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닳고닳은 뉴비-218화 (218/1,000)
  • 219화 트롤 참교육(3)

    나는 아침 일찍 차를 몰고 방송국으로 향했다.

    며칠 전 홍영화가 한 제안에 대해 논의하기 위함이다.

    ‘너는 아마추어 리그의 대통령이니까 충분히 가능할 거야! 출연료도 많이 줄게!’

    홍영화는 시종일관 쾌활한 기색으로 나를 독려했다.

    딱히 출연료에 연연할 정도의 레벨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나의 주 시청자 층이 게임을 어느 정도 하는 중수 이상의 사람들에만 국한되어 있는 것을 탈피할 기회였다.

    ‘이 참에 게임 초보자들도 나를 보고 좋아할 수 있게끔 인지도를 넓힐 필요가 있지.’

    고인물 방송이 뉴비들에게도 도움이 될 수 있으려면 이번 LGB프로젝트에 참여하는 것이 좋다.

    …….

    아, 무슨 프로젝트냐고? 그것은…….

    빠앙!

    내가 어제 홍영화의 제안에 대해 곰곰이 생각하고 있을 때.

    갑자기 차 앞에서 난 커다란 클락션 소리가 내 운전을 가로 막았다.

    “…뭐야?”

    나는 인상을 찌푸린 채 고개를 뺐다.

    내 차 맞은편 앞에 다른 차 한 대도 멈춰 있었다.

    쾅-

    그 차에 탄 운전자는 꽤나 괄괄한 성격인지 대뜸 차 문을 벌컥 열고 튀어나왔다.

    “야! 이 새끼들아! 골목에서 갑자기 튀어나오면 어떻……!”

    하지만 그 괄괄한 운전자는 호통을 끝까지 칠 수 없었다.

    골목에서 갑자기 튀어나와 길을 막은 이들은 검은 정장을 입은 떡대들이었기 때문이다.

    “……?”

    나는 그 무서운 얼굴들을 보고는 눈을 크게 떴다.

    아는 떡대들이다.

    ……정확히 말하면 10여 년 뒤에 ‘알게 될’ 떡대들.

    한때 내 집을 수시로 찾아와 미수금을 받겠다고 설쳐대던 사채업자 놈들이 아닌가!

    그러니까 유창과 유다희의 부하들인 것이다.

    “이것들이 여기서 뭐 하는 거지?”

    나는 잠시 운전대를 놓고 앞의 상황을 지켜보았다.

    놀랍게도, 검은 정장 떡대들은 한 사람을 포위하듯 둥글게 둘러싸고 있었는데 가운데에 몰린 이는 바로 유창이었다.

    유창은 분노와 억울함이 뒤섞인 얼굴로 자신의 부하들을 노려보고 있었다.

    “너 이 자식들! 늬들이 이러고도 무사할 것 같냐!? 나 이 구역 지점장이야!”

    으르렁거리고는 있지만 아직 앳된 목소리다.

    한편 유창의 협박을 받는 떡대들은 그저 귀찮다는 표정.

    그들은 유창을 향해 입을 열었다.

    “거 큰형님 명령이시니 너무 앙앙거리지 마시고.”

    “아니, 그분께서 갑자기 인력을 싹 회수하라고 하시니 우린들 어쩌겠수.”

    “미안하오 어린 형님. 우리도 사실 형님네 남매랑 근무하는 게 더 즐거웠슈.”

    그러자 유창은 이를 뿌득 갈았다.

    “아니 그럼 너희들 다 빼 가면 지금 운영하는 작업장은 뭘로 돌리라고! 미수금들은!?”

    “작업장은 소액체납자들 위주로 돌리시고, 굵직한 미수금들은 이제부터 손 떼슈.”

    “이런 XX!”

    유창은 이를 뿌득 갈았다.

    그리고는 눈앞에 있는 전 부하들을 노려보았다.

    “누나 때문이냐?”

    “…….”

    “‘그 새끼’가 시킨 거지? 누나가 자기 안 만나 준다고? 우리 아빠도 그렇게 만들더니…이 졸렬한……!”

