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닳고닳은 뉴비-232화 (232/1,000)
  • 233화 하늘에 갇힌 자 (1)

    고오오오오…

    운석은 떨어졌던 길을 그대로 되짚어 하늘로 올라가고 있었다.

    깊이 20,000m의 어비스 터미널이 바늘구멍처럼 작게 보인다.

    북대륙의 광활한 산맥들이 한 손바닥 안에 들어올 정도로 멀어졌다.

    십(十)자 모양의 대륙 역시도 점차 한 눈에 들어올 정도로 줄어들었다.

    그 밖은 온통 푸른 바다와 흰 구름뿐이다.

    “와아! 저기가 내가 처음 캐릭터를 생성했던 곳인가? 튜토리얼의 탑도 보여! 앗 이젠 안 보인다!”

    윤솔은 운석 윗부분에 앉아 아래를 내려다보며 외쳤다.

    나와 윤솔, 드레이크는 현재 커다란 운석의 중앙부분에 옹기종기 모여 있었다.

    운석의 모양새는 실로 특이했다.

    고대 문명이 있었던 유적지의 일부가 떨어져 나온 것처럼, 주변은 온통 미로 같은 벽으로 둘러싸여 있었다.

    바닥과 벽들은 각지고 울퉁불퉁했는데 바람과 충격에 닳고 깨졌음에도 불구하고 정교하게 세공된 흔적들이 아직 뚜렷하게 남아있다.

    전체적인 외형이 마치 커다란 호두 껍데기가 깨져 나온 파편을 보는 듯했다.

    휘이이이이잉-

    우리는 미친 듯이 불어오는 바람을 피해 운석의 전면부에서 후퇴했다.

    바람이 잘 들어오지 않는 움푹한 구덩이.

    윤솔에게 빙의한 천사 소녀가 잠들어 있던 곳이다.

    이 구덩이 속에 있으면 저 앞쪽의 각진 모서리들과 벽들이 바람막이가 되어준다.

    나와 드레이크는 이 구덩이 안에 걸터앉은 채로 전략 회의를 했다.

    드레이크가 진중한 목소리로 물었다.

    “하늘에 섬이 있다고 했나?”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우리가 타고 있는 이 운석은 원래 하늘에 떠 있는 거대한 섬의 일부이다.

    …하늘에 어떻게 섬이 떠 있냐고?

    하늘 위 구름 속에 숨겨져 있는 신비한 땅에 대한 환상은 아주 오래 전부터 이어져 내려온 것으로 새삼 특이할 것도 없는 소재이다.

    조나단 스위프트가 창작한 ‘공중섬 라퓨타’, 르네 마그리뜨가 그린 ‘피레네의 성’ 등에서도 그 모티프를 찾아볼 수 있으며 각종 만화나 게임에 필수적으로 등장하는 흔한 클리셰이기도 하다.

    물론 데우스 엑스 마키나에도 천공섬을 모티프로 한 맵이 존재한다.

    천조국(天助國)

    ‘쿼바디스(QuoVadis)’

    천공에 떠 있는 나라.

    바다와도 맞먹는 크기의 구름 위에 떠 있는 환상의 섬.

    악마에게 밀려난 천사들이 마지막으로 자리 잡은 최후의 성전(聖殿).

    우리가 타고 있는 이 운석은 원래 그 섬의 파편이었던 것이다.

    “…….”

    윤솔은 신중한 표정으로 운석이 떨어졌던 궤도를 동영상과 대조하고 있었다.

    스크린 속의 동영상 속에는 작고 여린 소녀가 까마득한 천공에서 추락하며 보는 풍경이 그대로 재생된다.

    “아주 오랜 시간 동안 혼자 있었던 것 같아. 보는 내가 다 외롭고 슬플 정도로.”

    윤솔은 NPC인 천사 소녀의 마음에 공감하며 눈시울을 붉혔다.

    나는 말없이 그녀의 어깨를 토닥여 주었다.

    천사 소녀 네티.

    지금 윤솔의 몸에 빙의되어 있는 이 작은 소녀는 대격변의 메인 시나리오를 열어 줄 길잡이다.

    윤솔이 NPC와 동화되었어도 레벨 1인 것은 변함이 없기에, 나는 그녀를 여행 끝까지 잘 지켜 내야 했다.

    그때.

