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닳고닳은 뉴비-238화 (238/1,000)

239화 한 배를 가르고 나온 사이 (2)

[어진! 오더를!]

[꺄아아악! 어진아아아!]

.

.

칠흑으로 물드는 시야.

아득해지는 정신.

눈이 절로 감기고 입이 절로 벌어졌다.

몸이 한없이 노곤해진다.

‘안 돼! 여기서 잠들면 안…….’

내가 비몽사몽한 상태로 필사의 투쟁을 벌이려는 순간!

따악!

뒤통수에서 갑자기 강한 충격이 느껴졌다.

“……!?”

나는 흐트러지기 직전이던 정신을 겨우 긁어모았다.

드르륵-

나도 모르게 몸을 일으키자, 주변은 온통 낯선 환경이었다.

눈앞에 보이는 녹색 칠판.

책상, 의자, 교탁, 시계, 태극기, 창문, 커튼, 복도, 사물함, 청소도구함…….

청송량 중학교 2학년 3반의 일상적인 풍경이었다.

“어어?”

내가 어이가 없어 헛웃음을 짓자.

딱!

또 한 번 뒤통수에 강한 충격이 느껴졌다.

뭔가 싶어 고개를 돌리자 내 또래로 보이는 중학생 몇 명이 나를 둘러싸고 있는 것이 보인다.

[형님. 이 새끼 웃는데요?]

2학년 명찰을 단 몇 명이 고개를 돌리자 3학년으로 보이는 녀석들이 인상을 팍 찌푸렸다.

[이 자식이. 구해 오라는 아이템은 다 구하고 쳐 자냐?]

나는 순간 할 말을 잃고 멍하니 섰다.

꿈에서 깬 직후에는 꿈이 현실인지 현실이 꿈인지 잘 분간이 되지 않을 때가 있다.

지금 내 상태가 딱 그랬다.

‘뭐지? 그동안의 일이 전부 꿈이었나?’

으레 꿈이 그렇듯 자세히 기억나지는 않지만…적어도 이것 하나만은 확실히 기억난다.

꿈속에서 나는 뭐든지 할 수 있었다.

돈도 많이 벌고 게임도 잘 하고 모든 이들에게 사랑을 받는 슈퍼스타.

고인물!

그것이 바로 나였다.

하지만…아무래도 그것은 한 바탕 꿈이었나 보다.

‘그럼 그렇지. 나 같은 게 무슨….’

바닥이 푹 꺼지는 기분, 한없는 나락으로 추락하는 느낌이다.

그때.

[야, 뭐 좋은 꿈이라도 꿨냐?]

누군가가 내 목을 팔뚝으로 휘감아 왔다.

고개를 돌린 나는 흠칫했다.

권혁웅.

이 중학교에서 가장 덩치가 크고 사납게 생긴 녀석.

놈은 거의 3미터도 넘는 덩치로 나에게 어깨동무를 걸고 있었다.

체급 차이가 너무 많이 나서 어깨동무라기보다는 그냥 일방적으로 찍어 누르는 것에 가까웠지만 말이다.

“…….”

나는 어지간한 불곰보다도 더 커 보이는 권혁웅에게 맞서지 못하고 그냥 고개를 떨구고 말았다.

[쟤 봐. 완전 쫄았네, 어떡해. 야, 약한 애 괴롭히지 마~ 불쌍하잖아.]

옆에서는 교복을 한계까지 줄여 꽉 끼게 입은 여자애 하나가 빙글빙글 웃고 있었다.

장혜원.

권혁웅의 여자친구. 그녀 역시도 거진 3미터에 달하는 덩치였다.

[오늘 오후까지 아이템 준비해 놔라. 나랑 3학년 선배님들 것까지 싹. 못 구하면 알지? 문상으로 대신 받는다. 현금도 괜찮고.]

[너어, 우리 데이트 비용도 다 얘한테서 조달하면서! 나빴다 진짜~]

권혁웅과 장혜원은 낄낄 웃으며 나를 내려다보았다.

