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닳고닳은 뉴비-282화 (282/1,000)
  • 283화 귀시(鬼市) (4)

    나는 초콜릿을 한 보따리 가량 샀다.

    다른 훌륭한 군것질거리인 파인애플 피자나 민트초코, 솔잎 음료수 등이 100골드 내외인 것과 달리, 초콜릿은 혼자서 1천 골드나 한다.

    “꼬마야, 민트초코는 별로니?”

    [퉤-엣!]

    “알겠단다.”

    나는 초콜릿을 잔뜩 사서 꼬마의 품에 안겨 주었다.

    녀석의 표정은 환하게 빛난다.

    얼마나 기뻐했는지 인생에서 출생이나 결혼, 출산 시에만 빛난다는 머리 위의 엔젤 링이 LED등처럼 반짝반짝 거릴 정도다.

    [고마워요 아저씨! 달리 보답할 게 없으니…여기 제 전 재산을 다 줄게요!]

    꼬맹이는 나에게 오목알을 한 줌 건넸다.

    -<슬라임 오목알> / ?

    오목을 둘 때 필요한 오목알.

    오목을 간절히 원하는 이에게는 그 무엇보다도 중요한 아이템이다.

    기괴한 액체괴물 슬라임.

    오목알은 끈적하고 또 덩어리진 반 액체 상태의 물질로 마치 커다란 코딱지처럼 생겼다.

    그런 주제에 또 저희들끼리 뭉쳐지지도 않는지라 여러모로 신기한 물질이었다.

    마치 요즘 애들이 가지고 논다는 액체괴물 장난감과도 비슷하게 생겼다.

    말랑말랑하고 또 약간은 끈적하다.

    만지고 있노라면 차갑고 부드러운 감촉 때문에 한없이 주물거리게 된다.

    한때 유행했던 플X버 장난감과는 달리 유해물질 논란 등의 걱정도 없는 것이다.

    윤솔은 내가 몇 개 건네준 오목알을 만지작거리며 웃었다.

    “와, 이거 우리 사촌동생들이 엄청 좋아하겠다. 가만 보니 귀여운 것 같기도 하고.”

    “맞아. 실제로 나중에 어린아이들에게 선풍적인 인기를 끌게 되는 아이템이야. 이곳 천공섬에서 밖에는 얻을 수 없기 때문에 가격도 엄청 비싸게 책정되지. 나도 이걸 여기서 얻게 되는 줄은 몰랐는데…….”

    그러자 드레이크는 나에게 질문했다.

    “어진. 꼬마에게서 사재기를 한 뒤 되팔 생각인가?”

    “아니. 나는 되팔렘이 아니라서 그런 짓은 안 해.”

    물론 이 오목알들은 나중에 무척 비싸지지만, 이번에는 내가 그것을 독점해 버렸기에 딱히 가격 품귀현상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나는 이것들을 되파는 대신 다른 것을 할 생각이었다.

    어차피 이제 장도 끝물이다.

    나는 오목알을 든 채 마을 외곽을 벗어났다.

    우리가 나가자 귀시도 스르르 걷힌다.

    애초에 짧은 순간만 지속되는 랜덤 시장이기 때문이다.

    내가 귀시를 벗어나 향한 곳은 마을 중앙에 있는 회관이었다.

    자세히는 모르겠지만 분명 회귀하기 전의 세상에서 얼핏이나마 들은 기억이 있었다.

    ‘오목알을 가지고 이곳에 가면 뭔가 ‘좋은 것’을 준다고 그랬던 것 같은데…….‘

    나는 고개를 들어 회관 주위를 살폈다.

    밤이 깊었음에도 불구하고 잠 없는 노인 몇 명이 툇마루에 걸터앉아 있었다.

    그들 중 몇 명은 바둑판에 오목을 두고 있었는데 누가 봐도 오목알과 관련된 퀘스트인 것이 분명하다.

    [어허, 거기다 두면 쓰나. 그러면 돌이 6개가 이어지잖아!]

    [이 영감이 노망났나! 다섯 개든 여섯 개든 이어지면 이긴 거지!]

    [이건 오목이야! 육목이 아니라고! 돌 네 개와 떨어져 있는 돌 하나를 이어서 돌 여섯이 되면 그건 안 쳐 줘.]

    [에잉. 깐깐하기는.]

    지팡이를 든 노인 한 명과 중절모를 쓴 노인 한 명이 옥신각신하면서 오목을 둔다.

