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닳고닳은 뉴비-228화 (228/1,000)
  • 229화 비싼 통행료 (2)

    “세상에, 이런 특전도 있었구나.”

    황당함을 감출 수가 없다.

    회귀하기 전의 삶에서도 들어본 적 없는 특전.

    하긴 그럴 만도 하다.

    만약 이 정도의 특전이 있다는 것이 밝혀지면 너도나도 이것을 차지하기 위해 소란을 일으켰을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 특전을 최초로 손에 넣은 사람은 아마 이것에 대한 내용을 철저히 비밀로 했을 것이다.

    …물론 나 역시도 그럴 생각이고 말이다.

    ‘하지만 정말 역대급이로군. 과연 ’파이오니아‘에 걸맞은 특전이다.’

    내가 속으로 혀를 내두르고 있을 때.

    “무슨 특전이길래 그렇게 놀라나?”

    드레이크가 고개를 갸웃했다.

    S급 몬스터를 잡은 뒤에도 동요하지 않았던 내가 이렇게 놀라고 있으니 궁금할 만도 하다.

    나는 드레이크라면 충분히 대답을 들을 자격이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를 향해 운을 띄웠다.

    “이 특전은…….”

    하지만.

    말을 끝맺을 시간이 없었다.

    콰콰쾅!

    발뒤꿈치로 무언가 떨어져 폭발을 일으켰기 때문이다.

    “…뭐야? 마법?”

    나는 재빨리 뒤로 물러났다.

    내가 서 있던 곳의 흙을 태운 것은 꽤나 고클래스의 전격 마법이다.

    뭔가 싶어 고개를 돌리자, 이내 낯익은 얼굴들이 눈에 들어왔다.

    전사, 마법사, 궁수로 구성되어 있는 3인 파티.

    전원이 비슷하게 생긴 외모의 세 여자.

    “금은동?”

    나는 인상을 찌푸렸다.

    저 귀찮은 여자들이 왜 여기에 있단 말인가?

    내가 노골적으로 표정을 찌푸리고 있자, 그중 둘째인 이은비가 앞으로 나섰다.

    “오랜만이야~ 그동안 아주 연예인 다 됐네? 우리한테 짤짤이 삥 뜯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

    “…뭐야. 설마 까먹은 거냐? ‘우는 천사’ 때 기억 안 나?”

    아, 들으니 알 것 같다.

    예전에 ‘우는 천사’와 ‘메두사’ 연속 공략 당시, 나는 그녀들에게 ‘생존비’를 삥 뜯었던 적이 있다.

    그 이후로 마동왕 모드로 있을 때 서울 챌린지리그에서 한 번 더 붙었었지만, 그녀들은 ‘마동왕=고인물’ 이라는 사실을 모를 테니까.

    한편.

    금은동 자매는 노골적으로 불쾌한 표정을 지은 채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리고 나 역시도 약간 의외라는 표정으로 그녀들을 올려다보고 있다.

    원래 미래에서는 금은동 자매는 게임 초반에만 랭커로 이름을 날릴 뿐 상당히 빠르게 은퇴한다.

    한데 지금 그녀들을 보니 꽤 본격적으로 게임을 플레이하고 있는 듯하다.

    ‘미래가 조금 바뀌었나 보네.’

    나는 머쓱한 표정으로 뒷머리를 긁적였다.

    나 때문에 게임을 졸업하고 다른 일을 할 사람들이 더 본격적으로 게임에 뛰어들게 되어 버렸다.

    …이것도 어찌 보면 인연이라고 해야 할까?

    하지만 금은동 자매는 전혀 그런 생각이 없어 보였다.

    둘째 이은비가 나를 향해 씹어 내뱉듯 말했다.

    우는 천사 때의 원한이 짙게 남아 있는 목소리였다.

    “미안하지만, 이곳 사냥터는 우리가 접수해야겠어.”

    이은비의 말에 나는 고개를 갸웃했다.

    보통 게임의 필드에는 ‘자리’라는 개념이 있긴 하다.

    특정 구역에 서식하는 몬스터의 수가 너무 적을 경우, 몇몇 사람이 그 구역을 선점한 뒤 일정 범위 내의 몬스터를 독식하는 행위를 뜻한다.

    예를 들자면 아침 일찍 일어나 공원 안에 돗자리를 펼 자리를 맡아 놓는 것 같은 느낌이랄까?

    분명 필드는 주인이 따로 없는 무주공산(無主空山)이지만, 이렇게 모두가 암암리에 용인하는 독점 개념이 존재하는 것이다.

    물론 실질적으로 존재하는 법이나 규칙, 약속이 아니라 애매모호한 개념이기에 많은 갈등을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아무리 그래도. 이 넓은 던전을 죄다 독식하겠다니…그건 너무한데?”

    나는 금은동 자매를 향해 항의했다.

    하지만 그녀들은 요지부동이었다.

