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닳고닳은 뉴비-243화 (243/1,000)
  • 244화 아이돌 E스포츠 선수권 대회 (1)

    “로그아웃.”

    [음성 인식으로 보안 해제]

    .

    .

    [동기화 중입니다……]

    .

    .

    [동기화 완료!]

    -띠링!

    [로그아웃 하셨습니다.]

    [다음에 또 와 주세요.]

    .

    .

    나는 게임 캡슐에서 몸을 일으켰다.

    눈을 뜨자 익숙한 천장이다.

    “휴우.”

    해묵은 숨결이 이제야 폐에서 빠져나왔다.

    이게 얼마 만의 로그아웃이냐!

    그동안 세이브 포인트를 찾지 못해서 계속 접속해 있었던 것을 생각하면 조금 멀미가 나려 한다.

    그래도 이제는 천공섬을 발견했으니 거기서부터는 세이브가 가능했다.

    운석에서 로그아웃하면 그대로 터미널로 돌아가 버리게 되지만 일단 천공섬에 당도한 이상 로그인 로그아웃은 물론이요 워프 포인트를 지정하는 것도 가능해진 것이다.

    “물론 텔레포트 스크롤이란 게 너무 비싸서 잘 사용하지 않기는 하지만…….”

    뭐 그렇다고 해도 드디어 안전한 로그아웃이 가능하게 되었다는 점에서 큰 부담을 던 기분이었다.

    나는 고개를 돌려 방금 전까지 내가 들어있던 캡슐을 내려다보았다.

    3세대 VR.

    마사지 의자처럼 생긴 외형에 헬멧과 서브 모니터가 달려 있는 이 캡슐은 현재까지 발매된 최신 버전이다.

    “3세대 캡슐부터는 자동청소 기능이 생겼지 참.”

    내가 캡슐 팔 부근의 버튼을 누르자 캡슐에 얇은 막이 덮이더니 안에서 노즐이 튀어나왔다.

    위이잉- 뽈뽈뽈뽈…

    이내 자동세차를 하는 것처럼 특수 용액이 뿜어져 나와 좌석 표면을 씻어 내린다.

    캡슐 속에 묻은 땀이나 각질 등을 한참이나 닦아 내던 특수용액들은 이내 캡슐에 연결된 배수관을 타고 꼴꼴꼴 빠져나갔다.

    그리고 이내 자동 건조 시스템이 발동했고 그 뒤로는 방향제가 뿌려진다.

    “1년 전만 해도 이걸 일일이 닦아 줘야 했는데 말이지.”

    나는 쓰게 웃으며 캡슐을 탁탁 두드렸다.

    물론 나는 이 캡슐을 3세대뿐만이 아니라 4세대, 5세대, 6세대, 7세대, 8세대…나아가 15세대까지 체험해 본 바 있었다.

    자동청소기능쯤이야 나에게는 너무도 당연한 것이었지만 지금 현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확실히 획기적인 것이리라.

    하지만.

    “새로운 버전이 다 좋은 건 아니지.”

    나는 3세대 캡슐을 뒤로하고 거실 구석을 향했다.

    그곳에는 검은 천으로 덮여 있는 무언가가 있었다.

    펄럭-

    검은 천을 걷어 내자 그 안에서 또 다른 캡슐이 모습을 드러냈다.

    “겨우 구했다. 0세대.”

    나는 벌써 낡은 티가 나는 이 캡슐을 내려다보며 뿌듯한 표정을 지었다.

    0세대 캡슐.

    이 캡슐은 베타 테스트에 참여했던 참가자들이나 개발진들이 사용하던‘프로토타입(Prototype)’으로 말하자면 시제품인 셈.

    본격적인 상용화에 앞서 성능을 검수, 개선하기 위해 기본 기능 중에서도 핵심 기능만 넣어 제작한 기본 모델인 것이다.

    …이걸 내가 어떻게 손에 넣었냐고?

    “딥웹 경매에서 떨이로 나온 것을 잽싸게 업어 왔지.”

    나는 캡슐을 내려다보며 얼마 전의 일을 회상했다.

    미국 캘리포니아 주 오렌지카운티의 어바인 시 108번지.

    이곳에 살던 한 일가족이 어느 날 미친 사이코 연쇄살인마에게 전부 살해당했고 그 가족은 딱히 친척이나 지인들이 없던 차라 집에 있던 물건들이 전부 경매에 부쳐졌다고 한다.

