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6화 아이돌 E스포츠 선수권 대회 (3)
MS타운 엔터테인먼트.
현재 한국에서 가장 크고 유명한 연예기획사.
나는 지금 그곳에서도 가장 크고 높은데다가 화려하기까지 한 대표실에 있다.
남미 어딘가에서 직수입했다는 원목 소파에 앉아 중국 어딘가에서 특별히 구해 왔다는 차를 홀짝거릴 때까지만 해도 좋았다.
커다란 통유리창 너머로 보이는 도시가 바쁘게 꼼지락거리는 것을 구경하는 것도 좋았고 한국 상위 0.001%의 부자가 일하는 사무실의 인테리어를 견학하는 것도 흥미로웠다.
하지만.
그 모든 것들은 내가 이곳에 오게 된 지 30분 정도까지의 이야기.
대표실에 들어온 지 약 1시간 정도가 지났을 무렵부터 나는 슬슬 짜증이 나기 시작했다.
2시간 쯤 지났을 때에는 꽤 많이 화가 났다.
그리고 지금.
3시간이 되었을 때에는 오히려 무덤덤해진 상태였다.
“…대체 그 시간에 엄격하다는 대표님은 언제 온다는 겁니까?”
나는 총괄비서를 향해 인상을 찌푸렸다.
총괄비서인 김애리 씨는 당황해서 어쩔 줄 몰라 하고 있었다.
“죄송합니다. 대표님이 원래 시간 약속에 정말 엄격하신 분인데…회의가 길어지시나…연락도 안 받으시고.”
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3시간 동안 이 방에서 멍하니 기다렸다.
통유리창 저 끝에 보이는 차가 도로를 뽈뽈뽈 기어가 다른 쪽 통유리 끝으로 사라지는 것을 몇 번이나 세어 봤다.
‘이 시간이면 레이드를 세 번은 돌았겠군.’
나는 손으로 이마를 짚었다.
이 기획사의 대표 놈 정도까지는 아니더라도 나도 꽤 고수입을 올리는 몸.
이런 데서 허비할 시간 따위는 전혀 없단 말이다!
바로 그때.
쾅-
대표실의 문이 열렸다.
“아, 이거 손님이 계셨네.”
빵모자를 푹 눌러쓴 중년 사내가 대표실로 들어왔다.
MS타운 엔터테인먼트의 대표 추성현이다.
“고인물 씨죠? 닉네임 특이하네. 만나서 반가워요. 방송에서 얼굴 몇 번 봤어요.”
그는 늦어서 미안하다는 사과 따위는 일언반구도 없었다.
그리고 마치 아주 당연하다는 듯 내 앞의 소파에 걸터앉았다.
내가 지금까지 기다린 3시간이 순식간에 잊힐 정도의 자연스러움이었다.
“…….”
나는 다소 멍한 표정으로 그를 쳐다보았다.
추성현의 태도가 너무 당당해서 내가 지금까지 기다린 시간이 3시간이 아니라 3분이었나? 싶을 정도.
그 시선을 의식한 추성현은 너털웃음을 지었다.
“아, 조금 많이 기다리셨죠? 죄송해요. 내가 늘 이 시간이면 한 두 시간 정도는 사우나를 가는데, 깜빡 졸아 버려서. 우리 애들이 내가 한번 잠들면 못 깨우거든. 잠에서 깬 직후에는 하도 성질을 많이 내다 보니까. 아휴, 이게 잠에서 막 일어났을 때는 저혈압이 심해서…….”
그러니까 사우나 가서 쉬다가 늦게 왔다는 것이다.
시간을 계산해 보면 내가 이 자리에 도착한 것보다 추성현이 사우나에 입장한 것이 더 늦다.
그러니까 내가 여기에 와 있는 걸 알면서도 사우나에 갔다는 소리.
“아휴, 미안해요. 요즘 이런저런 일 때문에 내가 스트레스가 많아서 그래. 알죠? 이번 아이돌 E스포츠 선수권 대회 일로도 내가 아주…….”
그는 빈 찻잔에 차를 채우며 계속 주절거렸다.
사과할 생각은 전혀 없어 보였기에 나는 빠르게 단념했다.
“죄송하지만 저도 시간이 많이 없어서요. 계약 내용을 조금 빨리 들을 수 있을까요?”
