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닳고닳은 뉴비-240화 (240/1,000)
  • 241화 한 배를 가르고 나온 사이 (4)

    쾅! 콰콰쾅! 펑!

    여기저기에서 폭음이 터져 나오는 동토(凍土).

    나와 윤솔은 반쯤 무너지다 만 시멘트 벽 뒤에 숨어 건너편을 엿보고 있었다.

    황량한 대지 위에 있는 한 초등학교.

    경찰들이 차벽을 세우고 이 초등학교를 둥글게 포위하고 있다.

    얼굴에 검은 복면을 쓴 사내들이 총기로 무장한 채 초등학생들을 인질로 잡고 있는 것이 보인다.

    핑핑핑- 퐁퐁퐁-

    초등학교 안에서 쏟아지는 총격에 비해 경찰들이 쏘는 총격은 비누방울처럼 약했다.

    또르르르…

    우리가 있는 곳으로 총알 한 발이 굴러왔다.

    윤솔은 그것을 집어 들고 눈을 동그랗게 떴다.

    “…이거 BB탄 총알이잖아?”

    테러범들의 총알은 진짜였지만 경찰이 쏘는 총알은 가짜다.

    나는 인상을 찌푸릴 수밖에 없었다.

    이곳은 드레이크의 기억 속. 그가 경찰을 보는 시선이 어떤 것인지 잘 알겠다.

    “이 나라 경찰들은 인질을 구할 의지가 없는가 보네.”

    나는 윤솔을 데리고 조용히 뒤로 돌아 학교 뒤의 산길로 진입했다.

    [من انت!?]

    [عندما تحرك يديك ، تقوم بالتصوير.]

    [أعطني ذلك.المرأة هي ممتلكاتي. ]

    몇몇 복면 사내들이 우리에게 총구를 들이밀었다.

    하지만 그보다 내 깎단이 움직이는 것이 훨씬 빨랐다.

    퍼퍽!

    나는 총을 든 이들의 머리통을 한 대씩 후려쳤다.

    그들은 마치 보자기 유령처럼 흐늘거리더니 이내 눈앞에서 사라져 버렸다.

    “잡몹들이었군.”

    경험치가 극미량 상승하는 것을 보니 별로 레벨이 높은 놈들은 아니다.

    안쪽으로 깊이 들어가야 정말 제대로 된 놈들이 나오겠지.

    나와 윤솔은 초등학교 깊숙한 곳으로 진입했다.

    몸에 폭탄을 두른 자폭병들이 달려들었지만 그 정도는 윤솔을 업고도 충분히 따돌릴 수 있다.

    퍽! 퍼억!

    나는 길을 가로막는 테러범들을 연신 걷어차며 위층으로 진입했다.

    폭탄 터지는 굉음과 비명, 총격 소리가 아래로 빠르게 멀어진다.

    그때.

    우리는 테러범들과 단신으로 싸우고 있는 한 남자를 만났다.

    드레이크. 그가 그곳에 있었다.

    콰긱…!

    드레이크는 쿠크리 한 정과 권총 한 정씩을 손에 든 채 계단을 오르고 있었는데 그가 한번 칼을 휘두를 때면 어김없이 한 명의 머리통이 절반으로 쪼개졌다.

    계단이 피로 물든다.

    난간에 덜 마른 빨래처럼 널려 있는 것들은 전부 테러범의 시체였다.

    타타탁-

    드레이크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위로 올라가 이내 한 교실로 들어갔다.

    “…출동 나오신 걸까?”

    윤솔은 내가 물었다.

    하지만 나는 고개를 저었다.

    예전에 드레이크가 말한 적이 있다.

    전역하고 집으로 돌아가던 길에 초등학교 테러범들과 마주쳤던 적이 있다고.

    당시에는 덤덤하게 말했었지만, 아무래도 그때의 기억은 드레이크 평생을 통틀어 최악의 경험이었던 듯싶다.

    이윽고.

    우리 역시 그의 뒤를 따라 교실 뒷문으로 고개를 내밀어 살폈다.