    드레이크가 물었다.

    “천공섬의 생태계는 어떤가?”

    새로운 맵을 탐험하기 위해서 고려해야 할 사항은 한두 가지가 아니다.

    기후, 풍토, 지리, 몬스터 먹이사슬, NPC, 자연재해, 아이템, 히든 퀘스트…….

    신변을 위협해 올 수 있는 것이 너무나도 많다.

    HP를 확 깎아먹는 자연재해나 풍토병에 걸릴 수도 있고 험난한 지형에 갇혀 강제로 캐릭터를 삭제해야 하는 상황이 올지도 모른다.

    듣도 보도 못한 괴상한 몬스터에게 잡아먹힐 위험도 있고 사기꾼 같은 NPC에게 속아 노동력을 착취당할 수도 있다.

    소모품을 조달하지 못해 사망할 가능성도 있고 낮은 확률이지만 버그에 휘말려들 위험도 있었다.

    심지어 맵이 상공 2만 미터 위에 붕 떠 있는 상태이다 보니 추락사 가능성도 염두에 두고 주의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저 어깨를 으쓱했을 뿐이다.

    “나도 천공섬에 대해서는 잘 몰라.”

    반은 진실이고 반은 거짓말.

    나는 천공섬에 대해 아주 잘 안다.

    ‘다만 직접 겪어서 아는 지식이 드물어서 그렇지.’

    내가 현재 알고 있는 천공섬에 대한 지식은 대부분 유튜뷰나 위키 등에서 남들이 올린 공략을 보고 습득한 간접적인 것이었다.

    직접 피부로 와 닿는 경험을 한 것이 아니기에 자신할 수는 없다.

    다만 그간 습득했던 탑 티어 랭커, 천상계 파이오니아들의 공략집을 믿어 볼 뿐.

    “나는 너와 함께라면 어디든 갈 수 있을 것 같아.”

    윤솔은 고인물을 바라보는 뉴비 특유의 해맑은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다.

    ‘…기대에 부응하려면 열심히 해야겠지?’

    바로 그때.

    우리들의 토의를 방해하는 알림음이 있었다.

    -띠링!

    <‘비행로(飛行路)’에 진입하셨습니다>

    <최초 방문자의 이름이 아카식 레코드에 기록됩니다>

    기다렸던 알림음이 떴다.

    구덩이 밖으로 고개를 빼자 운석이 거대한 적층운 안으로 진입하려는 것이 보였다.

    쿠르릉! 쾅!

    폭우와 함께 천둥이 치기 시작했다.

    윤솔이 깜짝 놀라 외쳤다.

    “우왓!? 방금 전까지는 맑았는데?”

    “구름 안으로 들어와서 그런가 보다.”

    나는 윤솔의 머리 위에 내 망토를 씌워 주었다.

    키가 약 150센티미터 정도로 줄어든 그녀는 내 망토에 휘감긴 채 얼굴을 빨갛게 붉힌다.

    “…어진아. 좀 가깝지 않아?”

    “응? 아아 미안, 네 키가 너무 줄어들어서. 머리 위를 가려 준다는 게 그렇게 됐네.”

    “어어? 아아! 아니, 아니. 그렇다고 굳이 도로 멀어질 필요까지는 없는…….”

    한편 드레이크도 슬쩍 내 눈치를 본다.

    “어진, 나도 비 맞는다.”

    “…….”

    그때.

    콰쾅!

    번개가 어두운 구름 속 통로를 일순간 환하게 비췄다.

    괴물의 목구멍처럼 구불구불하고 울퉁불퉁한 구름길.

    그것은 실시간으로 약동하며 모습을 변화시키고 있었다.

    곳곳에 치는 번개가 먼 곳 곳곳을 밝힌다. 이 구름이 얼마나 거대한 것인지 잘 알 수 있게끔.

    “바깥세상과 구름 안 세상의 날씨가 완전히 딴판이군.”

    드레이크는 폭우에 뒤섞여 내리는 우박들을 바라보며 기가 막히다는 듯 말했다.

    후두둑- 후두둑- 후두둑-

    폭우와 함께 크기가 야구공만 한 우박들이 미친 듯이 쏟아지고 있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운석은 떨어졌던 궤도를 그대로 되짚어 상승한다.

