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닳고닳은 뉴비-264화 (264/1,000)
  • 265화 살수(殺手) (1)

    주변에서 들려오는 일본어.

    그것들은 데우스 엑스 마키나의 자동 통역 시스템에 의해 번역된다.

    [호호호, 죽을 곳으로 제 발로 기어 들어갔네.]

    [5:1이니까 일이 한결 편해지겠어.]

    [방심 마라. 상대는 무려 한국의 최강자야.]

    [언제 적 한국이야. 지금은 E스포츠 퇴물 국가잖아.]

    [아무튼 간에. 놈이 로그아웃하기 전에 빨리 덮치자고!]

    누가 봐도 뚜렷하게 느껴지는 악의(惡意)였다.

    이윽고.

    5명의 플레이어들이 구덩이 전 방향을 포위했다.

    그들을 마주하는 순간, 내 머릿속에는 엄재영 감독의 당부가 떠올랐다.

    ‘조심해. 혐한세력 애들이 한국 대표팀을 암살하겠다고 난리야. 특히 일본 넷우익 쪽이 심상치 않다더라. 어디에서 언제 살수들이 올지 몰라.’

    설마 설마 했는데 정말로 올 줄은 몰랐다.

    그것도 꽤 실력 있는 놈들이 말이다.

    ‘하필 이 타이밍에….’

    놈들의 비열함을 얕잡아 본 것이 패인.

    나는 유세희를 뒤로 숨겼다.

    그리고 눈앞에 있는 5명의 살수들을 바라보았다.

    그들은 검은 복면과 싸구려 망토로 몸을 가리고 있었지만 미래를 살아 본 나의 입장에서는 그들의 정체를 짐작하기가 어렵지 않다.

    ‘여자 둘에 남자 셋. 그리고 혐한 성향. 거기에 나를 암살하러 올 정도로 간덩이가 부은 놈들이라면 그놈들뿐이지.’

    재특회(滓蟘會).

    일본에서 꽤 유명한 프로팀.

    한국에 엄청난 혐오감을 가진 것으로 유명한 랭커 집단이다.

    심지어 같은 일본인들에게도 배척받는 극우 성향의 프로팀이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구단이 돌아가는 이유는 비슷한 성향의 다른 기업이나 시민단체에서 은밀한 기부금을 받고 있기 때문)

    “…….”

    나는 5인의 살수 중 리더 격으로 보이는 이를 주목했다.

    긴 장발에 몸의 절반만 가리고 있는 갑옷을 걸치고 손에 작은 칼을 든 사내.

    본명은 사쿠라이 마코토.

    ‘본업이 PK, 부업이 몬스터 사냥’이라는 우스갯소리를 들을 정도로 PK에 미쳐 있는 남자다.

    한 자루 발골도를 귀신같이 다루는 것으로 이름 높다.

    다른 녀석들 역시도 대강의 신상정보는 알고 있었다.

    참고로 이 중에 랭커가 아닌 이는 한 명도 없다.

    “…귀찮은 것들이.”

    나는 권태로운 표정을 지은 채 이들을 돌아보았다.

    하지만 겉모습과는 다르게 나는 상당히 긴장하고 있었다.

    혼자 있었다면 저런 머저리 다섯 마리쯤은 눈 깜짝할 사이에 죽여 버릴 수 있지만…문제는 유다희와 유세희다.

    그녀들 역시 상당한 수준의 전투력을 가지고 있기는 했지만 눈앞의 다섯에는 미치지 못한다.

    심지어 쪽수로도 밀리지 않는가?

    유다희는 심각한 표정으로 말했다.

    “이런…창이를 데려왔어야 했네요.”

    유세희 역시 이런 낯선 적의는 처음인지 겁먹은 표정이다.

    아무리 게임에 대한 천부적인 재능이 있다고 해도 이렇게 노골적이고 조직적인 살의에 노출된 적은 처음일 테니까 어쩔 수 없다.

    거기에 가장 큰 문제점은…….

    ‘쇠공이 내려올 때가 다 되었는데….’

    나는 이를 악물었다.

    <악마의 기름틀> -등급: B

    던전 특성 상, 곧 거대한 쇠공이 내려와 우리가 있는 공간을 납작하게 짓누를 것이다.

