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닳고닳은 뉴비-259화 (259/1,000)
  • 260화 아이돌 벗기기 (6)

    한편. 경기장 밖의 분위기는 미묘했다.

    특히나 크레파스 팬들이 앉아 있는 관중석의 분위기가 특히 그랬다.

    아니, 미묘하다기 보다는 싸하다는 표현이 더욱 적절할 것이다.

    “…인성 좀 깬다.”

    “저런 성격이었어?”

    “와, 이건 쉴드치기가 좀…….”

    “찌라시들이 다 사실이었나 보네.”

    크레파스에 대한 팬들의 여론은 점점 나쁜 쪽으로 흘러가고 있었다.

    사실 ‘배틀로얄 그라운드제로’의 대회 형식상 이연지의 행동이 그리 잘못된 점은 없었다.

    원래 ‘배그’ 자체가 다수의 플레이어들이 무슨 짓을 벌여서라도 살아남는다는 콘셉트의 시합이었으니까.

    하지만 그 플레이어들이 아이돌일 경우에는 조금 다르다.

    프로 선수들이 배그를 할 때에는 인성질을 하든 정치질을 하든 살아남아 이기기만 하면 그만이다.

    하지만 아이돌일 경우, 사람들은 도덕적으로도 완벽한 것을 기대한다.

    재밌어야 할 뿐만 아니라 보기 좋아야 하고 윤리적으로도 문제될 것이 없어야 한다.

    어찌 보면 정치인보다도 더욱 엄격한 잣대를 강요받는 것이 연예인 아닌가.

    때문에 이연지가 니아를 몰아세우기 위해 정치질과 선동으로 세력을 조직하는 것은 팬들이 보기에 그리 좋아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이연지가 반칙을 했을 때부터 본격적으로 여론화되기 시작했다.

    “뭐 하는 거야! 규격 외 무기를 왜 꺼내!”

    “…우우우! 반칙왕 이연지!”

    “우와, 저건 진짜 아니지! 크레파스 멤버들 다 내보내라!”

    “니아 파이팅!”

    그동안 펼쳐졌던 눈살 찌푸려지는 광경에도 불구하고 크레파스를 응원하던 이들마저 모두 돌아서 버렸다.

    동시에 반대급부로 니아를 응원하는 이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비록 니아가 사두팔비의 요괴로 변해 버렸지만 그것이 버그임을 아는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

    대부분 망토의 특수능력이겠거니 하고 넘어갈 뿐이다.

    그리고 이내, 크레파스의 마지막 생존자 이연지와 니아 멤버들이 한 곳에서 격돌했다.

    자욱하게 피어오르는 흙구름 사이로 이내 한 개의 실루엣만이 선명하게 드러난다.

    머리 하나, 팔 두 개, 다리 두 개.

    전용진 캐스터가 외쳤다.

    [아앗! 일어났습니다! 지금 최후의 생존자가 일어났어요! 그 정체는…바로 니아의 박보연 선수입니다!]

    이변은 없다.

    바닥에는 이연지가 눈을 까뒤집고 쓰러져 있었다.

    사망 로그아웃이 명백하다.

    한편 합체가 풀린 다른 니아 멤버들 역시 빈사상태로 바닥에 주저앉아 있는 것이 보인다.

    니아 멤버 4인 전원생존.

    아이돌 E스포츠 선수권대회의 최종 우승팀이 정해지는 순간이었다.

    “와아아아! 잘 싸웠다 니아!”

    “예쁘다! 게임 잘한다!”

    “팬 됐어요! 언니들!”

    곳곳에서 환호성 소리가 요란했다.

    평소 니아의 인지도라면 상상도 하지 못했을 규모의 응원이다.

    게임 접속이 해제된 이후, 니아는 무대 중앙으로 걸어와 팬들의 앞에 섰다.

    전용진 캐스터가 짓궂은 표정으로 마이크를 들었다.

    “세상에, 저는 지금 몹시 당황스럽네요. 이런 말씀 드리기는 조금 죄송하지만, 뭐 이미 우승하신 뒤니까 드리는 말씀입니다. 하하, 사실 니아가 우승할 것이라고는 전혀 생각 못 했거든요.”

