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닳고닳은 뉴비-235화 (235/1,000)
  • 236화 하늘에 갇힌 자 (4)

    여기 모기를 잡는 트랩이 있다.

    구조는 간단하다.

    커다란 통에 이산화탄소 발생기를 설치해 모기를 유인한 뒤 그 앞에 커다란 선풍기를 틀어놓으면 된다.

    통 속에 갇힌 모기는 별다른 위해를 입지 않는다.

    다만 통 밖으로 나가지 못한 채 끝없이 선풍기 바람을 쐬어야 할 뿐이다.

    그렇다면 모기는 어떻게 될까?

    답은 ‘미이라화’이다.

    모기는 갇힌 환경에서 계속된 바람에 노출된 탓에 결국 온몸의 수분이 다 말라 버려 죽게 되는 것이다.

    *       *       *

    [그아아아악!]

    [끄르륵… 끄륵…]

    [게에엑!]

    미이라들은 하나둘씩 변태하고 있었다.

    놈들의 바싹 마른 살가죽과 그 밑의 근육섬유들이 폭우 속에서 촉촉하게 젖어든다.

    오랜 항해 도중 바람에 말라죽은 해적들이 일시적이나마 본래의 힘을 되찾았다.

    드레이크는 인상을 구겼다.

    “…보통 언데드는 비를 맞으면 약해지지 않나?”

    “언데드가 비를 맞으면 약해지는 이유는 부패가 가속화되어 스탯이 감소하기 때문인데……. 미이라의 경우는 예외지.”

    나는 미이라 한 구의 목에 구멍을 뚫으며 말했다.

    <사략 미이라> -등급: B(B+↑) / 특성: 맹독, 어둠, 언데드, 하수인, 반전

    -서식지: 비행로(飛行路)

    -크기: 2m.

    -“내 부하의 비참한 말로를 보아라. 문드러진 피부. 입 밖으로 풍기는 내장 썩은 냄새. 그야말로 산송장이로다!”

    -검은 수염 에드워드-

    놈들은 처음 나타났을 때보다 훨씬 더 강해졌다.

    랭크도 1단계 오르고 ‘반전’ 특성도 추가되었다.

    HP가 일정 수치 이하로 내려가면 공격 패턴이 완전히 뒤바뀌는 특성이다.

    하지만, 지금 그게 중요한 것이 아니다.

    미이라들의 뒤에서 서서히 몸을 일으키는 존재.

    이 갑판의 보스 몬스터가 등장했다!

    <목마른 주인> -등급: B+(A↑) / 특성: 맹독, 어둠, 언데드, 반전, 1:1

    -서식지: 비행로(飛行路)

    -크기: 10m.

    -말라죽은 해적들을 다스리던 선장.

    살아생전에는 거인과 힘을 다투었을 정도로 체구가 크고 골격이 장대했다.

    …한때는 ‘검은 수염 에드워드’라는 이름으로 불렸던 것 같다.

    새롭게 등장한 미이라는 그야말로 거대한 몸집을 가지고 있었다.

    헤져서 너덜너덜해진 코트 위로는 아주 오래 전에 유행했던 양식의 숄이 양 어깨 밑으로 늘어져 있다.

    얼굴의 절반 이상을 가린 거대한 선장모 아래로는 문어의 다리처럼 여덟 갈래로 땋아진 검은 턱수염이 길게 늘어져 있었다.

    그 여덟 갈래의 검은 수염 끝에는 여러 다발의 화약 뭉치가 묶여 있었는데 빗속에서도 불붙어 타오르는 모양새가 실로 으스스했다.

    나는 유령선의 선장을 향해 눈을 가늘게 떴다.

    일명 ‘목마른 검은수염’

    비행로 진입 도중 극히 희박한 확률로 만날 수 있는 몬스터.

    이놈은 잡아도 별다른 특전이 없는 거지 몬스터로 유명하다.

    원래 B+등급이니만큼 호칭이나 특전도 주지 않을뿐더러 등급에 맞지 않게 스탯이 괴랄하게 높은데다가 떨구는 아이템도 변변찮은지라 인기가 없다.

    심지어 레이드 도중 비가 오면 랭크업까지 하기 때문에 더더욱 최악.

    하지만 일단 만난 이상 꼭 잡고 넘어가야 하기 때문에 파이오니아들로 하여금 눈살을 찌푸리게 만드는 것이다.

    목마른 검은수염은 이내 입을 열어 자신의 히스토리를 설명하기 시작했다.

    [나는...거인국에서...거인 왕의...보물을...훔쳐...달아났다...하지만...이내...격분한...거인왕에게...배를...통째로...빼앗겼고...이곳...하늘로...내던져졌다...그리고...500년이...지났다...내가...훔친...보물의...정체는...]

