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닳고닳은 뉴비-225화 (225/1,000)

226화 개구리를 죽이는 방법 (4)

“잘 봐. 지금부터 도마뱀 1만 마리를 아주 평화적인 방법으로 죽일 거야.”

소리 없이, 조용히, 온건하게, be폭력무저항으로.

한편. 내 말을 들은 드레이크는 황당하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아니. 1만 마리나 죽이는데 어떻게 저항이 없을 수가 있나? 독을 푸는 것도 아니라면서…….”

“두고 보라고. 어떻게 하나.”

나는 드레이크를 데리고 리자드맨 취락의 건너편으로 향했다.

경사가 가파른 고지대에는 아직 불길이 닿지 않은 목책들이 서 있었다.

그 안쪽에는 이빨곡괭이 아귀의 시체들이 토막이 난 채 흩어져 있는 것이 보인다.

아귀는 리자드맨들의 손톱에 난도질당해 목숨이 끊어지는 그 순간까지 이 목책을 넘어가려 했다.

“이빨곡괭이 아귀가 움직인 경로를 계산해 보면…대략 이쪽 방향이군.”

나는 아귀가 죽기 직전까지 바라보던 방향으로 걸음을 옮겼다.

드레이크는 고개를 갸웃한다.

“이빨곡괭이 아귀는 그냥 리자드맨들에게 싸움을 건 것 아닌가? 그러다가 죽었고. 그게 무슨 의미가 있지?”

“아냐. 이빨곡괭이 아귀는 생긴 것과 다르게 상당히 신중한 성격이야. 리자드맨들의 전투력을 모르고 무턱대고 덤벼들 만큼 지능이 낮은 몬스터가 아니지.”

내 말대로다,

이빨곡괭이 아귀는 겉보기와 달리 꽤나 지능이 높다.

자기보다 약한 몬스터는 철저히 먹잇감으로 삼고 자기보다 강한 몬스터에게는 일절 덤벼들지 않는다.

유일하게 먼저 선공을 날리는 것은 플레이어 한정인 것이다.

“그런 놈이 무작정 리자드맨 취락에 뛰어들었다면, 그만큼 뭔가가 절실했다는 것이지.”

머리를 굴려 보자.

이빨곡괭이 아귀가 위험을 감수하고 리자드맨 취락을 습격한 이유가 뭘까?

나는 아귀가 목책을 무너트리고 취락 중앙까지 기어들어 가던 것을 떠올렸다.

만약 리자드맨들을 잡아먹는 것이 목적이었다면 취락 외곽을 빙 돌며 목책에 붙어 있는 일반병들을 노리는 것이 가장 효율적이다.

하지만 아귀는 곧장 취락 중앙으로 기어 들어와 엘리트 전사들을 상대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애초에 리자드맨들이 목적이 아니었던 것이지.”

그렇다.

이빨곡괭이 아귀는 리자드맨과 싸우기 위해서 취락을 넘어온 것이 아니었다.

단지 ‘지나가고’ 싶었을 뿐이다.

둥글게 형성되어 있는 리자드맨 취락을 지나, 그저 건너편으로 가기 위해서 가장 짧은 코스를 선택했던 것이다.

결국 목적지까지 가지 못하고 리자드맨 만인장에게 잡혀 버렸지만.

드레이크는 고개를 갸웃했다.

“그렇게까지 무리수를 둬 가면서 취락을 건너가야 할 이유가 있었나?”

나는 그의 의문에 대답을 해 주었다.

“이건 내 추측이지만, 이빨곡괭이 아귀는 일단은 ‘물’고기야. 물 특성이 있는 만큼, 물 없이는 살 수 없지.”

“……그래서?”

“아마 지하수 냄새를 맡고 수원(水源)을 찾아가려던 게 아닐까 한다.”

1. 이빨곡괭이 아귀 한 마리가 모종의 이유로 물가에서 떨어져 방황한다.