    “……저희도 사실 기대 이상의 성적을 거둬서 몹시 놀라고 있는 중입니다.”

    그 말을 박보연이 재치 있게 받아쳤다.

    전용진은 그 뒤로 니아를 간략하게 소개한 뒤 이런저런 치하 멘트를 날렸다.

    마지막으로, 그는 니아 멤버들에게 물었다.

    “솔직히 이번 대회에서 가장 파격적이고 인상적인 플레이를 하셨는데, 여자로서, 아이돌로서 부담이 된다거나 뭐 그런 점은 없으셨나요? 아! 대답하기 곤란하시면 안 하셔도 됩니다. 방송에는 편집되어서 나갈 거예요.”

    전용진 캐스터가 조심스럽게 묻는 질문이다.

    니아의 리더이자 대표인 박보연이 별것 아니라는 듯 대답했다.

    “대답하기 곤란할 게 뭐 있겠어요.”

    “앗 그런가요? 아무래도 여자이시고 또 아이돌이시니…….”

    전용진 캐스터가 머뭇거리자 박보연은 씩 웃었다.

    “저는 여자도 아니고 아이돌도 아니에요. 그냥 한 사람의 게이머일 뿐이죠.”

    “아아…….”

    “그러니 오늘은 여자가 옷을 벗은 것도 아니고 아이돌이 노출을 한 것도 아니죠. 그냥 게이머가 장비를 벗은 겁니다.”

    그 상태에서 박보연은 팬들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장비를 벗은 게이머는 뭐다?”

    그러자, 팬들은 약속이라도 한 듯 외쳤다.

    “고인물!”

    환호하는 이들은 대부분 게임에 익숙한 팬들.

    그리고 게임에 대해 잘 모르는 이들 역시도 박수를 쳤다.

    니아의 태도가 워낙에 당당했고 또 멋있었기 때문이다.

    왜 그런 말이 있지 않은가.

    ‘병X 같지만 멋있어.’

    당당하기만 하면 쪽팔림은 남의 몫이라는 말도 있다.

    니아가 밝힌 당당한 우승소감은 모든 이들의 감탄을 자아내는 것이었다.

    외설적이라거나 천박하다기 보다는 어딘가 숭고한 느낌마저 들었다.

    거기에 게임을 사랑하는 팬들은 니아의 진정성 있는 발언에 큰 감동을 받았다.

    아이돌이 아닌 한 사람의 게이머로서 이 대회에 참여했다는 말은 많은 게이머들의 가슴을 두드렸던 것이다.

    그리고 그때쯤 해서, 몇몇 이들이 니아를 본격적으로 응원하기 시작했다.

    “여자 고인물 니아 만세!”

    “아이돌 고인물 니아 최고!”

    “고인물 사총사 님! 여기 좀 봐주세요!”

    삼촌, 소녀들로 이루어진 팬덤이 생겨났다.

    그러자 그것은 마치 비탈길을 굴러 내려오는 눈덩이처럼 점점 불어나기 시작했다.

    수많은 사람들이 니아를 응원하고 있었다.

    “…….”

    “…….”

    “…….”

    “…….”

    네 명의 니아 멤버들은 그 환호를 받으며 어쩔 줄 모르고 서 있었다.

    평생에 이래 본 적이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결국 리더인 박보연이 왈칵 울음을 터트리자.

    “울지 마! 울지 마! 울지 마!”

    곳곳에서 팬들이 더욱 더 환호한다.

    대회에서 우승을 했으니 방송 분량이야 따 놓은 당상, 거기에 수많은 팬들의 마음까지 움직였다.

    전부 다른 아이돌 그룹을 응원하러 이 자리에 온 이들이었지만 지금 이 순간만큼은 니아의 진성 열혈팬이었다.

    그때.

    또 하나의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 일어났다.

    “으, 이거 뭐야. 반찬 상한 것 같은데? 먹지 말아 봐.”

    “나물 쉬었다. 시큼한 것 봐.”

    “웩! 이게 뭐야. 더워서 그런가? 도시락이 다 맛 갔어!”

    “어? 내꺼는 괜찮은데? 그래도 불안해지네.”

    관중석 곳곳에서 불평이 터져 나오고 있었다.