나는 추성현에게 종이 한 장을 들어 보여 주었다.
-0월 0일 스케줄-
2시: 죽음부름 해협 필드 보스 기관총새우 리젠.
3시: 침공막 동굴 던전 보스 굴도마뱀 리젠.
4시: 거인의 빨래방 일일퀘스트 초기화.
.
.
내가 지금껏 잡아 왔던 보스들의 리젠 시간, 던전 초기화 시간 혹은 일일퀘스트 초기화 시간 등이 적혀 있다.
하지만 그것을 본 추성현은 피식 웃는다.
“뭐야, 다 게임이잖아. 하하하, 재밌는 농담이었어요. 요즘 식 개그인가 이런 게?”
“……?”
“음? 뭐지. 설마 진담으로 하는 건가?”
그는 정말로 깜짝 놀란 표정을 지어 보였다.
“지금 게임하러 가고 뭐 그런 게 중요한 게 아니잖아요. 우리랑 일 하는 게 중요하지. 이제 다 큰 어른이신데 뭐가 더 중요한지는 구분 하셔야죠.”
졸지에 훈계까지 들어 버렸다.
‘세상에 뭐 이런 놈이 다 있지?’
내 본업보다 연예기획사 대표가 사우나 갔다 오는 걸 기다리는 게 더 유익하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이렇게 자기중심적인 인간은 처음 본다.
뭐 아무튼.
추성현은 나를 앞에 앉혀놓고 나를 부른 목적을 꺼내 놓았다.
뭐 예상했던 대로, 자기네 회사에 소속된 아이돌이 아이돌 E스포츠 선수권 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거둘 수 있게 도와달라는 것이었다.
“뭐 우리 파워면 알아서 방송 분량은 챙길 수 있겠지만, 그래도 이왕이면 실력으로도 말 안 나오는 게 좋잖아요? 내가 게임은 잘 몰라서 이쪽으로 제일 핫한 사람을 코치로 뽑기로 했거든. 근데 요즘 애들 인터넷 여론 보니까 우리 고인물 씨가 단독으로 1위더라고? 마동왕 그 친구도 꽤 유명한 것 같긴 했는데…가면에 목소리 변조하고 다니는 게 어째 꺼림직해서 말이야.”
나는 추성현의 말에 그냥 잠자코 고개를 끄덕였다.
이내, 그는 최후의 용건을 꺼내놓았다.
“앞으로 우리 ‘크레파스’ 잘 좀 부탁해요.”
공교롭게도 내가 코치해야 할 팀은 바로 크레파스였다.
걸그룹 ‘크레파스’
대한민국 최고의 연예기획사 MS타운에서 대놓고 밀어주고 있는 7인 그룹이다.
아까 복도에서 만났던 이연지를 비롯하여 전혜민, 노고운, 이은혜, 서서연, 서지아, 김누리로 이루어져 있는 7인 그룹.
요즘 한창 잘 나가고 있는 신생 걸그룹이기도 하다.
추성현은 진중한 표정으로 종이 한 장을 꺼냈다.
“이건 대외비인데, 우리 애들 코치 될 사람이니까 특별히 보여 주는 거예요.”
그것은 크레파스의 한 달 치 스케줄 표였다.
아까 내가 스케줄 표를 보여 준 것처럼, 그 역시 크레파스의 스케줄 표를 내 앞으로 내밀었다.
이런저런 행사와 방송일정 등으로 가득한, 실로 살인적인 스케줄이다.
돈에 눈에 멀지 않고서야 이런 일정을 짤 수 있을까?
“자 보니까 이번 주 수요일 오전이랑 다음 주 목요일, 토요일 오후가 비네. 이때 한두 시간 정도씩 와서 가르치면 될 것 같네요. 애들 바쁘니까 모이는 시간 고려해서 조금 일찍 와야 하는 건 알죠? 그리고 다음 주는 행사랑 공연 일정 때문에 아예 안 되고, 그 다음 주는 이제 대회가 얼마 안 남았으니까 한 4일 정도 빼서 24시간 하드 트레이닝….”
그때.
나는 손을 들어 추성현의 말을 막았다.
“잠시 만요. 한 달을 온전히 준비하는 게 아니었어요? 그러면 좋은 성적 내기는 힘들 텐데요?”
