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닳고닳은 뉴비-217화 (217/1,000)

218화 트롤 참교육 (2)

“…네 다음 화장법은 조금 독특할 수 있겠는데요.”

윤솔과 홍영화는 친자매처럼 웃고 떠들며 방송을 진행하고 있었다.

생방송인 만큼, 홍영화는 이런저런 실수들을 연발했는데 그것이 오히려 시청자들에게는 더욱 더 매력적으로 보인 모양이다.

-홍언니! 다음에 또 나와주세요!

-엌ㅌㅋㅋ매력터지신다 이분^^졸귀

-어? 이분 저번에 TV프로그램에서 본 것 같은데? 게임 프로...

-예전에 고인물 특집 용자의 무덤 편에 출연하셨던 PD님이시네요!

-홍솔콤비 케미 쩐다ㅋㅋㅋㅋ

댓글에는 온통 홍영화를 칭찬하는 내용이 가득하다.

큰 눈, 오똑한 코, 통통한 볼, 희고 깨끗한 피부.

심지어 그녀는 화장을 아주 잘 받는 체질이다.

윤솔은 홍영화의 얼굴을 만지작거리며 감탄했다.

“아아, 이런 맑은 얼굴을 보면 저는 흥분돼요. 깨끗한 캔버스를 보는 화가의 두근거림이랄까?”

윤솔은 흐뭇한 미소를 띤 채 홍영화의 얼굴에 이런저런 화장을 시도하고 있었다.

“자, 메이크업 베이스를 평소처럼 발라 주고, 여기서 파우더를 엄청나게 진하게 발라 주는 거예요! 막 하얗게 일어나게요. 그리고 세면대에 물 받아 두고 얼굴을 30분…앗 실수! 30초 정도만 담그고 난 다음에 키친타월로 물기만 닦아 내는 거죠! 그러면 되게 보송보송한 메이크업이 가능해요! 음, 솔직히 이 위에 뭔가를 덧바르면 더 예뻐 보이긴 해도 장시간 방치할 때에는 역효과고요, 피부도 숨을 못 쉬어서 나빠요. 그냥 이대로만 둬도 한 6시간 정도는 끄떡없을 거예요!”

윤솔은 홍영화의 얼굴에 솔을 솔솔 문지르며 솔직하게 말했다.

댓글들은 평소보다 훨씬 더 많이 달리고 있었다.

-ㅠㅠㅠ저분은 원래 예쁘시잖아요...

-아니 근데 진짜 쌩얼로도 여신급인데...? ㄷㄷㄷ

-근데 화장하시니 더 예뻐지심...

-홍영화 PD님 고인물 켠왕 방송 때 보고 팬 됐어요!!

-연예인 아니었음?ㄷㄷㄷ 일반인 외모가 아닌데

-BJ부반장님하고 박빙ㄷㄷㄷ...

-꿀 화장팁 구독하고 갑니다ㄱㅅㄱㅅ

-근데 고인물 님 이제는 안 출연하시나? 가슴골 특집 또 보고싶은데...

-24살 희은이도 고인물 님 보고시퍼여 ㅠ왼쪽 옹동이! ㅠㅠ~

.

.

1시간 동안 예정되어 있던 방송은 예정 마감 시간을 훌쩍 넘겨 2시간이 넘게 이어졌다.

홍영화와 윤솔의 토크가 생각보다 재미있어서 시청자들의 반응이 좋았기 때문이다.

결국, 평소보다 훨씬 더 많은 수의 시청자들의 성황 속에 방송은 종료되었다.

딸깍-

카메라와 마이크가 완전히 꺼지자 홍영화가 죽는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으에에에, 얼굴이 무거워졌어. 화장을 너무 두껍게 했나 봐.”

“오늘 너무 고생 많으셨어요 언니! 언니 덕분에 오늘 시청자 수 장난 아니었어요.”

“아냐, 네가 CF 나와서 인지도 폭발적으로 올라간 거야. 오히려 내가 수혜자인 듯.”

“에이, 오늘 채팅창의 반이 언니 미모 찬양하는 글인데요 뭐!”

