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5화 미궁 속의 격리자들 (2)
밤.
구름인지 안개인지 분간할 수 없는 뿌연 것이 달을 반쯤 가리고 있었다.
어둠에 젖은 미궁은 극도로 위험하다.
가뜩이나 난이도도 엄청나게 높은 미궁인데다가 밤에는 주변 지형이 낯설게 보이기까지 하니 그 난이도가 더욱 배가된다.
거기에 온갖 흉악한 배드엔딩들이 도사리고 있는지라 더더욱 그렇다.
밤은 미궁 바닥 깊숙이 몸을 묻고 있던 크고 강한 배드엔딩들이 본격적으로 먹이활동을 시작하는 시기이다.
그래서 평소의 미궁은 밤이 되면 조용해진다.
배드엔딩을 제외하면 그 누구도 이곳에 발을 들여 놓지 않기 때문.
…하지만 오늘만큼은 예외였다.
저벅- 저벅- 저벅- 저벅-
이 시간에 이 장소가 이렇게 시끄러운 것은 처음이다.
조용한 미궁 속에 발걸음 소리들이 메아리치고 있었다.
이글거리는 횃불 빛이 쇠붙이에 반사되어 벽에 긴 그림자를 드리운다.
단단한 땅을 딛는, 마찬가지로 단단한 군홧발 소리.
수많은 천사들이 칼과 창으로 무장한 채 미궁을 통과하고 있었다.
높은 장벽 위에는 연일 강한 바람이 불고 있었기에 별 수 없이 이곳 미궁을 통과하는 것밖에는 달리 길이 없다.
천사들의 눈빛은 결연했다.
일전의 그 순하디 순한 모습은 간 곳이 없었다.
과거 악마들에게 마지막까지 저항해 싸웠을 때처럼, 그들은 새로운 악(惡)을 향해 창칼의 기치를 겨눈다.
[식인황제 니고데모를 몰아내야 해!]
[분명 악마들의 사악한 유혹에 넘어간 것이 틀림없다!]
[이대로 곧장 가서 놈의 심장을 뽑아내겠어!]
[반격이다!]
더 이상 아이들을 빼앗길 수 없다는 절박함이 그들을 여기까지 몰아넣은 것이다.
미친 황제의 폭정이 가져온 가장 극단적인 결과라고 할 수 있겠다.
레오나르도를 비롯한 젊은 천사들은 들불처럼 들고 일어나 반격의 서막을 준비했고 그 결과가 바로 이것.
그리고 그 선두에는 바로 내가 있었다.
“…어진. 이 길이 맞는 것이겠지?”
드레이크가 나를 돌아보며 물었다.
옆에 있는 윤솔 역시도 불안한 표정이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미궁의 길은 점점 복잡해져 가고 있었지만 내게는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다.
내가 현재 접속에 사용하고 있는 0세대 캡슐에는 천공섬의 미궁 속 길이 표시되는 버그가 있기 때문이다.
지직- 지지직-
시야에 실금처럼 표시된 하얀 선이 나의 발길을 잡아끈다.
비싼 돈을 주고 아무도 쓰지 않는 낡은 골동품을 산 보람을 톡톡히 느낄 수 있었다.
한편.
내 옆에서 걷던 보카사는 자조적인 어조로 한탄했다.
[이 미궁은 중심부로 갈수록 복잡해지고 정교해지지. 심지어 실시간으로 길이 바뀌는 구역도 존재한다. 한번 들어온 이들은 절대로 다시 왕성으로 되돌아갈 수 없어. 나처럼 길을 알고 있지 못하다면 말이야.]
애초에 배드엔딩들을 가둬 놓기 위해서 설계된 미궁이니 당연한 것이다.
참고로 이 거대한 미궁의 설계도 니고데모 황제가 직접 했다나.
[이 미궁은 단순히 배드엔딩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외부에서 쳐들어오는 악마들의 침공에 대비해 만든 것이기도 하지. 하지만 정작 진짜 적은 내부에 있었던 것이야. 다른 어디도 아닌 자신의 마음속에 말이야.]
보카사는 계속해서 한탄했다.
아무래도 외부인의 손을 빌려 반란을 일으킨다는 것 자체가 서글픈 듯했다.
나는 그의 말을 들으며 얼마 전의 일을 떠올렸다.
‘아이들을 구하고 싶소. 힘을 보태 주길 간곡히 간청하오. 이방인들이여.’