    더운 날씨 때문일까? 배달되어 온 도시락들에 뭔가 문제가 있었던 모양이다.

    불평은 한두 곳이 아니라 여러 군데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들려오고 있었다.

    안 좋은 일은 한꺼번에 온다던가?

    제일 많은 웅성거림이 들려오는 쪽은 크레파스의 팬덤이 있는 방향이었다.

    “…그, 그럴 리가! 7천 원이 넘는 도시락인데?”

    크레파스의 리더 이연지가 황급히 무대 밖으로 뛰어나왔다.

    그녀는 황급히 젓가락으로 도시락을 몇 번 휘저어 보았다.

    과연 맛을 보니 반찬의 상태가 이상하긴 하다.

    “매니저님! 이게 어떻게 된 거예요!”

    이연지가 소리치자 MS타운의 매니저는 머리를 긁적였다.

    “이게 이럴 리가 없는데 왜 이러지? 아이스팩에 닿지 않은 부분에 있는 것들만 좀 변질됐나 봐요. 아이 씨, 사장님이 단가를 무조건 깎기만 해서 그런가 정작 포장을 개떡같이 해 놨네. 사장님이 굶어 죽고 싶지 않으면 닥치고 만들라고 윽박질렀거든요. 하, 이런 식으로 뒤통수를 치네.”

    “어쩔 거예요, 이거! 팬들이 먹고 식중독이라도 걸리면 얼마나 귀찮아지는데! 걔네 지들 처먹을 거 엄청 신경 쓰잖아요!”

    “에이, 저거 다 안티들이 엄살 부리는 겁니다. 제가 금방 가서 조용히 시키….”

    그때, 매니저가 말을 뚝 멈췄다.

    마이크 ON.

    게임에 진 충격 때문일까?

    이연지는 자기 목에 걸려 있는 마이크의 전원을 끄는 것을 깜빡한 것이다.

    무대 뒤에서 벌어지는 그들의 대화는 그대로 관중석에 흘러나오고 있었다.

    팬들이 식중독에 걸리는 문제를 ‘귀찮은 것’으로 치부하는 이연지와 도시락이 상했다고 하는 이들을 ‘안티팬’으로 규정하는 매니저라니.

    크레파스 팬들은 이 대화를 듣고 충격을 받아 할 말을 잃어버렸다.

    바로 그때.

    “어이! 보연아!”

    저 멀리서 박보연을 부르는 외침.

    무대 위에서 고개를 두리번거리던 박보연은 이내 두 눈을 크게 떴다.

    “어? 사부!?”

    경기를 끝내고 나오니 어디론가 사라졌던 사부.

    고인물. 바로 나다.

    나는 지금 임우람 매니저와 함께 벤을 몰고 경기장 아래로 들어오고 있었다.

    지이이잉-

    나는 창문을 열고 확성기를 들었다.

    [아아, 여기는 니아 팬클럽 ‘이볼레인’입니다. 원래 오시기로 한 팬 분들이 다수 참석하지 않으셔서 도시락이 남으니 받아 가실 분들은 받아 가시기 바랍니다. 참고로 방금 공수해 온 ‘신선한’ 도시락입니다.]

    벤의 문이 열리자, 그 안에 아이스박스 안에 차곡차곡 포장되어 있는 도시락 팩들이 보인다.

    리드선과 전자렌지 역시도 몇 대씩 구비되어 있었다.

    모든 사람들의 시선이 쏠리는 가운데 니아 멤버들이 벤을 향해 뛰어왔다.

    박보연은 놀란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사부! 어떻게 된 거예요!”

    나는 뭘 그런 걸 묻느냐는 듯 심드렁하게 대답했다.

    “어차피 우승은 니아 아니냐. 중간에 나가서 ‘우승 턱’ 준비했지.”

    그러자 박보연, 박소담, 배수지, 윤두나의 눈시울이 발갛게 물들었다.

    그간 고생했던 기억, 사부의 무한한 신뢰, 값진 결과 등등을 떠올리자 가슴이 벅차오른 것이다.

    한편. 박보연은 떨리는 목소리를 감추기 위해 일부러 톡 쏘아붙였다.

