을 쇠뇌에 걸었다.
이렇게 된 이상 싸움은 피할 수 없다.
“쳇. 귀찮기는 하지만 고작 B+등급이니 큰 문제는 없겠지.”
드레이크는 막둥이를 향해 화살을 쏘며 말했다.
하지만. 나는 입술을 깨물었다.
‘막둥이는 단순한 B+급 몬스터가 아니지. 실질적으로 따지면 이 미궁에서 가장 골치 아픈 배드엔딩…. 굳이 잡지 않고 가는 이유가 있었는데…….’
하지만 이미 일이 벌어진 건 어쩔 수 없다.
“이왕 이렇게 된 거 놈의 습성을 본격적으로 이용하는 수밖에.”
나는 뒤에 있는 천사들에게 지령을 내렸다.
“모두 막둥이를 원 모양으로 둘러싸!”
다행스럽게도 천사들은 내 말에 따라 움직였다.
NPC들에게도 오더가 통할지 걱정했었는데, 아마도 마을에서 잔뜩 쌓아둔 호감도가 빛을 발하는 것 같다.
차차차차차착-
천사들은 넓게 퍼진 뒤 막둥이를 중심으로 큰 원을 만들었다.
나는 12시 방향의 천사를 지목했다.
마침 나와 호감도가 제일 높은 레오나르도가 그곳에 서 있었다.
“레오나르도! 침을 삼켜!”
나는 막둥이를 막으며 외쳤다.
그러자 레오나르도는 내가 지시한 대로 침을 꿀꺽 삼킨다.
[…부엣!?]
막둥이는 레오나르도가 침을 삼키는 소리에 바로 반응했다.
놈은 나와 싸우던 것을 멈추고 바로 등을 돌려 레오나르도에게 기어갔다.
그와 동시에, 나는 3시 방향에 서 있는 천사 도나텔로에게 외쳤다.
“도나텔로! 이번엔 네가 침을 삼켜라!”
도나텔로는 내가 지시한 대로 침을 꿀꺽 삼켰다.
[…오옹!?]
그러자 막둥이는 레오나르도에게 가던 것을 멈추고는 방향을 틀어 도나텔로에게 향했다.
나는 바로 연이어 6시 방향에 있는 미켈란젤로에게 침을 삼키라고 소리쳤다.
그 다음은 9시 방향에 있는 라파엘로, 그 다음은 다시 12시 방향에 있는 레오나르도였다.
그리고 이번에는 조금 더 촘촘하게 1시 방향, 2시 방향, 3시 방향, 4시 방향…11시 방향, 다시 12시 방향.
막둥이를 사이에 두고 큰 원을 그린 천사들이 시계 방향으로 돌아가며 침을 삼킨다.
그러자 원 중앙에 갇힌 막둥이는 제자리에서 뱅글뱅글 돌기 시작했다.
마치 시계바늘이 된 것처럼 말이다.
나는 그것을 보며 씩 웃었다.
놈은 ‘침을 삼킨 상대를 우선적으로 공격하는’ 성향이 있다.
따라서 넓게 산개한 파티원들이 여기저기서 침을 삼킨다면 누굴 먼저 공격해야 할지 몰라 우왕좌왕하게 되는 것이다.
“자, 이제 움직임은 봉인했고. 이제 어쩐다?”
나는 턱을 짚은 채 잠시 고민했다.
그러자 드레이크는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이 상태에서 사냥해 버리면 되는 것 아닌가? 굳이 고민할 필요는 없는 것 같은데.”
“으음. 나도 그러고 싶지만, 현실적으로 불가능해. 저놈은 죽는 순간 오히려 더 골치 아파지거든.”
“……?”
내 대답을 들은 드레이크는 고개를 갸웃했다.
아무리 강한 몬스터라고 해도 죽으면 그냥 시체일 뿐.
죽은 몬스터가 더 골치 아파지는 경우는 별로 없다.
언데드로 변해 되살아난다고 해도 위험등급이 2랭크나 하락하기 때문에 더 골치 아파지지는 않는 것이다.
드레이크는 오직 한 가지의 경우만을 알고 있었다.
“…혹시 자폭이라도 하나?”
자폭이야말로 가장 귀찮은 최후이다.
죽은 뒤 사방에 데미지를 뿌려놓는 몬스터는 접근해서 사냥하기도 부담스럽다.
하지만 나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천공섬에서 자폭을 하는 배드엔딩은 오직 하나뿐이지. 그런데 그게 막둥이는 아니야.”
녀석은 그보다는 조금 덜 까다롭지만 그래도 처리에 있어 꽤나 고민이 필요한 배드엔딩이다.
…하지만.
콰콰콰쾅!
커다란 폭발이 일어 막둥이의 얼굴 절반을 태워 버렸다.
[부에에에에엑!]
막둥이는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싼 채 나가떨어졌다.
“뭐야!?”
나는 깜짝 놀라 고개를 돌렸다.
막둥이의 안면을 가격한 것은 눈처럼 새하얀 불꽃이었다.
궁정마법사 보카사 바리새인.
그가 굳은 표정으로 막둥이를 노려보고 있었다.
[한번 공격성을 드러낸 배드엔딩은 확실히 처리해야 한다. 놈들의 집념은 상상을 초월해.]
“…….”
[그대로 놔둔다면 아마 미궁을 벗어날 때까지 우리를 추격해 올 것이다. 아니면 마을로 후송된 부상자들을 따라갈 위험도 있지.]
그는 배드엔딩의 전문가였다.