    하지만 저 느려터진 대사를 다 듣고 있을 시간이 없다.

    [SKIP]

    나는 검은수염의 대사를 깔끔하게 생략해 버렸다.

    “솔이가 있는 이상 레이드는 쉽지.”

    나는 윤솔을 돌아보았다.

    끄덕…

    그녀는 내 시선을 보자마자 고개를 끄덕였다.

    윤솔은 은근히 게임 센스가 좋다.

    똑똑한 것은 예전부터 알고 있었지만 게임을 할 때도 이렇게 이해도가 높을 줄이야.

    번쩍-

    이내 윤솔의 몸에서 ‘신성불가침’ 특성 특유의 황금빛이 발생했다.

    파앗!

    윤솔의 배리어에 피격당한 검은수염은 비틀거리며 뒤로 물러난다.

    [그.아.아.앗!]

    운이 좋았다.

    검은수염은 100%의 확률로 들어가는 1차 상태이상 ‘마비’, 50%의 확률로 들어가는 2차 상태이상 ‘공포’, 25%의 확률로 들어가는 3차 상태이상 ‘환각’, 12%의 확률로 들어가는 4차 상태이상 ‘실명’, 6%의 확률로 들어가는 5차 상태이상 ‘과부하’에 모조리 걸려 버렸다.

    각각 3%와 1%의 확률로 들어가는 6차, 7차 상태이상에는 걸리지 않았지만 이것만 해도 상당한 수확이었다.

    꾸드드득…

    검은수염을 비롯한 미이라들이 모조리 상태이상에 걸려 버벅거린다.

    전신이 빳빳하게 굳어 움직임이 눈에 띄게 느려졌고 전체적으로 우왕좌왕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자기 자신을 공격하거나 눈이 멀어 허둥거리는 녀석들도 있었고 간혹 몸이 붕괴해 내리는 녀석들도 보인다.

    파팟!

    나는 재빨리 마동왕 메타로 전환했다.

    주변 지형이 파괴불가인지라 지진기를 써도 효율성이 낮긴 하다.

    하지만 저렇게 큰 체구를 가진 보스 몬스터와 1:1을 하는 상황이라면 이야기가 조금 달랐다.

    콰쾅!

    나는 지진의 힘이 담긴 주먹으로 검은수염의 복부를 강타했다.

    주변이 파괴불가인 탓에 효율성이 적어 잠시 봉인했지만, 이렇게 덩치가 큰 보스 몬스터를 단시간 안에 잡기에는 여전히 지진기술이 효과적이다.

    넓은 범위에 퍼져야 하는 광역기가 1:1 기술로 들어간다.

    호칭 ‘대망자 묘지기’가 주는 특전 덕분에 데미지도 몇 배로 껑충 뛰었다.

    콰콰쾅!

    검은수염은 지진파에 맞아 뒤로 멀리 튕겨져 나갔지만, 나는 거리를 벌리지 않을 수 있었다.

    킬 체인.

    여덟 다리 대왕을 잡고 얻은 이 죽음의 철조망 사슬이 검은수염을 단단히 묶어 두고 있었기 때문이다.

    퍽! 퍼억! 퍽!

    나는 계속해서 주먹을 뻗어 검은수염을 난타했다.

    윤솔이 뿜어내는 신성력 때문에 검은수염은 제대로 된 저항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거기에 드레이크가 쏘아 보내는 강전이 계속해서 검은수염의 머리통에 박힌다.

    콰쾅!

    결국, 나는 각종 디버프로 인해 약해진 검은수염의 머리통을 부숴 버리는 데 성공했다.

    부스스스스…

    검은수염의 미이라는 물에 젖은 모래처럼 변해 갑판 바닥에 풀썩 퍼져버렸다.

    그 뒤는 일사천리였다.

    신성 배리어에 닿은 미이라들이 픽픽 쓰러지는 동안 우리는 잔몹들을 정리했다.

    윤솔의 레벨은 1이었기에 배리어를 그리 많이 쓸 수는 없었지만 그래도 우리가 발빠르게 움직인 덕에 퀘스트를 제한 시간 내에 여유있게 클리어할 수 있었다.

    -띠링!

    <히든 퀘스트 ‘500년 전에 부친 편지’를 완료하셨습니다.>

    <보상이 지급됩니다!>

    <이름을 남기시겠습니까?>

    <윤솔, 고인물, 드레이크>

    .

    .

    의외로 윤솔의 기여도가 가장 높았다.

    힐러나 버퍼 캐릭터의 기여도가 높게 계산되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이 정도였나 싶을 정도다.

