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3화 거꾸로 흐르는 비 (6)
그 뒤로 거의 한 달 남짓이 흘렀다.
부우웅-
나는 차를 몰고 한적한 도로를 달리고 있었다.
차창 구석으로 빠르게 사라져가는 가로수들.
구름 한 점 없는 맑은 날, 차 한 대 없는 도로.
한참 정면에 집중하고 있을 때.
지이이잉…
핸드폰이 울리기 시작했다.
나는 차를 잠시 갓길에 대고 비상등을 켰다.
“착한 어린이들은 운전 중에 전화하면 안 돼요.”
왜냐하면 운전은 나만 잘한다고 되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전화를 하다 보면 달려드는 차나 보행자를 피하지 못할 위험이 있기에 그렇다.
뭐 아무튼.
전화는 니아의 매니저 임우람 씨에게서 온 거였다.
“여보세요?”
내가 전화를 받자 임우람 씨의 걱정스러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 네. 어진 씨. 간만에 연락드려요.]
“뭘 간만이에요. 어제 자정까지 같이 레이드 돌아 놓고.”
[아하하하, 네 뭐. 전화로 연락드리는 건 간만이라서.]
그는 약간 주저하던 끝에 물었다.
[…저, 근데 혹시 오늘 보연이랑 약속 있으신가요?]
“네.”
그렇다.
나는 별 생각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오늘 내가 차를 몰고 집 밖으로 나온 이유는 바로 박보연과 만나기 위해서이다.
뭐 연예인과 밖에서 사적으로 만난다고는 해도 니아는 아직 무명 걸그룹이고 박보연 역시 인지도가 거의 바닥인 상태이기에 별로 부담도 없었다.
하지만 매니저의 입장은 또 그게 아닌가 보다.
[아무쪼록 스캔들 안 나게…기자들 주의해 주시고요…꼭 좀 부탁드립니다.]
“네네. 알겠습니다. 너무 걱정 마셔요. 잘 보살피다가 저녁 시간 맞춰서 집에 데려다 놓을게요.”
[아휴, 감사합니다, 어진 씨. 그런데 가끔 보면 삼십 대 중후반 같으세요. 하하하.]
“속 늙어 보인다는 말을 많이 듣죠.”
[아하하하하. 아 참. 그런데 되게 신기하네요.]
임우람 매니저는 문득 생각났다는 듯 입을 열었다.
[보연이가 쾌활해 보이기는 해도 사실 엄청 내성적이라서 남한테 곁을 잘 안 내주거든요.]
“그런가요?”
[네. 저도 사적인 대화를 나누기까지 한 2년 걸렸던가?]
“…그건 너무 오래 걸렸는데요?”
[와핫하하하! 그럴 수도 있겠네요! 아무튼 보연이랑 그렇게 빨리 친해지시니 신기합니다. 역시 잘생긴 게 최고인건가?]
나와 임우람 매니저는 몇 번인가의 농담 따먹기를 주고받은 뒤 전화를 끊었다.
“…이게 빨리 친해진 건가?”
나는 고개를 갸웃했다.
하긴.
훈련 막바지에 이르렀을 때 박보연이 밖에서 만남을 제안한 것은 다소 뜻밖이긴 했다.
그동안 고생한 기념으로 밥 한 끼를 꼭 사고 싶다나?
“뭐 수련회 같은데 가면 꼭 있지. 무뚝뚝하던 교관들이 마지막 날 활짝 웃어 주면 갑자기 울음을 터트리는 애들.”
고생을 함께 할 때는 모르다가 막바지에 정이 확 들어 버리는 케이스.
비슷한 예로 군대 훈련소에 입소한 뒤 수료식 마치고 헤어질 때 우는 친구들이 있다.
“뭐, 피교육자랑 유대감이 깊어져서 나쁠 건 없지.”
나는 핸드폰을 조수석에 던져 놓고는 차를 몰아 약속 장소로 향했다.
후두둑- 후두둑-
빗방울이 천천히 떨어지고 있었다.
* * *
박보연을 만났을 때는 한창 소나기가 퍼부어지고 있을 무렵이었다.
쏴아아아아아…
쏟아지는 빗줄기 사이로 헐레벌떡 뛰어온 박보연이 내 차의 조수석 문을 열었다.
덜컹-
“대박! 사부, 차 완전 좋은 거 타고 다니시네요? 우리 대표님 차보다 좋은 듯!”
그녀가 조수석에 타자 차 안의 공기가 확 달라졌다.
살짝 젖은 머리칼에서 샴푸향이 은은하게 퍼진다.
나는 박보연의 차림새를 훑어보았다.
검은 후드에 검은 선글라스, 그리고 마스크.
연예인이라는 것을 알 수 없는 것을 넘어 수상해 보이기까지 한다.
“간첩신고는 국번 없이 113.”
“아, 뭐예요!”