애초에 막둥이가 무언가를 삼키는 소리에 반응한다는 것도 그가 알려 주지 않았던가?
하지만 그런 보카사조차도 알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았다.
막둥이가 최후까지 숨겨 놓은 특성에 대해서 말이다.
“이봐! 공격을 멈춰! 놈을 죽이면 안 돼!”
나는 소리쳐 말렸지만 보카사는 굳은 표정으로 공격을 감행했다.
보카사가 나서자 다른 천사들 역시도 공격을 재개했다.
퍼퍼퍼퍼펑!
수많은 불벼락이 막둥이의 몸을 지졌다.
[뿌애애애애애앵!]
막둥이는 큰 소리로 울기 시작했다.
하지만 놈은 배드엔딩.
낳아 준 부모도 없고 따로 생식행위를 해서 자식을 낳을 수도 없다.
아무리 목 놓아 울어도 부모가 올 리가 만무했다.
그때.
“……!”
윤솔은 두 눈을 크게 떴다.
불벼락 속에서 타들어가고 있는 막둥이와 눈이 마주친 것이다.
징그러운 외형이었지만 얼굴만은 인간의 갓난아이와 똑같이 생겼다.
그 순망한 눈망울을 보자 윤솔은 어쩐지 슬퍼졌다.
“…그, 그만해요!”
윤솔은 저도 모르게 손을 뻗어 보카사의 앞을 가로막았다.
[…무슨 짓이냐!?]
보카사는 황급히 불꽃을 거뒀다.
마나 공급이 급하게 중단되면 마법사의 몸에 격한 과부하가 걸린다.
[쿨럭!]
보카사는 입에서 피를 한 움큼 토해 냈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윤솔이 자신의 불꽃에 닿지 않게끔 뒤로 물러났다.
“아아…….”
윤솔은 흔들리는 동공으로 보카사를 바라보았다.
보카사는 입가에서 피를 흘리며 윤솔을 향해 외쳤다.
[이 녀석! 위험하게 마법의 앞으로 끼어들면 어떻게 해! 자칫해서 네가 다쳤으면 어쩌러고 그러느냐!]
“자, 잘못했어요!”
[다시는 그런 위험한 짓 하지 말거라! 너희 어린이들은 천사족의 미래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존재란 말이다!]
보카사는 윤솔의 머리 위에 손바닥을 얹었다.
그리고 힘겨운 표정으로 몸을 일으켰다.
[물러나거라. 너를 또 잃게 된다면 내가 장로를 볼 면목이 없어.]
보카사의 말을 들은 윤솔은 머뭇거렸다.
비켜야 할지 말아야 할지 알 수 없다.
이성은 자리를 뜨라고 외치고 있지만 본능은 자리를 지키라고 외친다.
그런 상황 속에서.
[동정은 사치야. 지금 이 순간에도 어린아이들이 지하감옥에서 고통 받고 있어. 우리에겐 시간이 없단 말이다!]
보카사는 앞으로 한발 내딛었다.
쿠르륵!
하얀 불꽃이 창처럼 늘어졌다.
그것은 그대로 곧장 날아가 막둥이의 두개골을 꿰뚫어 버렸다.
푸시시시식… 쿵!
시커먼 뇌수가 터져 나오며 부글부글 끓어오른다.
[뿌애애애애애액!]
막둥이는 결국 그 커다란 얼굴을 바닥에 찧고 말았다.
그리고는 두 번 다시 고개를 들지 못했다.
“…….”
윤솔은 그런 막둥이의 시체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꿀열매 몇 개가 바닥에 뒹굴어 다니고 있었다.
한편.
부슬부슬 내리는 비가 막둥이의 시체를 적신다.
뿌직- 뿌지지직-
요란한 소리와 함께, 막둥이의 전신에 수많은 구멍이 생겨났다.
그리고 그 구멍 속에서 걸쭉한 무언가가 계속 삐져나온다.
후두둑- 후두두둑-
땅에 떨어져 쌓이는 것은 바로 배설물이었다.
그것들은 막둥이가 죽은 뒤 몸 밖으로 빠져나와 끔찍한 악취를 풍기기 시작했다.
냄새가 어찌나 지독했는지 미궁 전역이 오염된 것 같은 느낌이다.
“…으윽. 정말 역하군. 이게 놈의 최후인가.”
드레이크는 악취의 강도에 혀를 내둘렀다.
죽어서 이 정도 악취를 내뿜는 괴물이라면 확실히 죽이기가 부담될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게 끝이 아니었다.
쿵…
땅이 미약하게 진동한다.
그 진동은 시간이 가면 갈수록 점점 더 강해지고 있었다.
쿵쿵쿵쿵쿵쿵…!
벽과 기둥들이 마구 떨린다.
“…뭐지?”
드레이크가 얼굴을 적시는 빗물을 훔쳐 내며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그의 날카로운 눈에도 어둠의 저편은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분명 알 수 있었다.
무언가 거대한 것‘들’이 이쪽을 향해 엄청난 기세로 달려오고 있다는 것을.
이윽고.
어둠 속에서 무언가들이 툭툭 머리를 내밀기 시작했다.
하얀 불꽃을 보고 모여드는 어둠 속의 주민들.
그들은 아주 오래 전부터 미궁에 갇혀 있었던 ‘격리자’들.
[크-워어어어억!]
[큭큭큭큭큭…]
[쉬익! 쉬이이잇!]
[오-오오오오!]
[갸악! 갸아악!]
[…끄르르르륵!]
무수히 많은 배드엔딩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