“…….”

내가 암담함에 짓눌려 고개를 숙이고 있을 때.

드르륵-

교실 앞쪽 문이 열렸다.

담임 교사가 들어왔다.

‘어차피 아무런 도움도 안 주겠지.’

나는 안다.

우리 반 담임인 최남용은 아이들 일에 극도로 무신경한 인간.

아마 내가 게임 머니를 삥뜯기는 것을 안다고 해도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을 것이다.

학습된 패배감은 도리어 편안함을 준다.

나는 아무것도 기대하지 않은 채 의자에 앉았다.

……한데?

[너희들 지금 뭐 하는 거냐?]

담임은 무서운 목소리로 장혜원과 권혁웅을 불렀다.

그러자 권혁웅과 장혜원이 태연한 목소리로 변명한다.

[네? 아뇨. 그냥 친해서 장난친 건데요?]

[맞아요 쌤. 저 반장이잖아요.]

놈들은 워낙 덩치가 커서 담임 교사가 파리처럼 보일 정도였다.

그리고 그 둘은 실제로 파리라도 쫓는 듯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귀찮음이 노골적으로 드러나는 태도.

하지만 담임은 어쩐 일인지 매우 날카로웠다.

그는 권혁웅을 계속해서 추궁했다.

[너는 친한 친구한테서 돈 뜯냐?]

[에이 쌤! 진짜 돈 아니에요. 사이버머니에요! 고스톱 같은 데서 쓰는 가짜 돈이요!]

[야, 이 새끼야. 선생님을 바보로 알아?]

[…….]

[게임 머니도 현실 화폐로 얼마든지 환전할 수 있는 걸 내가 모를 줄 아냐? 어른이 우스워?]

권혁웅은 담임의 서슬 퍼런 기색에 눌려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한다.

그러자. 담임은 미간을 잔뜩 찌푸리고는 권혁웅을 노려보았다.

[너 같이 자기보다 힘 약한 사람들 괴롭히는 낙으로 사는 쓰레기들한테는 말이 필요 없다.]

동시에.

담임은 허리춤에서 커다란 쇠뇌 하나를 꺼내들더니 그대로 권혁웅을 쏴 죽여 버렸다.

퍽!

이마에 박힌 화살은 두개골을 뚫고 그 안의 뇌를 곤죽으로 만들어 놓는다.

그것도 모자라 뒤통수의 두개골을 뚫고 조금 삐죽 튀어나오기까지 했다.

[꺄아아아악!]

장혜원이 비명을 지른다.

하지만 담임은 무표정한 얼굴로 쇠뇌를 재장전할 뿐이다.

퍽!

이내, 소리를 지르던 장혜원이 조용해졌다.

입은 여전히 크게 벌려져 있었지만, 소리가 목에 난 구멍으로 다 새고 있었기 때문이다.

눈앞의 이 사람은 최남용이 아닌 것이 분명했다.

나는 얼떨떨한 표정으로 물었다.

“누, 누구세요?”

그러자, 새로운 담임 교사는 두 팔을 허리에 얹고 유창하게 외쳤다.

[나는 오늘부터 이 반을 맡게 된 새 담임이다. 이름은 ‘드레이크 캣’이라고 한다.]

…우리 학교에 이런 선생님이 있었던가?

*       *       *

학교가 끝났다.

나는 곧장 집으로 돌아왔다.

“오늘은 참 이상한 하루였어.”

느닷없이 이상한 선생님이 나타나 나를 괴롭히던 일진들을 전부 쇠뇌로 쏴 죽여 버렸다.

일진도 무서웠지만 그들을 픽픽 죽이는 선생님이 더 무서웠기에 나는 서둘러 집으로 도망쳐 왔다.

삐걱-

집의 문을 열고 들어오자 온 가구에 죄다 붙어 있는 빨간 딱지들이 보인다.

그리고 방 중앙에는 30대로 보이는 두 명의 남녀가 서 있었다.

