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닳고닳은 뉴비-251화 (251/1,000)
  • 252화 거꾸로 흐르는 비 (5)

    훌러덩 특성은 참으로 미묘한 특성이다.

    공격자와 피공격자가 장비하고 있는 아이템을 랜덤으로 하나씩 벗겨 내는 스킬.

    일단 벗겨진 아이템은 24시간 동안 장착이 불가능해지며 아이템을 벗기면 벗길수록 훌러덩 특성을 보유한 자의 공격력이 일시적으로 증가한다.

    몬스터를 상대로 할 때는 거의 쓸모가 없는 특성이지만 PVP에서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쓰기에 따라서 효용성이 달라진달까?

    잘만 쓴다면야 기대 이상의 소득을 거둘 수도 있는, 말 그대로 세렌디피티(serendipity)인 것이다.

    ‘…하지만 나에게는 필요가 없지.’

    나는 팔짱을 낀 채 대머리황제수리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사실 훌러덩 특성은 대격변 이후에 사라지는 특성이다.

    조금 더 정확히 말하자면 대격변 이후에는 A급 몬스터를 잡고 얻은 특성들이 전부 사라진다.

    온 세상의 몬스터가 격변한 생태계에 맞추어 상향평준화될 것이다.

    이에 따라 A+등급 이상의 몬스터를 처치해야만 호칭을 주는 것으로 시스템이 강제 개편되는 것!

    “…호칭 얻기가 더욱 더 까다로워지겠군. 뭐, 지금 걱정할 일은 아니지만.”

    나는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팔짱을 꼈다.

    한편.

    내가 서 있는 바위 아래에서는 레이드가 한창이다.

    니아 멤버 4명과 임우람 매니저가 열심히 대머리황제수리와 싸우고 있는 것이다.

    [까아아악!]

    대머리황제수리는 신사답게 울음소리와 모션으로 공격 패턴을 미리 알려 준다.

    녀석은 A등급 몬스터답지 않게 공격 패턴이 무척이나 단조로운 편이었다.

    흔히들 비행타입 몬스터는 다른 동급 몬스터에 비해 공격 패턴이 까다롭다고 말하지만, 이 대머리황제수리만은 예외다.

    퍼퍼퍼펑!

    대머리황제수리는 하늘로 날아올라 또다시 깃털 공격을 뿌렸다.

    그리고 지쳤는지 다시 땅으로 내려와 잠시 휴식을 취한다.

    그때마다 니아 멤버들은 대머리황제수리를 공격했다.

    그러면 또 여지없이 훌러덩 특성이 발현되는 것이다.

    “꺄아아악!”

    훌러덩 특성이 터질 때마다 비명소리가 들려온다.

    옷이 벗겨진 니아 멤버들이 소리를 지르기 때문이었다.

    벌써 몸을 가리고 있는 대부분의 아이템들이 벗겨진 상태이건만, 그녀들은 지치지도 않고 계속 비명을 질렀다.

    시간을 비명을 지르는 데에 쓰는 것은 아주 손해다.

    그 시간에 공격을 한 번 더 하면 기여도도 높아지고 레이드 시간도 단축될 일이 아닌가?

    나는 손으로 이마를 짚었다.

    “버스에는 남녀가 없고 기사와 승객만 있는 줄 알았는데…테러범도 있었군.”

    니아 멤버들은 아이템이 벗겨진다는 것에 대한 두려움을 쉽게 떨쳐 내지 못하고 있었다.

    “으으으, 몸을 가리느라 제대로 못 싸우겠어요오…….”

    박보연은 울상이 된 표정으로 내가 있는 쪽을 바라보았다.

    울먹이고 있는 그녀의 표정은 정말 탄성이 나올 정도로 귀엽고 예뻤지만.

    “…그럼 죽어야지 뭐.”

    나는 콧방귀도 뀌지 않았다.

    아무리 예쁘거나 잘생긴 이성도 게임을 같이 하는 이상 잘하지 못하면 내 승률을 망치는 테러범에 불과하다.

    그것이 게이머들의 숙명!

    [까아아아악!]

    대머리황제수리는 또다시 날카로운 부리와 발톱으로 니아 멤버들을 위협했다.

    바로 그때.

    “…아앗!?”

    박보연은 실수로 돌부리에 발이 걸려 넘어지고 말았다.

    [까아아아악!]

    그런 박보연의 위로 대머리황제수리가 달려들었다.

    그녀를 일격에 쪼아 죽일 모양새.

    “……!”

    박보연은 눈을 질끈 감았다.

    하지만.

    퍼억-

    박보연은 데미지를 입지 않았다.

    다만 피 몇 방울이 그녀의 얼굴에 튀었을 뿐이다.

    “……커헉!”

    임우람 매니저.

    그가 대머리황제수리와 박보연의 사이를 가로막고 있었던 것이다!

    “……오빠!?”

