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닳고닳은 뉴비-265화 (265/1,000)

266화 살수(殺手) (2)

“…….”

나는 침중한 안색으로 고개를 떨궜다.

무슨 할 말이 있으랴? 내 개인적인 사정 때문에 애꿎은 남이 휘말려들어 피해를 입었다.

그러자 옆에 있던 유다희가 내 어깨를 손으로 짚었다.

“…괜찮아요.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는데요 뭐.”

그 말에 나는 시선을 옆으로 돌렸다.

나와 유다희 옆에 있는 침대 위에는 유세희가 새근새근 잠들어 있었다.

쇠공이 구덩이를 덮치기 직전, 나는 ‘틈’ 특성으로 바닥에 뚫린 기름구멍으로 빠져나가 목숨을 부지할 수 있었다.

하지만 유다희와 유세희는 사망 로그아웃을 피하지 못했다.

때문에 유세희는 수술 전까지 그 좋아하는 게임을 할 수 없게 되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세희는 침울해하지 않았다.

오히려 이참에 잘됐다며 못 읽었던 책을 읽고 같은 반 친구들에게 편지를 쓰겠다며 씩씩한 모습을 보였다.

수술실로 옮겨 가기 직전, 나와 유세희는 짤막한 대화를 나눴다.

‘어쩌면 그게 제 마지막 플레이가 될지도 모르겠어요.’

‘그럴 리가. 너는 프로로 데뷔해서 수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으면서 게임을 하게 될 거야. 내가 보증하지.’

‘…저 같은 걸 프로선수로 써 줄 구단이 있을까요?’

‘당연히 있지. 수술만 성공해 봐라. 내가 구단을 만들어서라도 너 무조건 데뷔시킨다.’

내 호언장담을 들은 유세희는 힘없는 미소를 띤 채 잠들었다.

‘꼭 그렇게 되었으면 좋겠어요.’

그것이 그녀의 마지막 말이었다.

유세희는 깊이 잠들었고 이제 곧 수술실로 옮겨질 것이다.

나는 잠든 유세희의 얼굴을 바라보며 속으로 다짐했다.

‘그래. 꼭 그렇게 될 거다.’

막 수술실 저 너머로 유세희의 모습이 사라지는 순간.

우당탕!

병원 복도 반대편에서 시끄러운 소리가 들려온다.

고개를 돌리니 큰 키의 남자 하나가 이쪽으로 미친 듯이 달려오는 것이 보인다.

마치 물소 같은 기세, 나는 깜짝 놀라 옆으로 물러났다.

그는 마구 뛰어와 수술실 앞에 멈춰 섰다.

그리고 허리를 굽힌 채 참았던 숨을 몰아쉬었다.

“흐헉, 흐억. 망할. 늦어 버렸네.”

바로 유창이었다.

막내동생이 수술실로 들어가는 것을 보지 못한 그는 괜히 내 눈치를 본다.

“에잇! ‘큰형님’ 새끼가 차를 뺏어 가지만 않았어도.”

유창은 괜히 바닥을 한번 차면 툴툴거렸다.

그러자 옆에서 기운 없이 서 있던 유다희가 시무룩한 어조로 입을 열었다.

“미안해. 내가 그냥 그 사람이랑 만나 줄 걸 그랬나 봐.”

그러자 유창의 눈이 뒤집어졌다.

“뭐? X신아. 말 같은 말을 해라! 만나긴 누굴 만나 니가! 그딴 새끼를 왜 만나!?”

평소 누나 말이라면 한 수 접어주던 것과는 대조적인 태도였다.

유다희가 고개를 떨군 채 말이 없자 유창은 더욱 펄펄 뛴다.

“우리 아빠보다 나이 많은 놈이랑 만나서 뭘 한다고! 그렇게 해서 차 받고 건물 받으면 누가 좋아할 것 같냐?”

그러자 유다희가 풀 죽은 어조로 대답했다.

“아빠 얘기는 하지 말라니깐….”

