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닳고닳은 뉴비-279화 (279/1,000)
  • 280화 귀시(鬼市) (1)

    천사족 장로는 우리가 천사 마을의 일원이 되는 것을 공식적으로 허가해 주었다.

    이런 피난민 쉼터 같은 곳에 소속되게 된 것이 뭐 그리 좋은 것이냐고 의아해할 수도 있지만… 사실 이것은 꽤나 큰 특전이다.

    천공섬의 메인 퀘스트를 클리어하기 위해서는 이곳 천사들의 도움이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부수적인 이득 역시 꽤나 쏠쏠하단 말씀.”

    나는 천사들의 마을을 둘러보며 눈을 빛냈다.

    지금은 낮이라서 별 게 없어 보이지만, 밤이 되면 이 마을에는 재미있는 현상이 발생하는 것이다.

    그것을 잘 이용할 수만 있다면 일확천금을 얻는 것은 시간문제.

    그런 고로, 나는 윤솔과 드레이크를 모아 놓고 일장연설을 늘어놓았다.

    “자, 지금부터 우리는 최선을 다해 이 마을 천사들의 호감을 사야 해.”

    그러자 윤솔과 드레이크는 고개를 갸웃한다.

    윤솔이 물었다.

    “나는 이미 네티의 몸을 하고 있어서 그런가 기본 호감도 자체가 엄청 높은데?”

    그녀의 말은 사실이었다.

    아무것도 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천사들이 윤솔에게 가진 호감도는 우리들 중 그 누구보다도 높다.

    동족이기에 당연한 말이었지만 어찌 생각해 보면 약간 억울하기도 한 일이었다.

    한편 드레이크 역시도 고개를 끄덕거렸다.

    “나 역시도 이번에 배드엔딩 나이트메어 폼과 싸우는 도중에서 천사들에게 호감을 꽤 산 것 같다. 특히나 젊은 여성형 천사들의 호감도가 높더군. 길을 걸을 때마다 윙크를 하질 않나 팔짱을 껴 오질 않나…….”

    ……음, 나한테는 그런 것 없었는데.

    젊은 여자 천사들은 내가 말을 걸 때 굉장히 사무적으로 대답하던데 어떻게 된 걸까?

    …아무래도 버그라고 밖에는 생각이 안 든다.

    뭐 아무튼.

    나는 그들의 질문에 고개를 끄덕였다.

    “우선 솔이, 솔이는 오랜 시간 동안 마을 밖에 있었고 실질적으로 마을 구성원이 된 지는 얼마 되지 않아서 올라간 호감도 자체는 그리 높다고 볼 수는 없지.”

    윤솔에게서 시선을 뗀 나는 드레이크를 쳐다보았다.

    “또한, 우리를 인정한 천사들은 아직 그리 많지 않아. 대부분의 천사들은 우리가 스마일과 싸우는 것을 직접 보지 못했기에 아직까지 꺼림칙해 하고 있어. 우리는 모두의 호감을 사야 한다.”

    드레이크는 고개를 끄덕였다.

    군인 출신이기 때문일까?

    그는 퀘스트를 수행해야 하는 이유와 당위에 대해서 묻기보다는 퀘스트를 수행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해서 먼저 생각하는 성격이었다.

    “…그래서. 마을 주민들의 호감도를 얻을 수 있는 방법은?”

    현지에 주둔하는 동안 현지인들의 호감을 사는 것은 군인의 기본이다.

    드레이크의 말을 들은 나는 마을 건너편을 손으로 가리켰다.

    “먼저 배드엔딩들에게 당한 마을을 재건해야겠지.”

    “…과연.”

    드레이크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곳 천공섬의 퀘스트는 굉장히 불친절하다.

    ‘띠링!’하는 알림음이나 퀘스트 창 등은 일절 제공되지 않는다.

    눈치껏 알아서 일을 찾아서 하는 이만이 보상을 받을 수 있다.

    “자, 그럼 움직이자고.”

    나는 발을 움직여 가장 피해가 큰 구역으로 향했다.

    그곳은 장벽과 장벽을 잇는 커다란 돌다리였다.

    엄청나게 많은 수의 천사들이 모여 다리를 재건 중이었는데 영 진도가 나가지 않고 지지부진하다.

    나는 천사들에게 다가가 물었다.

    “뭐가 문제입니까?”

    그러자 천사들은 대답했다.

    [아아. 당신이군요. 우리는 지금 밧줄 다리를 재건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건너편 절벽으로 넘어가 밧줄을 동여매야 하는데, 절벽을 넘어갈 방법이 없어요.]

    그들은 밧줄을 들어 보이며 난감하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절벽 건너편에는 끊어져 있는 밧줄다리가 보인다.

