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닳고닳은 뉴비-268화 (268/1,000)

269화 살수(殺手) (5)

재특회 팀의 감독 아베 신조는 팀 에이스인 사쿠라이 마코토를 따로 불러들였다.

“멤버 네 명이 연달아 죽은 것 들었지?”

“…예.”

“공교롭게도 모두 마동왕 암살에 나섰던 녀석들이다.”

“…그렇군요.”

“넷 다 공통점이 뚜렷하더군. 죽기 전에 말야, 시커먼 괴인을 만났다고….”

아베 신조 감독의 말에 사쿠라이 마코토는 감고 있던 눈을 떴다.

그리고 날카로운 목소리로 물었다.

“…한국의 반격인 것입니까?”

“아니, 그것은 아니다.”

아베 신조 감독은 고개를 저었다.

그는 컴퓨터에 스크린 샷 하나를 띄웠다.

모니터 속에는 시커먼 몸을 가진 괴물이 보인다.

사람의 형체를 하고 있었지만 거의 다 무너져 가는 몸뚱이에 뒤틀린 얼굴, 날카로운 이빨과 혀.

누가 보기에도 이것은 사람이 아니라 몬스터였다.

아베 신조 감독은 심각한 표정으로 말했다.

“과거 한국에서 ‘썩은물’로 유명했던 빌런이다. 듣자하니 도플갱어에서 시작된 버그 몬스터라고 하더군.”

“…몬스터? 이게?”

사쿠라이 마코토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모니터를 바라보았다.

이베 신조는 착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AI가 워낙에 높은데다가 데우스 엑스 마키나의 딥러닝 시스템까지 적용되어 있다지. 완전히 규격 외의 버그다.”

“…뉴스 기사까지 탔군요. 현재는 행방불명된 상태라는데.”

“그렇지. 그게 무슨 영문에서인지 우리를 습격해 오는 것이다.”

“…사태가 심각합니까?”

사쿠라이 마코토가 묻자 아베 신조 감독은 손으로 이마를 쓸었다.

“팀 멤버 4명이 죽었고 구단 측에 소유권이 있던 몇몇 치명적인 아이템들이 소실됐다. 그 때문에 프로는커녕 랭커로서의 자격을 유지할 수 없게 되어 버린 녀석들도 있어. 이게 심각한 사안이 아닌가?”

“….”

“‘썩은물’이라는 버그 몬스터는 한국 아마추어 리그의 넘버원 ‘고인물’의 카피캣이야. 처음 발견되었을 때도 수많은 이들을 공포로 몰아넣었지. 시간이 지난 지금은 얼마나 더 강해졌을까?”

“…납득하기가 어렵군요. 그런 놈이 왜 저희만 골라 사냥한다는 말입니까?”

사쿠라이 마코토의 질문에 아베 신조 감독 역시 난감하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설마…마동왕이 살아 있어서 복수를 하는 것이라고는…?”

“…말도 안 됩니다. 놈은 그때 ‘악마의 기름틀’ 속에서 죽었어요. 현재는 사망 패널티 때문에 접속할 수 없습니다. 이건 분명해요.”

“으으음. 그렇다면….”

한참을 고민하던 아베 신조 감독은 무언가 생각났다는 듯 고개를 들었다.

“혹시 앙신 ‘조디악’이라는 놈은 아닐까?”

“…앙신?”

“그래. 그놈 여전히 동양인 랭커들을 사냥하고 다닌다는데. 미친 인종차별주의자 같으니.”

엄밀히 말하자면 앙신 조디악은 한국인 랭커들만 찾아다니며 사냥을 하고 있었고 다른 국적의 피해자들은 어쩌다 휘말린 것뿐이지만…. 아베 신조 감독은 그런 자세한 사정까지는 알지 못하고 있었다.

“아무튼 여러모로 위험한 시기이니 한동안 게임 접속을 자제해.”

“…….”

“대답은?”

“…예에.”

사쿠라이 마코토는 마지못해 대답을 한 뒤 자리에서 돌아섰다.

하지만.

‘오늘 7시에 리젠되는 ‘부글부굴’의 ‘용암달팽이 부글부 씨’는 꼭 잡아야 한다고!’

어떤 경우에라도 양보할 수 없는 것은 있기 마련이다.