박보연은 작은 주먹을 들어 내 팔뚝을 한번 톡 쳤다.
그리고는 선글라스랑 마스크를 전부 벗어 버렸다.
“푸하! 매니저 오빠가 하도 걱정을 해서 일단 쓰고 나오긴 했는데. 누가 저를 알아보겠다고 이러나 몰라요. …그쵸?”
“에이, 그래도 연예인은 항상 조심해야지.”
나는 임우람 매니저의 걱정스러운 목소리를 떠올리며 고개를 저었다.
한편. 박보연 역시 내 복장을 보고 놀란다.
“우와! 웬일로 옷을 다 입고 나오셨네요!?”
“…누누이 말하지만. 게임과 현실을 혼동하지 말아 줄래? 너처럼 게임이랑 현실 구분 못 하는 사람들 때문에 게임업계가 침체되는 거야.”
당연히 현실에서는 옷을 입고 다닌다.
…예전에 딱 한 번 실수했다가 공연음란죄 명목으로 경찰에 잡혀갔었다는 사실은 굳이 입밖으로 꺼내지 않기로 했다.
후두둑- 후두둑-
나는 쏟아지는 빗방울을 와이퍼로 닦아 냈다.
그 광경을 본 박보연은 해맑게 웃는다.
“비가 오네요. 좋은 징조 같아요. 우리를 축복하는 건가!”
“…? 비랑 축복이랑 무슨 상관이야?”
“뭘 모르시네!”
박보연은 검지를 흔들며 말을 이었다.
“니아(NIAR)는 레인(RAIN)의 거꾸로 버전이라구요. 즉 ‘거꾸로 흐르는 비’ 라는 뜻이에요.”
나는 그제야 박보연이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들었다.
차 앞유리에 떨어져 뒤로 밀려가는 빗물을 보자 정말로 거꾸로 흐르는 비 같아 보이기도 한다.
지금 상황에 잘 어울리는 단어였다.
한편.
나는 박보연에게 목적지를 물었다.
“우리 오늘 어디 가는 거야?”
“마트요!”
박보연은 쾌활하게 대답했다.
밥 사겠다고 해서 나왔더니 마트로 가자고?
‘…시식코너라도 돌자는 건가?’
니아의 궁핍한 사정을 알기에 할 수 있는 상상이었다.
하지만 내가 걱정하던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마트에 들어온 박보연은 사비로 이런저런 먹거리들을 구입하기 시작했다.
“단무지 사고, 닭고기 사고, 햅쌀 사고, 잡곡 사고….”
그녀는 마트를 빙빙 돌며 심혈을 기울여 좋은 식재료들을 고른다.
야채를 고를 땐 표면에 상처가 있는지 없는지, 고기를 살 때에는 육색과 지방의 침착 정도가 어느 정도인지, 유제품을 살 때에는 가능한 유통기한이 많이 남은 것으로….
나는 장바구니에 착착 담기는 재료들을 보며 고개를 갸웃했다.
“뭐 요리 대회 나가냐? 아이대가 아니라 아요대였나?”
“어휴, 사부는 진짜 아무것도 모른다.”
박보연은 대파 하나를 집어 들고는 빙글빙글 웃었다.
“내일 팬들 도시락 만들어 주려고 사는 거예요!”
팬들? 도시락?
내가 고개를 갸웃하자 박보연의 표정이 순간 어두워졌다.
“사실…내일 대회에 올 팬들에게 너무 미안해서요.”
“뭐가 미안한데?”
“아이돌 E스포츠 선수권 대회에 와 주잖아요. 저희들 보러.”
박보연이 말해 준 것은 다소 씁쓸한 이야기였다.
아이대와 같은 예능 프로그램은 현장감을 위해 방청객이 많이 필요한데 그걸 위해 입장한 팬들을 감금 비슷하게 한다고 한다.
중간에 집에 가지 못하게 해서 좌석들이 꽉꽉 채워져 있는 것처럼 보이게 하기 위함이다.
거진 10시간이 넘게 팬들을 감금해 두는데 당연히 식사는 제공하지 않고 그 어떠한 페이도 없다.
심지어 중요한 장면을 촬영할 때에는 화장실도 못 가게 하기도 한단다.
연예인들은 아이대에 불참하면 인지도 면에서 불리해지기 때문에 반강제로 끌려나온 입장이고 팬들 역시도 자기가 응원하는 아이돌들이 갑질에 피해를 입을까봐 열악한 처우에도 불구하고 목소리를 낼 수가 없다.
팬심과 방송 분량을 미끼로 목줄을 채워 끌고 다니는 것이다.
“…흠.”
나는 턱을 쓰다듬었다.
내가 알기로 니아는 현재 무명이며 앞으로 꽤 오랜 시간 동안 무명의 설움을 겪는다.
아마 이번에도 오는 팬들이 그리 많지는 않을 텐데.
