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닳고닳은 뉴비-242화 (242/1,000)

243화 한 배를 가르고 나온 사이 (6)

번쩍! 꽈콰쾅!

무시무시한 번개가 적란운 속의 암흑천지를 백색으로 물들였다.

작살처럼 내리꽂히는 거대한 번개 줄기.

그것은 하늘과 지상을 이으려는 것처럼 곧장 아래로 뻗어 나간다.

문제는 그것이 한 줄기가 아니라는 것이다.

쾅! 콰콰쾅! 번쩍! 쿠르릉…

수백, 수천, 어쩌면 수만.

엄청나게 많은 수의 벼락 줄기들이 하늘에서 떨어져 내린다.

그것들은 하나하나가 굵은 창살이 되어 커다란 감옥을 만들고 있었다.

-띠링!

<히든 던전 ‘뇌옥(雷獄) 불가해지대(不可解地帶)’에 입장 하셨습니다>

<최초 방문자의 이름이 아카식 레코드에 기록됩니다>

알림음은 뇌옥의 끝을 가리키고 있다.

뇌옥 초입에서 만났던 몬스터 악몽아귀의 괴랄한 난이도를 감안한다면 이곳은 더욱 더 위험한 구역이라는 추측이 자연스럽게 가능해진다.

아니나 다를까.

수없이 많은 번개로 이루어진 창살 사이로 무언가 거대한 것이 몸을 일으켰다.

우-우우우……

천천히 융기해 오르는 그것.

그것은 하나의 대류현상이라고 봐도 무방했다.

소용돌이 속의 구름이 뭉툭하게 빚어지며 하늘 전체의 지형을 크게 변화시키고 있었다.

하지만 그 구름의 형태가 지나치게 인간의 것과 같다면, 그리고 그 크기가 온 하늘을 뒤덮을 정도라면.

…그렇다면 뭔가 심상치 않은 것임에 틀림없지 않겠는가?

드레이크는 운석의 옆으로 뭉쳐들고 있는 광대한 구름바다를 바라보며 얼떨떨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사람?”

눈앞에 보이는 구름은 정말 사람의 형태를 하고 있었다.

그 크기가 무시무시할 정도로 크다는 것을 빼면 영락없는 사람의 모습이다.

광대한 구름 덩어리는 두 손을 뻗어 번개의 창살을 쥐었다.

그리고 마치 면회객을 들여다보는 죄수처럼 창살 사이로 고개를 들이밀었다.

번개들이 만드는 창살 때문에 이리로 바짝 다가올 수는 없는 듯 보였다.

구름 속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너희들은 누구냐.]

허공에 웅웅 울리는 목소리라서 알아듣기가 쉽지 않았다.

드레이크와 윤솔이 멍한 표정으로 허공만 올려다보는 사이, 나는 바로 대화에 응했다.

“우리들은 여행자다! 천공섬으로 가고 있지!”

그러자 구름은 천천히 휘몰아치며 완전한 형태를 갖추었다.

거대한 몸, 뭉게구름처럼 늘어진 수염, 두 눈에서 뿜어져 나오는 번개 불빛.

그것은 영락없는 거인(巨人)의 모습이다.

‘거인 골리앗’

그의 머리 위에 뜬 글자만이 그의 정체를 알려주고 있었다.

놀랍게도 그는 NPC(Non-Player Character)였던 것이다!

“…….”

나는 바짝 긴장한 얼굴로 눈앞에 있는 NPC를 살폈다.

우리의 옆에 나타난 이 거대한 구름 거인은 ‘용’이나 ‘악마’의 진영을 선택한 인간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다.

이윽고, 골리앗은 우리를 향해 말을 건네왔다.

[나는 아주 오래 전, 악마에게 대들었다는 죄목으로 이곳에 수감되었다. 육신은 오래전에 사라졌지만 나는 아직도 이곳에 있지. 내가 보이는가?]

하늘 위, 구름 속에 존재하는 감옥.

먹구름의 벽과 번개의 창살이 이 거대한 거인의 영혼을 죽어서까지 속박하고 있는 것이다.

그는 천둥처럼 웅웅 울리는, 하지만 꽤 자조적으로 들리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언제인가부터 생각하기를 그만두었기에 시간을 보내는 것은 문제가 없지. 하지만 가끔 상념에 빠질 때도 있어. 부인과 딸을 한 번이라도 볼 수만 있다면…그렇게만 된다면…뭐, 그런 덧없는 희망이지…아니, 망상일 뿐인가.]

