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닳고닳은 뉴비-221화 (221/1,000)
  • 222화 트롤 참교육 (6)

    [아 뭐야, 내가 그런 뻔한 말 들으려고 여기 나왔나?]

    [쩝, 뭔가 신박한 팁은 없네. 국영수 위주로 공부하라는 거잖아.]

    [이럴 거면 지금까지 하던 대로 하는 게 낫겠는데?]

    [그냥 무시하고 하던 대로 해요 우리.]

    우형근, 오주현, 홍준표, 차유미는 저희들끼리 쑥덕거린다.

    물론 딴에는 작게 말한다고 한 것이겠지만, 그들의 대화는 스피커와 녹음기를 통해 상황실로 그대로 중계되고 있는 중이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나는 그것을 그대로 전해 듣고 있었다.

    결국 내 인내심도 한계에 도달했다.

    나는 그들에게 PVP를 걸었고 그들은 승낙했다.

    조건은 4:1, 심지어 나는 노템에 기본 무기만 든 채다.

    그들이 이길 경우 나는 전폭적인 쩔과 아이템 지원을 약속했다.

    내가 이길 경우, 그들은 내가 주는 솔루션을 그대로 받아들이기로 했다.

    (이 솔루션이라는 것 역시도 전부 그들에게 도움이 될 만한 내용들일 테니 그들로서는 거부할 이유가 없는 제안이다.)

    그들 입장에서는 이기면 대박 져도 이득인 조건.

    누가 봐도 내가 불리한, 아주 개손해 보는 고구마 내기인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내기를 감안했다.

    왜냐하면…….

    ‘패고 싶다!’

    거침없이 두들겨 패 주고 싶다.

    뉴비를 때리고 싶다는 마음이 든 것은 처음이다.

    찜질. 몽둥이 찜질.

    손에 쫙쫙 감기는 몽둥이로다가 그냥 아주 푹 쪄 죽이고 싶었다.

    그 누가 말했던가? 자고로 트롤에게는 매가 약이라고.

    나는 실팍한 목검 하나를 들고 앞으로 나섰다.

    우형근, 오주현, 홍준표, 차유미는 기고만장한 상태로 나를 포위했다.

    “아무리 고렙이라고 해도 노템이라면 얘기가 다르지!”

    “솔직히 이 게임 템빨존망겜인데, 맨몸뚱이로 될 리가…….”

    “4:1이면 아이템 끼고 와도 우리가 이길 판에 노템이라니 뭔 생각이신지?”

    “흑우가 따로 없네요. 당장 벗겨먹죠. 아니 벗길 옷도 없나? 호호호.”

    그들은 나를 가운데 두고 낄낄거린다.

    한편 나는 오래 전의 추억을 회상하고 있었다.

    옛날 마동왕으로 첫 프로 입단을 할 때를 말이다.

    ‘그때 국K-1 애들하고 처음 붙었을 때도 4:1이었지.’

    그때와 지금을 비교하면 참 괄목할 만한 성장을 했다.

    나는 추억에 젖어 흐뭇한 마음으로 목검을 휘둘렀다.

    따악!

    손으로 입을 가리고 호호 웃던 최유미의 머리통이 움푹 들어간다.

    물리엔진 오류가 아닌가 싶지만, 사실 자연스러운 결과이다.

    현실에서도 두개골이 함몰되면 이런 그림이 나온다.

    자고로 PK를 할 때는 힐러 먼저 잡는 게 정석!

    내 몽둥이를 맞은 최유미는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인지도 모르게 픽 고꾸라졌다.

    “이것이 아무리 힐러라고 해도 탱 템을 둘러야 하는 이유.”

    나는 목검으로 최유미의 전신 구석구석, 온갖 크리티컬이 뜨는 급소들을 난타했다.

    무겁다고 헬멧을 안 쓰고 있으니 이렇게 한 방에 가는 것이다.

    (그러니 오토바이를 탈 때도 꼭 헬멧을 쓰도록 하자!)

    “꺄아아악! 살려 줘! 나 맞고 있어! 힐러 죽네!”

    최유미는 충분히 반격할 여력이 있었지만 그럴 엄두도 내지 못하고 비명만 질러댄다.

    “어어!? 이익!”

    우형근이 도둑답게 제일 먼저 반응했다.

    그는 파티원 중에 가장 날쌘 몸놀림으로 나를 향해 달려들었다.

    하지만 그래 봤자 초보 도둑의 돌진이다.

    속도는 빨랐지만 궤도는 너무 쉽게 예측이 된다.

    짤그랑-

    나는 호주머니에서 몇 푼의 골드를 꺼내 옆으로 던졌다.

    그러자.

    제 버릇 개 못 준다고 우형근의 눈이 해까닥 돌아갔다.

    그가 몇 푼 되지도 않는 잔돈에 시선이 팔리는 사이, 나는 그의 양 다리 사이로 슬라이딩을 했다.

    물론 목검으로 그의 하단 중앙을 정확히 베어가르면서.

    “이것이 잔돈푼에 일일이 반응하지 말아야 하는 이유.”