    대부분이 곰팡이와 수증기에 침식당해 못 쓰게 된 상태였지만 어찌 된 영문인지 이 녀석만큼은 피해가 적었다고 들었다.

    …뭐 전부 신뢰도 낮은 카더라이긴 하지만 말이다.

    “연쇄살인은 무슨.”

    나는 콧방귀를 뀌었다.

    하지만 경매에 나왔던 것을 보면 망자들의 유품인 것만은 진짜인 모양이다.

    아마도 정부에서 망자들의 유품을 수거하던 도중 이 0세대 캡슐을 그냥 골동품으로 취급해 경매에 내놓아 버린 것 같았다.

    그렇게 이 0세대 캡슐은 여기저기를 돌고 돌았지만, 그렇다고 딱히 한 주인에게 오래 소유되었던 적은 없었던 듯했다.

    왜냐하면 새로 나오고 있는 캡슐들의 부가 기능이 워낙에 빵빵했기 때문이다.

    자동 혈압 측정, 컨디션 조절, 안마, 음악 감상, 자동 청소, 온도 조절, 저렴한 전기세….

    더 좋은 버전의 캡슐로 바꾸지 않을 이유가 하나도 없다.

    하다못해 수집용으로라도 소유하려면 적어도 캡슐의 상태가 깨끗해야 하는데 이 0세대 캡슐은 그렇지도 못하다.

    외형상으로 보면 팔걸이 부근이 잔기스가 많았고 지워지지 않는 얼룩도 꽤나 있다.

    더군다나 사람의 피가 말라붙은 것으로 보이는 자국들도 군데군데 남아 있었다.

    그 핏자국을 보고 있노라면 이 0세대 캡슐에 얽힌 ‘캘리포니아 주 오렌지카운티의 어바인 시 108번지의 괴담’이 마치 진짜처럼 느껴질 정도다.

    위와 같은 이유 말고도 여러 이유들이 더 있었지만…아무튼 그 결과, 이 캡슐은 제대로 된 주인을 찾지 못하고 딥웹 여기저기를 헐값에 떠돌다가 나에게까지 오게 된 것이다.

    물론 내가 이 수집용으로의 가치가 전혀 없는 0세대 캡슐을 보자마자 덜컥 업어 온 것은 다 그만한 이유가 있어서이다.

    “천공섬 공략 때 꼭 필요했는데, 마침 매물이 나와 줘서 다행이야.”

    천공섬 레이드는 0세대 캡슐로 해야 수월하다.

    다른 세대, 다른 버전의 캡슐이 아니고 오직 ‘0세대 프로토타입’으로 해야 한다.

    이 공략이 발견되기까지는 아직 몇 년이라는 시간이 남았다.

    물론 나는 그 전에 혼자서만 이 공략을 활용해 이익을 극대화할 계획이고 말이다.

    “어디 꿀 좀 빨아 볼까?”

    나는 0세대 캡슐의 머리 부분을 툭툭 치며 웃었다.

    *       *       *

    헬스장.

    “자! 마지막으로 한 번만 더 들게요! 자 회원님! 마지막! 어이쿠 잘하셨어요! 근데 지금 자세가 약간 흔들렸거든요? 반 번으로 쳐 드릴게요. 자 마지막 반 번! 마지막! 진짜 마지막! 오오오 그렇지! 더더더! 더 올리세요! 더 드세요 회원님! 오케이! 자 잘하셨습니다. 지금 이 기세로 진짜 딱 한 번만 더 들어봐요 우리. 자! 진짜 할 수 있어요! 마지막 한 번! 한 번만!”

    열정적인 PT 트레이너가 내 옆에 바싹 붙어 연신 소리친다.

    나는 덤벨을 들어 올리며 온 몸을 바들바들 떨었다.

    ‘이 자식은 마지막이라는 말의 뜻을 모르나?’

    결국 나는 ‘마지막 한 번’이라는 소리를 들은 이후에 6번의 프레스를 더 하고 나서야 트레이너로부터 해방될 수 있었다.

    “……후.”

    나는 땀을 닦고는 브로콜리와 케일, 블루베리와 닭가슴살, 그리고 고등어를 갈아 넣은 주스를 마셨다.

    그것을 본 트레이너는 오만상을 찌푸린 채 물었다.

    “저 회원님. 그거 맛있나요?”

    “맛으로 먹나요. 그냥 몸에 좋으니까 먹는 거지.”

