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닳고닳은 뉴비-236화 (236/1,000)
  • 237화 하늘에 갇힌 자 (5)

    방 탈출 카페란 무엇이냐?

    한 마디로 방에서 탈출하는 것을 콘텐츠로 하는 카페이다.

    카페에 들어가서 스테이지를 고르면 눈을 가린 채 밀실로 이동된다.

    눈을 뜨면 방 안에 갇힌 상태이고 다양한 단서와 퍼즐 등을 이용하여 열쇠를 찾거나, 암호 자물쇠를 풀거나, 비밀 통로를 찾아내어 제한된 시간 안에 방 밖으로 탈출해야 하는 것이 미션.

    난이도가 있는 퍼즐, 넌센스 퀴즈 등도 자주 이용되며 추리력뿐만 아니라 반사신경과 담력을 요하는 스테이지들도 꽤나 존재한다.

    윤솔은 멋쩍은 표정으로 볼을 긁었다.

    “내가 예전에 방탈출 카페에서 알바를 꽤 오래 했었거든.”

    “방탈출 카페?”

    “응. 나 그런 거 되게 잘해. 좋아하기도 하고.”

    그녀는 이내 조금 부끄럽다는 듯 중얼거렸다.

    “사실은…방탈출 카페 입장료가 조금 비싸잖아. 그래서 혼자 하기에는 부담이 돼서…차라리 알바를 해 보면 어떨까 했었지.”

    나는 그녀의 말에 어느 정도 공감할 수 있었다.

    나의 경우에는 돈이 없었던 게 아니라 친구가 없어서 못 했던 것이지만.

    처음에 주저했던 것도 잠시, 윤솔은 자신의 알바 경험담을 말하며 꽤나 즐거워했다.

    “어렸을 때부터 추리소설 같은 분위기를 좋아했었거든. 동네에 방탈출 카페가 생기자마자 바로 알바 지원했었어. 사장님이 좋은 분이셔서 알바들한테는 방 탈출 콘텐츠를 무료로 이용하게 해 주셨다? 물론 SNS 같은 곳에 홍보 후기를 작성해야 했지만 말야.”

    윤솔은 열쇠로 자물쇠를 비틀어 열며 생긋 웃었다.

    끼기긱…

    문이 열렸다.

    또다시 구불구불한 복도가 펼쳐져 있다.

    나는 완전한 미개척지역을 탐험한다는 생각에 바짝 긴장했다.

    하지만, 윤솔은 제법 능숙하게 단서들을 찾아내고 있었다.

    “아앗, 철창이 나왔네. 보통 철창 문을 여는 열쇠는 철창 건너편에 있는데…주로 테이프나 실, 자석 같은 것을 이용해서 끌어당기곤 하거든. 앗! 저기 벽에 열쇠가 걸려있어! 여기에 놓여 있는 자석이랑 밧줄을 이용한다면 잡아서 당겨올 수 있을 것 같은데?”

    “오오, 이 자물쇠는 비밀번호 7자리를 조합해야 하네. 단서는 ‘우리들이 갇혀 있었던 시간’? 그때 검은 수염의 일기장에 적혀 있기로는 거의 500년이라고 하지 않았었나? 그럼 시간으로 따지면…어디보자…365 곱하기 500 곱하기 24는…어진아! 자물쇠 돌려서 번호 사삼팔공공공공 눌러 봐. 꺄악! 열렸다!”

    “으음. 여기는 막다른 길이네. 하지만 이렇게 노골적으로 벽돌로 만들어진 벽이 있으면 버튼이 숨어 있을 가능성도 있어. 이것들을 이렇게 얍얍 누르면…. 아앗! 문이 열린다!”

    “흐음, 이 문의 자물쇠 비밀번호 힌트는 ‘현실과 또 다른 현실의 시간을 이어 붙이는 것’이네. 아앗 저기 봐 어진아! 이쪽에 있는 시계랑 저쪽 거울에 비춰 보이는 시계랑 서로 시간이 달라! 저쪽 시계와 이쪽 시계의 시간을 시 분 초 순서대로 자물쇠에 입력해 보자. 얏호! 또 열렸어!”