2. 피부가 바싹바싹 말라서 조급하던 차에 물 냄새를 맡은 아귀는 눈에 뵈는 것 없이 그쪽으로 곧장 달려간다.

3. 하지만 그곳은 리자드맨의 취락이 있는 곳이었고 결국 아귀는 죽고 말았다.

“뭐 그런 거지. 내 추측이지만.”

나는 경사로를 오르며 계속 말을 이었다.

“아마 아귀가 리자드맨의 취락을 그냥 뚫고 들어갔을 정도면….꽤나 승산이 있다고 생각했을 것이고…그렇다면 수원과의 거리도 그만큼 가까웠다는 이야기인데….”

말이 끝나기가 무섭다.

나는 저 멀리 구릉 아래의 흙이 유난히 붉으죽죽하게 물들어 있는 것을 발견했다.

딱히 그늘진 곳도 아닌데 흙의 색깔이 혼자 다르다는 것은 눈여겨봄직한 일이다.

스삭- 스스슥-

손을 모아 흙을 조금 훑어 내자, 이내 손가락 끝이 축축해진다.

퐁퐁퐁-

아래에서 샘물이 솟아나기 시작했다.

손가락 사이로 차갑고 맑은 물이 차오른다.

“좋았어. 이제 산사태가 일어나지 않을 정도로만 땅을 넓히면 된다.”

나는 마동왕 모드로 전환해 건틀릿을 착용했다.

그리고 주위를 의식하며 지진을 일으켰다.

우르릉…

땅이 옅게 떨리자 웅덩이가 넓고 깊어졌다.

물이 팍 튀어 올랐고 오전은 온통 진흙탕이 되었다.

그와 동시에 상당한 양의 토사가 쓸려 내려와 나와 드레이크를 덮쳤다.

“푸확!?”

드레이크는 밀려드는 토사에 순식간에 파묻혀 버렸다.

졸지에 생매장된 것도 모자라 아래로 급격하게 쓸려 내려가고 있다.

어디가 위고 어디가 아래인지 구분도 되지 않는다.

“조심!”

나는 킬 체인을 발동해 드레이크와 나의 몸을 옆에 있던 바위에 묶어 놓았다.

철조망으로 이루어진 쇠사슬이 나와 드레이크의 허리를 단단히 휘감아 조였다.

쿠르르릉…

이윽고. 쓸려 내려온 토사는 저 아래 리자드맨의 목책 가까이 당도해서야 멎었다.

드레이크는 입에 들어간 흙을 뱉어내고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이래서 함부로 지진을 일으키면 안 된다고 한 거였군.”

“맞아. 우리까지 쓸려가 버리니까 말이야.”

나는 고개를 빼어 리자드맨 취락을 바라보았다.

혹시나 리자드맨들이 토사에 쓸려 내려가지 않았을까 살짝 기대했지만, 놈들이 만들어 놓은 땅굴과 축대, 목책들이 워낙 견고했기에 이 정도의 토사로는 꿈쩍도 하지 않는 모양이다.

“원래 계획대로 해야겠어.”

나는 고개를 돌렸다.

눈앞에는 새로 만들어진 커다란 호수가 보인다.

펑! 펑! 펑!

지하 암반의 틈에서 뿜어져 나오는 물이 어느새 가득 고였다.

방금 전에 쓸려 내려간 토사 덕분에 지대가 어느 정도 평평해졌기에 물은 비교적 안정적으로 모이고 있었다.

호수 끝부분이 약간 흘러넘치긴 했지만 크게 문제될 정도는 아니었다.

“정말 이곳에 수원이 있었군?”

드레이크는 놀란 표정으로 호수로 다가갔다.

참방!

손을 담가보니 맑고 시원한 물이다.

흙탕물이 가라앉으니 바닥 저 깊은 곳 균열에서 물이 뿜어져 나오는 것이 보였다.

당장이라도 뛰어들어 몸을 담그고 싶을 정도로 투명한 호수였다.