“다 똑같은 놈들이야! ‘큰형님’ 새끼나 아빠나!”

“그래도 그 사람 아니면 우리 세희 병원비는 어떻게 하려고. 한두 푼 하는 줄 알아?”

“젠장. 채권 좀 더 땡겨 와서 일 늘리면 되지!”

“그러다 너도 죽어! 하루에 몇 시간을 일하는 거야! 사람들한테 욕먹어 가면서!”

“누가 너한테 돈 벌래!? 너는 그냥 하던 거나 열심히 해!”

“내가 너 그렇게 일하는 거 보면서 어떻게 게임하고 방송 하냐!”

유다희와 유창은 날카롭게 대립한다.

한참을 서로 날 세우던 중, 유다희가 먼저 싸움을 포기했다.

“…됐다 진짜. 내 주제에 무슨 하고 싶은 걸 하겠다고…그냥 흘러가는 대로 살아야지.”

그녀는 모든 것을 내려놓듯 말했다.

유다희가 막 바닥에 주저앉으려 할 때.

탁-

그녀를 떠받치는 손이 있었다.

바로 나다.

‘이거였나.’

나는 회귀 전, 그러니까 오래 전의 과거이자 미래를 떠올렸다.

언제부터였나, 나의 적극적인 대쉬에 천천히 마음을 열어 가던 그녀가 어느 날을 기점으로 태도를 싹 바꿨던 적이 있었다.

그때부터 그녀는 나를 본격적으로 이용해 먹기 시작했다.

그 시기가 얼추 이때쯤이었다.

‘아마 내 기억으로…유다희는 가족이 없다고 했었지. 분명 마음을 터놓을 사람도 하나 없었어.’

내가 기억하고 있는 미래가 정확하다면, 유세희는 끝끝내 병을 이겨 내지 못할 것이다.

그리고 이 사건을 분기점으로 유창과 유다희의 사이에도 깊은 골이 패이게 되겠지.

하지만 아마 이번에는 그때처럼은 안 될 것 같다.

“걱정 마라. 세희에게 맞는 골수도 찾았으니 문제될 건 없다.”

“…….”

“병원비라면 이미 내가 일괄결제 했어.”

그러자 내 말을 들은 유다희와 유창의 두 눈이 휘둥그레진다.

나는 그들이 무슨 말을 하기도 전에 먼저 말을 막았다.

“그래. 액수가 꽤 크더군. 하지만 공짜로 그냥 내준 것은 아니야. 나중에 세희가 건강해지면 프로 데뷔 계약금 조로 퉁 칠 거다.”

“하, 하지만…그것으로는 턱없이….”

“모자란 부분은 팬클럽 회원들이 보낸 후원금으로 충당했어.”

“그건 공적 자금이잖아요! 제 동생에게 쓸 수는…….”

“팬클럽 회원들이 모두 동의한 부분이야. 그동안 네가 운영을 잘 해 왔기에 가능했던 일이겠지.”

그렇다.

유다희는 그동안 살신성인해서 팬클럽을 이끌었다.

행사 때도 팬클럽 회장이나 고위 랭커로서 받는 특혜들을 모두 반납하고 일반 팬들과 똑같이 일반석에서 응원을 했다.

직위를 내세우거나 공금을 불투명하게 운영한 적도 한번 없었다.

고인물 척살령이 내려졌을 때도 투표에 의해서만 행동했으며, 필드보스를 만나는 등 위기의 순간에는 늘 길드원들을 위해 살신성인의 태도를 보였다.

그런 투명한 열혈 운영이 빛을 본 것이다.

마교에서 유다희의 동생이 아프다는 소식이 뜨자마자 수많은 이들이 골수를 기증하겠다며 나섰고 적합 판정을 받지 못한 이들은 후원금과 헌혈증을 잔뜩 보내왔으니까.

나는 가면 너머로 눈빛을 빛냈다.

