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닳고닳은 뉴비-260화 (260/1,000)
  • 261화 왕관을 쓰려는 자, 그 무게를 견뎌라 (1)

    니아는 아이돌 E스포츠 선수권 대회에서 엄청난 성적으로 우승했다.

    때마침 나눠 준 도시락 때문에 수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었고 누구보다도 많은 주목을 받았다.

    심지어 수많은 연예인들과의 친분도 생겼다.

    아이대에 참가한 다른 연예인들 역시 일전에 니아가 걱정했던 대로 팬들을 생각하는 마음이 깊었다.

    안 그래도 모든 연예인들이 팬심을 인질로 잡혀 몇 시간 동안 감금되어 있는 팬들을 안타까워하던 차였는데 거기에 도시락마저 상해서 못 먹게 되자 그 미안함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던 것이다.

    “진짜 고맙다 얘들아. 너희들이 도시락을 통 크게 준비해 준 덕에 겨우 살았어.”

    “덕분에 우리 팬들도 도시락이랑 물 먹을 수 있었네. 진짜 고마워.”

    “우리도 팬들이랑 똑같은 것 먹으려고 했는데, 도시락이 상하는 바람에 쫄쫄 굶었거든. 너희들 덕에 배 채웠다.”

    아이돌 선배들이 니아에게 거듭 인사를 하며 우호적인 눈길을 보내왔다.

    고마운 마음도 있었지만 전략적인 선택이기도 했다.

    누가 뭐래도 오늘 아이대의 주인공은 니아였으니까.

    이참에 우호적인 관계를 구축해 놔서 나쁠 것이 전혀 없다.

    니아 입장에서도 업계 선배들과의 친목이 두터워지는 것이니 누이 좋고 매부 좋은 일이다.

    찰칵-

    수많은 아이돌들이 니아와 함께 사진을 찍어 SNS에 올려 주었다.

    #니아 #아이대 #우승 #신인 걸그룹 #흥해라 #도시락 은혜 쌩유 #보연이 부모님이 손수 만드심 #100%수제 #존맛탱ㅠㅠ #가까이서 보니 미친 비쥬얼 #선발대 입덕하라!

    이것으로 니아의 인지도는 일파만파 커져만 간다.

    “와하하하! 얘들아 다음에 오빠 콘서트 놀러와! 아니다! 출연 한번 해 줘라!”

    요즘 인기절정의 보이그룹 블랙아웃의 리더 한주민이 니아 멤버들을 향해 활짝 웃었다.

    크레파스의 광팬이었던 그는 탈덕한 뒤 새로 입덕할 곳을 찾은 모양이다.

    그게 끝이 아니었다.

    경기장에 모인 팬들은 하나의 소식으로 하나되어 부글부글 끓고 있었다.

    맨 처음에 니아의 팬으로 위장해 경기장에 들어왔다가 탈주한 10명에 대한 소식이었다.

    누가 찍었는지, 박보연이 혼자서 울음을 참고 있는 사진이 SNS에 올라오며 경기장에 들어와 있는 팬들 사이에 엄청난 공분이 일어난 것이다.

    “어떤 XX놈의 XX가 우리 보연이 울렸어!?”

    “인간적으로 진짜, 이 맛있는 도시락을 식어 가게 한 죄는 용서가 안 된다.”

    “도시락에 음료에 편지에 앨범에 사인에 애장품이면 완전 역조공 파티인데? 이걸 버리고 도망갔다고? 사람 새끼냐?”

    “진짜 무명 아이돌 울리는 쓰레기 놈일세. 색출해라!”

    경기장에 들어와 있는 400명의 팬들은 서로 엄격하게 신원을 확인한다.

    어떤 아이돌 그룹의 팬덤에 응모했고 어떤 루트로 이곳에 들어오게 되었는지 철저하게 검사하고 따져 가며 자정작용을 한 결과, 10명의 탈주닌자들이 성난 팬덤의 손에 붙잡혔다.

    될 놈은 되고 안 될 놈은 안 된다더니, 하필이면 그 10명은 모두 크레파스의 팬덤 진영에 섞여있었다.

