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닳고닳은 뉴비-220화 (220/1,000)
  • 221화 트롤 참교육 (5)

    나는 옆방에서 지원자들의 플레이 영상을 지켜보고 있었다.

    우형근, 오주현, 홍준표, 차유미.

    이들이 힘을 합쳐(?) 파티 플레이를 하는 걸 보니 가슴 속 깊은 곳에서부터 무언가가 부글부글 끓어오른다.

    “발암이네.”

    나는 스크린 너머 보이는 4인 파티를 보며 손으로 이마를 짚었다.

    네 명 전원이 어딜 가도 빠지지 않는 훌륭한 트롤들이다.

    다들 각자의 포지션에서 있는 힘껏 트롤 짓을 해 주고 있다.

    거기에 트롤링의 화룡점정 ‘남탓’!

    게임이 끝난 뒤 마무리까지 완벽하다.

    ‘보는 내가 다 짜증나는데?’

    어떻게 저 조합으로 ‘뿔도마뱀’ 한 마리를 못 잡을 수가 있나 싶다.

    나는 고인물 모드로 게임에 접속했다.

    그리고 던전 입구에 옹기종기 모여있는 4인 파티에게 다가갔다.

    “자, 지금부터 저와 함께 뿔도마뱀을 같이 잡아 보죠. 저는 직접적으로 참여하지 않고 옆에서 조언만 하겠습니다.”

    내 말을 들은 네 명은 일제히 고개를 끄덕였다.

    이내.

    [크르르르륵-]

    던전 한가운데 뿔도마뱀이 리젠되었다.

    칼날 같은 비늘, 머리에 난 커다란 뿔.

    육중한 바디를 이용해 코뿔소처럼 돌진해 오는 육전형 몬스터이다.

    시력이 나쁘지만 후각이 좋아서 적을 구별하는 데에는 지장이 없다.

    나는 저 멀리 기어 다니고 있는 뿔도마뱀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자, 공략하고자 하는 몬스터의 습성을 미리 파악해 두는 것이 중요하죠. 뿔도마뱀은 시력이 나쁜 대신 후각이 예민하므로 후추나 삭힌 청어 등을 주변에 뿌려두면 놈의 에임을 흐트러트릴 수 있습니다.”

    과연, 내가 미리 준비해 놓은 아이템을 바닥에 뿌리자 뿔도마뱀이 이상행동을 보이기 시작했다.

    놈은 허둥지둥하며 던전 내부를 돌아다닌다. 낯선 악취에 꽤나 당황한 듯 보였다.

    나는 침착하게 다음 행동을 개시했다.

    “뿔도마뱀은 미친 듯이 돌진해 오는 와중에도 돌진 궤도를 거의 직각에 가깝게 꺾을 수 있는 주행능력을 가지고 있죠. 지그재그로 도망쳐도 그걸 다 따라옵니다. 그것도 돌진 속도를 전혀 줄이지 않으면서요. 이게 가능한 이유는 놈의 발바닥에 돋아 있는 바늘 같은 잔비늘 때문입니다. 마치 축구화의 스파이크처럼 돋아나 있어요.”

    말을 마친 뒤, 나는 던전 전체에 미끌미끌한 젤을 발라놓았다.

    “놈이 돌진 궤도를 마음대로 바꿀 수 없게 미리 미끈한 젤을 구석구석에 뿌려 둡시다. 바닥 전체에 뿌리면 안 돼요. 젤도 모자라고 또 우리들이 밟을 수도 있잖아요? 미리 표시한 구역에만 드문드문 발라 주고 뿔도마뱀이 돌진을 해 오면 젤을 발라 둔 구역으로 유인할 겁니다. 그리고 젤을 발라 둔 곳의 앞에 마름쇠나 부비트랩을 설치해 두는 것도 지형 데미지를 먹일 수 있는 좋은 방법이에요.”

    내가 뿔도마뱀 공략을 위해 사전 준비를 착착 하고 있을 때.

    “…….”

    “…….”

    “…….”

    “…….”

    뒤에 있는 네 명은 그런 나를 멀뚱멀뚱 바라본다.

    “……?”

    나는 그들을 향해 물었다.

    “…이해하셨죠?”

    그러자 우형근이 손사래를 치며 말했다.

    “우리는 실전을 중요시해서요. 그렇게 준비를 많이 할 여유도 없고…….”

    “……? 이게 실전이에요. 여유가 뭐가 필요해요. 젤하고 냄새 풍기는 것들 다 해서 만 골드도 안 되는데.”

    “네에…뭐…다음에 여유 되면 시도해 볼게요.”