    하드 캐리.

    윤솔은 굳게 닫힌 철장, 막혀 있는 문, 단단한 자물쇠들을 거침없이 해금시키며 앞으로 나아간다.

    ‘…엄청난 속도다.’

    나는 유령선 안의 분위기를 즐기고 있는 그녀의 모습에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었다.

    언제나 차분하고 침착한 모습만 보다가 이런 모습을 보니 약간 낯설기도 하다.

    [갸아아악!]

    [끄르르륵!]

    [으어어어!]

    가끔 복도 모퉁이를 돌 때마다 바닥이나 벽 뒤에서 미이라들이 튀어나왔지만, 그런 것들을 처리하는 것은 일도 아니다.

    몬스터가 나타날 때마다 윤솔은 비명을 질렀지만 그렇다고 주저앉거나 울지는 않았다.

    오히려 들뜬 기색으로 또다시 함정들을 피해 출구를 찾아 나간다.

    마치 놀이공원에 있는 유령의 집, 혹은 진짜 방 탈출 카페에 온 듯한 기분.

    이윽고.

    우리는 수많은 함정들을 뚫고 세 개의 똑같이 생긴 문 앞에 서게 되었다.

    그 세 개의 문 앞에는 마찬가지로 똑같이 생긴 세 개의 거대한 석상이 서 있었다.

    그리고 세 개의 석상 앞에는 세 줄의 문장이 새겨져 있다.

    ‘거인이 만든 석상은 진실만을 말하고 악마가 만든 석상은 거짓만을 말한다.’

    ‘유일한 보물은 거인이 지키고 있다.’

    ‘할 수 있는 질문은 각각 한 번씩이다.’

    나는 인상을 찌푸릴 수밖에 없었다.

    눈앞에 있는 세 개의 석상.

    그리고 세 개의 방.

    내가 찾고자 하는 히든 피스는 이 셋 중 하나의 방에 존재한다.

    “보아하니 선택의 기회는 한 번 뿐인 것 같은데…….”

    나는 두 석상을 바라보았다.

    일단 육안으로 거인의 석상과 악마의 석상을 구분하는 것은 불가능해 보였다.

    ‘…어둠 대왕의 능력으로도 안 되나.’

    ‘선택’ 특성을 발동해 보았지만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선택지가 셋이기 때문에 정답 확률이 50%보다 낮아져서 그럴 것이다.

    나는 고민했다.

    1, 2, 3번 석상 중 거인의 석상을 찾아야 한다.

    대체 어떻게 해야 할까?

    “…큰일이네. 시간도 얼마 없는데.”

    내가 고민하고 있을 때, 윤솔이 내 어깨를 톡톡 쳤다.

    “어진아. 나한테 좋은 생각이 있는데….”

    “…좋은 생각? 뭔데?”

    “으음, 먼저 1번 석상한테 네가 질문을 좀 해 줄래?”

    “뭐라고?”

    “‘너는 악마가 만든 것이냐 거인이 만든 것이냐?’ 라고 물어보면 돼.”

    윤솔은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눈을 반짝거리고 있다.

    나는 잠시 고민하다가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까지 봐온 윤솔의 실력이라면 믿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나는 그녀가 시킨 대로 1번 석상에게 질문했다.

    “이봐, 너는 악마가 만든 것이냐 거인이 만든 것이냐?”

    내가 묻자.

    쩌저적-

    석상의 얼굴 부분에 금이 가더니 마치 입처럼 벌어진다.

    [나를 만든 이는…….]

    이내, 석상은 입을 열어 나의 질문에 답하려 했다.

    그때.

    “와악!”

    윤솔이 내 귀를 막으며 비명을 질렀다.

    그 때문에 나는 1번 석상이 말하는 것을 듣지 못하고 말았다.

    “???”

