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닳고닳은 뉴비-244화 (244/1,000)
  • 245화 아이돌 E스포츠 선수권 대회 (2)

    간만의 바깥 약속이다.

    나는 점심 때쯤 느지막이 일어나 운동을 한 뒤 식사를 대충 쥬스로 때우고 외출 준비를 했다.

    부릉-

    차에 올라 거리로 나가니 도로가 꽤 막힌다.

    “…….”

    나는 차의 천장을 열고 선글라스를 꼈다.

    빨간불.

    신호대기를 기다리며 횡단보도 앞에 서 있자.

    “앗! 어디서 많이 본 얼굴!”

    “어!? 고인물 아저씨다!”

    “고인물이다, 고인물!”

    횡단보도를 지나가던 한 떼의 초등학생들이 나를 보고 우르르 몰려왔다.

    다들 2~3학년 정도 되어 보이는 어린애들이다.

    “아저씨! 방송 잘 보고 있어요!”

    “꺄악! 생각보다 잘생겼어요!”

    “옷은 왜 입고 다녀요?”

    녀석들은 내가 신호대기를 하고 있는 도중에 차로 몰려와 재잘거렸다.

    “알아봐 줘서 고맙다. 여기는 차도라서 위험하니까 얼른 건너가렴.”

    나는 초등학생들에게 차 안에 있는 과자와 사탕을 한 줌씩 건네주며 달랬다.

    …한데?

    “에이, 아저씨. 제가 아저씨 방송에 도네를 얼마나 쐈는데 이런 걸 주세요.”

    “이런 건 아저씨나 드시고요. 저는 여기 쇄골에 사인 해 주세요! ‘쇄골에 고인 물♥’이라고.”

    “저도 이번에 인터넷 방송 하는데 한번 놀러와 주시면 안 돼요?”

    …순간 내가 지금 고등학교 2~3학년을 대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착각이 들었다.

    ‘요즘 애들은 되게 조숙하구나.’

    그뿐만 아니라 인터넷 방송 문화에도 이미 빠삭하다.

    단순히 물들어 있는 수준이 아니라 스스로 즐기고 응용하는 경지까지 올라 버렸다.

    ‘하긴, 날이 갈수록 인터넷 방송은 생활 속에 녹아드니까.’

    시장은 앞으로도 점점 커져 나갈 것이다. 그리고 점점 메이저로 편입되겠지.

    단적인 예로, 인터넷 방송으로 이름을 알린 내가 지금 어디에 가고 있는지를 들 수 있을 것이다.

    MS타운 엔터테인먼트.

    현재 한국에서 가장 크고 유명한 연예기획사가 아닌가!

    나는 지금 이곳의 러브콜을 받아 방문하고 있다.

    …목적이 뭐냐고?

    바로 ‘아이돌 E스포츠 선수권 대회’

    일명 ‘아이대’ 출연을 위해서이다!

    “이어진 출세했네 출세했어. 공중파에도 나가고.”

    나는 핸들을 잡은 채 자화자찬했다.

    아이돌 E스포츠 선수권 대회가 무엇이냐?

    그것은 아이돌 가수들이 E스포츠 종목에 도전하여 승부를 가리는 것을 콘텐츠로 하는 대형 공중파 프로그램이다.

    요즘 나날이 위상이 커져가고 있는 ‘데우스 엑스 마키나’를 E스포츠 정식종목으로 채택하여 아이돌들로 하여금 그것을 플레이 시키는 신생 프로그램.

    물론. 내가 아이돌이 아닌 만큼 아이돌 E스포츠 선수권 대회에 선수로 나가는 것은 아니다.

    코치.

    그것이 나의 포지션이었다.

    아이돌들이 대회에 나가서 좋은 성적을 거둘 수 있게끔 훈련시키는 것이 나의 역할이다.

    아이돌 E스포츠 선수권 대회(줄여서 아E대)는 시청률도 높고 팬덤도 두텁기에 모든 아이돌들의 선망의 대상이 되는 프로그램이었다.