    박보연이 황급히 일어나자, 임우람 매니저는 그런 박보연에게 손바닥을 펼쳐 보였다.

    “오지 마! 피 묻어!”

    “……!”

    “너는 사망 패널티 받으면 안 돼. 대회 나가야 하잖아.”

    그것이 임우람 매니저의 마지막 유언이었다.

    촤악-

    대머리황제수리는 임우람 매니저를 땅바닥에 내동댕이쳤다.

    사망 로그아웃.

    임우람 매니저는 결국 리타이어 되고 말았다.

    “……이익!”

    박보연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자신을 살리기 위해 목숨을 던진 매니저.

    미안함과 고마움, 그리고 복수심이 마음 속 깊은 곳에서 부글부글 끓어오른다.

    그녀는 고개를 돌려 나에게 소리쳤다.

    “이 나쁜 사람! 어떻게 눈 하나 깜짝 안 해요!?”

    “…내가 왜?”

    “살릴 수 있었잖아요! 우리 매니저 오빠!”

    박보연의 항의는 일견 타당하게 들린다.

    그렇기에 다른 니아 멤버들 역시도 화가 난 표정으로 나를 쏘아보고 있는 것이겠지.

    하지만 나는 고개를 저었다.

    “분명 말했잖아. 나는 레이드에 개입 안 한다고.”

    “그, 그래도!”

    “그래도는 무슨 그래도야. 또 공격 온다. 피해!”

    내가 손가락을 들어 소리치자 니아 멤버들은 울며 겨자먹기로 고개를 돌릴 수밖에 없었다.

    [까아아아아악!]

    대머리황제수리가 또다시 공격을 감행해 온다.

    “이 변태 대머리! 알몸에 미친 새 같으니라고! 가만 안 둬!”

    니아 멤버들은 임우람 매니저의 죽음에 격분했다.

    덕분에 호승심이 조금은 생긴 것 같다.

    ‘저 대머리황제수리는 암컷이라는 건 굳이 말해 주지 않아도 되겠군.’

    전장의 분위기가 조금씩 바뀌고 있었다.

    나는 침착하게 상황을 살폈다.

    니아 멤버들과 대머리황제수리는 계속해서 똑같은 싸움을 반복하고 있었다.

    이미 수많은 공방을 주고받은 끝에 니아 멤버들은 전원 알몸, 대머리황제수리의 정수리는 서글플 정도로 비어 있다.

    “이익!”

    무기마저 벗겨진 니아 멤버들이 맨손으로 달려든다.

    하지만 대머리황제수리는 날개를 뻗어 그녀들의 맨주먹을 막아 냈다.

    나는 그것을 보며 외쳤다.

    “맨손으로 덤비지 마! 무기가 벗겨졌다면 바닥의 짱돌이라도 들어서 때려! 그 편이 훨씬 공격력이 세다! 주변 아티펙트들을 잘 써먹는 것도 능력이야!”

    그러자 니아 멤버들은 악에 받친 표정으로 바닥에서 짱돌을 주워들었다.

    그녀들의 물리공격력은 제법 상승한 상태.

    그 상태에서 니아 멤버들은 대머리황제수리를 때리고 또 때린다.

    퍽-

    짱돌 하나가 대머리황제수리의 몸을 때리자마자.

    훌러덩-

    어김없이 아이템 하나가 벗겨진다.

    “…꺄악! 읍!”

    박보연은 벗겨져 나가는 하의를 보며 비명을 지르려다가 자신의 입을 틀어막았다.

    수치스러움과 처절함이 동시에 느껴지는 표정.

    비단 박보연뿐만 아니라 박소담, 배수지, 윤두나 역시도 모두 같은 표정을 짓고 있었다.

    나는 그녀를 향해 한 번 더 호통쳤다.

    “너희는 여자가 아니야! 그리고 연예인도 아니야! 한 사람의 ‘게이머’다!”

    “…….”

    “게이머는 원래 고수가 될수록 옷을 안 입지! 나를 봐라!”

    그러자 박보연이 짱돌을 휘두르며 악 소리친다.

    “다른 랭커들은 다 옷 입고 다니던데요!?”

    “하? 그래서! 그 다른 랭커들이라는 자들이 나보다 게임을 잘하나?”

    물론 그건 아니다.

    프로리그에서 앙신 조디악을 막아낸 것도 바로 이 몸이 아닌가?

    현재 프로리그에서 나와 비견될 만한 프로 선수는 없다.

    …있다면 마동왕 정도?

    “…….”

    그걸 아는 박보연은 입술을 꽉 깨문 채 말이 없었다.

    나는 그런 그녀들에게 외쳤다.

    “나를 믿고 따라와라. 너희들을 아E대의 패왕으로 만들어 줄 테니까.”

    말을 마친 뒤, 나는 대머리황제수리의 남은 HP를 계산했다.

    이쯤 되면 얼추 기여도에 따른 보상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나는 그제야 몸을 움직였다.

    팟!

