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닳고닳은 뉴비-224화 (224/1,000)
  • 225화 개구리를 죽이는 방법 (3)

    뜨거운 태양, 맑은 하늘, 느리게 흘러가는 구름.

    긁적 긁적…

    리자드맨 한 마리가 바위 위에 앉아 손톱으로 엉덩이를 긁고 있었다.

    이들은 기본적으로 외온성 변온동물이기에 체온을 따듯하게 유지하기 위해서는 일광욕이 필수적이다.

    따라서 리자드맨들은 반드시 하루의 얼마간은 시간을 내여 볕이 잘 드는 곳에 누워 빛을 쬔다.

    그들이 심연 터미널 깊은 곳으로 들어가지 않고 얕은 곳에 터전을 꾸리는 이유가 바로 이것이었다.

    태양에서 멀어지면 체온을 유지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긁적 긁적 긁적…

    리자드맨은 가만히 앉아 발가락 사이를 긁었다.

    평화로운 한때.

    따듯한 바위 위에 드러누워 있는 것이 실로 한가해 보인다.

    긁적 긁적 긁적 긁적…

    한데…뭔가 좀 이상하다.

    어째 몸을 좀 과하게 많이 긁는 것 같은…….

    긁적 긁적 긁적 긁적 긁적!

    이내, 리자드맨은 손톱을 세워 전신을 미친 듯이 긁기 시작했다.

    찌직- 찌지직-

    리자드맨이 한번 손톱으로 몸을 긁을 때마다 낡은 비늘과 함께 얇은 피막이 벗겨진다.

    마치 삶은 달걀의 흰자와 껍데기 사이에 있는 난각막처럼, 허물 조각들이 리자드맨의 피부 위로 때처럼 밀려나오고 있었다.

    리자드맨은 전신을 미친 듯이 긁어 낡은 비늘과 허물 피막들을 긁어냈다.

    어찌나 세게 긁었던지 가끔 살점이 파여 피가 흘러나오기도 했다.

    하지만.

    끝끝내 벗겨내지 못한 부분이 있었다.

    바로 눈이었다.

    눈에 얇게 낀 피막은 눈을 깜빡일 때마다 눈꺼풀 안쪽으로 말려 들어가 찌꺼기처럼 뭉친다.

    이것들은 뜨거운 열을 받아 썩고 이내 고름이 되어 퉁퉁 부었다.

    [쉬이이잇!]

    리자드맨은 손톱으로 자기 눈을 마구 긁었지만 그렇다고 안구 저편으로 넘어가 버린 허물 조각들을 벗겨낼 수는 없었다.

    피막이 썩자 눈도 썩는다.

    안구에 고름이 가득 고여 퉁퉁 부었다.

    그리고 그런 리자드맨들이 지금 한둘이 아니었다.

    [크르르륵!]

    [데샤아아앗!]

    [쉬익! 쉬이익!]

    바위 꼭대기, 축대 밑, 토굴 속이나 황무지 위 곳곳에서 리자드맨들이 지르는 짜증 섞인 경고음이 요란하다.

    서로가 서로를 향해 내지르는 소리다.

    시력이 급격하게 나빠진 것은 둘째 쳐도, 안구 안쪽으로 몰려오는 통증 때문에 리자드맨들은 모두 신경이 날카로운 상태였다.

    [쉬이이익!]

    모든 리자드맨들이 물을 찾아 헤맸다.

    대기에 습도가 높거나 물웅덩이에 몸을 담그면 낡은 비늘이나 허물, 피막 등은 알아서 녹거나 훌훌 벗겨진다.

    하지만 얼마 전에 난 화재 때문에 주변의 습도는 급격히 낮아져 있었다.

    주변은 온통 타다 만 나무와 바짝 구워진 흙, 말라붙은 잿가루 뿐이다.

    황급히 샘물을 찾아보지만 불을 끄느라 수위는 매우 낮다.

    물을 너무 많이 써 버렸다.

    휘이이잉-

    황무지 저편에서는 바싹 마른 바람만이 불어온다.

    습기라고는 한 점도 없었다.

    눈을 맵게 하는 잿가루만이 바람에 섞여 풀썩풀썩 휘날릴 뿐이었다.

    [쉬이이이익!]

    [키이이이익!]

    결국 리자드맨들은 모두 눈병에 걸려 버렸다.

    때로는 손가락이나 발가락을 똑바로 펴지 못하게 된 녀석들도 있었다.

