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닳고닳은 뉴비-267화 (267/1,000)
  • 268화 살수(殺手) (4)

    니시무라 슈헤이.

    그는 건장한 체격에 전신이 근육으로 뒤덮여 있다.

    언뜻 보기에는 도끼 한 자루 들고 전장을 누빌 것 같은 야만전사지만, 사실 그의 직업은 마법사였다.

    강력한 수계 마법을 전공으로 하는 마법사.

    그는 파도를 일으키거나 물방울을 대포처럼 쏘아 내 적을 요격하는 스타일의 공격을 선호했다.

    그래서일까? 그는 주로 바다나 호수를 돌아다니며 무한대로 깔려 있는 물을 이용해서 사냥을 하곤 했다.

    바로 지금처럼 말이다.

    “하핫. 운이 좋군. 배가 딱 하나 남았다니. 하마타면 항해를 못 할 뻔했잖나.”

    니시무라 슈헤이는 프리마켓에서 산 배를 항구에 띄웠다.

    온통 검은색으로 만들어진 배.

    그는 오늘 이 배를 타고 부유섬을 공략할 생각이었다.

    “한국의 고인물인가 뭔가 하는 놈이 여기를 처음으로 방문했다지? 하여간 한국 놈들은 섬 하나는 기가 막히게 점령하는군. 남의 나라 섬을 자기네 땅이라고 우겨대는 것처럼 말이야.”

    니시무라 슈헤이는 낄낄 웃으며 배에 탔다.

    콰쾅!

    폭풍우가 쏟아지는 밤, 그는 노를 저어 바다로 나갔다.

    “자아, 부유섬을 최초로 발견한 놈은 한국인일지 몰라도 최초로 정복하는 것은 내가 될 것이다. 일본의 섬 장악력은 세계제이이이일-!”

    니시무라 슈헤이는 폭풍우를 향해 외치며 계속해서 노를 저었다.

    온 세상이 물 천지! 하늘도 비도 전부 물이다!

    든든한 배가 있는 이상 니시무라 슈헤이는 무적이나 다름없었다.

    …그때.

    촤아악!

    어디선가 물살이 갈라지는 소리가 들려온다.

    “……?”

    니시무라 슈헤이가 고개를 갸웃하며 시선을 돌린 곳에는 시커먼 차림새의 한 남자가 서 있었다.

    그것도 물 위에!

    콰르릉!

    번개가 쳐 주변 바다를 하얗게 밝혔지만 남자의 몸은 여전히 암흑처럼 검게 보였다.

    “……?”

    니시무라 슈헤이는 눈을 가늘게 뜨고 전방의 괴인을 살폈다.

    자세히 보니 남자는 물 위에 서 있는 것이 아니라 물 위에 솟아있는 검은 무언가 위에 서 있었다.

    그것은 한 마리의 커다란 뱀이었다.

    검은 뱀 위에 올라타 있는 검은 사람. 그것도 바다 한복판에서.

    “…불길한데.”

    니시무라 슈헤이는 인상을 찡그리며 마법서를 꺼내들었다.

    그리고는 눈앞에 있는 검은 남자를 향해 외쳤다.

    “어이! 죽고 싶지 않으면 물러나라!”

    하지만 상대방은 입을 다물고 아무런 반응도 없다.

    그러자 니시무라 슈헤이의 이마에 핏줄이 솟았다.

    “나를 상대로 바다에서 붙어 볼 셈인가. 무리 무리. 나는 수계 마법사다! 배도 소유하고 있지! 너 같은 건 금방 바닷속으로 가라앉아 버릴…읏!?”

    하지만, 니시무라 슈헤이의 말은 끝까지 이어지지 못했다.

    서 있던 자리가 갑자기 아래로 푹 꺼졌기 때문이다.

    “……?”

    휘청거리는 몸을 바로잡은 니시무라 슈헤이는 자신의 다리를 내려다보았다.

    물컹-

    다리가 온통 검은색으로 물들어 있었다.

    동시에 배의 바닥에 구멍이 나 바닷물이 퐁퐁 샘솟고 있는 것이 보였다.

    “뭐, 뭐야!?”