    나와 드레이크는 경험치를 꽤 많이 얻었지만 레벨업을 할 정도까지는 아니었다.

    나는 윤솔에게 물었다.

    “레벨 올랐어?”

    하지만 윤솔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아니. 여전히 1이야.”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현재 윤솔은 천사 소녀 네티라는 NPC의 몸과 융합되어 있는 상태이다.

    ‘아마 레이드가 끝나면 폭렙을 하겠군.’

    레벨 1에 천공섬 레이드를 완료한데다가 힐러 고유의 경험치 보너스까지 받는다면…대체 어느 정도나 폭렙을 할지 감도 안 잡힌다.

    바로 그때.

    덜커덩!

    갑판 저 아래에서 묵직한 기계음이 들려왔다.

    지금껏 단단히 잠겨 있던 ‘제한구역’이 해금되었다.

    갑판 밑, 선창으로 내려가는 지하계단의 입구가 개방된 것이다!

    “……설마 이게 보상인가?”

    드레이크는 고개를 갸웃했다.

    남은 시간을 보니 아직 21분가량이 남았다.

    윤솔 덕분에 생각보다 레이드를 일찍 끝냈기 때문이다.

    ‘여기서부터는 나도 공략을 아는 게 없는데.’

    나는 머리를 긁적였다.

    난다긴다하는 랭커들도 이 유령선의 밑으로 내려가 본 적은 없다.

    대부분 갑판 위의 몬스터들을 정리하는 데도 시간이 촉박했기 때문이다.

    “흠, 구조 상 누구 한 명이 갑판 위에 남아서 레버를 당기고 있어야 하는 모양이군.”

    드레이크는 지하계단 입구의 레버를 잡더니 우리 쪽을 돌아보았다.

    아무래도 드레이크보다 적응력이 빠른 내가 내려가는 것이 맞다.

    혹시나 언데드들이 더 있을지도 모르니 윤솔이 나를 서포트하는 것이 제일 효율적이었다.

    …그래서일까?

    드레이크는 나와 윤솔을 향해 윙크를 날린다.

    “예쁜 시간 보내길.”

    그러자 윤솔의 얼굴이 갑자기 새빨개진다.

    나 역시 뭐라고 하고 싶었지만… 딱히 따질 만큼 여유가 있는 것은 아니었다.

    *       *       *

    유령선의 내부는 생각보다 멀쩡했다.

    바람에 상한 것은 배의 겉면만인 듯싶다.

    “미이라 녀석들…좋은 데서 살았네.”

    나는 황금으로 된 술잔과 청동으로 된 거울 등을 바라보며 혀를 내둘렀다.

    몇 개 집어 가고 싶었지만, 안타깝게도 전부 이 배에 귀속된 것들이라서 반출이 금지되어 있다.

    배 안은 꽤나 복잡해서 금세 길을 잃어버릴 것 같았다.

    구불구불한 벽면과 위아래로 요동치는 계단, 온갖 잡동사니들이 즐비한 각종 다락과 창고들…….

    조금만 한눈을 팔아도 방금까지 걸어왔던 방향을 알 수 없게 된다.

    윤솔이 바닥에 백묵으로 금을 그어 가면서 이동하자는 아이디어를 내지 않았더라면 나도 조금 위험했을 것 같다.

    이내, 우리는 몇 개의 계단을 오르내린 끝에 배 깊숙한 곳에 있는 한 문에 도착했다.

    당연하게도 문은 파괴불가 오브젝트였고 그 너머에 무언가 귀중한 것이 보관되어 있다는 듯한 아우라를 노골적으로 뿜어내고 있었다.

    나는 턱을 쓸었다.

    “저 너머에 뭔가 히든 피스 같은 게 있을 것 같은데…….”

    하지만 난다긴다 하는 랭커들도 끝끝내 밝혀내지 못했던 미탐사구역이다.

    때문에 나는 그리 큰 기대를 하지 않고 있었다.

    윤솔이 벽 구석에 붙은 작은 구멍 밑에서 낡은 열쇠 하나를 찾아내기 전까지는.

    “앗, 찾았다. 어진아! 여기! 여기!”

    윤솔은 나를 손짓해 부른다.

    그녀는 빗물을 담아온 물병을 기울여 바닥의 구멍 속에 물을 흘려보내고 있었다.

    이윽고.

    구멍에 물이 가득 고이자 무언가가 수면 위로 둥실둥실 떠오른다.

    그것은 고무공에 붙어 있는 한 열쇠였다.

    나는 두 눈을 휘둥그렇게 떴다.

    “아니, 이걸 어떻게 찾은 거야?”

    그러자. 윤솔은 멋쩍다는 듯 한번 씩 웃었다.

    “…내가 방 탈출 카페 고수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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