    아이돌들은 이 프로그램에 출전할 자격을 얻기 위해서 박 터지게 신경전을 벌인다.

    어떻게 어떻게 출전권을 얻는다고 해도 그 뒤가 문제다.

    관중석의 자리가 얼마나 배분되는지가 중요하다.

    가능한 많은 관객석을 확보해야 가능한 많은 팬들을 입장시킬 수 있고 그래야 응원 규모도 커지기 때문이다.

    응원 규모가 커져야 방송 분량을 많이 잡을 수 있는 것은 당연한 사실이다.

    때문에 아이대 촬영장에서는 늘 연예인 팬덤들끼리의 세력 다툼이 벌어지곤 하는 것이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결국 아이돌 본인의 게임 실력이었다.

    좌석도 많이 배정받고 팬덤도 크다고 한들, 정작 게임을 잘하지 못하면 방송 분량을 챙길 수 없다.

    그렇기에 게임을 플레이하는 아이돌 본인의 게임 실력이 가장 중요했다.

    그래서 많은 연예기획사들이 아이대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기 위해 잘 나가는 랭커나 프로게이머들을 코치로 고용하여 소속 아이돌들을 훈련시키는 것이다.

    이것은 코치가 되는 프로게이머들에게도 좋은 제안이었다.

    막대한 급료도 급료지만 무엇보다 커리어가 된다.

    더 급이 높은 기획사에서 연락이 올수록 그 프로게이머의 급도 달라진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지금 최고의 대우를 받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나에게 러브콜을 보낸 이들은 무려 대한민국 최고의 연예기획사 MS엔터였으니까.

    “인터넷 방송을 한 것만으로도 이런 곳에서 스카웃을 받을 수 있다니. 세상 참 좋아졌어.”

    나는 차를 지하주차장에 대며 중얼거렸다.

    이윽고.

    주차장을 나와 사옥 1층 로비로 들어오자 나를 마중 나와 있는 사람이 보였다.

    단정한 정장차림의 여성이었다.

    “안녕하세요. 총괄비서 김애리입니다. 이어진 씨 맞으신가요?”

    30대 정도로 보이는 젊은 여자였지만 사람을 대하는 것에서는 꽤나 노련함이 묻어났다.

    그녀는 나를 데리고 사옥 깊은 곳으로 향했다.

    “대표님과 3시 약속이셨죠? 약간 빨리 오셨네요.”

    “네. 제가 원래 조금 일찍 일찍 다닙니다.”

    “잘 된 일이네요. 저희 대표님께서 시간 약속에 좀 엄격하신 분이거든요. 상대방이 지각하는 것을 좀체 용납 못하시는 분이라…….”

    비서의 말을 들어 보니 꽤나 엄격한 사람 같다.

    나는 김애리를 따라 긴 복도를 걸었다.

    MS의 사옥은 방문자의 기를 죽여 놓을 정도로 크고 화려했다.

    내가 걷는 긴 복도의 양편에는 커다란 연습실이 있었는데 그 안에서는 잘생기고 예쁘고 어린 친구들이 노래와 춤을 연습하고 있는 광경이 보인다.

    ‘와, 다들 반짝반짝거리네.’

    나는 연습실 창문을 흘끗흘끗 바라보며 감탄했다.

    어느 누구 하나 잘생기지 않은 사람이 없다.

    TV에서 봤을 때 남자들은 다 기생오래비 양아치 같이 생겼고 여자들은 다 인조인간처럼 똑같이 생겼다고 생각했는데…큰 오산이었다.

    실제로 본 그들은 정말 눈이 떨어지지 않을 정도로 잘생겼다.

    심지어 무대에 오르기 전, 화장을 하지 않은 얼굴이 훨씬 더 낫다고 생각될 정도로 맑고 싱그러움으로 빛나고 있었다.

    ‘진짜 별세계에 온 기분이군.’

    특유의 아싸본능이 발동해 조금 움츠러든다.

    나는 조용히 비서의 뒤를 따라 발걸음만 옮겨 놓을 뿐이다.