    어느덧, 우리는 길고 길었던 구름 터널을 거의 다 통과하게 되었다.

    …그러나 그게 끝이 아니다.

    “아앗!? 어진아! 저기 이상한 것들이 따라오고 있어!”

    윤솔이 내 망토 자락을 잡아당기며 외쳤다.

    무심코 그녀의 손가락을 따라 고개를 돌리자.

    “……이런.”

    표정이 절로 팍 구겨질 수밖에 없었다.

    까아아아악!

    듣기 싫은 포효 소리가 들린다.

    육안으로는 정체를 알 수 없는 것들이 우리가 타고 있는 운석의 뒤를 따라오고 있었다.

    푸드득- 푸드득- 푸득- 푸드득-

    기분 나쁜 날갯짓 소리.

    비행로에서 이런 소리를 내는 존재는 딱 하나밖에 없다.

    <하피> -등급: B / 특성: 독, 비행, 야수, 뺑소니

    -서식지: 육중한 밀림, 구더기 언덕, 비행로(飛行路).

    -크기: 1.8m.

    -살모사와 칡을 먹고 사는 반인반조. 깃털과 목소리에는 독이 있다.

    덥고 습한 곳, 혹은 높고 바람이 많이 부는 곳에 여왕을 중심으로 무리지어 서식한다.

    저 귀찮고도 낯익은 몬스터들이 우리를 발견한 모양이다.

    비행로에 진입하면 약 10%의 확률로 하피 무리에게 습격을 당한다.

    …하지만 여기까지는 괜찮다.

    ‘설마 보스까지 뜨지는 않겠지?’

    나는 약간 불안한 마음으로 하피 떼를 살펴보았다.

    아니나 다를까, 불길한 예상은 항상 적중한다.

    [오-호호호호호!]

    떼거지의 후미에서 일반적인 하피들보다 5배는 더 큰 하피 하나가 모습을 드러냈다.

    매혹적인 얼굴, 육감적인 몸매, 입에 장미 꽃 한 송이를 물고 있는 우아함까지.

    하지만 양 팔을 이루고 있는 거대한 날개와 튼실한 허벅다리 밑으로 쫙 뻗은 새의 다리는 영락없는 괴조종(怪鳥種) 몬스터의 생김새다.

    <하피 퀸> -등급: B+ / 특성: 맹독, 비행, 야수, 뺑소니

    -서식지: 육중한 밀림, 구더기 언덕, 비행로(飛行路).

    -크기: 8m.

    -평소에는 고아한 귀부인의 모습으로 있지만 둥지가 공격받거나 새끼들이 죽으면 처절한 모습으로 덤벼들어 온다.

    발톱과 깃털, 목소리와 시선에 깃든 독은 일반 하피들의 것보다 훨씬 더 강력하다.

    하피 퀸.

    비행로에서 이 녀석을 만날 확률은 1%도 되지 않는데, 참 운도 없다.

    한편 드레이크는 나를 보며 의아해한다.

    “아직 거리도 있으니 충분히 이쪽에 도달하기 전에 잡을 수 있을 것 같은데? 애초에 하피는 그렇게 등급도 높지 않잖나.”

    말을 마친 드레이크는 쇠뇌를 들어 화살을 메겼다.

    펑!

    드레이크가 쏘아 보낸 강전(强箭)이 폭풍을 꿰뚫고 쏘아져 나갔다.

    ……한데?

    퍽-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하피 한 마리가 날개를 들어 드레이크의 화살을 막아 낸 것이다!

    태앵-

    화살은 힘없이 튕겨져 나간다.

    드레이크의 두 눈이 휘둥그렇게 변했다.

    “아, 아니? 하피 퀸도 아니고, 일개 하피가 내 화살을 튕겨내?”

    나는 작게 한숨 쉬었다.

    “놈들은 비행 특성이 있어서 창공 맵에서 싸울 시 스탯이 뻥튀기된다. 귀찮기로 따지면 어비스 터미널의 리자드맨들 이상이야.”

    “뭐라고? 저 많은 것들이 다? 젠장, 아주 더럽게 걸렸군.”

    드레이크 역시도 나를 따라서 표정을 구겼다.

    하피는 하늘에서 싸울 시 스탯이 올라갈 뿐만 아니라 바람을 응용하는 새로운 공격패턴까지 추가되기 때문에 공략 난이도가 단순 스탯 증가분보다도 훨씬 더 배가된다.