    니아 팬으로 위장해 들어왔다가 크레파스의 응원석으로 도망가 버린 10명의 파렴치한들은 머리가 쥐어뜯기고 옷이 다 늘어나는 굴욕을 겪으며 경기장 아래로 끌려나왔다.

    “매달아라!”

    “돌로 쳐라!”

    “불에 태우자!”

    곳곳에서 과격한 목소리가 터져 나온다.

    하지만 이내 소동은 진정되었다.

    니아 멤버들이 달려 나와 10명의 탈주닌자들을 감싼 것이다.

    “진짜 좋아하는 아이돌이 있어서 무슨 수를 써서라도 직관 가고 싶은 마음은 이해해요.”

    “좋아하시는 아이돌을 응원하되 저희도 같이 응원해 주세요!”

    “여기 편지는 여러분들을 위해 쓴 거니까 받아 주시고요.”

    “아무리 그래도 다음부터는 이러시면 안 돼요? 저희 진짜 삐집니다!”

    니아 멤버들의 말을 들은 탈주닌자들은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싼 채 참회의 눈물을 흘렸다.

    그리고 그 모습은 또 다시 SNS상으로 화제가 되었다.

    -와;; 탈주닌자들을 용서해주네...인성...

    -멘탈갑 니아ㅋㅋㅋㅋ

    -저정도면 보살이다 보살

    -보살이 아니라 아수라 아님? 사두육비잖아

    -아수라보살로 하자 그럼

    -인성甲 멘탈甲 ㅇㅈ합니다

    -앞으로 니아 입덕한다~니아  하고 싶은 거 다해~ 막해~~ 막해도니아야~~

    .

    .

    거기에 박보연의 부모님이 한 눈물겨운 인터뷰까지 덧붙었다.

    어려운 가정 형편을 딛고 일어나 아이돌 활동을 하는 이야기, 오빠가 병으로 쓰러져 있는 이야기, 무명 시절의 굴욕 등등...

    동정도 정이라고 했던가?

    수많은 팬들이 박보연의 사연에 마음이 움직였다.

    그리고 니아 멤버들의 탄탄한 실력과 기본기, 팀워크, 인성은 그렇게 유입된 팬들의 발길을 붙잡아 놓기에 충분했다.

    니아에게는 생계형 아이돌, 나체의 군주, 아수라보살 등등 다양한 별명이 붙었다.

    하지만 뭐니뭐니 해도, 니아를 따라붙는 별명 중 가장 압도적인 1위는 바로…….

    *       *       *

    “…고인돌이라니. 걸그룹 별명이 이게 뭐람.”

    나는 집 침대에 누운 채 핸드폰을 보며 웃었다.

    얼마 전 있었던 아이돌 E스포츠 선수권 대회 이후, 니아에게는 ‘고인돌’이라는 별명이 따라붙고 있었다.

    ‘고인물+아이돌’의 합성어였다.

    “뭐, 아무튼 잘 돼서 다행이네.”

    나는 방금 전에 걸려왔던 임우람 매니저와의 통화내용을 떠올렸다.

    니아는 이번 아이대 일로 급격하게 위상이 달라졌다.

    마치 어느 순간을 기점으로 분수령이 갈린 것처럼, 그녀들은 쭉 승승장구하고 있다.

    요즘은 스케줄 때문에 눈코 뜰 새가 없단다.

    얼마 전에는 한창 인기절정의 아이돌 그룹 ‘블랙아웃’과 합동 콘서트까지 했다나?

    CF와 큼직큼직한 행사들도 마구 들어오는 듯하다.

    (이제는 더 이상 출연료를 고추장이나 오이로 받는 일은 없겠지?)

    니아에 관련된 뉴스에 달리는 댓글이라고는 온통 선플뿐이었다.

    -우리 소담언니 오늘도 십점 만점에 백만점이야...

    -보연이한테 누나라고 부르며 안기고 싶다...삼촌이 눈치없게 일찍 태어나 버렸네..ㅠㅠ

    -우가우가...나이는 숫자에 불과해...삼촌 문맹이야...숫자 못읽어..아 응애에요...