    나는 우형근에게 스턴을 걸어 버렸다.

    적은 데미지라도 급소에 맞으면 확률적으로 상태이상 ‘마비’가 들어가는 것을 이용한 것이다.

    (특히나 남자 캐릭터의 경우는 더욱 더 조심할 것!)

    “크흑!?”

    우형근은 두 손으로 사타구니를 붙잡고 비틀거린다.

    “형님!”

    오주현과 홍준표가 냅다 달려온다.

    “야잇!”

    홍준표는 또다시 똥오줌 못 가리고 혼자서 최강 기술을 난사했다.

    아군들의 위치나 특성 쿨타임 등은 전혀 고려하지 않은 다이브였다.

    나는 뒤로 훌쩍 빠졌다.

    그리고 비틀거리는 우형근의 발을 걸어 홍준표의 칼 앞으로 떠밀어 버렸다.

    “이것이 딜 타이밍을 아군과 함께 상의해야 하는 이유.”

    홍준표의 칼은 우형근의 몸에 꽂혀 버렸다.

    “크학!?”

    우형근의 HP가 썰물처럼 빠져나간다.

    하지만 그게 다가 아니었다.

    피피핑-

    우형근의 갑옷이 반사데미지를 뿜어내 홍준표를 역으로 가격했다.

    동귀어진(同歸於盡).

    그 둘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만신창이가 되어 버린다.

    “이, 이이이익!”

    혼자 남은 오주현이 이를 악물고 칼을 휘둘렀다.

    하지만.

    터억-

    나는 너무도 쉽게 맨손으로 그 칼을 잡아 버렸다.

    오주현의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마, 말도 안 돼! 어떻게 노템인데도 내 칼을 잡지!?”

    나는 어깨를 으쓱해 주었다.

    “이게 딜이면 딜, 탱이면 탱. 하나만 확실히 해야 하는 이유.”

    각종 호칭이 주는 패시브 특전 탓에 나는 맨몸뚱이로도 상당히 세다.

    백전노장 특성 때문에 나는 오주현의 칼을 맨손으로 잡아채도 큰 타격을 입지 않았다.

    애초에 그의 공격력이 매우 형편없는 수준이었기에 가능한 일이기도 했다.

    퍽! 퍼퍽! 퍽!

    나는 목검을 들어 오주현의 몸을 천천히 녹이기 시작했다.

    중간에 목검이 부러지면 바로 다른 목검을 들고 패고 또 팼다.

    우형근이나 홍준표가 비틀거리며 일어날라 치면 또 다리를 걸고 목검으로 후드려 팬다.

    중간에 최유미가 일어나 힐이나 버프를 걸라 치면 그녀의 앞으로 다가가 그것들을 빼앗아 받았다.

    “손맛 좋네. 역시 트롤 가죽이 질겨서 좋아. 아, 나중에 편집하실 때 모자이크 좀 걸어주세요. 이거 피 너무 튄다.”

    나는 목검을 들고 눈앞의 4명을 아주 녹신녹신하게 쥐어 팼다.

    머리통이고 눈이고 코고 사타구니고 팔다리고 가리지 않고 마구 팰 수 있다.

    현실에서는 깽값 때문에 무리지만…여기는 게임이니까.

    “휴먼은 때리는 거 아니라지만, 트롤은 좀 패도 괜찮지.”

    워낙 사람 같지 않은 플레이를 해야 말이지.

    나는 노템으로도 깔끔하게 4명의 트롤들을 리타이어 시켜 버렸다.

    그동안 알게 모르게 스트레스가 많이 쌓였었던가?

    묘하게 후련하다.

    나에게도 여러모로 꽤나 유익한 시간이었다.

    *       *       *

    이윽고.

    나는 접속을 해제한 뒤 카메라 앞에 섰다.

    “…….”

    “…….”

    “…….”

    “…….”

    우형근, 오주현, 홍준표, 차유미는 내 앞에서 입을 다물고 있다.

    이윽고. 우형근이 무겁게 입을 뗐다.

    “와…노템으로도 그렇게 세실 줄은 몰랐네요.”

    그러자 다른 세 명도 고개를 끄덕이며 동조했다.

    “이제는 고인물 님이 시키시는 것은 무조건 따를게요.”

    “와, 진짜 딜 넣는 타이밍 대박이시다. 진짜 ‘이건’ 배워야겠다.”

    “흑흑흑, 아까 너무 무서웠어요. 우리 아빠한테도 그렇게 맞아 본 적 없는데…나 트라우마 생길 것 같아.”

    네 명은 열의에 충만한 시선으로 나를 바라본다.

    나는 그런 네 명을 쭉 돌아보았다.

    “…질 경우 제가 드리는 ‘최후의 솔루션’을 무조건 따르시기로 하셨죠?”

    다들 말없이 끄덕끄덕이다.

    내가 어떤 노하우를 전수해 줄지 벌써부터 기대가 된다는 듯한 표정들.

    나는 그런 그들에게 아주 핵심적인 솔루션 하나를 제시했다.

    “후…님들은 게임 하지 마요. 진심입니다.”