사쿠라이 마코토는 감독실을 나오자마자 늘 같이 다니던 재특회 1군 멤버들에게 전화를 걸었다.

가뭄 검사 이나다 도모미.

음공의 고수 야마타니 에리코.

수계 마법사 니시무라 슈헤이.

골렘술사 세토 히로유키.

하지만 그들 중 그의 전화를 제대로 받는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세토 히로유키가 몇 번의 통화 시도 끝에 연결이 되기는 했지만 힘없는 목소리로 ‘나 이제 게임 접을래. 소중한 아이템도 몇 개 잃어버렸고….’라는 대답만을 들었을 뿐이었다.

“젠장! 다들 뭐야! 근성이 없다고!”

사쿠라이 마코토는 짜증스럽게 투덜거리며 핸드폰을 덮었다.

뭐, 상관없다.

오늘 목표로 하는 레이드는 혼자서라도 꼭 해내기로 마음먹었으니까.

‘그딴 버그 몬스터 따위 하나도 안 무섭다.’

사쿠라이 마코토는 치밀어 오르는 오기로 이를 갈았다.

하지만 그는 기본적으로 냉철하고 머리 좋은 사내.

무턱대로 오기만 부리는 이는 아니었다.

‘나름대로 대비책을 짜야겠군.’

사쿠라이 마코토는 이 시점에서 오히려 역으로 ‘썩은물’을 사냥할 계획을 세웠다.

성공하기만 하면 팀의 사기를 단번에 끌어올릴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수많은 이들의 주목을 받을 수도 있을 것이다.

위기는 곧 만회의 찬스. 드라마틱한 역전의 기회다.

사쿠라이 마코토는 그렇게 생각했다.

*       *       *

<부글부 굴(窟)> -등급: B+

-항상 부글부글 끓는 소리가 들려오는 깊은 굴.

안쪽은 뜨거운 용암으로 가득 차 있다.

사쿠라이 마코토는 던전의 가장 심층부까지 진입했다.

그리고 결국 던전 최심층부에 군림하는 보스 몬스터를 단신으로 쓰러트리고야 말았다.

<용암달팽이 부글부 씨> -등급: B+ / 특성: 불, 암석, 지진, 유폭, 자폭

-서식지: 부글부 굴, 불타는 땅.

-크기: 20m.

-화강암으로 된 껍데기 속에 숨어 있는 달팽이.

부끄러움이 많아 낯을 심하게 가린다.

낯선 이를 만나게 되면 얼굴을 보이고 싶지 않은 마음에 체내에 쌓여 있는 초고온의 화쇄류 (火碎流)를 격렬하게 분사한다.

바위로 된 껍질 속에서 용암으로 된 덩어리가 꿀렁거린다.

쿵…

뜨거운 바디를 가진 달팽이는 대지 위에 그 거대한 몸뚱이를 뉘였다.

사쿠라이 마코토의 표정이 확 찡그러졌다.

“젠장! 오늘은 정말로 재수 옴 붙은 날이군.”

용암달팽이는 죽으면서 아무런 아이템도 떨구지 않았던 것이다.

속칭 ‘거지 몬스터’였다.

“…휴.”

사쿠라이 마코토는 보스 몬스터를 잡고 난 뒤 던전 가장 깊숙한 곳에 주저앉았다.

그는 레이드가 끝났음에도 불구하고 밖으로 나가지 않았다.

그 이유는 지금 이 던전이 현 시점에서 가장 안전한 곳이었기 때문이다.

사쿠라이 마코토는 비릿한 웃음을 지은 채 던전 저 너머를 쳐다보았다.

구불구불하게 이어진 용암동굴의 내부에는 온갖 종류의 함정들이 깔려 있었다.

밟으면 터지는 지뢰부터 종유석과 종유석 사이에 걸려 있는 와이어들은 마치 첩보영화의 방범 시스템을 연상케 했다.

“하하하, 어디 올 테면 와 봐라 버그 자식아. 네가 들어오는 즉시 나는 로그아웃해 버릴 거다. 아니면 함정들에 걸려 지칠 대로 지친 너를 역으로 죽일 수도 있겠지.”

사쿠라이 마코토는 던전 입구에 누군가 진입하면 바로 알아챌 수 있게끔 신호줄도 여러 개 설치해 놓은 상태였다.