    니시무라 슈헤이는 황급히 고개를 들었다.

    그러자 검은 사람은 니시무라 슈헤이를 향해 두 손을 쭉 뻗었다.

    “溶ける溶ける溶ける溶ける溶ける溶ける溶ける….”

    그는 일정한 어조로 빠르게 같은 단어를 계속 내뱉고 있다.

    마치 저주를 거는 듯한 불길한 모양새.

    그러자 정말로 저주라도 걸린 것처럼 니시무라 슈헤이의 몸이 배 밑바닥으로 쑤욱 꺼졌다.

    “크헉!? 뭐야! 뭐냐고! 내 배가 녹고 있어! 유령선!?”

    그렇다.

    니시무라 슈헤이가 타고 있는 배는 바닷물과 빗물에 천천히 녹아내리고 있었다.

    저주에 걸린 것이 아니라면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광경!

    그리고 그것도 모자라, 배가 녹아내림에 따라 니시무라 슈헤이의 전신 역시도 시커멓게 물들어가고 있었다.

    배와 똑같은 검은색으로 말이다.

    “으아아아아아! 무서워! 뭐야! 이것 저주!? 쿠로이한 무언가가 나를 잠식…! …! …!”

    공포에 질려 발버둥치는 니시무라 슈헤이.

    그 순간, 지독한 검은빛이 그의 얼굴을 완전히 집어삼켜 버렸다.

    니시무라 슈헤이는 검은 저주에 잡아먹힌 채로 바다 한복판에서 사라졌다.

    흔적도 없이.

    그것은 니시무라 슈헤이가 타고 있던 배 역시도 마찬가지였다.

    …….

    근처 바다는 온통 시커멓게 물들어 있을 뿐이다.

    제아무리 물 속성 마법에 정통하다고 해도 폭풍우가 몰아치는 바다 한복판에서 배도 없이 생존할 수 있을 리는 없다.

    꼬르륵… 둥실-

    그가 죽으면서 떨어트린 아이템 몇 개가 바닷물 위로 떠오른다.

    대부분 고등급 마법서였다.

    한편.

    “…큭큭큭.”

    나는 쌍뿔칠흑의 머리 위에서 그 광경을 지켜보고 있었다.

    니시무라 슈헤이가 플리마켓에서 산 배는 내가 만든 배였다.

    애초에 배가 녹아내리고 니시무라 슈헤이의 몸이 암흑으로 물든 것은 저주 따위가 아니었다.

    나는 그저 아크레의 명물인 브레이브 제과점에서 산 초콜릿을 녹여 배를 만들었을 뿐이다.

    ‘일요일엔 내가 파티셰!’ 라는 일일 퀘스트를 완료하면 자기가 원하는 모양으로 초콜릿을 제작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

    나는 배 모양 초콜릿을 만들었고 그 크기를 아주 크게 키웠을 뿐 다른 흉계를 꾸미지는 않았다.

    그러니 내가 프리마켓에 내놓은 초콜릿을 멋대로 배로 착각해 사 버린 것은 전적으로 니시무라 슈헤이의 책임이다.

    ‘…뭐, 애초에 내가 다른 배들을 모두 사들여서 선택권을 박탈하긴 했지만 말이지.’

    초콜릿으로 만들어진 배는 바닷물에는 잘 녹지 않고 있다가 비가 내리는 순간부터 본격적으로 녹아내리기 시작했던 것이다.

    나는 거기에 대고 불길한 말을 중얼거려서 그것을 ‘저주’라는 이름의 포장지로 포장했을 뿐이고.

    “가끔 이런 복수도 좋네.”

    나는 바닷물 위로 점점 넓게 퍼지는 검은 초콜릿을 콕 찍어 맛보았다.

    달고 짭짤한 맛. 이것이 복수의 맛인가.

    ‘역시 단짠단짠이 진리인 것도 같고……’

    *       *       *

    뭍에 상륙하자마자 곧바로 움직여야 했다.

    앞서 암살당한 세 명이 서로 연락을 주고받을 시간도 없게끔 말이다.

    애초에 한국에서 난다긴다 하는 프로팀들조차 7~10분 안에 올킬하고 다닌 나다.