    “시간이 없다. 내가 포위망을 뚫지.”

    나는 유다희를 돌아본 뒤 말했다.

    그리고는 바로 움직였다.

    퍼펑!

    나는 자리를 박차고 뛰쳐나갔다.

    그리고 초장부터 100%의 힘으로 포위망 중 가장 약해 보이는 곳을 노렸다.

    …하지만 저들 역시 많은 준비를 해 온 모양이다.

    “막아.”

    사쿠라이 마코토가 지시를 내리자 여자 플레이어 하나가 등에 짊어지고 있던 검은 물체를 땅바닥에 내려놓았다.

    나는 그 아이템을 확인하는 순간 미간을 찌푸릴 수밖에 없었다.

    매혹의 코큐(胡弓).

    가야금처럼 생긴 일본의 전통 악기 코큐를 모티프로 만들어진 양손무기 아이템이다.

    저 아이템은 아주 귀찮은 특성을 가지고 있는데…….

    디리링-

    이윽고, 여자 플레이어가 손에 낀 특수한 손톱을 이용해 현을 뜯기 시작했다.

    동시에 나의 몸이 허공에서 확 흔들렸다.

    나는 그 자리에서 종잇장처럼 뒤로 튕겨 나갔다.

    뚜둥- 둥-

    코큐가 한 번 더 소리를 내자 나의 몸은 다시 앞으로 끌려갔다.

    ‘히끼이로’와 ‘오시데’

    각각 적을 밀어내고 당기는 특성.

    이 기술은 음공(音工)에 속하며 물리력이 아니라 특수력에 해당한다.

    예전에 김정은이 사용했던 언령마법과도 비슷한 느낌.

    하지만 나는 크라켄을 잡고 얻은 ‘고생물’ 특성 탓에 비교적 이런 특수능력의 지배 하에서는 자유롭다.

    화악!

    나는 들려오는 음악의 벽을 뚫고 커다란 손바닥을 쫙 뻗었다.

    “우왓!? 어떻게!?”

    코큐를 연주하던 여자 플레이어가 화들짝 놀라 뒤로 물러난다.

    하지만 사쿠라이 마코토를 비롯한 3인의 플레이어가 나를 막아섰다.

    3인의 합격술을 마주한 순간 내가 제일 먼저 한 생각은….

    ‘…하나는 어디 갔지?’

    나는 눈앞의 3인을 후려쳐 뒤로 날려 버렸다.

    재빨리 고개를 돌리자.

    “호호호. 뒤가 걱정돼서 싸울 수가 없나 봐?”

    긴 일본도를 든 여자 하나가 유세희를 향해 달려들고 있었다.

    “…젠장!”

    눈앞의 포위망을 뚫는 것에도 실패했고 유세희를 지키는 것에도 실패했다.

    황급히 뒤로 달려갔지만 시간이 너무 촉박했다.

    바로 그때.

    쩡-

    여자 살수의 일본도를 막아 내는 도끼가 있었다.

    “내 동생한테서 손 떼.”

    유다희였다.

    나는 유다희를 보고 탄성을 질렀다.

    ‘그러고 보니 유다희도 크라켄을 잡았었지!’

    그렇다.

    내가 크라켄을 잡을 때 유다희 역시도 어부지리로 특전을 받았었다.

    그때 그녀에게도 ‘고생물’ 특성이 주어졌던 것이다.

    쩌엉!

    유다희는 달려드는 암살자를 뒤로 밀어 버린 뒤 음공에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는 동생을 끌어안았다.

    “……쳇. 진짜 ‘그 놈’ 말이 맞았잖아.”

    유다희는 입술을 삐죽 내밀고 조그만 목소리로 투덜거렸다.

    오래 전, 크라켄을 쓰러트리고 난 당시 그녀는 쓸모없는 특성을 얻었다고 투덜거렸었다.

    ‘난 아무 쓸데없는 ‘고생물’ 특전밖에 못 얻었다고!’

    그때 상대방에 들었던 말이 있다.

    ‘…고생물 특성도 후반부에 가면 좋아. 그때가 되면 알게 될 거다.’

    고인물.

    그 밉살맞은 변태 놈이 했던 말이다.

    “제길! 진짜 다 그놈 말대로 되잖아! 얄미워 죽겠네!”