    나는 눈을 휘둥그렇게 뜨고 윤솔을 돌아보았다.

    이 무슨 뜬금없는 상황이란 말인가? 소중한 단서를 이대로 허무하게 날려 버리다니!

    하지만, 윤솔은 여전히 생글생글 웃고 있었다.

    “좋아! 지금부터는 내가 할게!”

    “…으응. 근데 솔아. 너 방금 1번 석상이 말하는 거 들었어?”

    “아니. 소리 지르느라 못 들었어. 하지만 괜찮아.”

    윤솔은 눈을 반짝거리며 2번 석상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질문을 했다.

    “2번 석상아. 우리가 제대로 못 들어서 그러는데 방금 1번 석상이 뭐라고 했는지 너는 들었겠지. 그가 악마라고 했니? 거인이라고 했니?”

    그러자. 2번 석상은 입을 쩍 벌려 대답했다.

    [1번 석상은 악마가 자기를 만들었다고 했다.]

    윤솔은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3번 석상에게 바로 물었다.

    “3번 석상아. 2번 석상의 말이 맞니?”

    그러자, 3번 석상은 입을 쩍 벌려 말한다.

    [2번 석상의 말은 거짓이다.]

    그렇게 3번의 질문 기회는 모두 사라졌다.

    나는 불안한 표정으로 윤솔을 돌아보았다.

    “솔아. 답은 찾은 거야? 나는 잘 모르겠는….”

    하지만, 윤솔은 내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손을 들어 세 번째 석상을 골랐다.

    “네가 거인이 만든 석상이구나!”

    그러자.

    쿠구구구궁…

    3번째 석상이 무너져 내리며 그 뒤에 있는 철문이 드러났다.

    동시에, 옆에 있던 1, 2번 석상도 무너져 내렸다.

    1, 2번 석상의 문 뒤에는 뻥 뚫린 구멍만이 존재했다.

    한 발자국이라도 나갔다가는 바로 유령선 밖 망망공해로 곤두박질했을 것이다.

    나는 깜짝 놀라 물었다.

    “아니, 어떻게 그렇게 빠르게 고른 거야?”

    윤솔은 빙글빙글 웃는 얼굴로 내 질문에 답했다.

    “네가 1번 석상에게 질문했을 때. 만약 그가 거인이 만든 석상이었다면 스스로를 거인이 만들었다고 소개했을 거야. 진실만을 말해야 하니까. 만약 그가 악마가 만든 석상이었다면…. 그래도 자기를 거인이 만들었다고 소개했을 거고. 거짓만을 말해야 하니까.”

    “으음. 그렇지. 어떤 쪽이든 간에 거인이 자기를 만들었다고 말했겠구나.”

    “그렇지. 근데 우리는 1번 석상의 말을 못 들었잖아? 사실 들을 필요도 없는 것이라서 안 들었지만 말야. 어차피 자기를 만든 이는 거인이라고 했겠지.”

    “그래서?”

    “그래서 그 뒤로 2번 석상에게 물어본 거야. 1번 석상이 뭐라고 했냐고. 2번 석상은 거짓말을 했어. 그래서 악마가 만든 석상이라는 걸 알 수 있었지.”

    “오호. 2번은 자연스럽게 걸러졌네.”

    “맞아. 그 뒤에 3번이 진실을 말했지. 2번은 거짓말을 했다고. 그래서 3번 석상이 확실히 거인이 만든 것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었던 거야. 보물은 ‘유일하다고’ 했으니 1번 석상은 자동으로 악마가 만든 석상이 되는 것이고.”

    윤솔의 설명을 듣고 보니 이제야 이해가 된다.

    막상 풀이를 들으면 쉽다고 생각되었지만, 이런 돌발적인 상황에서 몇 초도 되지 않는 순간 해결책을 찾아낸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만약 2, 3번 석상이 다르게 대답했었다면 어땠을까?”

    “그러면 선택지 순서만 달라지는 것이지! 답을 맞출 수 있는 건 똑같아!”