보카사의 요청.
나는 고민 끝에 그것을 수락했다.
내가 NPC의 요청을 순순히 따른 적은 드물었기에 드레이크는 조금 놀랐다.
한편, 윤솔은 나의 결정을 꽤나 반기는 눈치였다.
“잘 됐어. 나도 네티의 한을 꼭 풀어 주고 싶어.”
어느새 자신의 몸이 된 이 작은 천사 소녀의 사정에 깊이 공감하게 된 그녀였다.
바로 그때.
[잠깐.]
앞서 걷던 보카사가 우뚝 멈춰 섰다.
그가 유심히 바라보고 있는 곳은 두 갈래로 갈라진 양 갈래 길이었다.
“…으음.”
나 역시도 걸음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지지직-
쪼개진 균열처럼 보이는 흰 선이 두 갈래 길을 따라 두 갈래로 뻗어있다.
이것은 앞에 갈라져 있는 두 가지 길 중 두 가지 길이 모두 정답이라는 뜻이다.
남쪽으로 난 길과 북쪽으로 난 길.
어디로 가든 간에 목적지인 왕성으로 향한다.
미궁에서는 보기 드물게 좋은 케이스.
…하지만.
보카사와 내가 걸음을 멈춘 것은 단순히 양 갈래 길 중 어느 길을 택할까 하는 고민 때문만은 아니었다.
[부에에에에에… 기힛! 히힛!]
거대한 배드엔딩 한 마리가 갈림길의 중앙 벽에 매달려 있었기 때문이다.
벽 위로 툭 튀어나온 갓난아기의 얼굴.
그리고 양 옆으로 길게 뻗어 있는 통통한 손바닥.
놈하고는 구면인 사이였다.
저 크고 허여멀건한 얼굴을 보는 순간, 나는 침음성을 삼킬 수밖에 없었다.
“…막둥이.”
배드엔딩 중에서도 꽤나 드물게 발견되는 ‘배회성’ 배드엔딩.
이놈들은 특정한 영역을 정해 놓고 서식하는 게 아니라 미궁 전역을 돌아다니면서 산다.
드레이크는 자기가 손수 만든 도감을 꺼내들었다.
<배드엔딩 / 일명 ‘막둥이’> -등급: B+ / 특성: ?
-습성: 배회성
-서식지: 미궁 외곽, C구역 1시 방향.
-발견일: 0월 X일 16시 36분.
-거대한 얼굴을 지닌 아기. 느린 속도로 미궁 내부를 기어 다님.
흉측하게 생긴 외모와는 달리 의외로 얌전한 성격.
그는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나도 이놈의 뒷모습을 보는 건 처음인데….”
그렇다.
막둥이는 지금 우리를 등지고 있었다.
놈의 커다란 얼굴 뒤에는 마치 지네처럼 긴 몸과 다리들이 보인다.
아기의 얼굴을 한 거대한 절지동물.
그것이 막둥이의 정체였던 것이다.
윤솔은 안타깝다는 듯 중얼거렸다.
“하필 갈림길 앞의 중앙 골목에 딱 버티고 있네.”
하지만 놈은 흉측한 외형과는 달리 아주 유순한 배드엔딩이다.
비선공형 몬스터였기에 먼저 건드리지만 않으면 공격해 오지 않을 것이다.
“자, 건드리지 말고 서로 갈 길 가자고.”
드레이크는 막둥이를 향해 두 손바닥을 들어 보이며 조심조심 이동했다.
하지만.
아이들을 구하겠다는 일념으로 신경이 날카로워진 천사들은 막둥이가 비선공형 몬스터인 것을 알지 못했다.
그들은 막둥이의 지네다리를 보자마자 기겁하여 외쳤다.
[으아악! 배드엔딩이다!]
[젠장, 역겹게도 생겨먹었군.]
[저것들도 다 니고데모가 만들어 낸 게 틀림없어!]
[배드엔딩들은 죄다 죽여 없애야 해!]
[저번에 마을을 습격해 온 복수를 해 주겠어!]
혈기왕성한 젊은 천사들이 일전을 준비했다.
저마다 모두 칼과 창을 든 채 앞으로 뛰쳐나가려 한다.
“…이런. 일이 꼬이겠군.”
나와 드레이크는 입술을 깨물었다.
괜히 쓸데없이 시간과 힘을 낭비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만둬라. 저 녀석은 싸울 의사가 없어 보인다.]