    보아하니 중절모를 쓴 노인이 지고 있는 모양새.

    나는 그 옆으로 슬쩍 끼었다.

    그리고 중절모를 쓴 노인의 편을 들어 노골적으로 훈수를 두기 시작했다.

    “할아버지. 거기에 두시면 안 되죠.”

    “에이, 지금 저 할아버지가 호시탐탐 좌상귀를 노리고 있잖아요. 막으시지 않으면 바로 네 줄 떠요.”

    “앗, 거기 말고 한 칸 옆으로 두시는 게 나을 것 같은데요?”

    “으흠, 콜록. 왼쪽 콜록. 왼쪽 위험 콜록. 왼콜록쪽.”

    그러자 중절모를 쓴 노인은 숫제 나를 돌아보며 대신 돌을 놔달라고 하는 지경까지 이르렀다.

    나는 옳다구나 싶어서 내가 가진 한 줌의 오목알을 이용해 대신 훈수를 두기 시작했다.

    “요건 요기다 놓고. 조건 조기다 놓고…….”

    이래 봬도 초등학생 때는 반에서 오목을 제일 잘 뒀던 나다.

    맨날 공책을 사면 줄 그어진 것만 산 뒤에 자로 세로줄 몇 개 더 그어서 친구들이랑 볼펜으로 오목 두고 그랬는데…….

    이 오목에도 사실은 진지한 룰이 있다.

    고모쿠 룰. 오목 룰, 렌주 룰, RIF 룰, 야마구치 룰, Soosyrv 룰, 변형된 오목인 따목, 상목 등등…….

    여기 천사들이 두는 오목은 조금 특이한 것이어서 일반적인 오목 룰에 따목 룰이 결합되어 있다.

    내 돌이 남의 돌을 포위하게 되면 들어서 제거해 버리는 규칙이 추가된 버전이다.

    “하지만 정석만 알고 있으면 아무 의미 없지.”

    사실 오목이란 먼저 두는 흑이 무조건 이기는 무적의 정석이 존재한다.

    백이 어디에 두든 간에 몇 가지 루트로 정해진 자리에만 두면 몇 수 안에 무조건 이기는 공식.

    만약 백이 예상했던 곳에 두지 않으면 승리는 더 빨리 앞당겨진다.

    이것은 설사 인공지능이라고 해도 막을 수 없다.

    “그건 거기다 두시면 안 되죠. 여기에 두시면 상대방은 삼삼이라 못 두고 우리는 딱 돌 세 개가 모여 있는 곳이니 바로 붙여서 돌 네 개를 만들어 버리면….”

    내가 막 최종 훈수를 두자 승리를 확신한 중절모 노인의 표정이 환하게 변한다.

    동시에 이 할아버지의 머리 위 엔젤 링도 반짝반짝 빛난다.

    결국 중절모 노인은 마지막 돌을 두고 승리를 거머쥐었다.

    그가 승부에서 이기자 오목판 위에 작은 상태창이 떠올랐다.

    -지팡이 노인(1000전 / 999승 / 1패) (최근 전적: 1패)

    -중절모 노인(1000전 / 1승 / 999패) (최근 전적: 1승)

    중절모 노인은 오랜 수모와 굴욕 끝에 1승을 거둔 것이다.

    물론 전부 나의 훈수 덕분이기는 했지만.

    그러자 지팡이 노인은 화가 나 오목판을 엎어 버렸다.

    [거 오목 줘까치 하네!]

    그는 쒸익쒸익 거리며 중절모 노인을 노려보았다.

    [야 이 영감탱이야! 훈수 없이 한 판 더해!]

    하지만 중절모 노인은 귀가 잘 들리지 않는다는 듯 고개를 갸웃한다.

    [응 안 해~ 너 개못하잖아.]

    그는 앞으로 다시는 오목을 하지 않겠다고 선언하고는 낄낄거리며 지팡이 노인을 약올렸다.

    그러자 분기탱천한 지팡이 노인은 옆에 있던 나를 노려본다.

    [끼놈아! 너 때문에 졌잖아!]

    그는 내 머리를 향해 지팡이를 내리쳤다.

    따악-

    부지불식간에 떨어진 불벼락이라 피할 수가 없었다.

    …뭐 알았어도 안 피했겠지만.

    노인이 내 머리를 때리자 지팡이의 끝부분이 부러져 홱 날아갔다.

    ‘하마터면 죽을 뻔했네…….’

    나는 간당간당할 정도로 깎인 HP를 보며 속으로 식은땀을 흘렸다.