    “귀찮은 리자드맨들을 치워 준 것은 고맙지만…우리도 어쩔 수 없는 사정이 있어서 말이야.”

    “히든 퀘스트 때문인데…그게 이 던전을 통째로 써야 하는 거라서. 미안.”

    “너도 예전에 ‘우는 천사’ 공략 당시에 우리에게 크게 민폐를 끼쳤었잖아. 이번에는 양보하지 그래?”

    금은동 자매 역시도 꽤나 강경하다.

    나는 머리를 굴렸다.

    이 시점에서 저 여자들이 수행하고 있을 히든 퀘스트라…안 봐도 뻔하다.

    “‘이기적인 아귀의 수맥 찾기’ 퀘스트겠군.”

    내 말을 들은 금은동 자매의 눈이 휘둥그렇게 변했다.

    “어, 어떻게 알았지?”

    “분명 우리가 최초 발견자였는데!?”

    “우릴 미행한 거 아냐!?”

    물론 그럴 리가 없다.

    ‘이기적인 아귀의 수맥 찾기’는 어비스 터미널에 진입하기 전에 만날 수 있는 작은 마을에서 받는 히든 퀘스트이다.

    그곳에 사는 부족들은 이곳 심연 속에 사는 아귀를 두려워하면서도 숭배하는데...[SKIP]...뭐 기타 자잘한 설정들을 빼고 간략하게 말하자면 이곳에 사는 이빨곡괭이 아귀들을 잡아 그 증표들을 모아 가는 것이다.

    이빨곡괭이 아귀는 경험치와 아이템을 짭짤하게 주는 몬스터고 꽤나 사냥할 맛도 나는 몬스터기에 인기가 좋다.

    또한 증표를 모아가기 위해서는 가능한 수의 아귀를 잡아가야 한다.

    그러니 금은동 자매가 이곳에 있는 몬스터를 독점하고 싶어 하는 것도 이해가 안 가는 바는 아니었다.

    하지만!

    “나도 이 던전을 통째로 써야 하거든. 미안하게 됐어.”

    저런 잡 퀘스트를 위해 나의 메인 퀘스트를 포기할 수는 없지.

    나는 금은동 자매를 무시하고 절벽으로 몸을 돌렸다.

    ‘이 참에 새로 얻은 특전이나 시험해 볼까?’

    때마침 등장한 금은동 자매 덕분에 히든 퀘스트를 깨고 얻은 보상을 시험할 수 있게 되었다.

    나는 재빨리 아래로 내려가는 천칭저울에 올라탔다.

    드레이크는 접시 위로 올라가는 나의 손을 잡아 주며 씩 웃었다.

    “여기저기에 적이 많군. 짐을 포기해야 하잖아.”

    “미안하게 됐어. 내가 인생을 잘못 살아서…….”

    졸지에 쫓기는 몸이 되었다.

    원래는 천천히 내려갈 생각이었지만, 아무래도 일정을 조금 서둘러야겠다.

    드레이크는 내가 저울에 올라타자마자 도르래의 레버를 당겨 버렸다.

    쿠쿵! 철그렁- 철그렁- 끼리리리릭……

    도르래가 작동한다.

    수많은 밧줄과 사슬들이 움직이며 우리가 탄 저울이 아래로 내려가기 시작했다.

    “쳇! 어딜 도망가려고!”

    금은동 자매는 재빨리 고개를 두리번거렸다.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또 다른 저울 접시가 보인다.

    그곳에는 리자드맨 취락에 불을 지르고 남은 장작 몇 덩이와 베이컨 등의 식량, 그리고 짐을 싣기 위한 낙타 두 마리가 실려 있었다.

    내가 미처 수거하지 못한 짐이다.

    “우리도 타자!”

    금은동 자매는 내가 짐을 위해 마련해 놓은 접시에 올라타 도르래를 당기려 했다.

    …한데?

    그녀들이 엘리베이터를 작동시키는 순간, 시스템 알림음이 울려 퍼진다.

    -띠링!

    <통행료가 필요합니다>

    <성인 10,000G / 청소년 5000G / 7세 이하 1000G>

    동시에 그녀들 앞에 동전을 넣을 수 있는 투입구가 생겨났다.

    “뭐야? 고인물 저 자식은 아까 통행료 없이 지나갔잖아?”

    “쳇, 최초 입장객은 통행료 안 받나 보지! 퍽이나 좋은 특전이네!”

    “푼돈이니까 얼른 내버리자.”

    금은동 자매는 인벤토리에서 3만 골드를 꺼내 쾌척했다.

    쿠구궁…

    그러자 그녀들이 탄 접시 역시 하강하기 시작했다.

    “역시 따라오는군.”

    드레이크는 위를 보며 나직하게 중얼거렸다.

    하지만.

    나는 금은동 자매 따위는 신경도 쓰지 않고 있었다.

    오로지 1만 마리의 리자드맨을 잡고 얻은 특전을 재확인하며 기쁨에 겨워 있을 뿐이다.

