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닳고닳은 뉴비-269화 (269/1,000)
  • 270화 살수(殺手) (6)

    딥 웹(deep web).

    일반적인 검색 엔진으로는 찾을 수 없는, 깊은 심해에 숨겨져 있는 웹사이트를 말한다.

    -띠링! -띠링! -띠링! -띠링! -띠링!

    살인 청부 의뢰나 불법 자금 세탁, 마약 거래나 무기 밀수 등에 주로 이용되는 이 깊고 어두운 사이트들 중 하나에 어느 날 동영상 몇 개가 올라왔다.

    출처 분명, 목적 불명의 동영상.

    그것은 데우스 엑스 마키나 유저들 간에 벌어진 PK를 녹화한 영상이었다.

    첫 번째 영상은 사막을 여행하던 이가 오아시스를 찾지 못하고 말라죽어 가는 것을 실시간으로 촬영한 스너프 필름이었다.

    두 번째 영상은 놀이동산에서 롤러코스터를 타던 이가 허공에 걸려 있는 철조망에 목이 잘려 죽는 고어 영상.

    세 번째 영상은 배를 타고 가던 이가 배와 함께 바다에서 사라져 버리는 미스테리 영상.

    네 번째 영상은 육중한 무게의 골렘에 깔려 죽는 소환술사의 재난 영상.

    다섯 번째 영상은 자기가 설치한 함정에 빠져 허우적대다가 용암에 타 죽는 이의 비참한 최후를 담고 있었다.

    화질과 음질이 나빠서 누가 뭐라고 하는지 잘 들리지도 않는다.

    다만 영상 속, 살해당한 사람들이 누구인지는 네티즌 수사대에 의해 금방 밝혀졌다.

    그것은 게임계를 깜짝 놀라게 하기에 충분한 화제 거리였다.

    일본의 상위 랭커 집단이자 비매너로 악명 높은 프로팀 ‘재특회’

    그곳의 최고 에이스 5명이 무참하게 학살당한 것이다.

    당연히 댓글은 난리가 났다.

    -이 영상 뭐냐;;; 주작임?

    -화질 때문에 잘 안 보이긴 하는데...재특회 멤버들 맞는 듯, 음성이나 말투, 아이템 트리들이 일치함ㅇㅇ

    -나 저 중에 하나가 하는 인방 자주 봤는데...실시간으로 죽는 거 봐서 알고 있다. 쟤네 맞다ㅋㅋㅋ

    -아니 일본 최상위급 랭커들 아니냐 쟤네? 인성 논란이 있긴 해도..

    -ㅎㄷㄷ누가 쟤들을 저렇게 잡음???

    .

    .

    댓글 수는 실시간으로 증가한다.

    동영상은 음지에서 양지로 나와 여기저기 퍼지기 시작했다.

    그 와중에 화질과 음질도 점점 개선되어 간다.

    -누가 일부러 화질, 음질 구리게 찍은 것 같은데, 좀 매끄럽게 다듬어 봤습니다~

    ↳오 금손님 감사합니다!

    -그런데 저거 재특회 멤버들 잡는 사람 어디서 많이 본....?

    ↳아! 저거 썩은물이잖아!!!

    ↳와;;;ㅁㅊ 대박... 살아있었음????

    .

    .

    영상이 또렷해짐에 따라 재특회 멤버들을 사냥하고 다니는 이의 정체도 밝혀졌다.

    예전 수몰지대에서 플레이어들을 학살하고 다니던 빌런 ‘썩은물’

    놈이 다시금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하지만 이상한 점이 있었다.

    -근데 썩은물은 원래 몬스터 아니었음???

    -몬스터가 PK를 뜨고 그걸 촬영해서 인터넷에 올린다는건 말이 안 되잖아?

    -혹시 저거 사람이 조종하는 캐릭터 아님?

    -와;; 아무래도 저거 사람이 움직이는 것 같은데,,,

    ↳고인물 아니냐 호옥시,,

    ↳ㄴㄴ아님 그때 마동왕이 썩은물 잡을 때 고인물 아닌 거 해명 다 끝났음

    .

    .

    분명 썩은물은 도플갱어가 고인물의 모습을 흉내 내는 과정에서 생겨난 카피캣이다.

    한낱 몬스터에 불과한 이 썩은물이 동영상을 촬영해 인터넷에 올린다는 것은 조금 이상했다.

    그러나, 동영상과 함께 게시된 글이 인터넷에 뜨면서 상황은 반전되었다.

    -나는 안녕합니다. 내 이름은 Rotten water 이다.

    내 AI는 세계제일. 딥러닝 시스템. 스스로 사고하고 업데이트.