    바로 그때.

    “…음?”

    비서가 잠시 멈춰 섰다.

    그녀를 따라 걷던 나도 영문을 모른 채 자리에 멈췄다.

    “…?”

    고개를 들자 비서의 발걸음을 막은 광경이 눈에 들어온다.

    여자 아이돌 그룹으로 보이는 열두 명이 복도에 일렬로 서 있었다.

    하나같이 차렷 자세를 취한 채 바짝 긴장해 있는 표정들.

    그리고 그 앞에는 여리여리한 몸매의 한 여자가 팔짱을 낀 채 못마땅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나는 그녀의 신상을 한 눈에 알아보았다.

    ‘아, 크레파스의 리더 이연지네.’

    크레파스는 7인조로 된 걸그룹으로 MS에서 한창 잘 나가고 있는 인기 아이돌이다.

    그중에서 이연지는 예쁜 외모와 청순한 이미지로 한창 주가가 높다.

    …하지만?

    지금 내 눈앞에서 후배 아이돌들을 갈구고 있는 이연지는 TV속의 이미지와는 거리가 멀었다.

    “아오, 이 X발 X들을 그냥! 내가 선배가 연습실 들어오면 눈 깔고 바로 나가라고 했어 안 했어? 확 이 XX. 그리고 너네 선배가 우스워? 인사는 90도 이상으로 허리 굽히랬지? 어? X냐?”

    후배들은 이연지의 시퍼런 서슬 앞에 감히 고개도 들지 못한 채 울상을 짓고 있다.

    그때.

    “오오, 선배님 안녕하심까!”

    남자 아이돌 몇 명인가가 이연지를 향해 인사를 건네 왔다.

    허리는 굽히다 만 채로 장난스럽게 인사하는 모양새.

    하지만 이연지는 전혀 딴판인 태도로 인사를 받아 주었다.

    “어머~ 안녕 얘들아? 연습실 쓰게? 그냥 써도 돼, 나 이제 다 썼어~”

    보이 그룹 후배들에게는 굉장히 살갑게 대하는 이연지.

    하지만 걸그룹 후배들에게는 가차 없다.

    온갖 쌍욕이란 쌍욕은 다 해대며 군기를 잡는 그녀를 보자 크레파스에 대한 환상이 탁 깨지는 느낌이었다.

    그때.

    “…응?”

    이연지와 나의 시선이 한데 마주쳤다.

    비서가 당황하는 것도 무시한 채, 그녀는 나에게 틱 말을 걸었다.

    “넌 뭐냐? 신입? 왜 인사 안 하냐? 나 몰라?”

    나를 아이돌 연습생으로 본 것일까?

    ‘그러고 보니 나는 이제 더 이상 35살이 아니구나.’

    그렇다. 회귀를 했으니 나는 이제 20대 초반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아이돌 연습생으로 보는 건 좀…너무…너무 고맙잖아.’

    내가 대답은 안 하고 혼자 흐뭇해하고 있자 이연지는 눈살을 확 찌푸렸다.

    “근데 이 X신이 정신 나갔나. 야, 선배 봤으면 빠딱 튀어 와서 인사를 해야 할 것…!”

    “저 연습생 아닌데요?”

    이연지가 폭발하기 전에, 나는 손바닥을 들어 그녀의 말을 잘랐다.

    그러자 이연지는 아주 조금 당황했다.

    “뭐야? 후배 아니야? 그럼 선배에요? 못 보던 얼굴인데, 무명이신가?”

    자기가 후배 위치가 되어도 저 무례함은 어디 가지 않는다.

    아무리 선배라도 어느 정도 인지도가 없으면 대우해 주지 않겠다는 의사가 물씬 풍겨 왔다.

    그때쯤 돼서, 비서인 김애리 씨가 중재에 들어갔다.

    “연지야. 이 분은 방송 관계자셔.”

    그러자 이연지의 표정이 180도 바뀌었다.