    그러자 떡대들은 귀찮다는 듯 손사래를 쳤다.

    “그래도 누님 명의로 건물이랑 스포츠카 임대해 준 건 그냥 두신답니다. 또 우리 어린 형님 재능도 귀엽게 봐 주시고 있으니 너무 그러지 마쇼. 앞으로도 소액 체납자들 작업장 잘 굴리시우. 거, 막말로 큰형님이 지금까지 해 줄 거 다 해 주지 않았습니까네. 거, 막내 병원비도 솔찬히 나가는 걸로 알고 있는데.”

    말을 마친 정장 떡대들은 어깨를 으쓱하더니 골목 저편으로 사라져 버렸다.

    “……빌어먹을 것들.”

    유창만이 독기어린 표정으로 골목 너머 사라져 가는 부하들을 노려볼 뿐이다.

    와작- 와작- 와작-

    나는 차 안에서 영화관 팝콘을 먹으며 그 모습을 구경했다.

    “이야, 뭔지는 모르겠는데 되게 길고, 구구절절하고, 지루하고, 재미도 없는 뒷사정 스토리에 휘말릴 것 같은데?”

    이런 귀찮은 일에는 말려들지 않는 게 최고다.

    부릉-

    나는 차를 살짝 뒤로 뺀 뒤 그대로 후진해 골목을 탈출했다.

    어쩐지.

    어린 나이에 폭력조직과 사채조직을 운영하는 게 신기하다 했는데…아무래도 뒤에 누가 있었던 모양이다.

    무슨 사정이 있기에 10대의 나이부터 저런 일을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사실 나랑은 아무 상관도 없고 휘말려 봐야 골치만 아플 것이 분명하기에 관심을 끄기로 했다.

    *       *       *

    나는 LBG방송국 게임콘텐츠 부서 사무실에 입성했다.

    마치 세상을 구하고 돌아온 영웅을 대하는 듯한 환대가 이어졌다.

    짝짝짝짝짝짝-

    내가 사무실에 들어오자 직원들이 갑자기 벌떡 기립하더니 일제히 박수를 치기 시작한 것이다.

    “한국 랭킹의 수호자!”

    “시상식 때 봤습니다! 고인물 님 최고!”

    “사인해 주세요!”

    “같이 살고 싶어요오!”

    “나를 보셨어! 고인물님이 나를 보셨어!”

    “기억할게!”

    직원들은 다들 게임을 좋아하는 사람들.

    이들이 있는 곳에서 나는 연예인 못지않은 인기를 누리고 있었다.

    이내 조태호 부장이 생글생글 웃는 얼굴로 나타나 나를 안쪽 회의실로 안내했다.

    “자, 자. 이쪽으로 오시면 됩니다. 어? 뭐야, 회의실에 공기청정기 안 틀어 놨어? 빨리 틀어. 영화 너는 음료수 좀.”

    내가 회의실 구석에 앉자 조태호 부장과 홍영화가 들어와 앉았다.

    쪼르르-

    약간 당황스럽게도, 홍영화는 조태호 부장의 옆에 앉지 않고 내 옆에 앉았다.

    조태호 부장은 황당하다는 듯 말했다.

    “너 왜 거기 앉냐?”

    “왜요? 안 되나요?”

    “아니…보통 손님 오시면 부장 쪽에 앉잖아.”

    그러자 홍영화는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는 듯 고개를 갸웃한다.

    조태호 부장은 한숨을 쉬었다.

    “뭐. 아니야 됐어. 아, 어진 씨. 이번 프로젝트 콘셉트는 홍 사원 통해서 들으셨다죠?”

    “예, 그런데 한 번 더 설명을 들어야 할 것 같아요.”

    내 대답을 들은 조태호 부장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오늘 나를 부르게 된 경위를 자세히 설명하기 시작했다.

    “트롤(Troll)이 뭔지 아시죠?”

    조태호 부장의 질문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트롤을 왜 모르겠나?

    트롤이란 데우스 엑스 마키나 세계관의 구성원으로 꽤나 강력한 힘을 가진 몬스터이다.