    우형근은 영 떨떠름한 표정이다.

    나머지 파티원 세 명도 별로 공감이 되지 않는다는 듯 머리를 긁적이고 있었다.

    “뭐, 이렇게 지형에 깔짝깔짝 해 봐야 막상 실전에서 얼마나 효과가 있을라고?”

    “젤 뿌린 곳……. 우리도 다 기억 못할 것 같은데요. 헤헤.”

    “으악. 냄새 나서 레이드 하기 싫어. 뿔도마뱀 잡기 싫다. 히잉…….”

    총체적 난국이다.

    이럴 거면 대체 왜 솔루션 신청을 했는지 모르겠다.

    ‘진짜 소설 속에서나 나올 법한 진상들이네…….’

    하지만 현실은 언제나 더한 법.

    세상에는 참 정상인의 상식을 뛰어넘는 초월자들이 많다.

    나는 속으로 혀를 찼지만 굳이 내색하지는 않았다.

    이윽고. 뿔도마뱀 레이드가 시작되었다.

    우형근과 오주현, 홍준표, 차유미는 나의 지시를 받아 가며 레이드를 뛴다.

    물론 지금껏 그래 왔던 대로 트롤짓을 일삼아 가면서 말이다.

    나는 우형근을 따라다니며 말했다.

    “한타 타이밍이잖아요! 지금 돈을 왜 줍고 있어요! 가서 딜 넣어요 딜! 아니 뭘 그렇다고 또 맞아가면서까지 딜을 넣어요! 도둑 특성이나 좀 쓰세요! 마름쇠 뿌리고 함정도 좀 설치하고!”

    다음 차례는 오주현이다.

    “님은 탱인데 왜 자꾸 딜 갈라고 해요!? 딜도 잘 못 넣으면서! 저기 아군 맞고 있잖아요! 좀 가서 막아 줘요! 아, 자꾸 어줍잖게 딜 넣지 말라구요! 그래봐야 뿔도마뱀 물리 방어력 높아서 그런 수준의 딜은 먹히지도 않아요!”

    그 다음은 홍준표 차례.

    “아니 팀원들이 버스트 딜 할 때 같이 들어가야지 왜 혼자 개돌하고 그래요!? 분위기 좀 읽읍시다! 빠져요! 빠져! 아니 지금 빠질 타이밍이라고! 왜 더 깊이 들어가냐고! 빨리 나와요! 팀원들 지금 다 빠진 거 안 보여요? 으아아! 왜 더 깊숙이 들어가는 거야! 딜 타이밍 아니라고 지금!”

    이미 레이드는 망했지만, 그래도 마지막으로 차유미를 코치해야 한다.

    “저기, 왜 그렇게 멀리 서 있어요? 직관 오셨어요? 좀 앞으로 가서 힐도 하고 버프도 걸고 하세요. 저기요? 앞으로 가시라고요. ……네? 그게 앞으로 간 거라구요? 아니 무슨 cm단위로 전진하시나…….”

    결국,

    나의 1:1 코치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이 파티는 뿔도마뱀 레이드에 실패했다.

    그나마 목숨이라도 건져서 돌아올 수 있었던 것은 내가 뿌려놓은 젤과 삭힌 청어들 덕분이었다.

    우형근, 오주현, 홍준표, 차유미는 또다시 불평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이게 뭐야, 솔루션 받았는데도 나아진 게 하나도 없잖아.”

    “솔직히 이번에 나는 잘했다. 사냥감으로 뿔도마뱀을 픽한 게 에러였어.”

    “에…아니, 제가 돌격하면 좀 받쳐 주세요. 다들 뭐하시나? 캐리해 드리려고 해도 참…하…….”

    “왜 다들 저 안 지켜 주세요? 하마터면 공격당할 뻔 했잖아요! 여기 HP 닳은 것 좀 봐! 아 맞다, 그리고 왜 그렇게 움직여대요 정말. 힐하기 힘들게 진짜!”

    다들 서로를 비난하기에만 바쁘다.

    나는 손으로 이마를 짚은 채 차근차근 솔루션을 제공했다.

    “자, 우형근 씨. 이리 와 보세요.”

    나는 우형근에게 말했다.

    “보니까 우형근 씨는 한타 타이밍에 갱 안 가고 돈 줍고 있느라 바쁘던데……그러다가 팀원이 죽으면 돈 회수 못한 것보다 더 패널티가 크거든요?”

    “그러다가 돈 못 주우면 어떻게 해요?”