    “꺄아아악!”

    하피 퀸이 점점 거리를 좁혀오는 것을 본 윤솔이 비명을 질렀다.

    하지만.

    “안 돼, 안 돼, 잡혀 줄 생각 없어, 돌아가.”

    나는 단호한 태도로 하피 퀸의 앞을 가로막았다.

    “솔아. 잠깐 눈 감고 있을래?”

    나는 손바닥을 들어 윤솔의 눈을 가려 주었다.

    그 와중에 하피 퀸은 커다란 발을 날려 나를 공격해 온다.

    퍼억-

    나는 다른 쪽의 팔뚝을 들어 하피 퀸의 발차기를 막아냈다.

    그리고 그 즉시 ‘패륜아’ 특성을 갈겨 버렸다.

    빠바방!

    내 몸이 심장부터 검게 물든다.

    이내 벼락 줄기 같은 반사 데미지가 하피 퀸의 날개 하나를 무참하게 꺾어 놓았다.

    동시에, 나는 재빨리 갑옷을 갈아입었다.

    여덟 다리 대왕을 죽이고 빼앗은 ‘죽음사슬’ 갑옷.

    차르르르륵-

    ‘킬 체인’ 특성이 발동된다!

    사슬처럼 생긴 철조망이 생겨나 나와 하피 퀸의 몸을 이어 묶었다.

    마치 줄다리기를 하는 모양새.

    하지만 그것도 잠시였다.

    하피 퀸은 한쪽 날개가 꺾인 충격으로 잠시 비행을 하지 못하고 허공으로 밀려났다.

    평소대로였다면 적당히 낙하하다가 날개를 재정비해 다시 비행을 시작했겠지만, 안타깝게도 그녀의 허리에는 철조망들이 휘감겨 있다.

    뚝-

    둔중한 소음과 함께, 뒤로 내팽개쳐진 하피 퀸의 허리가 ㄱ자로 꺾였다.

    …문제는 뒤로 꺾였다는 것이다.

    마치 번지점프를 했을 때 지면에 닿기 직전 한번 탁 퉁겨오르듯, 하피 퀸은 철조망으로 전해져 오는 묵직한 반동을 고스란히 자기의 척추로만 견뎌내야 했다.

    나는 계속해서 킬 체인 특성을 발동했다.

    차라락- 차라락- 차라락- 차라락-

    철조망을 하피의 허리에 감은 뒤 날개를 살짝 마비시켜 비행을 못 하게 해 주면 하피는 엄청난 힘으로 움직이는 운석에 질질 끌려오게 된다.

    뚝! 뚝! 뚝! 뚝!

    그리고 그 힘을 이기지 못하고 허리가 부러져 죽어 버리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 우리가 탄 운석에는 철조망에 휘감겨 허리가 부러져 죽은 하피들의 시체가 몇 구 주렁주렁 매달리게 되었다.

    마치 적을 꼬챙이에 꿰어 영토 경계선에 못박아 둔 블라드 체페슈 공작처럼, 나는 하피들의 시체를 운석 뒤로 수없이 거느리게 되었다.

    [삐이이익-]

    [키이익-]

    여왕이 죽은 것도 모자라 그 주변의 동료들까지 줄줄이 죽어 매달리는 것을 보자 하피들은 서서히 물러나기 시작했다.

    “됐네.”

    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하피들이 가진 ‘뺑소니’ 특성 때문에 조금 불안했었는데 다행스럽게도 깔끔하게 포기해 줬다.

    ……하지만.

    안심은 이르다.

    나와 드레이크가 하피들을 견제하고 있을 동안 반대편으로 돌아서 있던 윤솔이 큰 목소리로 외친 것이다.

    “어, 어진아! 저기! 저기 앞에!”

    그녀의 다급한 목소리에 우리는 재빨리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이내 내 눈에 들어온 광경은 눈을 한번쯤 의심해 볼 만한 광경이었다.

    그림자.

    먹구름 장막 저 너머에 드리워져 있는 것은 거대한 그림자였다.

    콰쾅!

    천둥이 칠 때마다 그것은 점점 더 또렷하게 드러나 보인다.

    점점 우리가 타고 있는 운석을 향해 접근해 오고 있음이 명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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