누군가 던전에 진입하면 사쿠라이 마코토가 설치해 놓은 수많은 함정들이 차례차례 가동될 것이다.

사쿠라이 마코토는 간을 보고 있다가 상대방의 체력이 많이 소진되었다고 느끼면 반격에 나설 생각이었다.

뭐, 그러다가 잘 안 될 것 같으면 상대방이 함정밭에서 허우적대고 있을 때 미리 로그아웃 해 버리면 그만이니까.

“후후후, 머리 나쁜 인공지능은 나에게 안 되지.”

사쿠라이 마코토는 피식 웃고는 자리에 드러누웠다.

버그 몬스터가 정말 자기를 찾아올까 싶기도 했지만, 안 찾아와도 딱히 상관은 없다.

이곳 용암굴의 몬스터들은 꽤나 짭짤한 경험치를 주니 계속 죽치고 앉아 자리를 맡는 것도 좋은 일이다.

앞서 당했던 멤버들은 기습 사실을 모르고 당했던 것이고, 자신은 이미 적의 정체와 의도를 알고 있다.

던전 입구와 통로를 함정으로 도배해 놓고 자신은 던전 깊숙한 곳에 숨어 있으니 무서울 게 뭐가 있을까?

“…기왕이면 빨리 왔으면 좋겠네. 심심하지 않게 말이야. 하하하.”

사쿠라이 마코토는 태평하게 중얼거렸다.

하지만.

부글…

이내 귓가에 들려온 소리 하나가 그를 벌떡 일어나게 만들었다.

“음? 잘못 들었나?”

사쿠라이 마코토는 고개를 뒤로 틀었다.

그러자.

“우왓!?”

그는 화들짝 놀라 자리에서 일어나야 했다.

어느새 방금 전까지 누워 있었던 곳까지 용암이 범람하고 있었다.

조금만 늦게 일어났어도 머리카락이 죄다 불탈 뻔했다.

“뭐, 뭐야? 용암이 왜 여기까지…?”

사쿠라이 마코토는 어안이 벙벙한 표정으로 자리를 뒤로 옮겼다.

몇 미터 정도 뒤로 물러난 사쿠라이 마코토는 다시 자리를 깔고 앉았다.

“대체 뭐냐고. 용암의 수위가 올라오는 것은 지금껏 한 번도 겪지 못했는데.”

그는 다시 드러누웠고 또다시 생각에 잠겼다.

앞으로 펼쳐질 아시아 챔피언스 리틀리그에 대한 구상이었다.

…하지만.

“앗 뜨거!?”

사쿠라이 마코토는 또다시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야 했다.

또다시 용암이 머리 가까이 접근해 왔다.

부글부글부글부글…

아까 들었던 소리는 잘못 들었던 것이 아니었다.

용암은 격렬하게 끓어오르며 계속해서 덩치를 불리고 있었다.

용암과 대지가 만드는 선은 점점 더 사쿠라이 마코토 쪽으로 밀려오고 있었다.

마치 바닷가에서 밀물이 들어오는 것처럼 말이다.

“으으! 이게 무슨 일이야!”

사쿠라이 마코토는 재빨리 뒤돌아 달렸다.

이대로라면 용암의 밀물에 휩쓸리고 만다.

하지만.

이내 눈앞에 설치되어 있는 수많은 부비트랩들이 사쿠라이 마코토를 가로막았다.

던전에 들어올 당시 사쿠라이 마코토 본인이 직접 쳐 놨던 트랩들이었다.

“빌어먹을!”

사쿠라이 마코토는 입술을 깨물었다.

몇몇 함정은 설치 시 확률적으로 무조건 폭발하는 것이기에 해체 방법을 모른다.

해체할 수 있는 함정들도 대부분 손이 많이 가기에 시간을 요하는 것들이었다.

“으아아아아!”

사쿠라이 마코토는 별 수 없이 함정에 뛰어들었다.

몸으로 직접 해체하는 것이다.

뒤에는 뜨거운 용암이 범람하고 있으니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콰쾅! 퍼펑! 우지끈! 빠지지직!

돌, 전기, 폭발, 불벼락 등등…함정들이 온갖 공격을 쏟아 내는 동안, 사쿠라이 마코토는 비명을 지르며 계속 달리고 또 달린다.