    허공으로 높게 뛰어오른 나는 그대로 대머리황제수리의 몸을 향해 떨어져 내린다.

    [까아아아악!]

    대머리황제수리는 나의 접근을 간파하고는 부리를 들었다.

    그리고 온 힘을 다해 나에게로 부딪쳐 오기 시작했다.

    “위, 위험해요!”

    니아 멤버들이 나를 향해 외쳤다.

    하지만 나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자라나라 머리머리!”

    이것이 내가 눈앞의 적에게 건넨 마지막 덕담이었다.

    퍼억!

    나의 주먹과 대머리황제수리의 부리가 맞부딪치는 순간!

    패륜아 특성과 앙버팀 특성이 동시에 발현되었다.

    퍼퍼퍼펑!

    엄청난 반사 데미지에 노출된 대머리황제수리의 전신이 터져나간다.

    나는 HP가 1 남은 상태로 살아남았고 동시에 흡혈을 통해 바로 HP를 완전히 회복했다.

    쿵-

    대머리황제수리는 너덜너덜해진 몸으로 황무지에 드러누웠다.

    일격(一擊)!

    단 한 방에 A급 몬스터를 해치워 버린 것이다.

    그 때문에 내가 유일하게 걸치고 있던 망토가 사라져 완전한 알몸이 되어 버리긴 했지만.

    그러나.

    그런 나를 바라보는 니아 멤버들의 시선은 전과는 180도 달라져 있었다.

    원래 뉴비가 고인물에게 매료되는 순간은 간단하다.

    그토록 고생해서 잡던 강한 몬스터를 일격에 처치해 버릴 때!

    특히나 멤버들 중 박보연의 시선이 가장 뜨거웠다.

    ‘저 괴물 같은 새를 일격에….’

    그녀는 나와 내 발 밑의 거대한 시체를 번갈아 바라보았다.

    그때.

    나와 박보연의 시선이 한 곳에서 마주쳤다.

    오싹-

    박보연은 몸을 떨었다.

    나도 알몸, 박보연도 알몸.

    하지만 나의 시선은 오로지 박보연의 눈만을 관통하고 있다.

    목 밑으로 훤히 드러난 그녀의 알몸 따위는 신경조차 쓰지 않은 채.

    그러니.

    박보연의 머릿속에 이런 생각이 드는 게 별로 이상한 일은 아닐 것이다.

    ‘…이 사람은 진짜다!’

    *       *       *

    “자! 한 번 더!”

    나의 우렁찬 외침 아래 특훈이 시작되었다.

    니아의 멤버들은 또다시 대머리황제수리와 싸운다.

    이번엔 사망 패널티를 다 받고 다시 게임에 접속한 임우람 매니저도 함께다.

    “…으아아아, 사부! 힘들어 죽을 것 같아요!”

    멤버들 중에서 가장 체력이 약한 배수지가 징징거리는 소리를 낸다.

    하지만 나는 그녀의 응석을 단칼에 잘랐다.

    “HP보니까 아직 15분은 더 뛸 수 있다. 버닝!”

    “호에에에엥! 게임 시스템은 이게 싫어! 꾀병이 안 통해!”

    니아 멤버들은 다시금 대머리황제수리 사냥에 매진한다.

    멤버 전원이 ‘훌러덩’ 특성을 패시브로 보유하기까지는 무려 세 번의 레이드가 필요했다.

    ‘……흐음.’

    나는 니아 멤버들이 열심히 합을 맞추어 공방을 주고받는 것을 보며 생각했다.

    ‘‘훌러덩’ 특성에는 ‘돌격대’ 특성이 잘 어울리는데, 지금 구하기에는 조금 늦었나.’

    돌격대 특성은 프로팀 매드독의 방철우가 쓰던 특성이다.

    상대방의 공격을 못 피하게 되는 대신 자신의 공격을 무조건 명중시키는 기술.

    하지만 지금 그 특성을 얻으러 가려면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린다.

    ‘…대신에 그것을 만회할 수 있는 꼼수 하나를 써야겠군.’

    나는 눈을 감고 머리를 굴렸다.

    훗날 칼군무로 유명해지는 걸그룹답게, 니아 멤버들은 공격과 방어를 함에 있어 합이 정말 잘 맞는다.

    이 장점을 최대한으로 써먹기 위해서는…….

    “…그래. ‘그 버그’가 있었지?”

    나는 손뼉을 쳤다.

    난데없이 긴급 패치가 이루어지는 바람에 수정 이후에나 알게 되었던 버그.

    그러고 보니 그 긴급 패치라는 게 얼마 안 남았다. 한 달 조금 넘게 남았나?

    “패치 돼서 사라지기 전에 얼른 써먹어야겠군. 마침 딱이야.”

    나는 대머리황제수리와 싸우는 니아 멤버들을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이제 결전의 날까지 그것들을 체득시키는 것만이 남았다.

    ‘몸’이 기억할 정도로 혹독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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