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닳고닳은 뉴비-223화 (223/1,000)

224화 개구리를 죽이는 방법 (2)

리자드 맨이란 무엇인가?

1937년, 미국의 소설가 에이브림 메리트는 어느 날 안데스 산맥의 유적들에 남아 있는 기묘한 그림을 보게 되었다.

그것은 인간과 짐승이 절반씩 뒤섞여 있는 괴기스러운 그림이었는데 그는 여기에서 영감을 얻어『황금향(黃金鄕)의 뱀 모신(母神)』이라는 모험소설을 창작했다.

이 소설에는 키가 약 120cm에 이르는 도마뱀 인간에 대한 묘사가 등장한다.

전신을 뒤덮고 있는 뱀의 비늘, 머리에는 붉은 볏이 있으며 손발톱과 이빨은 날카롭다.

두 다리로 성큼성큼 걸어 다니며 긴 꼬리가 달렸고 사람을 영원히 잠들게 만드는 강력한 수면독을 가졌다.

생명력이 무척이나 강해서 머리나 심장을 파괴하지 않으면 죽일 수 없다고 한다.

데우스 엑스 마키나의 리자드맨 역시 에이브림 메리트의 리자드맨에서 상당 부분 영감을 받아 만들어졌다.

다만 120cm의 작은 키는 2m 정도로 훌쩍 커졌고 이빨이나 손톱에 깃들어 있는 독이 사라진 대신 굵은 뼈와 질긴 근육을 갖게 되었다.

칼날 같은 비늘과 이빨, 손발톱.

채찍을 넘어서 철퇴 같은 꼬리.

전신을 뒤덮고 있는 두툼한 근육.

심지어 몇몇은 무기 사용법을 익혀 칼이나 도끼, 창을 들고 다니기도 한다.

이 세계관의 리자드맨은 하나하나가 강력한 전투력을 보유하고 있는 전사 부족인 것이다.

<리자드 맨> -등급: C / 특성: 용, 고속재생, 백전노장

-서식지: 남대륙 전역, 어비스 터미널

-크기: 2m.

-반짝이는 것을 너무 좋아해 다른 종족과 자주 영역 분쟁을 일으킨다고 한다. 때문에 금광 근처에서는 늘 이 괴물을 볼 수 있다.

오크와 더불어 인간에게 가장 많은 피해를 끼치는 몬스터.

리자드맨은 개인 생활을 하는 동시에 무리 생활을 한다.

집단을 이루어 주거하지만 사냥감을 공유하거나 별다른 단체활동을 하지는 않는 편이다.

리더는 존재하지만 다스리거나 군림하지도 않는다.

개인과 집단이 절묘하게 공존하고 있는 독특한 문화.

하지만 이런 리자드맨들이 하나로 똘똘 뭉칠 때가 있으니, 그것은 바로 거대한 적이 취락을 습격해 올 때다.

콰쾅!

목책이 부서지며 이빨곡괭이 아귀가 그 육중한 몸을 안으로 들이밀었다.

이 거대한 물고기는 땅 위를 닥치는 대로 누비며 리자드맨들을 잡아먹는다.

목책도 흙도 리자드맨도 전부 아귀의 뱃속으로 빨려 들어가고 있었다.

우적- 우적- 우적-

이빨곡괭이 아귀는 입 안에 빼곡하게 난 이빨로 모든 것들을 으깨 버렸고 이내 아가미로 흙과 나뭇조각들을 뱉어낸다.

아귀의 아가미 틈으로 뱀 비늘이 섞인 뻘건 핏물이 콸콸 쏟아져 나오고 있었다.

[쉬익!]

[시이잇!]

취락 안에 있던 리자드맨들이 우르르 뛰쳐나왔다.

아귀의 위험등급은 B+ 리자드맨들의 위험등급은 C.

언뜻 보기에는 상대가 되지 않을 것 같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리자드맨들은 기죽지 않고 아귀에게 덤벼들었다.

푹! 푸푹! 푹!

수많은 손발톱들이 아귀의 살을 파고든다.

[아귀이이이익!]

이빨곡괭이 아귀는 두툼한 살집을 흔들어 달겨 붙는 리자드맨들을 떨쳐냈다.

마치 모기가 무는 것 같다는 듯한 태도.

콰직! 우지끈!

이빨곡괭이 아귀는 계속해서 곡괭이 같은 이빨로 리자드맨 취락을 헤집어 놓으며 전진하고 있었다.

마치 취락 저편에 있는 무언가를 찾는 듯한 모양새.

리자드맨들은 체급이 훨씬 더 큰 몬스터의 등장에 속수무책으로 밀려날 뿐이다.