그 순간 우리들의 귓가에 공통적으로 들려오는 알림음 소리가 있었다.

-띠링!

<히든 퀘스트를 발견하셨습니다>

<히든 퀘스트 ‘영원한 상봉(相逢)’>

<히든 퀘스트 발생 조건: ‘악마’와 ‘용’ 중 어느 진영에도 속하지 않은 자>

<히든 퀘스트 완료 조건: 구름 거인 골리앗이 아내와 딸을 만날 수 있게끔 도와주자>

<※히든 퀘스트 ‘500년 전에 부친 편지’를 수행한 이만이 수행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

이것은 연계 퀘스트!

뜻하지 않게 발견한 수확이다.

나는 윤솔을 돌아보았다.

“솔아! 네 덕에 발견했던 히든 피스가 여기에 쓰이는 모양이야!”

“어엇!? 정말? 나 도움 된 거야? 야호!”

윤솔은 저도 모르게 두 팔을 들어 만세를 외쳤다.

나는 인벤토리를 열고 아이템 하나를 꺼냈다.

-<영혼의 천칭 접시> / ?

-보이지 않는 것을 담아 잴 수 있는 천칭 접시.

양쪽의 무게를 균등하게 맞추려는 성질이 있다.

-융합 (특수)

윤솔과 함께 유령선 안에서 방탈출 게임을 하고 얻은 결과물이었다.

그리고 이 점은 모두가 알고 있겠지만, 이 아이템에는 편지 한 장이 동봉되어 있다.

<나의 오랜 벗 골리앗에게>

-골리앗, 자네가 악마 놈들의 간교한 계략에 빠져 하늘에 갇힌 지도 어느덧 수백 년이 지났군.

나는 오늘도 악마와 싸우며 시간을 보내고 있어. 이제는 모두 죽고 나 혼자만이 남았다네.

모든 죽음은 애석한 것이지만, 특히나 자네의 부인과 딸의 죽음은 각별히 더 애석했다네.

그 누구보다 용맹스럽던 자네의 가족들도 쏜살같은 시간만은 이겨내지 못했어.

그리하여 나는 그 둘의 영혼을 접시에 담아 자네에게로 보내려 하니 그곳에서라도 일가족 상봉을 하도록 하게.

부디 하늘에 갇혀 있을 자네에게 이 편지가 닿을 수 있었으면 좋겠군.

P·S-

더러운 인간 놈들이 제수씨와 조카의 영혼을 담은 그릇을 노리기에 혼을 좀 내 줬지. 놈들의 배 편에 제수씨와 조카의 영혼을 담아 자네가 갇혀 있는 곳으로 보내겠네.

-거인국의 마지막 왕 이스비브놉-

편지 내용 설명으로 다소 분량을 잡아먹었지만 이건 진짜 어쩔 수 없는 일.

봐줘야 되는 부분이다.

나는 천칭 접시와 편지를 들어올렸다.

그러자 이내 히든 퀘스트가 해결되었다는 알림음이 들려왔다.

게이머라면 모두 공감할 수 있는 즐거움.

퀘스트를 받자마자 바로 클리어하는 것은 언제나 짜릿한 쾌감을 준다.

-띠링!

<히든 퀘스트 ‘영원한 상봉(相逢)’를 완료하셨습니다>

<보상이 지급됩니다!>

<이름을 남기시겠습니까?>

알림음이 끝나자마자 나의 두 손에 올라가 있던 접시 위에서 희뿌연 무엇인가가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츠츠츠츠츠츠…

그것은 한 여인과 소녀의 영혼이었다.

구름 거인 골리앗은 그들을 보고는 반색을 했다.

[오오! 나의 피앙새! 그리고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내 딸아!]

…확실히 저 정도 크기라면 딸을 눈에 넣을 수도 있을 것 같다.

아마 먼지가 조금 들어간 정도의 아픔밖에는 느끼지 못하겠지?

세 가족은 이내 한 곳에서 서로 뒤엉킨다.

셋 모두 형체가 없어서 서로를 만질 수는 없었지만.

한편.

골리앗은 편지를 읽고는 복잡한 표정을 지었다.

[나의 벗 이스비브놉이 그토록 오랜 시간 동안 혼자 싸우고 있었을 줄은 몰랐군. 애석하고 원통한 일일세.]

그는 나를 돌아보고는 진중한 음성으로 말했다.

[…여행자여, 혹시라도 나중에 내 벗을 만나게 된다면 나의 답장을 전해 줄 수 있겠는가.]

