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닳고닳은 뉴비-227화 (227/1,000)
  • 228화 비싼 통행료 (1)

    <리자드 맨 만인장> -등급: A / 특성: 용, 고속재생, 백전노장

    리자드맨 만인장.

    손톱과 발톱, 이빨은 어지간한 칼날보다도 훨씬 날카롭다.

    통나무보다도 굵은 허리의 힘으로 휘두르는 꼬리에 맞으면 마치 공성병기에 피격당한 듯한 충격이 전해져 온다.

    그뿐이 아니다.

    펄펄 끓는 물속에서도 살아나올 정도로 높은 HP, 호수에서 이곳 승강장 입구까지 오는 동안 그 피해를 거의 다 회복해 버릴 정도의 재생능력은 정말 경이롭다고 할 수 있겠다.

    단단한 비늘과 쫀쫀한 근육 덕분에 방어력도 높고 지니고 있는 ‘용’ 특성 탓에 마법 저항력 역시도 상당하다.

    인공지능 센스가 좋아 공격 패턴도 다채롭고 또 스피드 역시 출중하다.

    그야말로 모든 능력치가 고루 높은 밸런스형 몬스터인 것이다.

    이 시점에서.

    ●REC

    나는 방송을 켰다.

    “간만에 하는 번개 방송입니다, 시청자 여러분!”

    리자드맨 만인장과의 1:1 대결. 기왕 A급 몬스터를 잡는 거라면 공개적으로 잡는 게 가장 효율이 좋지 않겠나?

    한편. 드레이크는 투덜투덜거리며 사이드 화면으로 나의 움직임을 촬영하고 있었다.

    “요즘 내가 활약할 기회가 너무 적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내가 방송을 하는 편이 가장 후원 수익이 높은 것을.

    그리고 히든 퀘스트를 받은 것도 나 혼자니 이 편이 제일 효율적이다.

    아니나 다를까, 내가 방송을 켜자마자 수백 명의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어?? 고인물 횽! 오늘 정규 방송 시간 아니잖어! •2분전

    -오!! 갑자기 번개 생방이라니! 잘보겠습니다! •2분전

    -전에 올라왔던 동영상들 기웃거리다가 땡잡았닼ㅋㅋㅋㅋ잘볼게요 고인물 횽! •1분전

    -동영상 연참이라니! ㄱㅅㄱㅅ •1분전

    -와...근데 여기 맵 어디에요? 무슨 세상의 끝 같네...저 절벽 좀 봐... •방금

    -헐 여기 북대륙 어비스 터미널임...리자드맨들이 우글거려서 못 가는 곳...이어야 할 텐데!? •방금

    -대박!! 지금 저 앞에 있는 거 리자드맨 보스 아님??? 고인물님 저거 어떻게 만나셨어요?? •방금

    .

    .

    수많은 댓글들이 채팅창을 가득 채운다.

    대부분 나의 기습 방송에 환호하거나 리자드맨 만인장을 보고 놀라는 반응들이다.

    하기야 놀랄 만도 하다.

    북대륙의 ‘어비스 터미널’은 지형 자체가 거대한 함정이나 다름없을 정도로 살벌한 던전이고 입구부터 수많은 리자드맨 떼 때문에 공략도 어려운 곳이니까.

    그 떼거리를 전멸시켜야 만날 수 있는 히든 보스가 바로 리자드맨 만인장인 것이다!

    물론 나에게는 그냥 지나가는 길에 만난 귀찮은 장애물에 불과했지만 말이다.

    “네, 소라게 님, 베베꼬인 님, 후원 감사드립니다. 지금부터 리자드맨 만인장을 잡아 보겠습니다. 많은 분들이 아시다시피, 이 만인장 몬스터는 리자드맨 하급전사부터 시작해서 십인장, 백인장, 천인장들을 모두 잡아야 만날 수 있어서 공략이 조금 까다로운 상대죠.”

    나는 시청자들을 의식하며 멘트를 쳤다.

    말을 시작하기 무섭게, 리자드맨 만인장이 이쪽을 향해 달려오는 것이 보인다.

    촤악-

    놈은 돌진과 동시에 몸을 빙글 들어 꼬리를 채찍처럼 날렸다.

    덩치와는 어울리지 않게 빠른 스피드!

    그리고 가해지는 물리공격력 역시도 어마어마했다.

    퍼퍼펑-

    놈의 꼬리가 지나간 허공이 폭발하듯 요동쳤다.

    대기가 갈가리 찢겨 나가며 사나운 바람이 일었다.

    하지만.

    나는 만인장이 꼬리를 채 휘두르기도 전에 이미 몸을 날려 놈의 뒤를 잡고 있었다.

    방어구가 없어 가벼운 알몸+

    이동속도를 2배로 올려 주는 씨어데블의 발가락(신발)+

    마찬가지로 이동속도를 3배로 올려 주는 크라켄의 알껍질(귀걸이)의 효과이다.