    “애초에 이 게임이 몬스터 잡고 나온 보상 100% 챙기기가 힘든 게임이에요. 일반적인 게임이야 몬스터가 죽으면 시체가 사라지면서 골드랑 아이템 자동으로 떨구지만, 이 게임은 몬스터가 죽으면서 아이템이나 돈 깔아뭉개기도 하고, 또 험난한 지형으로 빠져 버리기도 하고…아무튼 골드랑 아이템을 100% 회수하는 건 불가능해요. 어느 정도 좀 포기하면서 해야 합니다. 이게 무슨 메X플 스토리도 아니고…Z키 하나 누르면 다 먹어지는 게 아니잖아요?”

    내가 녹화한 동영상을 보여 주자, 우형근은 입을 다물고 말이 없다.

    나는 옆에 있는 오주현에게 다가갔다.

    “오주현 씨의 가장 큰 문제점은…….”

    “네? 저한테 문제가 있어요?”

    “바로 그거에요. 자기가 엄청난 문제인 것을 모른다는 것. 그게 제일 큰 문제죠.”

    오주현은 두 눈을 끔뻑거리며 나를 쳐다본다.

    나는 한숨을 한번 쉬고는 솔루션을 제시했다.

    “왜 탱커인데 자꾸 어줍잖게 딜러 포지션을 겸하려고 하세요? 아이템도 너무 어중간하잖아요. 탱이면 탱, 딜이면 딜. 한 가지 메타를 확실하게 하셔야죠. 공격력도 방어력도 어중간하니까 비슷한 레벨 구간 대의 뿔도마뱀이 어렵게 느껴지는 거예요. 참고로 오주현 씨랑 레벨 비슷하신 분들은 뿔도마뱀 그냥 잡습니다.”

    “에이, 딜 템을 안 가면 제가 킬을 못 먹잖아요.”

    “아니 AOS게임도 아니고 막타가 뭐가 중요해요.”

    “기분 문제죠.”

    “……아무튼 님은 공격할 피지컬이 안 되시는 것 같으니 퓨어 탱커로 가시는 게 좋겠습니다.”

    나는 발걸음을 돌려 홍준표에게로 향했다.

    “홍준표 씨는 포지션이 딜러죠?”

    “네.”

    “딜 넣는 것은 좋은데…왜 맨날 아군이 한타 할 타이밍에 안 가고 혼자서 개돌했다가 다구리 맞아 딸피 되시는지……?”

    “제가 혼자서 들어가는 게 아니고 팀원들이 제 타이밍을 못 맞추는 건데요?”

    “그게 그 말이잖아요. 왜 같이 안 가고 혼자 들어가냐고요.”

    “아니, 그건 팀원들에게 물어보셔야죠? 제가 들어갈 때 왜 안 따라오냐고.”

    “……홍준표 씨. 세상은 님을 중심으로 돌아가지 않아요. 모두가 각자 인생의 주인공이에요. 팀원들은 님을 주인공으로 떠받들기 위해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아니라구요. RPG 뜻이 뭐예요. 롤플레잉이잖아요. 롤대로 좀 플레이 해 보시라구요.”

    홍준표는 내 말을 듣고는 고개를 갸웃한다.

    나는 한숨을 내쉬고는 옆에 있는 차유미에게로 갔다.

    “…….”

    차유미는 시작부터 볼을 부풀리고 뾰로통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나는 그런 그녀에게 조곤조곤 말을 건넸다.

    “차유미 씨는 왜 힐러 포지션 고르셨어요?”

    “쉽고 예쁘잖아요. 마침 포지션도 남았고.”

    “음, 힐러가 쉽다고요? 힐러는 생각보다 엄청 어려운 클래스에요. 상대방에게 죽지 않을 정도의 방어기제는 갖추고 있어야 해요. 난전 중에 힐러의 목숨까지 챙기는 게 얼마나 어려운데요. 특히나 뿔도마뱀처럼 긴 혀로 상대방을 끌어들이는 패턴을 가진 적에게는 더더욱요.”

    “그래서 무서우니까 뒤에만 있잖아요.”

    “네. 뒤에만 계셨죠. 힐도 하나도 안 하면서요.”

    “힐이 없으면 포션 먹으면 되는 것 아닌가요?”

    “무슨 마리 앙투아네트도 아니고, 포션 먹을 시간이 없으니 힐러 데리고 다니죠.”

    “그래도 아까 제가 힐 썼으면 뿔도마뱀도 잡았을 걸요? 번거로울 것 같아서 안 썼지만…….”

    “그럼 힐 쓰시지 그랬어요?”

    나는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 차유미에게 마지막 솔루션을 제시했다.