    아마 지난번에 배드엔딩들이 습격해 오며 파괴된 듯싶었다.

    윤솔은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아저씨들은 천사잖아요. 날개를 써서 날아가 밧줄을 묶으면 되는 것 아닌가요?”

    [으음, 그건 좀 곤란하단다.]

    밧줄을 든 천사는 장벽 아래를 향해 손가락을 뻗었다.

    [이 절벽과 저 절벽의 사이는 바람골로 통하지. 폭이 좁아서 바람이 엄청 세. 보겠니?]

    천사는 돌맹이 하나를 절벽 아래로 홱 내던졌다.

    그러자.

    휘이이잉- 따닥! 따다다다다다닥!

    돌멩이는 순식간에 바람에 쓸려가 절벽으로 되돌아왔고 이내 절벽에 몇 번이고 부딪치며 저 옆으로 굴러 떨어지기 시작했다.

    아무리 천사들이라고 해도 저런 바람골에 날아들었다가는 바로 휩쓸려 추락할 것이 분명하다.

    “내가 해 보지.”

    드레이크가 앞으로 나섰다.

    그는 커다란 화살 끝에 밧줄을 묶고는 공성병기 급으로 크고 육중한 쇠뇌에 장전했다.

    퍼펑!

    화살이 엄청난 속도로 날아간다.

    하지만 그 강력한 화살 역시도 바람골을 통과하지 못했다.

    휘리리리릭!

    화살은 중간에 꺾여 아래로 곤두박질쳤다.

    “이런. 바람이 너무 센데? 계산을 다시 해야겠어.”

    드레이크는 머쓱한 표정으로 뒷머리를 긁적였다.

    이제는 내가 나설 차례다.

    나는 커다란 통나무 하나를 뽑아와 절벽에 반쯤 걸쳐 놓고 그 위로 올라섰다.

    내가 올라선 곳은 통나무의 한쪽 끝, 땅 위에 올라가 있는 부분이다.

    통나무의 반대쪽 끝은 절벽을 넘어 까마득한 허공에 뻗어 있었다.

    “…뭘 하려고?”

    윤솔은 불안한 시선으로 내게 물었다.

    나는 대답 대신 그저 씩 웃어 보였다.

    그리고.

    우지지지직!

    나는 땅에서 뽑아 올린 커다란 바위를 들고 통나무 위에 섰다.

    그리고 그것을 냅다 통나무 반대쪽 끝을 향해 던져 버렸다.

    터-엉!

    마치 시소처럼, 반대쪽 끝에 무거운 바위가 떨어지자 내가 있는 부분의 통나무가 확 치솟았다.

    ‘예전에 다리 만들기 게임을 할 때 많이 써먹었던 방법이지. 추억 돋네.’

    통나무와 바위는 절벽 아래로 떨어져 내린다.

    나는 손에 밧줄을 잡은 채 하늘로 날아갔다.

    휘이이이잉-

    거센 바람이 불었지만 시소의 강력한 힘에 의해 앞으로 튕겨져 나가는 나를 막을 수는 없었다.

    콰쾅!

    나는 밧줄을 단단히 잡은 채 건너편 절벽에 착지했다.

    그리고 그쪽에 있는 도르래에 새로운 밧줄을 묶었다.

    “밧줄 도킹 완료.”

    돌아오는 길은 간단했다.

    밧줄을 잡고 천천히 돌아오면 되는 것이니까.

    이 정도는 첨공섬에 오기 전 운석에서 유령선으로 건너갔던 경험이 있어서 익숙했다.

    […세상에!]

    하지만 천사들에게는 그런 내 모습이 조금은 생경했던 모양이다.

    오죽했으면 드레이크와 윤솔마저 입을 딱 벌리고 있었을 정도니까.

    나는 다음 절벽에 있는 밧줄다리를 돌아보았다.

    통나무와 바위만 있으면 넘어가지 못할 절벽은 없다.

    “후후후. 다리 만들기 게임의 미니게임 버전이로군. 이 어렵고 난해한 난이도는 고인물들을 자극하기에 충분하지.”

    나는 손을 쓱쓱 비볐다.

    사실 나중에 이 ‘다리 만들기 퀘스트’는 여러모로 유명해진다.

    많은 사람들이 온갖 기상천외한 모양의 다리를 만들어 도전하는 콘텐츠가 되는 것이다.

    롤러코스터 모양의 다리, 시계추 모양의 다리, 크리켓을 하는 듯한 다리, 아니면 사람처럼 걸어서 움직이는 다리…온갖 창의적인 외형의 다리들이 쏟아져 나온다.

    나중에는 이런 쪽으로 대회도 열릴 정도다.

    ‘이 정도로 놀라면 안 되지.’

    나는 속으로 웃으며 밧줄다리들을 연결했다.