윤솔과 홍영화는 서로에게 공을 돌리며 웃는다.

그때.

“아들~ 딸들~ 밥 먹어라~”

문 밖에서 윤솔 어머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네, 어머니! 제가 도와드릴게요!”

홍영화는 호다닥 튀어나가 주방으로 향했다.

방 안에는 나와 윤솔만이 남게 되었다.

(참고로 나는 두 여자가 방송을 진행하는 동안 뒤에 숨어 있었다. 내가 출연하면 채팅창이 뷰티랑은 상관없는 화제로 도배되기 때문이다)

윤솔은 방송장비들의 선을 정리하며 내게 물었다.

“아참 어진아. 근데 부탁할 게 있다고 했었지? 뭔지 지금 들을 수 있어?”

여부가 있겠습니까요.

나는 바로 윤솔에게 다가가 말했다.

“내가 부탁할 게 뭐냐면…….”

내용이 좀 길다.

나는 윤솔의 귓가에 내 요구사항을 속삭이듯 말했다.

한참을 듣던 윤솔은 이내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 정도야 뭐. 딱히 관심 없던 분야이긴 한데. 그래도 너랑 함께라면 재밌을 것 같아.”

다행이다.

내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순간.

“밥 다 됐어용!”

갑자기 문을 벌컥 열고 들어오는 홍영화.

이내 그녀는 눈을 휘둥그렇게 뜬 채 나와 윤솔을 번갈아 보았다.

공교롭게도, 내가 윤솔의 귀에 입을 댔다가 막 떼고 있던 시점이었다.

홍영화는 잠시 움찔하더니 이내 눈을 가늘게 좁히며 물었다.

“……뭐야. 너네 왜 그렇게 붙어 있어.”

“아휴, 언니 그런 거 아니에요!”

“뭐야뭐야, 나 촉 되게 좋아.”

홍영화는 짓궂게 웃으며 윤솔의 양 허리를 꽉 잡았다.

윤솔은 간지럽다며 파닥파닥거렸지만 홍영화는 그녀를 놓아 주지 않았다.

둘이 아웅다웅하는 사이, 나는 부엌에 있는 테이블로 향했다.

테이블 위에는 많은 음식들이 차려져 있었다.

찌개, 갈비찜, 잡채, 각종 나물 무침과 볶음 등등…….

“아들, 자취하느라 힘들지? 끼니는 제대로 챙겨 먹는 거야?”

윤솔의 어머니는 나를 숫제 아들이라고 부르신다.

나는 싱글싱글 웃으며 대답했다.

“그럼요. 잘 챙겨 먹죠.”

“맨날 밖에서 사 먹고 그러는 건 아니지?”

“아녜요~ 저 집에서만 밥 먹어요.”

엄밀히 말하자면 밥은 아니고, 온갖 식재료들을 한 번에 갈아서 마시는 것이지만.

한동안 영양과 시간 때문에 맛을 포기하고 살아왔던 나다.

이렇게 정성이 들어간 집밥을 먹는 것은 실로 오랜만이었기에 약간 뭉클했다.

칼칼한 김치찌개와 달고 고소한 갈비찜, 나물과 고기들이 골고루 들어간 잡채…맛을 제대로 느낄 수 있는 식사는 거의 이번 달 들어 처음인 것 같다.

보글보글 끓는 찌개를 앞접시에 덜어 한 숟갈 뜨자, 옆에서 홍영화가 생색을 낸다.

“어진아, 이거 누나도 거든 거다? 맛있지? 시집가도 되겠지?”

그러자 어머님이 깔깔 웃으시며 홍영화의 등을 찰싹 때렸다.

“딸램! 너는 두부랑 청양고추 썬 게 다잖아!”

“아휴 어머니, 아무튼 아주 조금이라도 제 지분이 있는 거죠! 김치찌개㈜의 주주인 거라구요. 개미이긴 하지만…….”

“아들! 고추에서 핸드크림 맛 안 나나 잘 봐라. 얘 손에서 복숭아 냄새 나더라.”