“인풋 이상으로 아웃풋을 뽑아낼 자신이 있기에 투자하는 거야. 세희에게는 나중에 커서 뼈 빠지게 갚으라고 해. 아마 프로로 데뷔하면 연습량 때문에 곡소리 날 거다.”

그러자 유다희는 잠시 멍한 표정을 지었다.

이윽고.

“…….”

그녀의 표정이 확 변했다.

하지만 나는 그것이 어떤 표정인지 알 수 없었다.

유다희가 두 손으로 재빨리 얼굴을 가렸기 때문이다.

갈라진 손가락 틈 사이에서 그녀의 목소리가 조그맣게 새어나왔다.

“…고마워요.”

그것을 마지막으로 유다희는 내 옆을 호다닥 스쳐 지나가 화장실로 들어갔다.

나는 따라갈까 하다가 그만두었다.

지금은 혼자 두는 게 나을 것 같아서다.

“…….”

내가 자리에 선 채 말이 없자, 유창이 슬쩍 내 옆으로 다가왔다.

그는 나를 향해 구십 도로 머리를 숙였다.

“…고맙습니다, 형님.”

세상에 이 녀석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들을 줄이야.

내 복잡미묘한 표정이 가면 밖으로 드러나지 않아 참 다행이다.

유창, 아니 유창희는 선 자리에서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고개를 들어 내게 물었다.

“형님, 혹시 커피 한 잔 하실 수 있으십니까?”

하지만 나는 아무래도 그와는 불편하다.

조금 가까워지기는 했어도 커피 잔을 나눌 사이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지금은 급하게 할 일이 있어서. 뭔가 할 말이라도?”

내 말은 거짓말이 아니라 사실이었다.

나는 지금 무지하게 급한 일이 있다. 막 생긴 참이다.

내가 용건을 묻자, 유창희는 머뭇거리다가 나에게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누나가 그동안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말씀드리고 싶어서요.”

내가 말해 보라는 듯 가만히 서 있자 유창희는 주변을 몇 번이나 둘러본 뒤에 입을 열었다.

“어머니 얼굴은 기억도 안 나요. 언제나 누나가 어머니 대신이었죠.”

“…….”

“아버지는 조직폭력배였어요. 작은 조직의 하바리로 있으면서 언제나 전국구를 꿈꿨죠. 머저리 같이.”

“…….”

“그러다가 어느 날 갑자기 죽어 버렸어요. 그리고 아빠가 모셨던 ‘큰형님’이 우리의 후견인이 되겠답시고 나섰죠.”

그러고 보니 예전에 방송국에 가다가 유창희와 그 조직원들의 갈등을 본 적이 있다.

‘그게 이런 맥락에서 나온 대화였군.’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유창희는 담담한 목소리로 말을 이어나갔다.

“…그런데. 그 ‘큰형님’이란 놈이 좀 이상한 놈이었어요. 상납금을 못 낼 때마다 자꾸 저희 누나한테 찝적거리면서 만나 달라고….”

아니 잠깐. 아버지가 모셨던 분이라고 하지 않았나? 그럼 연배가 꽤 될 텐데….

나는 그제야 유다희가 전에 했던 말뜻을 알 수 있었다.

집도 차도 다 남이 준 것들이라고 했었던 그 말의 저의를.

‘그리고 동생의 병원비 역시도 문제였군.’

나는 회귀 전의 기억을 더듬었다.

확실히, 유다희는 나를 만나던 도중 어느 순간을 기점으로 태도가 싹 변했다.

당시의 나는 그것을 인지하지 못했지만 지금 냉정한 정신으로 회상해 보니 정말로 그렇다.

‘미안해. 오빠처럼 착하고 순진한 사람 없는 것 아는데. 그래서 더 어쩔 수가 없네. 나도 고민 많이 했어.’

‘대신에 나도 오빠 말고 평생 다른 남자 안 만날게. 미안. 정말 미안해.’

‘나, 나도 오빠한테만은 이렇게 하고 싶지 않았어! 다른 사람들 다 그렇다고 해도 오빠한테만은…!’