[어머, 오빠. 왜 이제 와? 오늘 나 쩔 해 주기로 했잖아!]

[어이, 이어진이~ 바쁜가 보네. 이자는 오늘도 쌓여만 가는데… 원금 갚을 생각은 없지 아주?]

유다희와 유창.

그들이 내 집을 점거한 채 으름장을 놓고 있다.

둘 다 3미터에 달하는 거대한 체구를 가지고 있는 상태였기에 집 안이 온통 그들의 존재감으로 꽉 차 있었다.

뚜벅- 뚜벅- 뚜벅-

유창이 내 앞으로 성큼성큼 걸어온다.

걸어오면서 보이는 모든 가구에 빨간 딱지를 붙이면서.

[나이도 처먹을 만큼 처먹은 놈이 통장에 돈 한 푼 안 넣어 놓고 사네. 밥은 먹고 다니냐?]

그 목소리를 들은 나는 전신이 덜덜 떨려오는 것을 느꼈다.

“다, 다희야…조금만 기다려 줘. 금방 갚을게.”

내가 입을 열자, 유다희는 깜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어머 오빠! 왜 저한테 갚는다는 말을 하세요! 누가 보면 제가 사채업자인 줄 알겠어요!]

“네, 네가 사채업자 맞잖아. 여기 이 사람이랑 남매 관계….”

내가 더듬거리며 말하자 유창과 유다희는 놀란 표정을 지었다.

[…오빠 우리가 남매인 거 어떻게 알았어?]

[쳇, 누나. 다 들킨 것 같은데?]

유창, 유다희 남매는 머리를 벅벅 긁는다.

이내, 유다희는 나를 향해 짜증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미안해. 오빠처럼 착하고 순진한 사람 없는 것 아는데. 그래서 더 어쩔 수가 없네. 나도 고민 많이 했어.]

“…….”

[대신에 나도 오빠 말고 평생 다른 남자 안 만날게. 미안. 정말 미안해.]

유다희는 고개를 돌려 찬장 안쪽을 뒤진다.

그쪽에는 내가 그동안 절대 쓰지 않고 간직해 왔던 적금 통장이 있었다.

“아앗! 안 돼! 그건 내가 평생 모은……!”

울상을 지으며 손을 뻗어 보았지만 나를 단단히 가로막은 유창 때문에 전진할 수가 없었다.

바로 그때.

[뭣들 하는 거예욧!]

유창과 유다희를 가로막는 목소리가 있었다.

20대 정도나 되었을까? 나보다 한참 연상으로 보이는 한 여자가 어느새 내 앞에 서 있었다.

[당장 이 집에서 나가지 않으면 경찰 부를 거예요!]

그러자, 유창이 조금 당황했다.

[이봐 아가씨. 우리는 지금 계약서 상에 명시된 대로 합법적인 추심을 하고 있는…….]

하지만 놈의 말은 씨알도 먹히지 않았다.

여자는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

[합법적 추심이라 함은 법으로 정해놓고 있는 ‘대부업의 등록 및 금융이용자보호에 관한 법률’을 말씀하시는 것이겠죠?]

[…….]

[설사 백번 양보해서 대부업의 등록 및 금융이용자보호에 관한 법률을 지키고 있더라도. 그 법이 형법의 위에 있나요? 주거침입죄, 공갈죄, 협박죄의 정당한 위법성 조각사유가 인정될지 모르겠군요.]

그러자 유창은 꿀 먹은 벙어리가 되었다.

쪼글쪼글…

3미터에 달하던 그의 키가 순식간에 쪼그라들더니 1미터 남짓한 꼬맹이로 변해 버렸다.

유다희는 크게 당황하여 외쳤다.

[나, 나도 오빠한테만은 이렇게 하고 싶지 않았어! 다른 사람들 다 그렇다고 해도 오빠한테만은……!]

하지만 여자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두 팔을 허리에 올린 채 날카롭게 꾸짖을 뿐이다.