    -반사신경 개 미쳤다리;;;; •방금

    -알몸으로 저런 스피드가 어떻게 나와요?? •방금

    -뭐 특별한 아이템도 없어 보이는데;;;피지컬 개사기... •방금

    .

    .

    실시간으로 갱신되는 댓글창을 응시하며, 나는 리자드맨 만인장을 덥썩 붙잡았다.

    “여기서 가볍게 안다리걸기.”

    나는 만인장의 다리에 내 다리를 슬쩍 끼워 넣었다.

    힘으로 어떻게 한 것은 아니다.

    다만 다리를 끼워 넣는 순간 숨을 참고 놈의 다리 안쪽으로 끈적한 점액을 줄줄 흘려보냈을 뿐이다.

    내가 내뿜는 점액은 끈적하면서도 굉장히 미끄러운데 미꾸라지나 꼼장어가 내뿜는 점액을 생각하면 되겠다.

    내 점액을 밟은 만인장은 나를 공격하려던 자세 그대로 고꾸라져 앞으로 크게 구르고 말았다.

    지형이 급격한 경사지대여서 가능한 일이었다.

    콰콰쾅!

    리자드맨 만인장은 경사로를 데굴데굴 굴러 내려가 절벽 끝에 매달리게 되었다.

    사실 여기서 ‘킬 체인’ 특성을 발동해 만인장의 목에 철조망 올가미를 걸었다면 그대로 놈을 교수형에 처할 수 있었겠지만, ‘거미어미의 죽음사슬 갑옷’은 다른 메타의 전용 아이템이니 방송 중에는 쓰지 않도록 한다.

    나는 카메라를 향해 말했다.

    “자. 지금 만인장을 절벽에서 밀어 버리면 사실 간단합니다. 하지만 그랬다가는 낙하 데미지가 너무 커서 기여도 판정이 애매할 수 있어요. 한마디로 말하자면, 저 녀석이 저한테 잡힌 건지, 자기 실수로 죽은 건지 기여도를 따지기가 굉장히 애매해질 수 있다는 겁니다. 운이 좋다면 제가 잡았다고 뜨겠지만, 운이 나쁘면 보상을 거의 못 받을 수도 있어요. 아카식 레코드 관리자 마음대로입니다 이건.”

    따라서, 나는 관대한 마음으로 만인장에게 손을 내밀었다.

    “자, 이걸 잡고 올라오라고 친구.”

    내가 손을 내밀자 리자드맨 만인장은 두 눈을 끔뻑거리며 나를 바라본다.

    [크르르륵!]

    놈은 이내 손을 뻗어 내 손을 잡으려 했다.

    하지만, 몬스터는 몬스터다.

    순순히 내 도움을 받을 리가 없다.

    [크아아악!]

    만인장은 내 손을 잡는 동시에 다른 손으로 나를 후려치려 했다.

    하지만 그보다 내가 더 빨랐다.

    푸확!

    나는 리자드맨을 끌어올려 주는 척 하며 입에 머금고 있던 검은 피를 만인장의 얼굴에 뿜어버렸다.

    아까부터 혀를 살짝살짝 깨물어 모아뒀던 것이다.

    [크아아아악!]

    눈에 독혈이 들어간 만인장은 절벽 가에 선 채 허우적거렸다.

    그 틈을 타서.

    콕-

    맹독만 걸면 서운하니까 서비스로 깎단도 한번 살짝 찔러 준다.

    리자드맨 만인장의 허벅지에 작은 바늘구멍이 났다.

    -으악! 리자드맨이 불쌍해요ㅠㅠ... •방금

    -점액에 피 테러...진짜 불쾌하겠다리;;; •방금

    -스피드+도트뎀으로 농락하는건가... •방금

    -근데 저러면 고인물 횽도 HP 깎이지 않나? 피를 계속 내야하니.. •방금

    .

    .

    깎단의 특성 ‘능지처참’에 대해 모르는 시청자들은 내가 도트 데미지를 오로지 피로만 거는 줄 안다.

    그래서 내가 꾸준히 피를 뿌리다 보면 HP가 저하되지 않을까 걱정스러운 모양.

    하지만 그럴 일은 없다!

    나는 상태창을 흘끗 돌아보았다.

    “네. 방금 혀를 깨물어서 피를 뿜었기 때문에 HP가 10 정도 떨어졌네요. 하지만 괜찮습니다. HP를 회복할 방법은 얼마든지 있거든요.”

    나는 리자드맨 만인장을 향해 다섯 개의 손가락을 쫙 폈다.

    ‘혈액포식자’

    어둠 대왕의 흡혈기술이 내 손에서 그대로 재현된다.

    꿀꺽꿀꺽꿀꺽꿀꺽꿀꺽-

    만인장의 허벅지에서 뽑혀나온 핏물이 다섯 줄기로 나뉘어 나의 다섯 손가락에 연결되었다.