    드레이크는 한 떼의 인질범 무리들과 대치하고 있었다.

    “아이들을 내보내라. 그러면 목숨은 보장해 주겠다.”

    드레이크는 단호한 어조로 경찰의 뜻을 전달했다.

    교실의 아이들을 인질로 잡고 있던 테러범들은 망설이는 기색이다.

    그 중 하나가 드레이크를 향해 으르렁거렸다.

    [애들을 나가게 하는 동시에 우리도 나가겠다. 요구한 차량과 헬기를 대령하라. 그 전까지는 한 놈도 놓아 줄 수 없다고!]

    교실에 남은 인질범들의 수는 총 4명. 그들은 28명의 어린아이들을 향해 기관총을 겨누고 있는 상태였다.

    아이들은 하나같이 지친 표정이었다.

    개중에는 큰 상처를 입고 목숨이 왔다갔다 하는 아이들도 몇몇 보인다.

    이내, 범인들은 인질들을 위시한 채 교실 밖으로 나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는 놈들이 나오기 전에 이미 교실 문 앞에 점액을 쫙 깔아둔 상태였다.

    미끈-

    제일 먼저 나온 테러범이 순식간에 복도로 미끄러진다.

    [어엇!?]

    놈이 미처 비명을 지를 시간도 없었다.

    나는 눈 깜짝할 사이에 접근해 놈의 목에 구멍을 뚫어 버렸다.

    눈을 한 번 깜빡하기도 전에 벌어진 일이었다.

    [뭐, 뭐야 이 변태는!?]

    남은 세 명이 나의 등장과 복장에 두 번 놀란다.

    그들은 나와 초등학생들을 향해 기관총을 들어 올렸지만 소용없는 일이었다.

    왼쪽에서 드레이크가, 오른쪽에서 내가.

    두 명의 테러범은 순식간에 제압당했다.

    그리고 남은 놈은 하나.

    [으아아아악! 이 자식들 뭐야!]

    놈은 내가 아닌 아이들을 향해 기관총을 쏴 갈겼다.

    “쓰레기 같은 놈이네.”

    나는 구역질이 나려는 것을 겨우 참았다.

    테러범들은 자기들이 무슨 큰 뜻이라도 품고 있다는 듯 시끄럽게 떠들어 대지만…… 놈들이 하는 짓은 결국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아이들에게 피눈물을 내는 일일 뿐이다.

    나는 망토를 펼쳐 아이들을 끌어안았다.

    그리고 망토에 점액을 듬뿍 묻혀 총알들을 전부 미끄러지게 만들었다.

    동시에.

    “뒈져라.”

    드레이크가 손에 들고 있던 쿠크리를 집어던졌다.

    퍽!

    칼이 몇 개인가의 원을 그리며 날았고 이내 테러범의 수염 덥수룩한 머리통에 꽂혔다.

    하지만.

    [تَكْبِير!]

    놈은 그냥 죽지 않았다.

    죽기 직전 총을 버리고 품에서 폭탄을 꺼내든 것이다.

    푸쉬이이이익-

    폭탄에서 뿜어져 나온 것은 지독한 독가스였다.

    살에 닿는 것만으로도 피부가 녹고 근육이 괴사하는 무시무시한 독.

    “이런! 아이들이!?”

    드레이크는 재빨리 뒤로 물러났다.

    그는 모든 것을 다 팽개치고 아이들을 보듬었다.

    “달려! 건물 밖으로 나가야 해!”

    드레이크가 외치자 28명의 아이들이 서둘러 움직였다.

    윤솔 역시도 겁먹은 표정으로 물러났다.

    그때.

    탁-

    나는 윤솔의 손목을 잡았다.

    “괜찮아.”

    내가 품속에서 꺼내든 것은 ‘피카레스크 마스크’였다.

    윤솔은 내가 건넨 마스크를 뒤집어썼다. 피카레스크 마스크는 이래봬도 꽤나 마스크 본연의 기능에 충실하다.

    나는 맹독 특성을 보유하고 있었기 때문에 이런 독가스쯤은 알아서 정화 가능했다.

    “…….”