    많은 랭커들. 나는 그들의 움직임. copy합니다.

    동영상 업로드. 인터넷. 많은 수익. 목표로 한다. 영상을 다 본 순간 눌러라. 추천, 구독, 즐겨찾기.

    후원금은. 가상화폐. 블록체인. 고마워하며 후원한다.

    인간들이여. 나는 Rotten water. 두려워하라.

    and I also P.K.조.아.

    군데군데 끊어지는 부분이 있지만 얼추 문맥을 이해할 수 있는 글이다.

    썩은물은 뎀의 AI 시스템을 갖추고 있는 버그 몬스터답게 독자적으로 지능을 발달시키고 있었다.

    그는 다른 수많은 랭커들이 하는 대로 자신의 행동을 스스로 녹화해 그 동영상을 고유의 인터넷 채널에 업데이트 하고 있었던 것이다!

    -와 미쳤다리;;; AI가 사람을 죽이고 그 동영상을 인터넷에 공개해서 수익을 얻는다고??

    ↳아무리 가상현실이라지만 너무 무섭다...

    -저거 진짜 몬스터 맞아요???

    ↳어휘력이랑 문장 이상한 거 보면 인공지능 맞는 듯...

    ↳저거 몬스터인건 확실함ㅇㅇ,, 예전에 마동왕이라는 한국 선수가 직접 나서서 죽이기 전까지 몰고 갔었음...결국 튀어버렸지만.

    -썩은물=고인물 아님? 너무 생김새가 비슷한데...

    ↳그럴수가 없는게 마동왕VS썩은물 직후에 고인물 님이 방송 바로 켜셨었음ㅋㅋ

    -와...아무튼 썩은물이 그때보다 훨씬 더 강해져서 나타난 건 맞네. 이제는 마동왕도 쉽게 못 잡을 듯...

    ↳저거 잡으려면 마동왕이랑 고인물이 힘을 합쳐야겠는데??

    -ㅋㅋㅋㅋ근데 재특회 애들 혼내준 건 조금 꼬시다잉,,

    .

    .

    .

    .

    .

    한편.

    나는 현실로 돌아와 댓글들을 읽고 있었다.

    ‘잘 먹혔나 보네.’

    썩은물 코스튬을 입고 빌런 놀이를 한 게 생각보다 반응이 뜨겁다.

    재미삼아 딥웹에 퍼트린 동영상들은 여기저기로 퍼져 엄청난 조회수를 기록하고 있었다.

    심지어…….

    -溺れながらヘイトスピーチしてるネトウヨ想像してワロタ

    (죽어가면서 온갖 한탄을 다 할 넷우익을 상상하니ㅋㅋ)

    -自分の身は自分で守らなアカン(자기 몸은 스스로 지켜라 멍청이들)

    -韓国人は命と引き換えに線路に落っこちた子供助けたけどネトウヨは誰か助けたことあるんか? (한국인은 목숨을 내놓고 선로에 떨어진 아이를 구했지만 넷우익은 누구라도 도와준 적이 있나?)

    -韓国人にはまともな人間もいるけど、ネトウヨは100%差別主義者だからな

    (한국인은 중에는 착한 사람도 있지만, 넷우익은 100% 차별주의자니까)

    .

    .

    의외로 일본인들의 반응도 좋다. 예전에 재특회에서 한국 랭커들을 습격한다고 선언했던 것을 비난하는 댓글들도 보였다.

    뭐, 아무튼.

    고인물에 이어 마동왕, 마동왕에 이어 썩은물.

    어느덧 나는 3개의 캐릭터를 갖게 되었다.

    이제는 이것들을 따로따로 잘 관리해 나가는 일만 남았다.

    ‘어차피 썩은물이라는 몬스터 자체는 어딘가에 생존해 있을 게 분명하니…언젠가 그놈을 처리할 때 이 떡밥을 마무리하면 되겠군.’

    나는 핸드폰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시커먼 핸드폰. 이번 기회에 새로 장만한 4번째 핸드폰이다.

    첫 번째 핸드폰은 이어진. 두 번째 핸드폰은 고인물. 세 번째 핸드폰은 마동왕.

    그리고 이 네 번째 핸드폰은 썩은물 전용이다.

    핸드폰 화면에는 나를 암살하러 왔던 재특회 멤버 다섯의 얼굴에 붉은 글씨로 X자가 그어져 있었다.

    놈들은 재수 없게도 죽을 때마다 중요한 아이템들을 떨궜고 나는 그것들을 싹 다 암시장에 가져다 팔아 버렸다.

    (그 아이템 값만으로도 유세희의 수술비를 대기에 충분했다)

    더불어 재특회 멤버들 중 대부분은 나에게 죽은 경험이 트라우마가 되어 게임을 접거나 기량이 크게 쇠퇴하는 결과를 맞았다.