    윤솔은 밝게 웃으며 대답한다.

    나는 새삼 그녀를 영입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이윽고.

    우리는 거인의 석상이 지키고 있던 방 안으로 들어갔다.

    텅 빈 방 안에는 먼지만 수북하게 쌓여 있었다.

    어두침침한 방 중앙에는 뚜껑이 덮여있는 커다란 접시 두 개가 보인다.

    “……이건?”

    나는 눈을 가늘게 뜨고 접시를 살폈다.

    -<영혼의 천칭 접시> / ?

    -보이지 않는 것을 담아 잴 수 있는 천칭 접시.

    양쪽의 무게를 균등하게 맞추려는 성질이 있다.

    -융합 (특수)

    등급을 알 수 없는 융합 아이템.

    아무래도 히든 피스의 재료가 되는 물건인 듯싶다.

    “…이게 여기서 드랍되는 거였군.”

    나는 침음성을 삼켰다.

    무등급 아이템은 언제든 환영이다.

    나는 천칭 저울을 윤솔에게 넘겼다.

    전적으로 그녀가 발견한 아이템이니만큼 소유권은 마땅히 저쪽에게 있었다.

    “그럼 내가 잠시 맡아 놓지 뭐.”

    윤솔은 밝게 웃으며 두 개의 접시를 넘겨받았다.

    그때.

    팔랑-

    접시에 끼워져 있던 낡은 종이 한 장이 떨어져 내렸다.

    꽤나 큼지막한 편지지.

    펼치자 커다란 글씨로 적혀 있는 편지 내용이 눈에 들어왔다.

    <나의 오랜 벗 골리앗에게>

    -골리앗, 자네가 악마 놈들의 간교한 계략에 빠져 하늘에 갇힌 지도 어느덧 수백 년이 지났군.

    나는 오늘도 악마와 싸우며 시간을 보내고 있어. 이제는 모두 죽고 나 혼자만이 남았다네.

    모든 죽음은 애석한 것이지만, 특히나 자네의 부인과 딸의 죽음은 각별히 더 애석했다네.

    그 누구보다 용맹스럽던 자네의 가족들도 쏜살같은 시간만은 이겨내지 못했어.

    그리하여 나는 그 둘의 영혼을 접시에 담아 자네에게로 보내려 하니 그곳에서라도 일가족 상봉을 하도록 하게.

    부디 하늘에 갇혀 있을 자네에게 이 편지가 닿을 수 있었으면 좋겠군.

    P·S-

    더러운 인간 놈들이 제수씨와 조카의 영혼을 담은 그릇을 노리기에 혼을 좀 내 줬지.

    놈들의 배 편에 제수씨와 조카의 영혼을 담아 자네가 갇혀 있는 곳으로 보내겠네.

    -거인국의 마지막 왕 이스비브놉-

    나는 얼마 전에 잡았던 ‘목마른 검은수염’을 떠올렸다.

    그는 보물을 노리다가 누군가의 미움을 사 배째로 하늘로 집어 던져졌었다고 했다.

    …그것도 무려 500년 전에!

    “거인국의 왕을 건드렸다가 하늘로 집어 던져진 거였나 보네, 세상에.”

    윤솔은 혀를 내둘렀다.

    대체 힘이 얼마나 세길래 이렇게 큰 배를 무려 500년 동안이나 날려 보냈단 말인가!

    신화나 전설 속에서나 일어날만한 상황이다.

    하지만.

    내가 주목한 부분은 다른 부분이었다.

    “……하늘에 친구가 있다고?”

    고인물의 감이 외치고 있었다.

    뭔가 불길한 느낌이 든다.

    내가 막 밖으로 나가기 위해 고개를 돌리려는 순간.

    […봐! …진!]

    저 갑판 위에서 레버를 당기고 있을 드레이크가 혼신의 힘을 다해 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봐! 어진! 빨리 나와라! 밖에…! 밖에…!]

    아무래도 밖에 뭔가 심상치 않은 일이 생긴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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