    짜증에 쩔어 있던 탁한 동공이 순식간에 방송에서나 보던 순한 양의 눈망울로 변한다.

    “어머, 어머, 어머, 오또케 해! 방송 관계자님이셨구낭~ 저는 그고또 모루구….”

    순식간에 뭉개지는 콧소리. 세상에 저런 태세전환이라니!

    내가 잠시 멍하니 있자 이연지는 총총걸음으로 이쪽으로 향해 다가왔다.

    그리고 두 손으로 내 한 손을 꼭 잡은 채 순진한 표정으로 물었다.

    “방송 일 하신다니 넘모 멋져용! 완전 젊어 보이시는데 헤헤. 실례지만 어디 방송국에서 나오신 거예요? KSB? MCB? SSB? PD님이신 거죠? 몇 년 차세요? 직급은?”

    아니 에이프리카인데?

    나는 툭 내뱉으려다가 그냥 조곤조곤 설명했다.

    “그냥 1인 방송국이에요. 인터넷 방송이요.”

    그러자.

    이연지는 2차 태세전환을 보였다.

    순망한 눈망울에 급격히 백태가 낀다.

    그녀는 표정으로 확 구긴 채 잡았던 내 손을 팽개쳐 버렸다.

    그리고는 김애리 총괄비서를 보며 확 짜증을 냈다.

    “아 뭐야! 지금 나랑 장난해요!?”

    김애리 총괄비서는 안경이 흘러내린 것도 모를 정도로 당황하고 있었다.

    이 차분해 보이는 사람을 이렇게 허둥거리게 만들 정도로 이연지의 태도는 무례한 것이었다.

    “여, 연지야. 이 분은 개인방송계에서 엄청 대단하신 분이야. 대표님께서도 특별히 모셔 온….”

    “에이. 그래봤자 개인방송이잖아요. 난 또 하다못해 케이블 방송이라도 되는 줄….”

    이연지는 손사래를 치더니 우리를 무시하고 옆으로 홱 스쳐 지나간다.

    “저 이만 가 볼게요. 이따가 ‘예능 출연 건’ 때문에 대표님 면담 있거든요.”

    자기 할 말만 하고는 홱 떠나가 버리는 이연지였다.

    “…허.”

    나는 이연지의 뒷모습을 보며 혀를 찼다.

    연예인들이 인터넷 방송 스타를 알게 모르게 무시하는 경향이 있다고는 들어 알고 있었는데 설마 이렇게까지 극단적인 사례를 직접 보게 될 줄이야.

    문득 아까 오던 길에 만났던 초등학생 무리가 떠올랐다.

    ‘자라나는 새싹들이 그렇게 좋아하는 게 인터넷 방송인데…저렇게 무시만 하다가는 오래 못 가지.’

    장강의 앞 물결이 뒷 물결을 밀어낸다고 했다.

    어린 세대들이 좋아하는 콘텐츠를 마냥 2류, 3류로 무시했다가는 1류의 자리를 지속할 수 없게 될 것이 분명하다.

    ‘…크레파스가 나중에 어떻게 되더라?’

    나는 앞으로의 미래를 알고 있다.

    회귀 전, 크레파스는 꽤 잘 나갔던 신인 걸그룹이었기에 분명 근황에 관한 기사들도 많이 봤었다.

    …하지만 어느 시점부터 메스컴에 전혀 모습을 보이지 않게 되어서 기억이 잘 안 난다.

    아이돌에 대한 사실은 그닥 관심사가 아니었기에 머릿속에서 떠오를락 말락 아주 답답했다.

    그때.

    “죄송합니다, 어진 씨. 약속시간에 늦을 것 같으니 일단 대표실부터 얼른 가시죠.”

    김애리 총괄비서는 미안하다는 어조로 나를 불렀다.

    나는 생각을 멈추고는 찜찜한 기분으로 그녀를 따라 몸을 돌렸다.

    하지만.

    그것이 끝이라고 생각한 것이 오산이었다.

    대표실에서 마주하게 된 광경은 그보다 더 찜찜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