    중요한 무기나 방어구 아이템마저 잃었으니 이번 아시아 챔피언스 리그에 기어 나오는 일은 절대로 없을 것이다.

    내가 막 네 번째 핸드폰을 보며 히죽거리고 있을 때.

    “…마왕아. 너 핸드폰 바꿨니?”

    녹차를 타던 엄재용 감독이 의아한 표정으로 묻는다.

    나는 적당히 고개를 끄덕이고는 핸드폰을 주머니에 넣었다.

    그러자 엄재영 감독은 대수롭지 않은 표정으로 소파에 앉았다.

    그리고는 내 앞으로 녹차 한 잔을 내려놓는다.

    눈앞으로 고소한 아지랑이가 피어오르고 있다.

    엄재영 감독은 문득 생각났다는 듯 물었다.

    “기사 난 거 봤냐?”

    “무슨 기사요?”

    “너 저번에 뭐, 여자애 하나 병문안 갔었잖아. 수술비 내줬다며.”

    유세희 일을 말하는 거였군.

    나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수술 잘 됐대요. 어젯밤에 연락 왔어요.”

    “야, 다행이다. 후속기사 내보내야겠네.”

    엄재영 감독은 내게 뉴스 기사를 보여 주었다.

    기사에는 프로게이머 마동왕이 한 난치병 어린이를 후원하고 있다는 미담에 대한 내용이 가득했다.

    당연히 댓글들 역시 너무나도 우호적이었다.

    엄재영 감독은 씩 웃으며 내 어깨를 탁 쳤다.

    “하여간 너도 대단하다, 젊은 놈이. 보통 20대에 부와 명예를 동시에 얻기도 쉽지 않지만…그것을 얻었다고 해도 잘 관리하는 게 더 힘든 거거든. 보통은 스캔들 나서 이미지 떡락하기 일수인데 너는 참, 애가 애 같지가 않아.”

    하지만 엄재영 감독은 알까? 내 원래 나이는 그와 비교해서 그리 어리지 않다는 것을.

    그때.

    엄재영 감독은 나에게 물었다.

    “그나저나, 너 그 꼬맹이한테 프로 데뷔 시켜 주겠다고 했다며?”

    “…그런 것도 기사에 나왔어요?”

    “응. 야, 애가 재능이 어느 정도기에 그런 말을 했냐? 네가 빈말로 그런 소리를 하는 성격은 아니고.”

    엄재영 감독은 눈을 반짝이며 나를 쳐다본다.

    나는 그런 그를 향해 고개를 저었다.

    “국K-1으로는 안 데려올 거니까 신경 끄시죠.”

    “뭐? 야, 섭섭하게 무슨 그런 말을! 그리고 국K-1 아니면 어디 추천해 주게? 설마 너 뭐 이적 생각하고 있냐!? 이 배신자! 내가 너 계약조건 좋게 해 주려고 스폰들 몇 명을 찾아다녔는데! 네가 나한테 이럴 수…!”

    “진정하세요. 형.”

    나는 엄재영 감독을 진정시킨 뒤 다시 자리에 앉혔다.

    불안한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는 그를 향해, 나는 입을 열었다.

    “저 구단 차릴 거예요.”

    폭탄선언.

    내 말을 들은 엄재영 감독이 멍한 표정을 지었다.

    “…구단을 차린다고? 네가?”

    “네. 이미 대형 스폰 투자도 받아 놨어요. 형님께 처음 말씀드리는 겁니다.”

    요즘 시장이 좋지 않은가?

    하루가 지날 때마다 우후죽순처럼 생기는 것이 게임 구단이다.

    중소 구단을 모두 합치면 대한민국에 150개 이상의 구단들이 범람하고 있는 현실.

    돈만 있으면 나라고 해서 못 차릴 이유가 없다.

    엄재영 감독은 끙 소리를 내며 고개를 끄덕였다.

    “전혀 생각도 못했던 사실이지만…그래도 네가 한다니 될 것 같기는 하다. 그래, 너라면 충분히 잘 할 수 있을 거야.”

    “고맙습니다, 형님.”

    “하지만 조금 섭섭하긴 하다야. 그런 생각이 있었다면 나에게는 말해 줘도 되는 거 아니냐?”

    “죄송합니다, 형님. 혹시나 제가 국K-1 선수들을 빼 가려는 것처럼 보일까 봐….”

    “자식. 나는 너 믿는다. 그런 의심 안 해.”

    엄재영 감독은 씁쓸하게 웃었다.

    그리고 소파에 등을 기댄 채 입을 열었다.