하지만 한가롭게 물장난이나 하고 있을 시간이 없다.

“소란이 있었으니 곧 리자드맨들이 여기로 몰려올 거야.”

“…드디어 전쟁인가?”

“그럴 리가. 어서 숨자고.”

나는 드레이크를 끌고 호수 옆에 있는 암벽에 밀착했다.

펄럭-

샌드웜의 망토를 덮고 숨을 죽이니 ‘흙장난’ 특성이 발동했다.

예전에 샌드웜을 잡았을 때처럼, 우리는 또다시 한 이불을 덮은 신세가 되었다.

드레이크는 볼멘소리로 조그맣게 투덜거린다.

‘아니, 이럴 거면 애초에 불은 왜 질렀담?’

‘잠자코 있어 봐.’

나는 검지를 들어 드레이크의 입술을 살포시 눌렀다.

이내, 드레이크의 동공이 가늘게 떨린다.

‘왔군.’

저 멀리 리자드맨 척후병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쉬익!?]

[크르르륵!]

[캬아악!]

[스피오- 스피오-]

[씨얼- 씨얼- 씨얼-]

물을 발견한 리자드맨들은 흥분했을 때 내는 특유의 소리를 내며 취락으로 되돌아간다.

이윽고.

쿵쾅쿵쾅쿵쾅쿵쾅…

지축이 뒤흔들리기 시작했다.

셀 수도 없이 많은 리자드맨들이 호수를 향해 달려오고 있었다.

하나같이들 팔다리가 부자연스럽거나 눈이 퉁퉁 부어 있는 개체들이었다.

풍덩! 풍덩! 풍덩!

리자드맨들은 달려오는 즉시 호수 속으로 몸을 던졌다.

그리고 그동안의 건기를 한 번에 날려 버리려는 듯 물장구를 치기 시작했다.

낡은 비늘, 말라붙은 피막, 두텁게 쌓인 각질…….

그 모든 것들이 물에 불어 씻겨 나간다.

리자드맨들은 그동안 마시지 못했던 물을 마음껏 마셨다.

그리고 손톱을 들어 묵은 때를 벗겨내기 시작했다.

쓱쓱쓱-

손톱칼이 피부 위를 지나갈 때마다 허물들이 벗겨진다.

오래되어 두터워진 비늘, 진물이 굳어 생긴 딱지 등등 역시도 마찬가지였다.

허물을 채 벗지 못해 손가락이나 발가락이 굽었던 이들은 이제 멀쩡한 손발을 갖게 되었다.

눈병으로 퉁퉁 부어 있던 눈도 눈꺼풀 속의 묵은 피막들을 물에 불려 빼내자 정상으로 돌아왔다.

고름과 피딱지, 묵은 때들이 물에 불어 사라지자 리자드맨들은 한층 더 활기차졌다.

원래의 베스트 컨디션을 되찾은 것이다.

녀석들은 물을 마시고 목욕을 끝마친 뒤에도 물속에 남아 한동안 여유를 즐기고 있었다.

그때쯤 해서.

나는 앞으로 나섰다.

“퐁당, 퐁당, 돌을 던지자. 리자드맨 몰래 돌을 던지자.”

나는 리자드맨들에게 보이지 않는 바위 뒤에 숨어서 수면 위로 발을 치켜들었다.

마치 싱크로나이즈, 예술수영을 하는 것처럼 우아하게 올라간 발.

각선미 좋은 내 발의 끝.

그러니까 엄지발가락 끝에서 무언가가 수면 위로 똑똑 떨어져 내린다.

퐁당! 퐁당! 퐁당!

그것은 바로 용암이었다.

부글부글 끓는 용암이 한 방울, 한 방울씩 수면 위로 떨어진다.

“……?”

의아하다는 듯한 표정을 짓고 있는 드레이크에게, 나는 물었다.

“개구리를 삶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 줄 알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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