    맛있는 걸 먹는 것도 좋지만 대체로 그런 것들은 일에 방해가 된다.

    일단 시간이 아깝고 또 몸이 나빠져서 게임에 대한 집중력이 떨어지면 큰일 아닌가?

    때문에 나는 회귀 이후로 항상 악식을 하며 약해지려는 경각심을 다잡고 있었다.

    ‘복권에 당첨되고도 몇 년 뒤에 파산하는 사람이 있고 그 재산을 더욱 불리는 사람이 있지. 나는 어느 쪽일까?’

    언제나 약해지지 않도록 생각 또 생각한다.

    공부도 게을리하지 않고 있었다.

    언제나 운동을 하면서 교양 방송을 듣거나 독서를 한다.

    살아남기 위해서,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가기 위해서 나는 언제나 늘 필사적이었다.

    근력운동을 끝마친 뒤에는 수영장에 가서 수영을 한다.

    그것마저 끝나고 집으로 올라오면 어느덧 던전 레이드를 돌 시간…이다만.

    “하지만 당분간은 휴가!”

    나는 게임 캡슐을 외면한 채 소파에 앉았다.

    이번에 천공섬 공략을 앞두고 한동안 로그아웃해 있는 것은 그간 소홀히 했던 현실의 일들을 관리하기 위함이다.

    게임에 접속해 있는 동안 메일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다.

    마치 곡괭이와 망치를 든 광부처럼.

    나는 메일함에 그득그득 쌓인 메일들 중에 읽어야 할 것과 그러지 않아도 될 것들을 가려 놓기 시작했다.

    “어디 보자…동영상 수익은 입금되었고…광고료도 입금 완료고…저번에 예능 출연했던 건 아직 출연료가 안 들어왔네. 다음 달이던가? 개인사업자에서 법인으로도 전환 완료했고…그럼 이번에는 5월 종소세가 아니라 3월 법인세를 내겠네. 세금 계산할 시간이 더 촉박해졌어. 뭐야 이건, 정모? 또 해? 절대 안 나가.”

    나는 메일들을 하나하나 가려냈다.

    개중에는 국K-1팀의 엄재영 감독에게 온 메일도 있었다.

    조만간 한번 연습실 오라는 내용이었는데 분위기가 제법 진지했다.

    “그러고 보니 조만간 아시아 챔피언스 리그가 열릴 시즌이로군.”

    나는 머릿속의 기억을 쭉 정리해 보았다.

    아시아 12개국이 모여 개최하는 ‘아챔’ 한국 프로리그보다 훨씬 더 거대한 규모로 펼쳐지는 첫 세계대항전이다.

    “이제 슬슬 얘기 나올 때도 됐지. 미리 준비해 놔야겠다.”

    나는 엄재영 감독이 메일을 보낸 것만으로도 그의 의도를 모두 알 수 있었다.

    그때.

    “…응?”

    내 눈에 조금 새로운 분위기의 메일이 띈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메일‘들’ 이었다.

    짧은 시간 간격을 두고 수많은 메일들이 우르르 붙어있다.

    전부 비슷한 느낌을 풍기는 메일들이다.

    <안녕하십니까 스트리머 ‘고인물’님. PYJ엔터테인먼트의 기획부장 강철현입니다….>

    <[계약 문의]안녕하세요 고인물 님^^ 방송 늘 잘 보고 있습니다! 저희는 히트빅 엔터의….>

    <안녕하세요? GY엔터테인먼트 홍보부 팀장 김진혁입니다. 스트리머 ‘고인물’님께 좋은 제안이 있어….>

    .

    .

    “뭐야? 무슨 연예기획사에서 이렇게 연락이 많이 왔지?”

    설마 내 외모를 보고 아이돌 데뷔를 권하려는 걸까? 이것 참 곤란한데….

    나는 눈을 가늘게 뜨고 메일 목록들을 살폈다.

    난다긴다 하는 유명 엔터테인먼트 회사들이 죄다 연락을 해 왔다.

    따각따각-

    나는 개중에 가장 유명한 회사인 MS타운 엔터테인먼트가 보낸 메일을 더블클릭했다.

    그러자 이내 꽤나 장문의 메일 내용이 떠올랐다.

    …내 방송을 잘 보고 있다는 내용에서부터 온갖 사탕발림들이 가득한 내용.

    그리고 마지막에는 본론이 짧게 기입되어 있었다.

    <귀하를 ‘아이돌 E스포츠 대회’ 전담팀 팀장으로 모시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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