날카로운 이빨과 손톱, 통나무처럼 굵은 팔뚝과 꼬리로도 저 육중한 괴물 아귀를 막을 수는 없었다.

아귀가 입을 벌리면 여지없이 몇 마리인가의 리자드맨들이 잡아먹혔고 거대한 지느러미가 땅을 디딜 때는 더 많은 수의 리자드맨들이 피떡이 되어 짓눌렸다.

하지만.

[그르르르…]

취락 깊숙한 곳에서 걸어 나온 몇몇 리자드맨들에 의해 상황은 뒤바뀌었다.

다른 리자드맨들보다 두 배는 더 큰 리자드맨 하나가 땅을 짚고 헤엄치는 아귀의 앞을 막아선 것이다.

<리자드맨 만인장> -등급: A / 특성: 용, 고속재생, 백전노장

일만 마리의 리자드맨들을 통솔하는 리더.

딱히 단체활동을 하지 않는 리자드맨들도 적과의 분쟁 시 리더의 지휘 아래 움직인다.

리자드맨 만인장(A)이 움직이자 그 뒤에서 리자드맨 천인장(B+)들과 백인장(B), 십인장(C+)들이 우르르 쏟아져 나왔다.

콰긱!

리자드맨 만인장은 긴 손톱을 뻗어 아귀의 옆구리에 박아 넣었다.

그리고 바오밥나무의 밑동 같은 허리로 아귀의 돌진을 막아냈다.

쿠쿵-

둔중한 굉음이 울려 퍼졌다.

거침없이 돌진하던 아귀가 만인장의 힘에 의해 뚝 멈췄다.

우지직!

만인장은 아귀의 옆구리를 찢고 상체를 들이밀었다.

그리고 긴 손톱을 뻗어 전면 대각선에 위치한 아귀의 간과 심장을 단숨에 꿰뚫어 버렸다.

기우뚱…… 쿵!

폭주하던 아귀의 몸이 뚝 멎음과 동시에, 커다란 육체가 지면에 쓰러졌다.

그러자 그 위로 다른 리자드맨들의 손톱이 미친 듯이 떨어져 내렸다.

퍼적! 퍼퍽! 뿌드득! 철푸덕! 철퍽! 찔거덕!

이빨곡괭이 아귀는 그 자리에서 수억 조각의 고깃덩어리가 되어 부침개처럼 푹 퍼져 버렸다.

짤그랑!

고등급 몬스터답게, 아귀는 죽은 뒤 반짝이는 금화들을 꽤 많이 드랍했다.

그것들은 경사로를 따라 데굴데굴 굴러 저 아래 절벽으로 떨어져 버렸다.

[쉬이이이잇!]

반짝거리는 금화를 보자 몇몇 리자드맨들의 눈이 돌아갔다.

놈들은 경사로를 따라 굴러가는 금화를 잡기 위해 맹렬히 돌진했고 그 결과 몇 마리의 리자드맨들이 발을 헛디뎌 절벽 아래로 곤두박질쳤다.

짤그랑! 짤랑!

피에 젖은 나머지 금화들은 수많은 리자드맨들에 의해 깔끔하게 사라져 버렸다.

이빨곡괭이 아귀가 일으킨 소동은 그렇게 마무리되었다.

*       *       *

“반짝거리는 것을 정말로 좋아하는군.”

드레이크는 금화를 주우려다가 절벽 아래로 떨어지는 리자드맨들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나는 잠시 하던 일을 멈추고 고개를 들었다.

“만약 튜토리얼을 끝내고 용족의 편을 들기로 했다면…저 리자드맨들을 NPC처럼 대할 수 있었을 거야.”

“그런가? 나는 인간 진영을 골랐는데…리자드맨들과 교류하는 것은 무리겠군.”

“뭐 교류해 봤자 별것 없긴 해.”

나는 어깨를 으쓱했다.

……하지만.

사실 내 말과 달리, 리자드맨들을 NPC로 대할 수 있으면 여러모로 장점이 많다.

반짝이는 것, 즉 골드에 환장한 놈들이기 때문에 돈 몇 푼 쥐어주면 자기들이 만든 포션이고 무기고 죄다 헐값에 넘겨온다.

심지어 위험한 지대로 갈 때 용병으로 고용해 부릴 수도 있었다.

기본적으로 지능이 낮은 것들이기 때문에 이용해 먹기 나름인 것이다.

‘뭐…그것도 대격변 전까지지만.’

대격변 전까지 인간들은 오크나 리자드맨들을 편의에 따라 이용해 먹었었다.

리자드맨과 오크가 인간들에게 피해를 많이 끼친다고는 하지만, 용이나 악마 진영을 고른 이들에게 있어서 리자드맨과 오크는 훌륭한 도구임에 틀림없다.