    그것도 힘을 숨겼을 때가 그 정도다.

    고인물+마동왕의 힘을 숨김없이 드러내고 있는 마당에 무서운 것이 있을 리가.

    나는 바람같이 움직여 서쪽에 있는 ‘무통증 협곡’으로 향했다.

    다음 타깃은 세토 히로유키.

    골렘을 조종해서 공격과 방어를 동시에 하는 마법사다.

    놈은 자신의 골렘과 야생 골렘을 격돌시킨 뒤 그 대전을 관람하는 것을 아주 좋아했다.

    아니나 다를까.

    쾅! 퍼펑! 우지지직!

    가장 요란한 소리가 나는 협곡을 찾아가자 한창 골렘 파이트에 열을 올리고 있는 세토 히로유키를 찾을 수 있었다.

    “죽여! 죽여라! 그렇지! 거기서 펀치다! 아이고! 내가 싸워도 그것보단 낫겠네! 뭐해! 킥! 킥! 킥 타이밍이잖아 이 바보야! 그렇지! 들어갔다!”

    두 골렘의 싸움을 보며 열을 올리는 세토 히로유키다.

    나는 조용히 그의 뒤로 다가간 뒤 손에 든 액체를 놈의 머리 위에 뿌렸다.

    철썩-

    내 손에서 날아간 젤을 맞은 세토 히로유키가 화들짝 놀라 비명을 질렀다.

    “뭐, 뭐야!?”

    나는 얼마든지 놈을 죽일 수 있었지만 굳이 그렇게 하지 않았다.

    한편.

    세토 히로유키는 자신의 몸에 끼얹어진 핑크색 액체를 보고 경악한다.

    “이, 이건 ‘진리의 물약’?”

    마시면 약 5분간 마법력이 증가하는 포션이다.

    나를 본 세토 히로유키는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으로 껄껄 웃었다.

    “뭐지? 이 귀한 물약을 나에게 주다니. 내 마력을 올려 줄 생각이었나?”

    마법사에게 진리의 물약을 주었으니 마력이 더욱 높아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

    […!]

    진리의 물약이 세토 히로유키의 몸이 끼얹어지는 순간, 계곡에서 싸우던 두 골렘이 고개를 돌려 이쪽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쿵쿵쿵쿵쿵!

    둔중한 굉음과 지진을 만들며 이쪽으로 몰려오기 시작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필드에 돌아다니던 수많은 야생 골렘들 역시도 이쪽을 향해 몰려오고 있다.

    골렘의 가슴팍에 새겨진 ‘EMATH’라는 글자들이 밝게 빛나고 있다.

    나는 그것을 내려다보며 생각했다.

    ‘골렘은 하수인답게 어지간한 외부 자극에는 반응하지 않지만…유일하게 진리의 물약만은 광적으로 좋아하지.’

    생각을 마친 나는 잽싸게 자리를 떴다.

    ‘어디 한번 그토록 좋아하는 골렘에 깔려 죽어 봐라.’

    아마 평생의 트라우마로 남을 것이다.

    “으아아아아아!”

    수많은 골렘들에게 둘러싸인 세토 히로유키, 이내 수많은 골렘들이 그의 몸 위를 덮쳐오기 시작했다.

    골렘 덮밥이다.

    토핑은 머드, 아이언, 스톤, 우드, 청동….

    나는 세토 히로유키가 수많은 골렘들의 무게에 깔려 죽는 것을 즐겁게 구경했다.

    이걸로 유세희를 쇠공 아래에 깔리게 한 복수는 완료했다.

    [우어어어어!]

    어그로가 튄 탓에 몇몇 골렘들이 나를 향해 몰려들었지만.

    우드드득-

    나는 씨어데불의 점액을 두르고 골렘과 골렘 사이의 좁은 틈과 균열, 구멍 사이를 비집고 빠져나왔다.

    ‘예전에는 일일이 해골달팽이의 젤을 준비해서 몸에 바르고 다녔었는데, 추억이군.’

    나는 골렘들 사이를 빠져나와 동쪽으로 향했다.

    이제 재특회의 보스 ‘사쿠라이 마코토’

    마지막 한 놈을 조지러 갈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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