[어떤 사연이 있든 간에 남에게 피해를 끼치면 안 돼요. 자신의 비극이 그로 인한 남의 비극을 정당화할 수는 없으니까요.]

그러자.

[…….]

결국 유다희 또한 입을 다물었다.

그녀 역시 점점 작게 쪼그라든다.

그녀는 동생인 유창보다 훨씬 더 작은 크기로 줄어들었다.

1mm도 되지 않을 정도로 작게.

이내, 먼지만큼이나 작아진 유다희는 고개를 푹 숙인 채 돌아섰다.

[네 말이 맞아.]

“…….”

[잘 살어 이번 생에서는. 나 같은 년한테 또 걸리지 말고.]

30대의 유다희는 나를 돌아보며 씁쓸하게 웃었다.

이내, 유다희와 유창은 내 눈앞에서 신기루처럼 사라져 버렸다.

“…….”

나는 그저 멍한 표정으로 가만히 서 있을 뿐이다.

그때.

탁!

내 어깨를 짚는 손이 있었다.

방금 전까지 나를 대신해 사채업자들과 싸워 준 여자.

그녀가 반짝이는 시선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어진아! 가자!]

……?

어딜 간다는 것일까?

내가 영문을 몰라 뒤로 한 발 물러서는 순간.

턱!

내 등이 무언가에 닿았다.

절벽 같이 단단하고 평평한 무언가가 뒤에서 나를 막고 있었다.

“……?”

고개를 돌리자.

[어진! 가자!]

아까 교실에서 일진들을 죄다 쏴 죽여 버렸던 담임 선생님이 서 있는 것이 보인다.

“어, 어디를 가자는 거예요!”

내가 당황해 소리치자.

담임 교사와 젊은 여자가 각각 내 양쪽 어깨를 움켜잡았다.

[돌-아-가-즈-아-!]

분명 어디서 들어본 적 있는 친숙한 목소리들이었다.

순간.

핏-

내 시야가 암전되듯 꺼졌다.

*       *       *

“…헉!?”

나는 눈이 떠지자마자 바로 일어났다.

상태를 들자 내 몸이 여전히 운석 위에 누워 있는 것이 보인다.

“꿈이었나.”

꿈속에서 꿈을 꾼 듯한 기분.

가상현실 게임 속에서 가상현실을 겪다니 이거 참 기분 미묘하다.

나는 재빨리 주위를 둘러보았다.

운석은 허공에 정지한 채 그저 둥둥 떠 있었다.

주름진 육벽, 주렁주렁 늘어져 있는 내장들.

내가 있는 곳은 거대한 물고기의 뱃속이었다.

악몽아귀.

이 거대한 생물은 시공간을 비트는 힘을 가지고 있다.

안개와 구름 속에서도 떠다닐 수 있게 진화한 육체는 절대자의 시선을 피할 수 있을 정도로 은밀하다.

따라서 이 녀석의 뱃속에 있는 동안에는 아카식 레코드의 관리자도 시공간의 힘을 잠시 잃어버리게 되는 것이다.

특성 ‘자체매력’

영원을 찰나로, 찰나를 영원으로 만드는 능력.

자신의 뱃속에 들어온 모든 것들에게 진득한 망각술을 펼쳐 도망가지 못하게 한 뒤 소화해 버리는 특성이다.

운석은 그냥 거대한 바위가 되어 버렸고 악몽아귀의 뱃속에서 천천히 녹아내리겠지.

원래대로라면 이 녀석에게 잡아먹힌 시점에서 전원 리타이어다.

악몽아귀에 뱃속에 들어가게 되면 가수면 상태에 빠지게 되고 그 안에서 자신의 가장 어두웠던 기억과 마주하게 되어 버리기 때문이다.

(이것이 몇 년 뒤 유저들의 항의민원이 빗발치게 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하지만.

“…눈을 뜬 이상 그렇게 놔둘 수는 없지.”

내가 이 세상에서 제일 혐오하는 게 ‘아 쉬발 꿈’ 엔딩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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