    만인장에게서 계속 HP를 빨아들였다.

    푸확!

    나는 계속해서 혀를 깨물고 리자드맨 만인장에게 피를 뿌려댔다.

    놈이 꼬리나 손톱을 휘두르면 재빠른 스피드로 피하고 가끔 이빨을 드러낼 때면 놈의 입 안에 내가 머금고 있던 피를 뿜어 준다.

    그러다가 피가 모라자면 바로바로 만인장에게서 뜯어내어 보충한다.

    토하고 빨고, 토하고 빨고, 토하고 빨고…무한반복이다.

    -알몸에 이어서 이제는 구토 메타...고인물 횽...변한 게 없네... •방금

    -우리 애기가 이거 보고 자꾸 밥먹다가 국물을 뿜어요ㅠㅠㅠ •방금

    -고인물횽이 뱉은 피 ...밥한그릇 뚝딱...밥도둑...중독성 있는 맛... •방금

    -진짜 드럽고 ㅂㅅ같은 플레이네;;;;; 당장 해봐야지!! •방금

    .

    .

    나는 계속 이리저리 도망 다니며 독 데미지로 만인장을 농락했다.

    이 모든 것은 내 스피드가 압도적이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자, 여러분들. 이제 만인장도 꽤나 지쳤습니다. HP도 반절 이상 깎인 것 같으니 지형 데미지로 죽여도 제 기여도가 솔찬히 나올 겁니다. 그럼 이제 굳이 직접 잡을 필요 없잖아요?”

    나는 경사로 아래에 선 채 만인장을 향해 손짓했다.

    [크-워어어어억!]

    일족의 원한을 갚기 위해 리자드맨 최후의 전사는 나를 향해 혼신의 다이브를 해 온다.

    물론.

    나는 그의 간절한 마음에 전력으로 응해주는 비효율적인 짓 따위는 하지 않았다.

    철푸덕-

    나는 달려드는 만인장의 발치에 점액을 깔았을 뿐이다.

    그리고 가볍게 발을 걸어 주는 것은 덤.

    쿠당탕!

    리자드맨 만인장은 이번에도 내 발에 걸려 구른다.

    하지만 이번에는 경사가 더더욱 가파른 곳이다.

    결국 놈은 독에 중독된 채로 저 까마득한 절벽 아래로 굴러 떨어지고 말았다.

    [크아아아악!]

    놈은 칼날 같은 손톱을 땅에 박아 넣어 낙하를 멈추려 했지만, 이미 놈의 전신은 씨어데블의 점액에 쩔어 있는지라 불가능했다.

    미끄덩-

    최후의 손톱질이 빗나감과 동시에, 놈은 절벽 아래 심연의 먹잇감이 되었다.

    “자, 이처럼 지형만 잘 이용해도 어지간한 몬스터는 한 방에 보내버릴 수 있습니다. A급까지는 이런 게 먹혀요.”

    나는 시청자들을 향해 씩 웃어 보였다.

    -A급까지는...지형...활용...먹힘...메모... •1분전

    -오늘도 재밌었어요 고인물 횽!!! •1분전

    -이것도 피지컬이 되니까 하는거지...우리같은 일반닝겐은 못한다... •방금

    -다음에 한번 어비스 터미널 공략해봐야지ㅎㅎㅎ •방금

    ↳님은 리자드맨 십인장 선에서 정리될듯ㅋㅋㅋㅋ •방금

    .

    .

    불과 30분도 되지 않는 짧은 공략 영상이었지만 간만의 레이드 영상이라서 그런가 시청자들의 반응이 꽤 좋았다.

    이번 동영상도 조회수 꽤나 나올 것 같다. 후원 수익도 상당했다.

    ○REC

    나는 방송을 껐다.

    그때쯤 해서.

    -띠링!

    <세계 최초로 ‘리자드맨 만인장’ 레이드에 성공하셨습니다!>

    <히든 퀘스트 ‘일만참수자(一萬斬首者)’를 완료하셨습니다.>

    <보상이 지급됩니다!>

    <이름을 남기시겠습니까?>

    .

    .

    수많은 알림음들이 들려왔다.

    “어디보자, 과연 히든 퀘스트의 보상이 뭘까나?”

    나는 리자드맨 만인장을 비롯해 1만 마리의 리자드맨들을 죽였다.

    현 시점의 플레이어들이 절대로 해낼 수 없는 과업.

    그것을 최초로 해냈으니 아마 무척이나 특별한 보상일 테지.

    -띠링!

    나는 상태창을 열었다.

    순간.

    “……!”

    내 상태창에 두 눈을 휘둥그렇게 뜰 수밖에 없는 변화가 생겼다.

    “……이, 이게 보상이야?”

    나는 떨리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동영상을 끄길 잘했다.

    이건…….

    …이건 너무 대박이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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