본래라면 침입자가 겪어야 할 끔찍한 경험을 본인이 혼자 다 하고 있는 것이다. 그것도 본인의 손으로 직접 설치한 함정에 의해!

뿌린 대로 거둔다는 말이 이렇게 적절한 수가 없었다.

이윽고, 녹색의 HP바가 빨갛게 물들었다.

거의 빈사상태가 된 사쿠라이 마코토가 막 부글부 굴의 입구에 도착했을 때.

“곰방와.”

시커먼 차림새의 사내가 손을 흔들고 있는 것이 보였다.

얼굴이 검은 핏줄로 뒤덮여 있어 표정을 알 수는 없었지만 어쩐지 웃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썩은물.

바로 나다.

*       *       *

나는 고개를 들어 사쿠라이 마코토를 바라보았다.

‘곰방왔네?’

녀석이 생각보다 빨리 도착했다. 조금 더 괴롭혀 줄 생각이었는데.

한편, 나를 본 사쿠라이 마코토의 혈압은 팍 상승한다.

“이…이…칙쇼……!”

사쿠라이 마코토는 비틀거리는 걸음으로 나에게 다가왔다.

한 걸음, 두 걸음, 세 걸음….

하지만 그것이 한계였다.

사쿠라이 마코토는 네 걸음 째를 내딛지 못하고 앞으로 픽 고꾸라져 버렸다.

HP가 극도로 낮아져 이제 스스로의 힘으로 움직이지도 못할 정도까지 간 것이다.

치이이이익…

뒤로 흘러내린 용암이 사쿠라이 마코토의 발뒤꿈치를 태우기 시작했다.

“으아아아악!”

사쿠라이 마코토는 팔을 버둥거리며 땅을 기었다.

이대로 죽으면 아이템을 떨구게 된다는 강박관념 때문에 로그아웃도 하지 못했다.

치이이이이이익!

용암은 이내 그의 다리를 덮고 종아리까지 집어삼켰다.

그리고 그것도 모자라 엉덩이와 허리까지 타오른다.

살 타는 냄새. 끔찍하게 일그러진 표정.

나는 그것을 보고는 고개를 돌렸다.

쿵-

발을 구르자 부글부 굴의 폭발점이 자극된다.

쿠구구구…

부글부 굴은 더욱 더 활발히 화산활동을 전개하기 시작했다.

이 던전은 기본적으로 휴화산 지대이다.

따라서 지진 같은 자연재해류 광역기로 몇몇 폭발점을 자극하면 이런 식으로 용암 분출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예전에 프로리그에서도 이 전략으로 득 좀 봤었지.’

나는 굴 밖으로 넘쳐흐르는 용암들을 바라보았다.

“히이이이익! 살려 줘!”

사쿠라이 마코토는 결국 외마디 비명소리와 함께 용암에 파묻혀 버렸다.

…내가 손을 뻗어 놈을 용암 늪 밑에서 끄집어내 주지만 않았어도 분명 그렇게 되었을 것이다.

“흐억! 흐억! 헉! 커헉!”

내 손에 잡힌 사쿠라이 마코토는 공포에 질린 얼굴로 숨을 헐떡였다.

나는 놈에게 약간의 포션을 건네주었다.

쪼르륵…

사쿠라이 마코토는 포션을 마시고 HP를 조금 회복했다.

그리고는 덜덜 떨며 나를 올려다보았다.

“…사, 살려 주는 거야?”

그럴 리가.

나는 주먹으로 놈의 안면을 퍽 쳐 뭉갰다.

“게엑!”

두 손으로 얼굴을 부여잡고 데굴거리는 사쿠라이 마코토.

하지만 하반신이 죄다 용암에 타 버렸기 때문에 어디로 도망가지는 못했다.

마치 달팽이처럼 바닥을 엉금엉금 기는 것이 그가 고통을 표출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또르륵…

나는 그런 사쿠라이 마코토의 입에 또다시 약간의 포션 방울을 흘려 넣어 주었다.

“…….”

또다시 목숨을 강제로 연장당한 사쿠라이 마코토의 눈에 비로소 공포의 감정이 어리기 시작했다.

지금의 나는 몬스터 포지션이기 때문에 말은 할 수 없었지만, 속으로는 몇 번이고 외치고 있었다.

‘……너는 내가 책임지고 게임 접게 해 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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