‘잘 살어. 나 같은 년한테 또 걸리지 말고.’

전에 내가 악몽아귀의 뱃속에서 들었던 유다희의 대사 역시도 시끄러운 야구장에서, 차 유리창이 열린 고속도로에서, 수영장 속에서, 잠들기 전 침대에서…. 언젠가 무의식중에 들었던 말들이 그대로 재현된 것이리라.

나는 고개 숙인 유창희에게 말했다.

“그 큰형님이라는 자가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불법적인 일에서는 손 떼는 게 좋을 거야.”

“…….”

“동생 병원비라면 아까도 말했지만 내가 전부 책임질 테니 걱정 말고. 정식 일자리도 줄 수 있어. …본인들이 원한다면 말이야.”

예전부터 캡슐방 사업을 염두에 두고 있기는 했다.

유창희와 유다희는 캡슐방을 운영했던 경험이 있으니 고용한다면 마침 딱 경력직이고 좋겠네.

내 말을 들은 유창희는 고개를 숙인 채 잠시 말이 없다.

그러더니 이내 푹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감사합니다, 형님. 심사숙고 해 보겠습니다.”

“…좋은 결정을 하길.”

내가 유창희를 등지고 막 뒤돌아서려는 순간.

그는 내 등에 대고 큰 소리로 외치며 고개를 숙였다.

“사장님! 들어가십쇼!”

……심사숙고 해 보겠다더니 결정이 너무 빠른데?

나는 연신 고개를 꾸벅 숙이는 유창에게 손을 한번 흔들어 준 뒤 병원 문을 나섰다.

커다란 회전문을 돌아 나오며, 나는 생각했다.

이제 아까 유창의 커피 약속을 거절했을 정도로 급한 일을 처리할 차례다.

‘……재특회. 그놈들이 주로 어디에서 사냥을 하더라?’

그것은 바로 유세희의 복수였다.

나는 당하고는 못 참는 타입.

피는 피로 되갚고 기름은 기름으로 되갚으리라.

게임을 플레이하는 유저인 이상 당연히 사냥을 하게 되어 있다.

내가 놈들의 정체를 아는 이상 찾아내는 것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일본 랭커들의 레벨과 그 레벨 구간에 맞는 사냥터들은 내가 죄다 꿰고 있으니까.

하지만 그 전에 앞서 준비해야할 것이 있었다.

재특회는 나를 암살할 당시에 복면으로 정체를 감췄었다.

물론 미래 지식을 알고 있는 나의 눈을 피할 수는 없었지만, 표면적으로만 보면 그들은 결백하다.

그렇기에, 재특회 멤버들을 찾아갈 나 역시도 변장을 좀 해야 할 필요성이 있었다.

괜히 마동왕이라는 이미지에 똥물을 튀기고 싶지 않다면 말이다.

나는 눈을 감았다.

생각해 보자.

내가 지금까지 만들어 온 캐릭터들을.

아마추어 리그의 절대자 ‘고인물’

프로리그 부동의 넘버원 ‘마동왕’

이 두 캐릭터가 지금의 나를 대표하고 있다.

하지만 둘 다 유명하고 또 나름대로의 정의가 있는 캐릭터였기에 함부로 사사로운 복수행을 나설 수는 없다.

…결국, 나는 하나의 결론에 이르렀다.

‘세 번째 캐릭터!’

일본 재특회를 쓸어버리기 위한 신 캐릭터의 등장이 절실한 순간이다.

잔인하고 사악하며 피도 눈물도 없는.

미치광이에 살인광, 흉악하고 이기적인 본성에 따라서만 날뛰는 빌런(Villain).

그리고 마침.

나는 그런 캐릭터 하나를 이미 알고 있었다.

내가 흉내 내기 딱 좋은, 그러면서도 절대 정체를 들킬 위험이 없는.

‘어디, 사칭 좀 해 볼까?’

한때 온갖 게임 커뮤니티를 뒤집어 놓았던 최악의 빌런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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