    금은동 자매가 3만 골드의 통행료를 내는 순간, 내 귀에는 조금 다른 알림음이 들렸었다.

    -띠링!

    <후발주자들이 ‘고인물’님의 ‘개척로’에 발을 들여 놓습니다>

    <통행료의 10%가 입금되었습니다>

    <3000G를 획득 합니다>

    그렇다.

    리자드맨 만인장을 비롯한 1만 마리의 리자드맨을 죽이고 얻은 특수 호칭.

    고등급 몬스터를 죽이고 얻는 일반적인 호칭과는 궤를 달리하는 히든 특전이다.

    ‘리자드맨 학살자(특전: 징수)’

    해당 취락에 존재하는 모든 리자드맨을 죽인 자는 그 취락에 존재하는 모든 시설들에 이용료를 매길 수 있다.

    후발 주자들은 이 시설들을 이용할 때 세금으로 이용료를 바쳐야 한다.

    문제는 이 이용료의 10%가 나의 계좌로 들어온다는 것이다!

    최초로 이 구역을 클리어한 자에게만 주어지는 말도 안 되는 혜택.

    ‘앞으로 어비스 터미널은 수많은 유동인구로 붐비게 되지. 그렇다면…내 수중에 떨어지는 돈은….’

    게임에 관련된 쪽으로는 팽팽 돌아가는 내 머리지만…앞으로의 수익은 도저히 가늠이 안 된다.

    나는 이것 하나만으로도 평생 먹고 살 수 있을 정도의 기대 수익을 올리게 될 것이다.

    ‘대충 성인 1명 당 현실 돈으로 100원 정도이려나…….’

    모르는 사람이 보면 푼돈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이런 푼돈들이 모여 어마어마한 돈이 되는 것이 사실이다.

    하루에 만 명만 이곳을 지나간다고 해도 100만 원이 아닌가?

    게다가…이곳은 시간이 지난 뒤에 모종의 이유로 사람이 어마어마하게 붐비게 되는 곳이다.

    “좋아. 돈이 잘 들어오는 것을 확인했으니…너희들은 이제 필요 없다.”

    나는 고개를 들어 저 위의 금은동 자매를 올려다보았다.

    이제 저 여자들을 제거할 차례다.

    하지만, 그녀들은 순순히 당해줄 생각이 없는지 꽤나 기세등등하다.

    “어머? 싸워 보려고? 네가 대단한 건 알겠는데 우리 세 명의 합격술을 상대할 수 있을까?”

    “미안한데, 우리는 프로리그에서 만난 마동왕을 제외하면 PVP에서 져 본 적이 없어.”

    “지금이라도 사냥터를 양보하면 유혈사태는 없을 거다.”

    금은동 자매라면 확실히 이런 대사를 내뱉을 만한 자격이 있었다.

    원래 미래에서는 그녀들의 캐리 덕에 팀 엘리트즈가 서울의 챌린저가 되었을 정도였으니까.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양보하지.”

    이렇게 열악한 환경에서 강력한 적들과 싸우고 싶은 마음은 조금도 없다.

    내 말을 들은 금은동 자매는 밝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인다.

    “어머? 의외로 순순하네. 보기보다 상황 판단이 빨라~”

    잘 생각했어. 아무리 너라도 우리를 한꺼번에 상대하는 건 무리야.”

    “우리도 얼른 퀘스트 끝내고 나갈게.”

    하지만.

    “……?”

    나는 어깨를 으쓱할 뿐이다.

    “내가 양보할 쪽은 너희가 아닌데?”

    그러자 금은동 자매는 내 말뜻을 이해하지 못하고 표정을 찌푸린다.

    딱히 설명하기도 귀찮았기에, 나는 대답 대신 드레이크를 향해 턱짓했다.

    드레이크는 눈치 빠르게 쇠뇌를 들었다.

    피핑-

    화살 한 대가 위를 향해 날아든다.

    그것은 금은동 자매가 있는 쪽이 아니라 다른 방향을 향하고 있었다.

    낙타!

    드레이크가 쏜 화살은 두 낙타의 목에 연달아 구멍을 내었다.

    푸확!

    금은동 자매가 서 있던 저울은 낙타의 피로 범벅이 된다.

    “……?”

    “뭐야?”

    “왜 낙타를…….”

    금은동 자매가 의아한 어조로 입을 여는 순간.

    드드드드드드드드…

    어디선가 옅은 지진이 몰아닥친다.

    천천히 내려가고 있는 도르래.

    그 정면에 있던 절벽이 움찔움찔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윽고.

    콰콰쾅!

    땅봉우리가 불쑥 솟구쳐 오르며 절벽의 허리 부근에서 무언가 거대한 것이 튀어나왔다.

    오-오오오오오…!

    365일 24시간 연중무휴(年中無休) 불철주야(不撤晝夜) 땅을 파는 일꾼.

    어비스 터미널의 ‘승강장’을 만드는 토목 역군.

    바로 샌드웜 등장 되시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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