    유다희는 투덜거렸다.

    하지만 그 덕에 음공의 구속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었고 그 결과 동생의 목숨을 구했으니 아주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인정하고 싶지는 않겠지만 인정할 수밖에.

    하지만.

    음공을 막았다고 해서 상황이 좋아진 것은 아니었다.

    나와 유다희, 유세희를 중심으로 포위망이 굳어지기 시작했다.

    우드득… 뿌드득…

    바닥에서 골렘들이 일어나 벽을 만든다.

    촤아아악!

    어디선가 쏟아진 물이 골렘들로 만들어진 벽 안에 잔뜩 고여 들어 움직임을 느리게 만들었다.

    디리링- 도로롱-

    그리고 여전히 들려오는 귀찮은 음악 소리.

    [포기해라.]

    [호호호. 우리는 너희들을 죽일 생각이 없어. 그냥 거기서 못 나오게 할 뿐이지.]

    사쿠라이 마코토와 다른 여자 칼잡이 하나가 골렘의 머리 위에 서서 우리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쿠구구구국-

    이 순간에도 천장은 점점 내려온다.

    커다란 쇠공이 가까워질수록 나도 점점 초조해졌다.

    “비켜.”

    나는 두 손에 지진과 와류의 힘을 담아 내뻗었다.

    하지만.

    “안 되지.”

    남아 있는 4인의 살수들이 그런 나의 공격에 필사적으로 부딪쳐 왔다.

    콰쾅!

    힘 대 힘의 격돌.

    나를 막아선 4명의 표정이 급변했다.

    “우욱…뭐 이런 말도 안 되는….”

    “단신으로 이런 힘을 낸다고? 괴물인가!”

    “여기서 반드시 죽여 둬야 해! 이런 놈이 아챔에 출전했다간….”

    “조금만 버티자 제군들! 1분만 버티면 끝나!”

    놈들은 조금씩 밀려나면서도 투지를 잃지 않는다.

    “1분? 장래희망이 너무 과한걸. 네놈들은 10초도 못 버텨.”

    내가 본격적으로 놈들을 날려 버리려 할 때.

    “꺄아아악!”

    뒤에서 비명 소리가 들려왔다.

    고개를 돌리자 유세희가 비명을 지르고 있는 것이 보인다.

    그리고 그 앞에는 유다희가 비명 한 번 없이 입술을 꾹 깨물고 있었다.

    “…….”

    그녀의 심장을 관통하고 있는 것은 한 자루의 일본도.

    아까의 여자 칼잡이가 유다희의 몸에 칼을 꽂아 넣고 있는 채다.

    “호호호. 파트너의 집중력을 위해 비명을 참은 거야? 싱크로율이 높아서 고통이 심할 텐데 대단하네.”

    “…….”

    “하지만 어쩌나? 네 동생이 비명을 질러 버렸는데?”

    여자 칼잡이의 말이 끝나는 즉시, 4명의 살수들이 방향을 틀어 나를 공격해 왔다.

    “…이런!”

    나는 황급히 가드했지만 소용없었다.

    고인물 메타였다면 잽싸게 피했거나 아니면 일부러 맞아 주고 반사 데미지로 갚아 줬겠지만 마동왕 메타에는 그런 것이 없다.

    퍼퍼퍼퍽!

    나는 또다시 뒤로 물러날 수밖에 없다.

    데미지는 입지 않았지만 이제 정말 이 던전을 탈출할 길이 막혔다.

    쿠쿵!

    쇠공이 입구를 거의 다 막아 놓은 것이다.

    “그럼 우리는 이만.”

    사쿠라이 마코토는 나를 향해 윙크를 날려 보내고는 쇠공이 입구를 완전히 덮기 전에 그 틈으로 빠져나가 버렸다.

    나머지 4인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나타났을 때보다도 더욱 더 빠르고 신속하게 장내에서 사라졌다.

    “…….”

    나는 캄캄해진 공간을 둘러보았다.

    쇠공이 내려오고 있다.

    이제 정확히 16초 뒤면 여기 있는 모두가 짓눌려 죽고 말 것이다.

    “…세희야.”

    유다희는 꺼져 가는 눈으로 유세희를 끌어안았다.