“…얘들 연예인이에요. 무슨 게임에 한 달씩이나 투자해요, 시간 아깝게.”
“아니, 그럼 좋은 성적을 못 내죠.”
“그러니까 당신을 섭외한 거 아닙니까. 남들 한 달 꼬라박은 것만큼 잘 가르치라고.”
추성현은 뭐가 문제냐는 듯 나를 쳐다본다.
“…….”
나는 손으로 이마를 짚었다.
대기업이 하청업체를 쪼을 때 이런 식으로 무작정 땡깡 부린다는 말은 들었지만 직접 겪게 되니 속이 부글부글 끓는다.
나는 꾹 참으며 말을 이었다.
“그리고. 보니까 제가 완전히 그쪽의 스케줄에 맞춰야 하는 것 같던데…그건 조금 곤란합니다. 저도 나름의 스케줄이 있으니 서로 어느 정도씩 양보해 가면서 일정 조율을 해야….”
그러자.
“푸하하핫!”
추성현은 큰 소리로 웃었다.
진짜 웃겨서 내는 소리가 아니라 들으라는 식으로 일부러 내는 웃음소리였다.
그는 눈에 맺힌 눈물을 닦으며 나를 쳐다보았다.
“이봐요, 고인 물 씨.”
“…….”
“우리 MS타운이에요. 누가 누구랑 일정 조율을 해? 그쪽이 무조건 우리 애들한테 맞춰야죠.”
추성현은 웃겨 죽겠다는 듯 나를 쳐다본다.
그리고 기특하다는 듯 손을 뻗어 내 어깨를 두드렸다.
“그래 뭐, 스무 살 초반 젊은 나이에 자신의 재능 하나만으로 여기까지 올라왔으면 그런 자부심, 자존심 가질 만은 해요.”
“…….”
“앞으로 그런 태도 잃지 말아요. 파이팅.”
“…….”
“그럼 이제 일정 조율은 끝난 거죠?”
나의 항변 따위는 상대도 하지 않겠다는 태도였다.
그는 소파에 느긋하게 기대며 말을 이었다.
“참. 내가 이번 아이대에 푸쉬를 꽤 많이 했거든. 뽕을 뽑으려고 각오를 좀 단단히 했어요, 애들도 이번 아이대에 기대가 무척 크고. 특별히 잘 좀 부탁드려요.”
“…….”
나는 찜찜한 기분이었지만 일단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추성현은 활짝 웃었다.
“아 참. 그래. 그럼 온 김에 애들 얼굴이나 한번 보고 가요. 마침 불러 놨었거든.”
그러자 내 머릿속에 아까 이연지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그녀 또한 추성현과 미팅 약속이 있었다고 했다.
‘예능 출연 건이라는 게 아이돌 E스포츠 선수권 대회를 말하는 거였군.’
MS타운 쪽에서 이번 대회에 거는 기대가 꽤나 큰 모양이다.
뭐 어느 정도를 기대하는지는 모르겠지만 부담을 엄청나게 주는 걸 보니 일반적인 성적으로는 절대 만족을 못 시킬 듯싶다.
‘…진상 냄새가 나는데.’
미팅에 3시간을 늦거나, 인터넷 방송을 한다고 무시당하거나, 어리다고 반말 듣는 거나, 대기업 대 개인이라고 갑질 당하는 거나, 말하는 태도가 띠꺼운 거야 뭐 이해할 수 있다.
나는 삼십 대 중반의 나이까지 살아 봤던 몸.
이런 세상살이에는 어느 정도 익숙해져 있으니 못 참아 낼 것도 없었다.
보상.
즉 돈과 따라오는 유명세만 확실하다면 말이다.
엄밀히 말하자면 나 역시도 MS타운을 이용해 먹으려는 것이니 전략적으로 행동하는 것이 옳다.
여기서는 잠시 수그려야 할 때다.
‘…단기간에 성과? 낼 수야 있지. 다만 곡소리 좀 날 거다.’
바로 그때.
“대표니임! 부르셨어요오!”
뒷문이 열렸다.
낯익은 얼굴 하나가 곰살맞은 웃음과 함께 대표실로 들어오는 것이 보였다.
MS타운의 날고 기는 스타들 사이에서도 최근 가장 핫한 아이돌.
크레파스의 리더 이연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