    -두나야 삼촌 손목 두꺼워서 수갑 차도 손 안시렵다...앨범만 내...이럴라고 내가 지금껏 적금부어서 만기 만들어놨지...

    -수지언니...공연때 카고바지 입고 나오세요...주머니마다 현금빵 해버릴라니까...

    -삼촌이 우리 니둥이들 좋아하지만 일상생활엔 지장 없어...물론 답도 없지...양심은 중동 갔다..

    .

    .

    “…아니 근데 왜 나한테는 악플이 계속 달리는 거야?”

    나는 핸드폰을 들여다보았다.

    내 유튜뷰 계정에도 계속해서 댓글 알람이 뜬다.

    -니아 옷 벗긴 게 당신이지ㅡㅡ?

    -으아아아!!!! 우리 니아 물들이지마!!!!노출증 환자야!!!

    -우리 니아 언니들은 너같은 변태랑 달라 아무튼 달라ㅠㅠㅠㅠ..

    -니둥이들한테 나쁜 물 들인 죄,,,잊지 않을겁니다,,,오마에,,,코로스,,,

    -죽여버릴거야죽여버릴거야죽여버릴거야죽여버릴거야죽여버릴거야죽여버릴...

    .

    .

    같이 벗었는데 이 온도차는 무엇이란 말인가.

    “아니, 왜 니아는 칭찬하고 나는 욕해?”

    나는 억울함을 담아 빽 소리쳤다.

    이거 한동안은 SNS 댓글 안 보는 게 낫겠다.

    바로 그때.

    위이이잉…

    핸드폰이 바로 진동했다.

    번호를 보니 모르는 번호다.

    “네, 누구세요?”

    전화를 받자, 핸드폰 저 너머에서 밝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뭐야, 사부 내 번호 없어요?]

    박보연이다.

    “아아, 번호 교환할 틈도 없었네. 맨날 온라인에서 붙어 있다시피 했으니까.”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제가 문자로 스케쥴이랑 메타 같은 거 질문도 하고 그랬는데! …그때부터 한 번도 저장을 안 했단 말야!?]

    “응 깜빡했어. 레이드 도느라.”

    […어휴, 사부답네요. 지금이라도 저장 좀 해 놔요.]

    진한 서운함이 느껴지는 목소리였다.

    박보연은 안 본 지 얼마나 됐다고 그새의 근황을 전해 오기 시작했다.

    [우리 이따가 침대 씨에프 찍으러 가요!]

    “침대? 웬 침대? 뜬금없네.”

    […옷을 안 입고 누운 듯한 편안함…이 컨셉이라나…아 이게 뭐에요! 완전 노출돌 다 됐어요!]

    “야, 침대는 양반이구만 뭘. 나는 브래지어 광고도 들어왔었어.”

    내 말을 들은 박보연은 뭐가 그리 웃긴지 깔깔 웃었다.

    ……아무래도 내 말을 농담이라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이후, 그녀는 그 이후로 한참 동안이나 묻지도 않은 근황들을 이야기했다.

    박소담이 그날 도시락을 너무 많이 먹어서 3kg이 쪘다든가, 배수지가 게임에 빠져 첫 수입을 모두 신형 캡슐을 사는 데 써 버렸다든가, 윤두나가 그간 벗고 다니는 것에 너무 익숙해진 나머지 밖에 알몸으로 외출할 뻔한 것을 자기가 겨우 막았다든가…….

    ‘…보연아, 우리 안 만난 지 이제 일주일 됐어.’

    뭐 근황을 들을 필요도 없을 것 같았지만 박보연의 수다는 끝이 날 줄을 모른다.

    임우람 씨에게 듣기로는 딱딱 필요한 말만 하는 성격이라고 들었는데…어째 듣기와는 좀 다른 듯하다.

    [앗!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됐네. 시간 너무 빠르다. 그쵸 사부?]

    “시간은 누구에게나 공평해.”

    [아, 뭐야! 아무튼 저 촬영 갔다올게요! 이따가 또 촬영 후기 얘기해 드림!]

    “이따가 레이드 돌아야 돼. 메시지로 남겨 놔. 한 번에 읽게.”