    심지어 이것은 이미 완성된 몸을 가진 성체들의 이야기다.

    아직 성장이 덜 된 유체나 아성체의 경우에는 피해가 더욱 심각했다.

    어린 헤츨링들은 팔이나 다리, 꼬리를 통째로 잃거나 두 눈을 전부 뽑아내야 했다.

    알 속에 있는 리자드맨들은 아예 알껍데기조차 깨고 나오지 못한 채 죽음을 맞이했다.

    단순 식수의 부족 외에도 이런저런 이유로 물은 필요하다.

    그것도 아주 절실히.

    [캬아악!]

    [쉬이익!]

    취락 곳곳에서 리자드맨들끼리의 다툼이 벌어지고 있었다.

    당연히 식수 쟁탈전이다.

    [크르륵! 크륵!]

    리자드맨 하나가 허공에 매달려 있는 가죽 자루를 향해 달려갔다.

    자루들은 마치 열매처럼 나뭇가지 아래 대롱대롱 매달려 있었다.

    밧줄로 묶인 샌드백을 보는 것 같기도 했다.

    커다란 가죽 자루의 안에는 맑은 물이 가득 들어 있었다.

    뿌직!

    리자드맨은 가죽 자루를 찢고 안에 든 물에 고개를 처박았다.

    꿀꺽- 꿀꺽- 꿀꺽-

    물은 목을 타고 넘어간다. 동시에 전신을 차갑게 적셨다.

    눈에 말라붙었던 낡은 피막이 퉁퉁 불어 벗겨져 나갔고 전신에 녹처럼 껴 있던 각질과 묵은 비늘들도 떨어져 나간다.

    문제는…머리통도 같이 떨어져 나갔다는 것이다.

    [그르르르…]

    리자드맨 만인장.

    그는 자신의 식수에 손을 댄 건방진 부하를 그냥 두지 않았다.

    뿌지지직!

    만인장은 부하의 몸통과 머리통을 잡아 그대로 분리해 버린 뒤 뜨거운 피로 자신의 몸을 적셨다.

    [쉬이이익!]

    [그르르륵!]

    다른 리자드맨들은 비늘을 곤두세운 채 만인장을 노려보았지만 딱히 덤벼들지는 않았다.

    [크아아악!]

    천인장과 백인장들이 토굴에서 나와 일반 리자드맨들을 위협했다.

    리자드맨 엘리트 전사들은 다들 체구가 크고 이빨과 손톱이 더 날카롭다.

    그들은 윗 계급이 마실 물을 지키기 위해 아랫 계급의 동족들에게 살기를 내뿜는다.

    부족 내에서 적수가 없는 엘리트 전사들이 이렇게 노골적으로 전투태세를 취하는데 식수를 나눠받을 수 있을 리가 없다.

    일반 리자드맨들은 별 수 없이 몸을 돌려 식수가 있는 중앙 광장에서 멀어졌다.

    별 수 없이, 그들은 자구책을 찾아야만 했다.

    땅을 파서 습기가 있는 흙을 찾아 몸을 담그든가 새벽이슬이 고여 있는 웅덩이를 찾든가 해야 하는 일이다.

    하지만 그것은 미봉책일 뿐 결코 근본적인 대책은 될 수 없었다.

    식수는 턱없이 부족했고 대기 중의 습도는 지금도 점점 낮아지고 있었다.

    화마가 지나간 뒤 남은 잿가루와 연기가 모든 습기를 말려 버렸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리자드맨들은 버티고 있었다.

    눈이 멀고 손가락 발가락이 기형이 되고, 나아가 새끼들까지 죽어 가고 있지만 그들은 취락을 버리지 않고 버틴다.

    극도로 꼿꼿한 리자드맨의 자존심은 아직도 꺾이지 않고 있는 것이다.

    *       *       *

    한편.

    나와 드레이크는 멀리서 그 광경을 모두 지켜보고 있었다.

    드레이크는 리자드맨들이 스스로 두 눈을 뽑는 것을 보며 감탄했다.

    “세상에, 저놈들에게 이런 약점이 있을 줄이야.”

    사실 애완 파충류를 키워 본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꽤나 공감할 만한 상황이다.

    테라리움 안의 습도를 분무기로 적절히 조절해 주지 않으면 파충류는 눈병이나 결절에 걸리기 십상.

    극도의 스트레스로 인해 수명이 단축되는 것은 물론이요 심하면 돌연사하기도 한다.