    “딜이나 탱 템 장비하시고 컨트롤 연습하셔서 한타에도 좀 참여하시고 하세요. 너무 수동적으로 플레이하시면 곤란하고 좀 적극적으로. 네? 현실에서도 운동 좀 하시구요. 킥복싱 같은 거. 반사신경 기르기에 좋거든요.”

    솔직히 말하면 게임 접는 게 제일 좋지만, 그런 말을 할 수는 없어서 꾹 참았다.

    하지만 내 솔루션은 별로 팁이 되지 않은 것 같다.

    “아 뭐야, 내가 그런 뻔한 말 들으려고 여기 나왔나?”

    “쩝, 뭔가 신박한 팁은 없네. 국영수 위주로 공부하라는 거잖아.”

    “이럴 거면 지금까지 하던 대로 하는 게 낫겠는데?”

    “그냥 무시하고 하던 대로 해요 우리.”

    네 명은 속닥속닥 저희들끼리 떠든다.

    스피커를 통해 나에게 음성이 전해지고 있는 줄 모르는 모양이다.

    뚝-

    머릿속에서 이성의 끈이 끊기는 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우형근 파티를 향해 다가갔다.

    “님들아.”

    그러자 4명이 다 이쪽을 돌아보았다.

    나는 물었다.

    “제 솔루션을 따르느니 그냥 하던 대로 하겠다는 게 실화입니까?”

    “네? 에이, 저희가 언제 그랬어요.”

    “제가 방금 들었는데요?”

    “잘못 들으셨겠죠.”

    나는 캡슐을 잠깐 벗고 고개를 돌려 스텝들을 향해 손짓했다.

    “녹음기 틀어 보세요.”

    그러자 이내 그들이 속닥거린 대화들이 고스란히 재생되었다.

    [아 뭐야, 내가 그런 뻔한 말 들으려고 여기 나왔나?]

    [쩝, 뭔가 신박한 팁은 없네. 국영수 위주로 공부하라는 거잖아.]

    [이럴 거면 지금까지 하던 대로 하는 게 낫겠는데?]

    [그냥 무시하고 하던 대로 해요 우리.]

    나는 그 대화를 듣고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이런 마인드에 이런 조합으로는 고렙 사냥터 못 가요. 가도 몬스터한테 죽는 게 아니라 다른 유저들한테 PK당해서 죽어요. 답답하게 사냥하면서 필드 어지럽힌다고.”

    아마 이 방송이 나가면 PK 무지하게 당할 것 같아서 하는 말이기도 했다.

    그러자 우형근이 팔짱을 낀 채 심드렁하게 대답했다.

    “네 뭐. 저희들이 몬스터 사냥할 때 조금 팀웍 안 맞아서 지지부진한 감이 있어도…PK같은 건 자신 있죠. 걱정해 주셔서 고맙습니다만 저희는 그냥 이대로 해 볼게요.”

    그리고.

    그 떡밥을 나는 놓치지 않았다.

    “그럼 이렇게 해 볼래요?”

    나는 눈앞에 있는 트롤 4인방을 향해 제안을 했다.

    “저랑 4:1로 PK 떠서 님들이 이기면 제가 한 솔루션보다 님들의 의견이 더 낫다는 걸 인정해드릴게요. 그리고 아이템이든 돈이든 쩔이든 뭐든 팍팍 지원해서 책임지고 고렙 만들어 드리겠습니다. 참고로 저는 알몸에 노템으로, 초보자용 목검 하나만 들고 플레이하고요.”

    내 말에 네 명의 눈빛이 바뀐다.

    “……대신.”

    나는 그들의 눈을 마주보며 말했다.

    “제가 이기면 제가 주는 솔루션 무조건 들으세요. 님들을 위해 꼭 드리고 싶은 ‘최후의 솔루션’이 있으니까.”

    그러자 우형근 파티는 반색을 했다.

    이기면 엄청나게 좋은 보상이 기다리고 있고 져도 ‘최후의 솔루션’을 주겠단다.

    어떻게 되든 개이득이다.

    “4대 1이면 아무리 그래도 우리가 이기지 않을까?”

    “고인물은 아마추어 리그에서나 잘 놀지. 프로리그에서 PK한 적 거의 없잖아?”

    “솔직히 노템으로 상대한다고 하는데 못 이기면 븅X아님?”

    “4:1이면 고인물이 아이템 끼고 와도 우리가 이길 것 같은데? 하지만 굳이 노템으로 해 준다는데 마다할 것도 없지!”

    이내 그들은 밝은 표정으로 ‘콜!’을 외쳤다.

    그와 동시에.

    빵긋-

    내 얼굴도 밝아진다.

    무척이나 환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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