    “…뭐야! 우리 싸우는 거 보지도 않고! 사부면서! 끝까지 책임졌어야죠!”

    그러자, 벤 뒤에서 두 명의 인영이 툭 튀어나왔다.

    “걱정 마렴, 딸램. 핸드폰으로 다 보고 있었으니까!”

    “아휴, 우리 딸, 참 변태 같고 예쁘다! 엄마는 너 애기 때 생각나드라! 얼마나 기저귀를 차기 싫어하는지 맨날 울고불고…”

    바로 박보연의 부모님들이었다!

    나는 깜짝 놀라 멍한 표정을 짓고 있는 박보연에게  말했다.

    “참고로 어제 밤에 너 자고 난 뒤부터 부모님들이랑 나랑 셋이 계속 준비했지.”

    확신이 없으면 불가능한 미래예지였다.

    너무 예상외의 상황에 멍해져 버린 니아 멤버들의 뒤로, 수많은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들었다.

    “저희 도시락 상해서 버렸는데, 혹시 도시락 남는 것 있으시면 하나만 주실 수 있나요?”

    “흑흑, 도시락 남으면 한 개만 주시면 안 될까요. 저희 오늘 한 끼도 못 먹어서…….”

    “도시락 안 주셔도 되니까 생수라도 한 병만…….”

    오랜 시간 동안 감금되어 있는 통에 배고프고 목마르고 심심해진 팬들이었다.

    그러자 벤에서 나온 박보연의 아버님이 껄껄 웃었다.

    “와하하! 저 보연이 애비 되는 사람입니다! 도시락 엄청 많이 만들었으니 다 가져다 드십쇼!”

    확실히 벤에는 수백 명이 먹고도 남을 만큼의 도시락이 있었다.

    전부 다 만든 지 10시간 내외의 신선한 음식들이다.

    박보연은 깜짝 놀라 아버지한테 물었다.

    “아빠! 이 많은 걸 어떻게 다 만들었어!?”

    “딸램아, 아빠가 취사병 출신이라고 했잖냐! 수백 명 정도야 껌이지!”

    아버님은 삽으로 착각할 만큼 커다란 주걱을 어깨에 기대 놓은 채 껄껄 웃으신다.

    한편.

    “제 제자들입니다. 많이 사랑해 주세요.”

    나는 팬 하나하나에게 도시락을 나눠주며 신신당부한다.

    “고인물 님이다!”

    “고인물 님 사인 좀 해 주세요!”

    “저 오늘부터 니아 팬 될게요!”

    “와! 고인물이 이제는 5명이네!”

    이중에는 내 팬들도 상당수 있었다.

    그 외에도 수많은 사람들이 몰려든다.

    경기장의 수용 인원은 400명가량이었는데 얼추 300명이 넘는 사람들이 와서 도시락을 받아 갔다.

    니아 멤버들은 행복에 겨워 비명을 질러야 했다.

    “사인 한 분, 한 분 다 해 드릴게요! 밀지 않으셔도 돼요!”

    “사진이요? 그럼요! 얼마든지요!”

    “편지도 드리고 싶은데 아쉽네요, 다음에는 꼭 써 드릴게요!”

    “앗 앨범이요? 여기서 드리는 건 돈 안 주셔도 돼요! 그냥 가져가세요!”

    니아 멤버들은 팬들 한 명 한 명 아이컨택을 하며 도시락과 물, 기념품 등을 나눠 주었다.

    그때.

    “…어?”

    도시락과 사인을 나눠 주던 박보연은 멈칫해야 했다.

    “…음?”

    전자렌지 코드를 리드선에 연결하던 나도 깜짝 놀라 고개를 들었다.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이변이 하나 더 일어났다.

    “너네 게임 진짜 잘하더라.”

    블랙아웃의 한주민이 쑥스러운 표정으로 다가온 것이다.

    그리고 그 뒤에는 대회에 참가했던 수많은 아이돌들이 머쓱한 표정을 지은 채 웃고 있었다.

    “…근데 우리도 도시락 조금만 나눠 주면 안 될까?”

    아까 다구리에 참가하지 않았던 아이돌들이다.

    연예인에게 연예인 팬이 생기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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