용 진영에 가담한 플레이어는 리자드맨과 우호적이고 악마 진영에 가담한 플레이어는 오크와 우호적이다.

몬스터를 NPC로 취급할 수 있다는 것은 큰 특전이었다.

그들에게서는 일반적인 인간 NPC가 취급하지 않는 물건을 살 수도, 팔 수도 있다.

척박한 환경에서 소모품을 조달하기에도 좋았다.

인간 진영에 남은 이들은 아무런 혜택도 받을 수 없다.

하지만 그 모든 혜택과 비혜택들은 대격변 이후 완전히 뒤집히게 된다.

“내가 괜히 인간 진영에 남은 게 아니라구.”

나는 드레이크를 안심시키며 하던 일을 계속했다.

우리가 하고 있는 일은 리자드맨의 취락 주변 목책에 기름을 뿌리는 일이었다.

낙타의 등에 잔뜩 싣고 온 기름덩어리와 장작.

바람이 아래로 불 때 불을 붙여 리자드맨 취락을 공격할 계획이었다.

“꼭 리자드맨 취락을 공략해야 할 필요가 있을까?”

“있지. 저것들을 싹 쓸어버리지 않고는 목책 너머의 밧줄다리를 이용할 수가 없거든. 저것들은 인간만 보면 환장하고 달려와서 이빨을 들이민단 말야.”

“흠, 그런데 우리가 가져온 연료로 저 많은 리자드맨들을 다 태워 버릴 수 있을지가 의문이군. 언뜻 보기에도 수가 굉장히 많아 보이는데.”

드레이크는 저 아래에 자리잡은 리자드맨 취락을 돌아보며 말했다.

언뜻 보기에도 리자드맨들의 수는 굉장히 많다.

약 1만 마리 정도의 리자드맨들이 저 취락 안에 살고 있었다.

고등학교로 따지면 10개 학교의 전교생들이 모두 모여 있는 느낌이랄까.

한편 우리가 낙타의 등에 싣고 온 기름과 장작은 그리 많지가 않다.

애초에 낙타 두 마리에 싣고 올 정도의 짐이 얼마나 크겠는가?

하지만, 나는 꿋꿋하게 기름과 화약, 장작 등등을 목책에 뿌렸다.

이윽고.

쿠르륵!

불길이 번져 리자드맨 취락의 목책을 집어삼켰다.

매연이 자욱하게 뿜어져 나오며, 불길이 취락을 빙 둘러 태운다.

“……흠.”

드레이크는 팔짱을 낀 채 불길을 내려다보았다.

리자드맨 취락을 잠식하고 있는 불길.

하지만 바람이 약하게 불 뿐만 아니라 경사가 반대쪽으로 가팔라서 불길이 좀처럼 잘 번지지 않았다.

심지어 리자드맨들은 화재에 재빠르게 반응했다.

파파파팍!

리자드맨들은 땅굴을 파 흙으로 둔덕을 만들어 불길을 막았다.

그리고 억센 뒷다리로 흙을 뿌려 불길을 진압하기 시작했다.

어린 리자드맨들은 취락 중앙에 있는 샘에서 물을 퍼와 불을 끄고 있었다.

애초에 리자드맨들은 무더운 곳에서 서식하는 종족이기에 열에도 강하다.

화상을 입어도 그냥 비늘이나 피막을 벗겨내 버리면 그만이다.

목책들은 전부 불탔지만 이내 그 자리는 흙과 재로 만들어진 벽이 대체했다.

이글거리던 잔불도 전부 잡혔다.

까맣게 변한 대지 위로는 자욱한 연기, 흩날리는 잿가루, 건조한 대기만이 맴돌고 있을 뿐이었다.

취락이 약간 피해를 입긴 했지만 리자드맨들의 실질적인 피해는 거의 전무하다고 볼 수 있었다.

드레이크는 현재 상황을 냉철하게 파악했다.

“역시 이렇게 되는군. 불길로 잡기에는 리자드맨들의 수가 너무 많다. 기름과 장작이 충분했다면 모르지만 낙타 두 마리로 실어 나르기에는 택도 없고…또 지형도 열약해. 불을 지르는 것은 적절한 공략이 아니었던 것 같다.”

하지만, 나는 그보다 더욱 더 냉철하다.

“걱정 마. 다 예상 범위 안이야.”

“……?”

나의 확고한 목소리에 드레이크는 고개를 갸웃한다.

탁!

나는 드레이크의 어깨를 짚으며 나직하게 말했다.

“두고 봐. 불의 효과는 꺼진 다음부터 나타날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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