    [쳇, 성의 없네! 알았어요, 그럼 대신 칼답해요!]

    …지금까지 거의 1시간 가량 이야기를 들어줬는데 성의가 없다니?

    조금 울컥했지만 전화가 끊어지는 마당이니 웃으며 보내 주기로 했다.

    핸드폰을 내려놓고 캡슐로 향하려는 순간.

    위이이이잉-

    곧바로 전화가 걸려온다.

    메시지를 보니 박보연과 통화하는 1시간 동안 부재중 전화가 7통 와 있었다.

    6통은 엄재영 감독이고 1통은 유다희다.

    “…뭔 일이래?”

    나는 마동왕의 음성변조기를 찬 채 걸려온 전화를 받았다.

    이내 엄재영 감독의 흥분한 목소리가 들려온다.

    [아챔 일정 잡혔다리~~!!]

    “…뭡니까. 그 말투.”

    [요즘 애들은 이런 말투 쓴다리~~!!]

    회귀자의 입장에서는 15년이나 유행 지난 말투. 나는 손으로 이마를 짚었다.

    하지만 엄재영 감독의 말 자체는 흘려들을 수 없는 내용이다.

    아챔.

    ‘아시아 챔피언스 리그’의 줄임말.

    아시아 챔피언스 리그는 아시아 12개국이 모여 최강자를 겨루는 게임 대회이다.

    12개국이 각축전을 벌이는 ‘리틀리그’와 그 중 4개국의 최종 승리자들만이 진출하는 ‘빅리그’로 나뉘며 이 ‘빅리그’에 진출하는 것만으로도 어마무시한 영예를 얻을 수 있다.

    엄재영 감독은 엄격 근엄 냉철한 목소리로 말했다.

    [조금 있으면 선발전 열린다니까 회의 한번 하자. 형 진지하다.]

    “알겠어요. 이따가 한번 들릴게요.”

    [연습실 말고 집으로 와. 오늘 나 출근 안 했어.]

    “진짜 연봉 루팡…알겠어요. 이따 봬요.”

    나는 간결하게 할 말만 하고 전화를 끊었다.

    어차피 엄재영 감독은 이때쯤 해서 한번 만나려 했다.

    긴히 할 말이 있었기 때문이다.

    ‘오래 기다렸다.’

    오늘 할 말을 위해 그 얼마나 오랜 시간을 기다렸던가!

    나는 엄재영과의 저녁 약속을 계산하며 유다희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녀가 내게 전화를 해 온 것은 오랜만이었기에 용건이 궁금했다.

    […여보세요?]

    이내, 핸드폰 너머에서 유다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딘지 모르게 묘하게 기운이 없는 목소리.

    “전화했었던데.”

    나는 짤막하게 말했다.

    그러자 유다희는 짧게 침묵한 뒤 입을 열었다.

    [팬 관리 일로 여쭤볼 것이 하나 있어서요.]

    “팬 관리? 그건 너에게 일임했잖아. 뭐 문제라도?”

    […전화로 말씀드리기가 조금 어려운 문제이긴 한데. 혹시 저녁에 시간 괜찮으실까요?]

    평소대로였다면 엄재영 감독과의 선약이 있었기에 거절했겠지만, 오늘의 유다희는 뭔가 이상하다.

    “음. 조금 늦게라도 괜찮다면.”

    […알겠어요. 언제든 시간 괜찮으실 때 연락 주세요. 바로 나갈 수 있게 준비하고 있을게요.]

    전화는 그렇게 힘없이 끊어졌다.

    “…뭔가 찜찜한데?”

    나는 유다희의 목소리에서 무언가를 느꼈다.

    그것은 불길함이나 두려움과는 거리가 먼 것, 굳이 따지자면 슬픔에 가까운 감정이었다.

    “나중에 생각하지 뭐.”

    나는 고개를 저으며 자리를 털었다.

    아무튼 지금 중요한 것은 엄재영과 나눌 대화였다.

    아시아 챔피언스 리그, 그 빛나는 길로 첫 발을 내딛을 준비를 해야 할 테니까.

    이제 세계가 내 무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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