“아휴 어머니~~”

홍영화와 윤솔의 어머니는 그새 엄청나게 친해진 듯 실랑이를 벌인다.

아무래도 딸의 일을 도와주러 온 사람이다 보니 많이 고마워하시는 것 같다.

‘그건 그렇고……. 정말 미친 친화력이로군.’

남아메리카 초원에 사는 ‘카피바라’라는 동물이 있다.

귀여운 외모와 온순한 성격, 사교성이 좋아서 다른 종의 동물들과도 잘 어울린다.

오리, 거북이, 개, 고양이, 심지어 악어까지도 카피바라와 친하게 붙어 쉬는 사진들이 짤방으로 많이 돌아다니는 것을 보면 이 동물이 얼마나 친화력이 뛰어난지 알 수 있는 것이다.

지금 홍영화를 보고 있으면 마치 카피바라를 보는 듯한 느낌.

지금껏 같은 부서의 조태오 부장을 제외하면 그녀가 친하게 굴지 않는 사람은 없는 것 같았다.

윤솔은 쾌활하게 웃으며 홍영화의 손을 잡았다.

“와, 진짜 친언니 생긴 것 같아요!”

“그치? 나도 그래! 이참에 우리 삼자매 결성할까!?”

나는 왜 끼는 거야…

내가 밥을 우물거리며 손사래를 치자 홍영화와 윤솔은 동시에 셀쭉한 표정을 짓는다.

“안 되겠네 어진이. 그런 표정 짓는 거 아냐. 확 엽사를 풀어 버릴까 보다.”

“어? 언니. 어진이 엽사도 있어요?”

“응. 저번에 퀴즈쇼 나갔을 때 물에 빠졌었잖아. 그때 빠지기 직전에 지었던 표정을 내가 우연히 포착했지.”

“아하하. 대박이다.”

윤솔은 손뼉을 치며 웃다가 이내 갑자기 정색을 했다.

“그 사진 저 주시면 안 돼요?”

“……?”

나도 홍영화도 동시에 고개를 갸웃하게 만드는 반응이다.

*       *       *

이윽고.

식사를 마친 뒤 나와 홍영화는 일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홍영화는 일에 돌입하자 말투와 표정이 상당히 딱딱해졌다.

“음, 이번에 우리 부서에서 너한테 의뢰를 맡기고 싶은 게 있어. 정식으로.”

나는 그녀의 말을 들으며 생각했다.

지금껏 나는 수많은 나비효과를 만들어 왔지만 굵직한 사건들이 일어나는 것은 거의 바뀌지 않았다.

장소와 시간이 조금 어긋나긴 했어도 대체로 내 기억의 순서에 맞게 사건들이 벌어지고 진행된다.

나비의 날갯짓이 태풍이 될 수는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전 세계를 죄다 흔들지는 못한다는 느낌.

그래서 나는 홍영화와 윤솔이 방송을 하는 동안 전의 기억을 더듬었다.

그리고 약 13년 쯤 전에 LGB가 어떤 프로그램을 런칭했었는지 떠올려 냈다.

거의 기억나지 않지만, 그래도 유난히 기억에 남던 프로젝트들이 몇 개 있었다.

꽤나 인기를 끌었기에 나도 기억하고 있는 것이겠지.

“……그게 뭐냐면.”

홍영화는 자꾸 알려줄 듯 말 듯 뜸을 들인다.

아마 나의 궁금증을 최대로 증폭시켜 놓은 뒤 조커를 빼려는 의도겠지.

일에 관련된 것은 참 노련한 사람이다 싶다.

…하지만.

그런 홍영화를 당황시키는 것도 꽤 보람찬 일이다.

“켠김에 제왕까지 특별편 ‘고인물의 골목 게이머’ 맞죠?”

그러자.

안 그래도 크고 동그란 홍영화의 두 눈이 더욱 크고 동그랗게 변했다.

“헥! 아니! 앗! 어……H, How did you know that, sir?”

어찌나 당황했는지 말 놓기로 한 것을 까먹어 버린 모양이다.

…심지어 한국어조차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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