    큰 덩치와 녹색 피부, 날카로운 이빨을 가진 거인형 몬스터로 뛰어난 재생능력이 특기인 몬스터.

    하지만 이 트롤은 원래 북유럽 신화에 등장하는 괴물이다.

    인간을 상대로 질 나쁜 장난을 치는 변종 요정 등으로 묘사되는데 인간이 기르던 가축의 젖을 마르게 하거나 알을 낳지 못하게 하는 둥 짜증스러운 사고를 치고 다니는 것으로 유명하다.

    ‘하지만 조태호 부장이 말하는 트롤은 그 트롤이 아니지.’

    나는 생각했다.

    인간에게 피해를 끼치는 몬스터 ‘트롤’

    근래에 와서는 이 단어의 의미가 조금 다른 뜻도 지니게 되었다.

    얼추 1980년대부터, 다른 게이머가 화를 내도록 의도적으로 게임을 방해하는 이들도 ‘트롤’이라고 불리기 시작했다.

    물론 인간에게 못된 장난을 치는 북유럽의 트롤에 빗댄 것이다.

    트롤들은 주로 게임을 하며 고의적으로 실수를 연발하거나 아군을 방해해서 짜증을 유발하는데 이 과정에서 받는 관심들을 즐기는 이들이 많다.

    하지만 모든 트롤들이 다 그런 사도 마조히즘적 성격을 가진 것은 아니었다.

    요즘은 그냥 게임을 하도 못해서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를 끼치는 사람을 뜻하기도 한다.

    “요컨대. 게임을 못해서 아군한테 민폐를 끼치는 사람은 ‘트롤’, 이런 행위를 고의적으로 하는 사람은 ‘고의 트롤’ …뭐 이 정도로 말할 수 있겠네요.”

    내가 입을 열자, 조태호 부장은 고개를 끄덕여 내 말에 동조했다.

    “이번에 저희가 기획한 프로그램은…고수가 하수들을 도와 게임을 잘 할 수 있게끔 솔루션(solution)을 주는 콘셉트에요.”

    척 하면 척이다. 나는 그의 의도를 바로 알아들었다.

    “그러니까. 게임을 잘 하고 싶은 트롤들을 교육, 교정시켜서 사람으로 만들라 이거죠?”

    “맞아요. 어떻게 보면 그 요리 프로그램이랑도 약간 비슷하겠네요. ‘백쉐프의 골목요리점’!”

    게임을 무척 좋아하는데도 게임을 잘 못해서 속상한 게이머들에게 붙어 1:1로 코칭을 해 주는 프로그램.

    그것이 바로 새로운 프로그램인 ‘고인물의 골목게이머’인 것이다!

    조태호 부장은 안경을 고쳐 쓰며 날카로운 시선으로 말했다.

    “현재 고인물 님의 개인방송을 제가 모두 챙겨 보고 있는데요. 무척이나 재밌고 유익하긴 한데, 딱 하나 아쉬운 점이…초보자들은 봐도 잘 이해를 못 한다는 겁니다. 최소 중수 이상의 플레이어들 정도 되어야 고인물 님의 움직임을 눈으로 따라잡고 이해할 수 있거든요.”

    그 점은 나 역시도 문제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물론 뉴비 시청자들의 조회수를 붙잡는 것은 마동왕 계정으로 충분히 잘 하고 있었지만, 이들은 내가 고인물인 동시에 마동왕이라는 사실을 모르니까.

    조태호 부장은 말을 계속했다.

    “음. 아마 이번 프로그램에서 MC겸 코치 역할을 하심으로서 뉴비 시청자들과의 친밀감을 쌓으실 수 있을 것이고, 본격적으로 아예 게임 시장에서 자리를 잡아버리시는 것도 가능할 것 같은데…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여부가 있겠나!

    올드 게이머들이 초창기 게임 방송 프로그램이나 예능에 출연해서 지금 얼마나 잘 나가고 있는지를 생각하면 이 제안은 거부할 수 없다.