그는 나에게 마지막 히든 퀘스트를 건넸다.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이내 구름 거인 골리앗은 내가 건넨 편지지의 뒷장에 번개로 글씨를 새겼다.

-<뇌옥 죄수의 답장> / D

-구름 거인 골리앗이 보낸 답신.

‘거인국의 마지막 왕이자 나의 절친한 벗 이스비브놉에게’ 라고 적혀 있다.

내가 편지를 받아들자 또다시 히든 퀘스트를 알리는 알림음이 떴다.

-띠링!

<히든 퀘스트를 발견하셨습니다>

<히든 퀘스트 ‘거인국으로 가는 길’>

<히든 퀘스트 발생 조건: ‘영원한 상봉’ 퀘스트를 선행한 자>

<히든 퀘스트 완료 조건: 거인 왕 이스비브놉에게 구름 거인 골리앗의 편지를 전해주자>

<※거인국 입장 시 거인의 몸 조각을 소유하고 있어야 합니다>

‘이건 분명 예전에도 들은 적이 없는 퀘스트로군.’

나는 퀘스트 내용을 확인하고는 침음성을 삼켰다.

난이도도 보상도 밝혀진 것이 없는, 완벽하게 베일에 감추어진 히든 퀘스트다.

회귀 전의 기억을 아무리 뒤져봐도 이런 비슷한 종류의 퀘스트는 없었다.

애초에 ‘거인국’이라는 맵 자체가 처음 듣는 생소한 지명이었으니까.

‘기억을 조금 더 더듬어 봐야겠다.’

내가 퀘스트 내용을 확인한 뒤 상태창을 끄자, 그제야 구름 거인 골리앗이 보상을 건네 왔다.

[나는 오랜 시간 동안 사슬에 매여 있었지. 하지만 나중에 가서는 오히려 내 스스로 사슬을 붙잡고 있었어. 가족을 만난 내겐 이제 필요 없는 것일세.]

그가 뻗어온 커다란 손바닥 위에는 커다란 쇠사슬이 놓여 있었다.

그것은 내 손이 닿자 점차 줄어들어 아주 작은 쇠줄로 바뀌었다.

-<영혼의 천칭 사슬> / ?

-보이지 않는 것을 묶어 둘 수 있는 천칭줄.

양쪽의 무게를 균등하게 맞추려는 성질이 있다.

-융합 (특수)

전에 얻은 천칭 접시와 비슷한 느낌의 아이템이다.

나는 골리앗의 부인과 딸이 빠져나가고 텅 빈 접시들을 손에 들었다.

‘…혹시?’

혹시가 아니라 누가 봐도 이 두 아이템은 서로 노골적으로 연관이 있어 보인다.

나는 천칭 접시와 천칭 사슬을 한 곳에 가져갔다.

아니나 다를까.

<……아이템 융합 중입니다. 전원을 끄지 마세요>

예전에 아카오니와 아오오니의 발가죽을 서로 융합했을 때와 똑같은 메시지가 떠올랐다.

천칭 접시와 천칭 사슬은 원래 하나였던 것처럼 서로 얽혀들었다.

꽤나 기대되는 히든 피스였다.

[…그렇다면 이제는 헤어질 시간이군. 나의 편지를 꼭 좀 부탁하네.]

구름 거인 골리앗은 이별 전 마지막으로 선물을 주었다.

그는 부인과 딸을 끌어안은 채 몸을 크게 일으켰고 그 때문에 폭풍과 번개를 수반하던 모든 먹구름들이 그의 몸을 따라 사라져 버렸던 것이다.

파앗!

기적이라도 일어난 듯했다.

눈 깜짝할 사이에 모든 악천후가 사라져 버렸다.

태양이 내리쬐는 청명한 하늘, 흰 뭉게구름들이 만들고 있는 구름길이 눈앞에 뻥 뚫린 것이다.

앞으로 쭉 펼쳐져 있는 우리의 앞길에는 한 점의 먹구름이나 빗방울, 번개 자락도 없었다.

오로지 순풍과 양광만이 가득한 비행로.

그리고.

“아앗! 저기!”

깜짝 놀라 외치는 윤솔의 목소리.

그녀가 손가락을 뻗어 가리키는 곳에는 작은 점 하나가 보인다.

푸른 하늘, 흰 구름 사이에 찍혀있는 한 개의 녹색 점.

운석은 그곳을 향해 빠르게 접근하고 있었다.

거대한 먹구름의 바다를 넘어.

천공섬 ‘쿼바디스’를 향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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