    “…네? 왜요?”

    “그냥 하지 마, 이 트롤들아.”

    내 말을 들은 모두는 멍한 표정을 지었다.

    나는 손사래를 쳤다.

    “사실 님들은 게임 접는 게 가장 남에게 피해 덜 주는 지름길이에요. 그게 님들 본인도 마음 편할 거고요.”

    그러자 우형근이 어버버 하며 입을 열었다.

    “아, 아뇨. 저희들 이제 바뀔 생각 있습니다! 열심히 할 거예요!”

    “이제는 제가 가르칠 생각이 없어요.”

    “…….”

    “기회가 늘 옵니까? 떠먹여 주면 받아먹기라도 해야지, 퉤 뱉어버리는 사람들을 뭐 하러 가르쳐요? 더 간절하고 절실하신 분들 많은데.”

    나는 손사래를 쳤다.

    “제 솔루션에 무조건 따른다고 했죠? 다른 지원자들 모실게요.”

    그러자, 스텝들이 들어와 그 네 명을 끌어냈다.

    “자, 잠깐만요! 진짜 잘할게요! 다시 한 번 기회를 주세요! 으아아!”

    우형근을 비롯한 네 명은 그제야 간절하게 애원해 보지만, 이미 떠나간 버스다.

    *       *       *

    “우와! 진짜 후련! 사이다!”

    홍영화가 나에게 양 손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그로부터 꽤 시간이 흐른 뒤, ‘고인물의 골목게이머’ 1화는 순조롭게 방영되었다.

    그 결과는 상당한 대박이었다.

    1화부터 시청률이 3.21%나 나오는 기염을 토했던 것이다!

    (참고로 동 시간대 LGB 프로그램 중 1위였다)

    하지만 조태호 부장은 무언가 좀 미묘한 표정이다.

    “으음. 근데 프로그램이 어째…취지랑은 좀 미묘하게 벗어나는 것 같은데?”

    ‘고인물의 골목게이머’는 원래 하수들을 도와주는 고수들의 1:1 코칭 프로그램을 기본 콘셉트로 짜고 있었다.

    하지만…….

    -퍄!! 저런 트롤들이 진짜 게임할 때 너무 많은데...개사이다!!!

    -진짜 잘 죽여주셨어요 저런 XX들은 게임 하면 안 됨ㅂㄷㅂㄷ...

    -제 정신건강이 많이 치유되었습니다...진짜 트롤러들 좀 다 리폿시켜야됨

    -어젯밤에도 저런 트롤들이랑 레이드 돌다가 암 걸려 죽을 뻔했는데...대신 척살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중얼거리는 거 들어보니 인성도 덜 된 사람들 같던데...아마 고인물님 이용해서 자기들 뭐 홍보하려고 나온 게 딱 보였음ㅋㅋㅋ

    -진짜 몽둥이가 답이에요 저런 사람들....현실에선 못 때리니 게임에서라도 때려야지 뚜쉬뚜쉬

    -저도 한 트롤링 하는데, 고인물님 저 좀 교육해주쉴?

    -어제 제 레이드 망친 트롤 놈 제보합니다. 고인물님 이놈도 좀 척살해주세요~~~

    .

    .

    어째 달리는 댓글들을 보면 트롤 척살 방송으로 점점 이름이 높아지고 있는 것 같다.

    내가 모니터 속의 댓글들을 가만히 보고 있을 때, 홍영화가 옆으로 다가오며 물었다.

    “아예 이런 컨셉으로 방송 바꿀까? 진상 트롤러들 데려와서 참교육시키는…그 왜 ‘악플 읽어 주는 프로게이머’처럼. 크크크.”

    “됐어. 내 정신건강에 해로워.”

    “출연료 UP!”

    “…흠.”

    내가 홍영화와 한담을 주고받고 있을 때.

    슥-

    조태호 부장이 여전히 미묘한 표정을 한 채로 다가왔다.

    “어진 씨. 혹시 이런 코칭 일을 본격적으로 해 보실 계획은 없으신가요?”

    “……?”

    나는 한쪽 눈썹을 까닥 움직였다.

    안 그래도 구단 창설과 감독 일을 생각하고 있던 차다.

    내가 흥미를 보이자, 조태호 부장은 내게 공문 하나를 내밀었다.

    “프로그램 방영 직후에 바로 들어온 제안입니다.”

    그것은 이벤트 제안과 같은 기획서였는데 담고 있는 내용이 상당히 참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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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녕하세요. 신인 걸그룹 ‘니아’의 총괄 매니저 임우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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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녕하세요. 고인물 님. 현재 진행 중인 것과 유사한 포맷의 프로그램을 기획 중이라 섭외 요청을…(중략)… ‘연예인 게임단’이라는 가제로 준비 중인 단일 시즌 프로그램으로 신인 걸그룹 멤버들이 게임에 입문하여…(중략)…동시에 제안하는 연예인 게임단의 감독 및 코치직에 대해서도 긍정적으로 생각해 주셨으면 합니다.

    환절기 감기 조심하시고, 언제든 편히 연락 주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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