    다리 하나를 만들 때마다 같이 작업에 동원된 천사들의 호감도가 쭉쭉 오르는 것이 느껴진다.

    아주 순조로운 출발이었다.

    *       *       *

    결국 밧줄다리 공사가 완료된 것은 꽤나 오랜 시간이 지나서였다.

    나는 간만에 다리 만들기 게임을 해서 재미있었고 드레이크는 화살에 밧줄을 묶어 쏘는 과정에서 바람을 조금 더 잘 다룰 줄 알게 되었다.

    윤솔은 천사들과 대화를 하는 것만으로도 호감도를 많이 올릴 수 있었다.

    한편.

    다리 공사를 마치고 내려오자 또 다른 퀘스트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아휴, 이놈의 빨래들을 다 어떻게 한담!]

    개울가에 선 수많은 천사들이 난색을 표하고 있다.

    그들의 앞에는 토사에 범벅된 빨랫감들이 잔뜩 놓여 있었다.

    축대가 무너지며 그 안에 든 흙들이 쏟아지는 바람에 모든 빨래들이 죄다 흙투성이가 되어 버린 것이다.

    빨래거리 뿐만이 아니라 흙을 닦아내고 난 수건이나 걸레 등 역시도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다.

    또한 부상자들이 입고 있던 옷들 역시도 피나 땀, 재에 절어 세탁이 필요한 시점이었다.

    나는 기꺼이 이들의 고충에 응했다.

    촤아아아악-

    나는 모든 빨래들을 커다란 통 안에 집어넣었다.

    맑은 물이 흘러들어오게끔 수관을 연결한 뒤, 나는 물속에 가루 세재들을 뭉텅이로 때려 넣었다.

    “빨래야말로 내 전문이지.”

    나는 마동왕 모드로 변해 물을 따끈하게 뎁혔다.

    예전에 리자드맨들을 삶아 죽일 때 썼던 방법이다.

    물은 이내 수증기가 뿌옇게 올라올 정도로 뜨거워진다.

    나는 지진과 와류의 힘을 이용해 빨래들을 난타했다.

    퍼펑! 쿠르르르륵!

    빨래는 물속에서 뒤집히고 회전하기를 반복한다.

    지진의 힘은 빨래에 찌든 때를 깨끗하게 빼 놓았으며 와류의 힘은 푹 젖은 빨래들을 깔끔하게 탈수한다.

    [……세상에! 때가 쏙!]

    천사들은 이번에도 나를 보며 깜짝 놀란다.

    호감도가 쭉쭉 올라가는 소리가 들린다.

    팡팡!

    나는 깨끗하게 세탁된 빨래들을 옷걸이에 걸어 말렸다.

    세탁과 탈수가 완벽하게 된 옷들인지라 천사들은 그것들을 바로 입고 다닐 수도 있었다.

    [아휴, 고마워. 당장 내일부터는 발가벗고 다녀야 하나 고민했었는데….]

    [덕분에 위생적인 붕대를 감을 수 있게 되었어. 하마터면 감염될 뻔했지 뭐야. 이 은혜는 잊지 않을게.]

    [추웠는데 이불을 덮을 수 있게 되어서 다행이에요. 정말 고맙습니다.]

    여기저기에서 감사의 인사 소리가 들린다.

    나는 상태창을 열어 천사들과의 호감도를 측정해 보았다.

    호감도 바는 거의 MAX를 향해 가고 있다. 아주 순조로운 상황이었다.

    그때.

    드레이크가 그제야 호감도를 올리는 이유에 대해 물었다.

    “…뭔가 목표로 하는 게 있는 건가?”

    그는 나를 잘 안다.

    설마 내가 천사들의 마을에 머무는 동안 그들과 잘 지내고 싶어서 이런 고생을 사서 한다고는 생각하지 않겠지.

    나는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호구도 아니고, 보상 없는 일에 시간과 힘을 투자할 만큼 나는 어리석지 않다.

    “마을 주민의 절반 이상의 호감도 수치를 MAX로 찍는 순간 ‘특별한 변화’가 시작되지.”

    “…특별한 변화?”

    드레이크는 고개를 갸웃했다.

    그렇다.

    내가 이전에도 말했던 ‘특전’

    지금은 낮이라서 별 게 없어 보이지만, 밤이 되는 순간 이 마을에는 재미있는 현상이 발생할 것이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그것을 잘 이용할 수만 있다면 일확천금을 얻는 것은 시간문제다.

    “아마 꽤나 신기한 경험이 될 거야.”

    나는 빨래를 널며 눈을 빛냈다.

    바람에 나부끼는 하얀 빨래들 사이로 빠알간 저녁놀이 지고 있었다.

    …곧 시작할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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