흥분한 천사들을 만류하는 이가 있었다.
바로 보카사 바리새인이었다.
보카사는 현명한 리더였다.
수없이 미궁을 오간 경험이 있기에, 그는 굳이 불필요한 싸움을 벌이지 않았다.
[이 배드엔딩은 드물게도 유순하다. 배드엔딩 중에서는 꽤나 별종이지.]
보카사는 신중한 표정으로 두 손을 들고는 전의가 없음을 밝혔다.
그리고는 벽에 바짝 붙어 옆으로 게걸음을 쳤다.
[먼저 건드리지만 않으면 된다. 나를 따라와라.]
그는 눈 깜짝할 사이에 천사들을 진정시켰다.
“…….”
나와 드레이크 역시 보카사의 의견에 동의했다.
우리는 그의 뒤를 따라 등을 벽에 댔다.
그리고 게처럼 옆으로 슬금슬금 걸어 막둥이의 옆을 지나가기 시작했다.
[…….]
다른 천사들 역시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들고 있는 횃불이나 병장기가 실수로라도 막둥이의 몸에 닿지 않게끔 조심하며 기어갔다.
맨 앞에 있던 보카사가 한 번 더 경고했다.
[이 배드엔딩은 아직 새끼이다. 어미의 젖을 먹지 못한지라 무언가를 삼키는 소리에 예민하지. 그러니까 절대로 침을 삼키지 마라.]
그 말에 모두들 긴장한 표정을 지었다.
드레이크 역시도 몰랐던 사실을 알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 * *
…막둥이의 몸은 꽤나 길었다.
단단한 외골격으로 덮여있는 몸 아래에는 투실투실한 살들이 접혀 주름을 만들고 있었는데 이 주름 사이로 뽕뽕 뚫려 있는 구멍에서는 연신 배설물이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푸식-
배설물은 땅에 떨어지며 기분 나쁜 소리를 냈는데 그럴 때마다 바닥이 녹아 구멍이 생겨난다.
아무튼, 우리들은 이 길쭉한 몸의 옆을 통과하는 동안 침을 삼키지 않았다.
또한 이 괴물의 몸을 건드리지 않기 위해 아주 느린 속도로 기어가야 했다.
그때.
“……!”
앞서 걷던 나는 잠시 몸을 멈칫했다.
약간 고민하던 끝에, 나는 뒤를 돌아보며 침착하게 말했다.
“솔아. 여기서부터는 눈을 감는 게 좋겠다.”
내 말을 들은 윤솔은 눈을 동그랗게 떴다.
부슬부슬 내리는 비.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어둠.
지독하게 복잡한 미궁 속.
눈앞에 도사리고 있는 거대한 괴물.
…이 상황에서 눈을 감으라니?
하지만 윤솔은 내 말에 따랐다.
무척이나 불안하지만 일단은 시키는 대로 할 수밖에 없다.
나는 눈 감은 윤솔의 팔을 잡고 조심조심 그녀를 이끌었다.
막둥이의 다리와 살점을 피해 벽에 붙어 이동하는 것은 꽤나 고역이었다.
하지만 지금까지 우리는 별다른 트러블을 일으키지 않고 그것들을 해 왔다.
…지금까지는 그랬다.
“어엇!?”
순간, 눈을 감고 발을 내딛던 윤솔이 돌부리에 걸려 발을 헛디뎠다.
그녀의 발바닥이 향한 곳은 막둥이의 다리 끝부분이었다.
실수로라도 저걸 밟게 된다면 공격받았다고 느낀 막둥이는 난폭하게 변할 것이다.
“큭!?”
나는 재빨리 다리를 뻗어 발등으로 윤솔의 발바닥을 막았다.
그녀의 발바닥은 막둥이의 몸에 닿기 직전에 딱 멈췄다.
[거기 무슨 일이야? 조심해.]
보카사 역시도 깜짝 놀란 듯 작은 목소리로 경고한다.
…휴우.”
나는 윤솔의 손을 잡고 그녀를 벽 쪽으로 살살 밀었다.
그녀와 막둥이 사이의 거리는 다시 평소처럼 벌어졌다.
갑자기 일어난 작은 사고는 이렇게 잘 마무리되는 듯 보였다.
…하지만.
긴장이 풀렸기 때문일까?
윤솔은 감고 있던 눈을 무의식중에 떠 버리고 말았다.
그 순간.
그녀의 두 눈에 들어온 것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