    워낙에 적은 HP인지라 이 정도 공격으로도 사망에 이를 수 있다.

    거의 위기탈출 남바완 급의 생명력.

    처음으로 천공섬까지 와 배드엔딩들의 습격까지 막아낸 사람이 동네 할아버지의 꾸중을 듣다가 사망했다고 하면 누가 믿어 줄까?

    아마 이 노인의 지팡이 데미지를 꽤나 아프게 설정해 놓은 게임 개발자들도 그런 변수까지는 고려하지 못했을 것이다.

    “어, 어진아! 괜찮아!?”

    윤솔히 황급히 내 HP를 회복시켜 주었다.

    드레이크 역시도 재빨리 나를 부축하려 했지만…나는 바닥에 엎드린 채 일어나지 않았다.

    나는 일어나는 대신 바닥에 떨어진 것을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던 것이다.

    ‘아, 이거였나?’

    내가 지금 보고 있는 것은 아까 내 머리를 때렸던 지팡이에서 부러져 나온 파편이었다.

    -<영혼의 천칭 눈금> / ?

    -보이지 않는 것을 담아 잴 수 있는 천칭 눈금.

    양쪽의 무게를 균등하게 맞추려는 성질이 있다.

    -융합 (특수)

    ‘이걸 여기서 얻을 줄이야!’

    나는 일전에 얻은 두 아이템을 떠올렸다.

    하늘 위를 항해하는 유령선에서 얻었던 접시 아이템.

    -<영혼의 천칭 접시> / ?

    -보이지 않는 것을 담아 잴 수 있는 천칭 접시.

    양쪽의 무게를 균등하게 맞추려는 성질이 있다.

    -융합 (특수)

    ‘뇌옥(雷獄) 불가해지대(不可解地帶)’에서 얻었던 사슬 아이템.

    -<영혼의 천칭 사슬> / ?

    -보이지 않는 것을 묶어 둘 수 있는 천칭줄.

    양쪽의 무게를 균등하게 맞추려는 성질이 있다.

    -융합 (특수)

    그리고 천공섬의 미궁 중간지대에서 얻은 ‘눈금’ 아이템이 한 자리에 모두 모였다.

    나는 인벤토리를 열었다.

    <……아이템 융합 중입니다. 전원을 끄지 마세요>

    예전에 융합을 시도했던 아이템이 꽤 시간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아직 완성되지 않았다.

    지금까지는 그 이유를 몰랐었는데…….

    “재료가 모자라서였구나.”

    나는 접시와 사슬이 있는 곳에 눈금을 박아 넣었다.

    그러자 비로소 온전한 재료들이 다 모였다.

    ‘영혼의 천칭’

    <……아이템 융합 중입니다. 전원을 끄지 마세요>

    또다시 융합 표시가 떴다. 이번에는 느낌이 좋았다.

    “어진. 뭔가를 얻은 모양이군.”

    드레이크는 축하한다는 듯 박수를 쳤다.

    가챠에서 모조리 대박 아이템을 뽑은 사람에게 이런 칭찬을 듣고 있자니 기분이 묘하다.

    바로 그때.

    “……!”

    윤솔이 갑자기 무언가를 느꼈다.

    그녀는 목덜미에 돋은 소름을 문지르며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우리가 들어왔던 마을 입구를 돌아보며 내 옷깃을 잡아당겼다.

    “어진아. 저기…….”

    내가 고개를 돌리자, 마을 입구가 갑자기 부쩍 소란스러워졌다.

    웅성거리는 소리가 나는가 싶더니 수많은 천사들이 장벽의 입구로 우르르 몰려들었다.

    그 맨 앞에는 마을의 장로가 있었다.

    “……!”

    나는 두 눈을 크게 떴다.

    굳게 닫혔던 장벽의 문이 천천히 벌어지고 있었다.

    그 너머에서 모습을 드러낸 이는 지치고 피곤한 표정의 노인이었다.

    흰 백발과 수염, 그리고 순백의 옷.

    하지만 그 모든 것은 붉은 피에 절어 있다.

    전에 미궁 속에서 우리를 도와줬던 그 ‘하얀 불꽃’의 마법사가 분명했다.

    그를 중심으로 모인 천사들의 수는 엄청났다.

    하나같이 간절하고 또 애타는 표정.

    천사족의 장로는 경외심을 담은 표정으로 그를 향해 외쳤다.

    [잘 오셨소, 보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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