    드레이크는 습기와 건기를 이용한 나의 전략에 크게 감탄했다.

    “대부분의 도마뱀들이 눈이 멀거나 팔다리가 기형이 되었군. 화살받이나 다름없겠어.”

    그는 반색을 하며 화살과 마름쇠를 챙겼다.

    실제로 발가락만 하나 없어도 뛰거나 걷는 데에는 큰 지장이 간다.

    리자드맨들은 발가락 관절에 낀 각질이나 묵은 비늘 때문에 특유의 날랜 움직임을 내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눈이 보이지 않게 된 녀석들은 말할 것도 없었다.

    “내가 가서 싹 쓸고 오지. 화살을 많이 챙겨오길 잘했군.”

    드레이크는 당장이라도 목책과 축대를 넘어 리자드맨 마을을 습격할 기세다.

    하지만 나는 손을 뻗어 그를 만류했다.

    “진정해. 도마뱀들의 숫자가 여전히 너무 많아.”

    “그런가? 실질 전투병력은 많이 줄어든 것 같은데?”

    “습기를 찾아 토굴 속에 숨은 녀석들도 생각해야지. 그리고 백인장 이상의 엘리트 전사들은 대부분 건재하다.”

    “지진이나 와류 특성을 쓰면 잡을 수 있지 않을까?”

    “그랬다간 우리 전부 다 토사에 쓸려내려 갈걸?”

    내 말에 드레이크는 잠시 멈칫했다.

    생각해보니 이곳은 가파른 경사지대.

    섣불리 움직였다가 산사태라도 일어나면 모두가 저 까마득한 절벽 아래로 다이빙이다.

    “…흐음. 그렇다면 심하게 날뛸 수는 없고. 하나하나 화살로 수를 줄여 나가는 수밖에 없나? 알 부화율이 낮아지고 유체들의 생존률이 떨어졌으니 전멸시키는 것이야 어렵지 않겠다만…….”

    “그건 그렇지만. 화살도 많이 들고 시간도 오래 걸릴 거야.”

    “그래 네 말이 맞아. 자, 이제 어떻게 해야 할지 내게 말해 줘. 너는 이미 다음 전략을 가지고 있겠지?”

    드레이크는 나를 보며 눈을 반짝거렸다.

    나는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부터 저 녀석들에게 물을 줄 생각이다.”

    내 말을 들은 드레이크는 황당하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지금 뭘 준다고?”

    “물.”

    내가 태연히 대답하자 드레이크는 도무지 영문을 알 수 없다는 듯 두 팔을 들어 올렸다.

    “아니, 물을 줄 거면 왜 불을 질렀던 거야? Give medicine after bottle?”

    “뭐…맞아. 병 주고 약 주는 거지.”

    드레이크는 심각한 표정으로 혼자 무언가를 곰곰이 생각한다.

    “맨 처음 불을 질렀고, 그 다음에는 습기를 말렸고, 그 다음에는 물을 준다?”

    불과 건기, 눈병, 리자드맨, 그리고 물. 이 모든 것들의 상관관계란 뭘까?

    나름대로 혼자 이런저런 추리를 하던 드레이크는 이내 묘안을 떠올렸다는 듯 물었다.

    “…혹시 목마른 리자드맨들을 상대로 물에 독을 풀어서 전부 중독시키려는 건가? 천재적인 발상이군!”

    “응? 아닌데? 리자드맨들은 신경이 예민해서 물에 들어간 독쯤은 바로 간파할걸? 그리고 1만 마리나 되는 리자드맨들이 일제히 물을 마시는 것도 아니잖아. 어떻게 하나하나 다 중독시키겠어.”

    “으음……. 그렇다면…그래 그거야! 물에 소용돌이를 일으켜서 다 익사시키는 거지! 그야말로 한 방 전략이다!”

    “잉? 그것도 아닌데? 말했잖아. 와류나 지진 계열의 자연재해 특성은 못 쓴다고. 지형에 무리를 주면 산사태가 일어나서 전부 다 절벽으로 쓸려 내려가.”

    “으으으음…….”

    야심차게 내놓은 추리가 연달아 반박당하자 드레이크는 다소 의기소침해졌다.

    나는 그의 어깨를 몇 번 두드려 주고는 입을 열었다.

    “잘 봐. 난 지금부터 도마뱀 1만 마리를 아주 평화적인 방법으로 죽일 거야.”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