    “…….”

    나와 윤솔이 가만히 서 있는 뒤로, 드레이크는 28명의 아이들을 인솔해 가며 서둘러 내려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널브러진 시체들과 뭉게뭉게 피어오르고 있는 독가스를 보며 그 자리에 가만히 서 있었다.

    윤솔은 왜 이렇게 가만히 있는지 궁금하다는 듯한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았지만 굳이 입을 열어 물어보지는 않았다.

    쉬이이이이이이익…

    폭탄에서 뿜어져 나온 독가스는 어느덧 교실 안을 가득 채울 정도가 되었다.

    그것들은 마치 악몽 그 자체처럼 거대하게 넘실거린다.

    그때.

    바스락-

    검은 연기로 가득 찬 교실 구석에서 무언가 움직였다.

    “……엇!?”

    윤솔은 두 눈을 크게 떴다.

    교실 구석에 있는 캐비닛 뒤에서 무언가가 기어 나오고 있다.

    ‘그것’은 괴로운 듯 꿈틀거리고 있었다.

    손으로 목을 조르고 팔을 긁고 입을 벌려 절규한다.

    ‘그것’은 이내 비척비척 기어와 난간을 잡고 창문을 내다보았다.

    유리창 저 멀리 드레이크와 28명의 아이들이 옥상의 총격을 피해 경찰이 있는 쪽으로 달려가는 게 보인다.

    ‘그것’은 손으로 온몸을 긁으며 그 광경을 바라보고 있었다.

    바로 그때.

    “어-이!”

    창문 저 밑에서 고함 소리가 들려왔다.

    나와 윤솔은 검은 연기 사이를 헤치고 걸어가 창문 밑을 내려다보았다.

    그곳에는 빗발치는 총격에서 아이들을 지키느라 피투성이가 된 드레이크가 서 있었다.

    그는 만신창이가 된 몸으로 겨우겨우 버티고 선 채 외쳤다.

    “혹시 교실 안에 남아 있는 아이가 있었나!?”

    드레이크는 피가 굳어 잘 떠지지도 않는 눈을 들어 나를 바라보았다.

    “…….”

    나는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검은 연기 속에서 버둥거리던 것과 시선이 마주쳤다.

    죽음과도 같이 피어오르는 연기 속에서, 나와 그것은 한동안 서로를 쳐다본 채 말이 없다.

    나는 그것을 향해 한마디 했다.

    “……이제 그만 놔 주는 게 어때?”

    그러자.

    ‘그것’은 고개를 천천히 끄덕였다.

    그리고 어깨를 늘어트린 채 자리에 주저앉았다.

    작게 떨리는 몸. 흐느끼고 있는 것일까?

    “…가엾어라.”

    윤솔은 ‘그것’을 따듯하게 껴안아 주었다.

    그러자 교실 안에 가득하던 검은 연기가 점점 사그라지기 시작했다.

    나는 창문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그리고 나를 올려다보는 드레이크를 향해 고개를 저었다.

    “여기 남은 사람은 아무도 없어.”

    그러자.

    탁-

    드레이크는 그대로 그 자리에 주저앉아 버렸다.

    그는 두 손으로 피투성이가 된 얼굴을 짚었다.

    그리고 쓱쓱 몇 번 건조하게 문질렀다.

    “…그런가. 캐비닛 뒤에도 아무도 없었는가?”

    “…그래. 아무도 없었어.”

    “…다행이군. 고맙다.”

    내 말을 들은 드레이크는 이마를 땅에 댔다.

    그리고는 목젖을 토해 내는 것처럼 한 번 더 중얼거렸다.

    “…고맙다.”

    누구에게 하는 것인지 알 수 없는 말.

    “…고맙다. …고맙다. …고맙다.”

    그는 흙을 움키며 속을 토해 냈다.

    그렇게 계속, 언제까지고.

    그리고 그런 드레이크와는 별개로 주변의 어둠은 천천히 걷히고 있었다.

    여명(黎明)과 함께, 여명(餘命)이 터 오른다.

    악몽 같던 극(劇)이 막을 내리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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