    지금 이 프로그램의 MC 자리는 시작에 불과한 것이다.

    인지도를 높이고 대중들에게 나의 이미지를 각인시키는 데에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기회인 것이다.

    ‘게다가…생각보다 출연료도 꽤 주네.’

    나는 계약서를 들여다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모든 것이 호재다. 머뭇거릴 이유가 없었다.

    “바로 시작하죠.”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조태호 부장은 얼굴 가득 웃음을 지은 채 고개를 끄덕거렸다.

    호다닥-

    홍영화가 재빨리 노트북으로 공지를 올렸다.

    <이번 새로운 프로그램 런칭에 앞서 전수조사를 시작…평소에 게임을 잘 하고 싶으셨던 분들…미숙한 컨트롤로 인해 속상하셨던 분들…게임이 좀처럼 늘지 않아 고민이신 분들…이런 분들을 교정해서 일류 게이머로 발돋움 시켜 드리는…솔루션을 제공해드릴 코치는 요즘 핫한 스트리머 고인물...관심 있는 분들의 많은 성원과 응모 부탁드립니다...and I also 고.인.물.조.아...(이하 중략)>

    나에게 가르침을 받을 게이머들을 모집한다는 내용이다.

    “어디보자. 단순히 우리 홈페이지 사이트에만 올리지 말고…여러 게임 커뮤니티들을….”

    홍영화는 수십 개나 되는 게임 사이트들을 돌아다니며 방금 전에 자기가 쓴 공지들을 퍼날랐다.

    혹시나 지원자가 없을 수도 있으니 최대한 많이 이슈를 만들려는 모양이다.

    그러는 동안 나는 조태호 부장과 여러 이야기를 나누었다.

    게임 방송을 혼자 하는 것에 대한 고충, 새로운 콘텐츠에 대한 고민, 방송 멘트를 찰지게 치는 법, 해외 시장으로의 진출…….

    나는 앞으로 15년의 지식을 미리 알고 있는 것으로 대화를 이끌어 나갔고 조태호 부장은 나의 식견에 연신 놀라워했다.

    “정말 이 시장에 대해 빠삭하시군요. 솔직히 놀랐습니다.”

    조태호 부장은 식은땀을 닦으며 말했다.

    그는 진심이 담긴 눈으로 나를 바라본다.

    “이번 프로그램의 정식 MC가 되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저희는 정말 어진 씨와 오래 가고 싶어요.”

    “시청률 잘 나오면 시즌 2도 기획해 주시는 겁니까?”

    “2뿐입니까? ‘전원일기’나 ‘대추나무 사랑걸렸네’처럼 장수 프로그램으로 만들어 드리죠.”

    나와 조태호 부장은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얼마간 대화를 나눴다.

    둘 다 게임에 목숨 걸었다는 점에서 우리는 공통점이 상당히 많았다.

    그때.

    끊임없이 이어지는 우리 대화를 흥미롭게 듣고 있던 홍영화가 문득 눈을 휘둥그렇게 떴다.

    “어? 어어? 이게 왜 이러지?”

    그녀는 잡고 있던 노트북 화면을 바라보며 연신 고개를 갸웃했다.

    탁! 타탁! 타타탁! 타타타탁!

    끊임없이 연타하는 F5버튼.

    조태호 부장이 무슨 일인가 싶어 고개를 돌린다.

    “……? 왜 그래?”

    그러자 홍영화가 고개를 돌려 이쪽을 바라보았다.

    그녀가 보여 준 노트북 화면에는 다음과 같은 메시지가 떠 있었다.

    <액세스가 거부되었습니다: SLTP

    (Server Login Transfer Protocol)

    에 연결할 수 없거나 사용자 수

    가 너무 많습…….>

    <서비스 이용에 불편을 드려 죄송합니다. 급격한 트래픽 증가로 인해 현재 서비스 이용이 원활하지 못하여…….>

    홍영화는 멍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저희 방송국 서버. ……다운됐는데용.”

    내 개인교습을 받을 지원자 모집 공고가 올라간 지 10분 만에 일어난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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