“…이번에 팬들이 몇 명이나 오는데?”
“10명이요.”
박보연은 씩씩하게 대답했다.
400개나 되는 객석 중 10개가 니아에게 배정된 팬 석의 전부였다.
비율로 따지면 2.5% 밖에 되지 않는다.
하지만 박보연은 그것만으로도 기쁜지 식재료를 고르며 콧노래를 부른다.
“이것도 천신만고 끝에 겨우 얻은 자리에요. 원래 그 자리에 들어가기로 한 애들이 스캔들이 떠서 하차하는 바람에…….”
“하긴 아예 출연도 못 하는 아이돌 그룹들이 쎄고 쎘을 테니까.”
“맞아요. 10석이 어딘가요? 그 10명에게라도 최선을 다해 잘해줄 거예요. 다른 애들도 지금 다 역조공 준비하고 있어요.”
팬들이 아이돌을 향해 선물을 바치는 것을 ‘조공’이라고 표현한다면 아이돌이 팬들을 향해 역으로 선물을 준비하는 것을 ‘역조공’이라고 한다.
“거꾸로 흐르는 비라서 그런가 조공도 역으로 흐르는구나.”
“헤헤. 그런가요?”
역조공을 준비하는 박보연의 표정은 정말로 행복해 보였다.
그 때문일까?
날카로운 눈으로 호박의 표면을 살피는 박보연의 얼굴은 내가 지금까지 만나 봤던 그 어떤 연예인들보다도 더욱 빛난다.
바로 그때.
“……!”
나는 무언가 수상한 기운을 감지했다.
저 멀리 식품 코너 뒤편, 선글라스를 끼고 바바리 코트를 입은 한 남자가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박보연을 향해 시선을 고정시키고 있는 듯하다.
‘…뭐지, 느낌이 안 좋은데.’
나는 그에게서 미증유의 불길함을 느꼈다.
“보연아. 다른 데로 가자.”
나는 박보연의 손목을 탁 잡고 재빨리 코너를 돌았다.
박보연은 의아한 표정을 지었지만 딱딱하게 굳은 내 표정을 보고는 말없이 따라온다.
홱- 홱-
나는 재빨리 야채 코너를 돌아 유제품 코너로 진입했다.
그러자.
건너편 코너에서 믿을 수 없는 광경이 보인다.
검은 선글라스에 바바리 코트.
그놈은 우리를 따라오고 있었다.
그것도 엄청난 속도로.
마치 사냥감을 놓칠 수 없다는 듯한 기세였다.
‘쳇. 박보연이 예쁘긴 하지. 게다가 연예인이니…….’
나는 박보연을 돌아보았다.
앙증맞은 키, 귀여운 얼굴, 큰 눈에 오밀조밀한 코와 입술.
중학생이라고 해도 믿을 것 같은 얼굴에 볼륨감 있는 반전 몸매.
작은 키로도 8등신이 가능하다고 주장하는 듯한 이기적인 비율.
사생팬이 하나쯤 있어도 이상하지 않을 법하다.
연예인이 아니었다고 해도 말이다.
심지어, 그 바바리 코트남은 코너를 돌 때마다 점점 가까워지고 있었다.
그리고 거리가 좁혀짐에 따라 놈이 중얼거리고 있는 대사도 귀에 들려온다.
“발견했어 발견했어 분명해 분명해.”
“더 가까이서 보고 싶어 제발.”
“나를 봐 줘. 한번이라도 나를…….”
“넌 내꺼야…….”
“아아, 못 참겠어. 가까이서 보고 싶어.”
“만지고 싶어. 껴안고 싶어.”
표정이 절로 구겨진다.
나는 박보연을 품에 끌어안듯이 하며 코너를 돌았다.
그러자 그만큼 바바리 코트남도 확 가까워져 왔다.
이내 그는 이성을 잃은 듯 박보연에게로 달려들었다.
“나도! 나도 만질 거야!”
그는 질투심에 눈이 먼 표정으로 달려들었다.
“보연아! 물러나!”
나는 온 힘을 다해 박보연을 감쌌다. 아니 감싸려 했다.
하지만 내가 박보연을 감싸는 속도보다 바바리 코트남이 달려오는 속도가 더욱 빨랐다.
이대로 가면 박보연이 저 스토커의 손에 닿는 불상사가 일어날 것이다.
나는 이를 악물고 앞으로 나섰다.
아니, 나서려 했다.
하지만.
…상황은 내가 예상한 것과는 정반대로 흘러가기 시작했다.
바바리 코트남은 눈앞에 있는 박보연에게는 아무런 관심도 없다는 듯 홱 스쳐 지나갔기 때문이다.
그리고…박보연을…지나…곧장…내게로…달려오기 시작했다.
반쯤 울먹이는 상태로 말이다.
“호에에엥 고인물 형아 맞죠! 으아아아! 나 진짜 팬이잖아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