    그녀는 계속해서 동생에 귀에 대고 속삭였다.

    “…언니가 미안해…지켜 주지 못해서…수술도 얼마 안 남았는데…접속불가 패널티라니….”

    그 말을 끝으로, 유다희는 완전히 쓰러졌다.

    사망 로그아웃이다.

    “…….”

    나는 이를 악물었다.

    유다희의 걱정대로, 유세희는 곧 중요한 수술을 받아야 할 몸이다.

    사망 패널티로 인한 접속불가.

    수술 때까지 유일한 낙이었던 게임을 즐길 수 없게 된 것은 둘째쳐도 다른 이들에게 테러에 가까운 집단 PK를 당해 죽었다는 것은 트라우마로도 남을 수 있었다.

    심지어 이런 끔찍한 최후라니!

    큰 수술을 앞두고 매우 좋지 않은, 불길한 상황이 아니던가!

    ‘…후우.’

    별 수 없는 일이다.

    나는 재빨리 유세희를 껴안았다.

    “세희야. 네가 살 수 있는 방법이 있다.”

    말을 함과 동시에, 나는 인벤토리에서 아이템 하나를 내밀었다.

    -<크라켄의 알껍질 귀걸이> 귀걸이 / S

    크라켄은 평생을 살며 단 하나의 작은 알을 낳는다.

    부화한 크라켄의 새끼는 평생토록 자신이 나온 알껍질을 소중히 보관한다고 한다.

    -이동속도 +300%

    -파괴불가 (특수)

    -특성 ‘틈’ 사용 가능 (특수)

    크라켄을 잡고 얻은 귀걸이.

    이것을 끼면 아무리 작은 구멍이라도 빠져나갈 수 있게 된다.

    나는 바닥 중앙에 있는 작은 틈을 가리켰다.

    기름이 빠져나가는 구멍이다.

    “이 귀걸이를 끼고 저곳으로 나가렴.”

    이렇게 된 이상 유세희라도 살려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죽어간 유다희의 얼굴을 마주볼 자신이 없었다.

    하지만.

    탁-

    유세희는 내 손을 도로 말았다.

    그리고는 회색 눈동자를 들어 나를 올려다보았다.

    “저는 괜찮아요.”

    “……!”

    “여기서 아저씨가 죽으면 저 나쁜 놈들의 계획대로 되는 거잖아요.”

    그 말이 맞다.

    내가 사망 패널티를 입어서 아시아 챔피언스 리그에 참가하는 데 조금이라도 지장이 간다면 그것이야말로 저놈들이 원하는 바겠지.

    내가 이를 악물고 말이 없자.

    “아저씨. 저는 진짜 괜찮아요. 수술도 다 받을 거예요.”

    “…….”

    “병원에서 봐요. 그럼 바이~”

    유세희는 나를 한번 꼭 껴안아 주고는 내가 뭐라 말할 새도 없이 그대로 로그아웃해 버렸다.

    “…….”

    나는 어둠 속에서 멍하니 선 채 바닥을 내려다본다.

    바닥에는 유다희와 유세희가 나란히 쓰러져 있었다.

    로그아웃한 뒤에도 몸은 한동안 게임 세상에 남아 있게 된다.

    때문에 위험한 상황에서 무작정 로그아웃한다고 해서 목숨을 건질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나는 유다희와 유세희의 몸을 한 곳에 얌전히 두었다.

    “……미안하다.”

    아무 상관없는 내 일에 관련되어 죽은 두 자매.

    나는 이번만큼은 유다희에게 미안한 마음으로 애도를 표했다. 유세희에게는 두말할 것도 없다.

    한편.

    나는 쇠공 너머로 사라진 5명의 암살자들을 떠올렸다.

    뿌득-

    이가 절로 갈린다.

    회귀 후 남에게 이런 굴욕을 당해 본 적은 이번이 처음.

    …하지만 계속 이만 갈고 있을 수는 없는 일이다.

    뚜둑!

    나는 크라켄의 귀걸이를 착용한 채 ‘틈’ 특성을 발현시켰다.

    그리고 바닥 중앙에 패인 손톱만 한 구멍으로 향했다.

    그리고 곧.

    쿠궁…

    쇠공이 구덩이 속을 꽉 채우며 주저앉는 소리가 들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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