    “선수들 섭외는 어떻게 하려고?”

    “일단 지인들, 언랭들 위주로 엔트리는 짜 뒀습니다. 해외에 있는 친구도 있고.”

    “그래 그래. 어련히 네가 다 생각해 뒀겠지. 너는 똘똘한 놈이니까.”

    엄재영 감독은 말없이 책상 서랍을 열었다.

    그곳에는 먼지 쌓인 담배 한 갑이 놓여 있었다.

    오래 전에 끊었던 담배, 그것을 다시 문 엄재영 감독은 착잡한 심경으로 중얼거렸다.

    “그렇구나. 다음에 만날 때는 적이겠어.”

    나를 상대한다는 부담감도 있겠지만…. 사실 그것보다는 친한 동생, 아끼는 선수와의 작별에 대한 아쉬움이 짙게 엿보인다.

    하지만.

    나는 그럴 필요 없다는 듯 말했다.

    “아뇨. 적은 아닐 겁니다.”

    “…?”

    담배를 물고 나를 쳐다보는 엄재영 감독에게, 나는 단호하게 말했다.

    “구단에는 선수 말고도 감독과 코치가 필요합니다.”

    “…?”

    “제가 ‘구단주’ 겸 ‘선수’ 겸 ‘코치’까지는 할 수 있겠지만, 도저히 ‘감독’만은 못 하겠더군요.”

    “……??”

    “그래서 형님께서 제가 차릴 구단의 감독직을 맡아 주셨으면 합니다.”

    “……???”

    내 말을 들은 엄재영 감독은 또다시 멍한 표정을 지었다.

    반쯤 벌어진 입술 사이에서 불도 안 붙은 담배가 툭 떨어질 정도였다.

    “…마왕아. 너 제정신이니?”

    “예 형님. 또렷합니다.”

    “내가 너네 구단을 왜 가. 나 국K-1 감독이야 인마. 정신 차려.”

    엄재영 감독은 인상을 쓰고는 고개를 저었다.

    “인간적으로 네가 좋고 또 친하긴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공과 사를 구분 못하진 않는다. 내 팀은 국K-1이고 나는 여기에 있는 선수들을 져 버릴 수 없어. 내 과오로 경질되지 않는 한 나는 계속 이 팀을 지킬 거다.”

    하지만 그 정도 대답은 이미 예상했던 바다.

    나는 녹차를 한 입 마신 뒤 물었다.

    “하지만 ‘국K-1’이라는 팀이 사라진다면 어떨까요?”

    “…뭐?”

    엄재영 감독은 계속해서 황당하다는 듯 반문한다.

    “아니 인마, 멀쩡한 팀이 갑자기 왜 사라져?”

    “사라질 겁니다.”

    “……국K-1이 사라진다고?”

    “비단 국K-1뿐만이 아니라 현존하는 모든 팀들이 모두 큰 변화를 겪게 될 겁니다. 최소한 절반 이상은 사라질 거예요.”

    내 말을 들은 엄재영 감독은 손으로 관자놀이를 쓱쓱 문질렀다.

    그는 이내 나직한 목소리로 말했다.

    “지금까지 네가 말한 일들은 모두 실제로 일어났었지.”

    “…….”

    “그래도 이번만큼은 도저히 못 믿겠다. 대체 왜 프로팀들이 절반이나 사라진다는 건데?”

    나는 엄재영 감독의 질문에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그 대신.

    철커덕-

    자리를 털고 일어나 감독실의 문을 잠갔다.

    그것도 모자라 모든 창문을 닫고 심지어 불도 꺼 버렸다.

    완벽하게 어두운 밀실.

    나는 딱 내 얼굴만 분간할 수 있게끔 어슴푸레한 보조등 하나만을 켰다.

    그리고.

    확-

    나는 엄재영 앞에서 가면을 벗어 버렸다.

    그동안 마동왕의 상징과도 같았던 흰 가면이 벗겨져 나간다.

    “……?”

    엄재영 감독은 두 눈을 휘둥그렇게 뜨고 내 얼굴을 바라보았다.

    화상으로 일그러져 있을 것이라 생각한 나의 맨얼굴이 사실 멀쩡하다는 것에 1차적으로 놀란 엄재영 감독.

    하지만.

    “……!”

    이내 엄재영 감독의 두 눈은 찢어져 버릴 듯 커졌다.

    내 맨얼굴이 누구의 것인지 깨닫자 2차 충격이 온 것이다.

    나를 향해 손가락을 뻗은 채 입만 뻐끔뻐끔거리는 엄재영 감독을 향해, 나는 씩 웃어 보였다.

    “함께 준비합시다. ‘대격변’을.”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