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닳고닳은 뉴비-215화 (215/1,000)
  • 216화 ‘처리반’ 회의

    갓겜이라고 불리는 ‘데우스 엑스 마키나’를 개발해 낸 회사 ‘뎀’

    1개의 메인스트림 AI와 17개의 서브스트림 AI로 구성되어 있는 이 게임은 그야말로 인공지능의 진수를 여실히 보여 준다.

    인공지능은 어디까지 자율적일 수 있는가?

    역사상 존재했던 모든 게임의 데이터, 이용자들의 흥미, 변수들을 종합적으로 학습하고 예측하여 스스로를 계속 진화시키는 구조.

    때문에 이 게임의 GM들은 그리 특별한 권한을 행사하지는 못한다.

    게임 내부에 직접 간섭할 수 없이 그저 외부에서 기술적인 문제들을 다루는 것이 고작, 따라서 GM이라고 해도 게임에 대한 철학적, 세계관적인 지식은 그렇게까지 높은 편은 아니다.

    애초에 그들이 전문적으로 다루는 분야들은 대부분 수없이 파편화된 것들이니까.

    고로 수없이 많은 스토리 작가들이나 GM들도 게임에 끼칠 수 있는 영향력은 극히 미미하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뎀의 한국 지부에는 다소 특이한 GM 부서가 존재한다.

    ‘처리반’

    여러 계열로 나뉘어 있는 GM들 중에서도 다소 동떨어져 있는 부서.

    직급 순서, 조직 구성, 인사 기준, 급여, 복지 수준……뭐 하나 세간에 알려진 것이 없는 부서이다.

    심지어 같은 회사 내부에서도 그들은 내부인도 이방인도 아닌 기묘한 위치에 놓여 있었다.

    일반적인 부서 사람들과는 교류도 거의 없고 소통도 잘 되지 않는다.

    팀 자체가 하나의 자회사 같은 느낌, 아니 자회사를 넘어 거의 외부 협력업체 수준으로 먼 느낌이다.

    심지어 독자적인 내규를 가지고 있어 일반적인 사내 규칙에 제약을 받지도 않는다.

    그들이 가지고 있는 가장 이질적인 권한은 바로 ‘게임 내부에 직접 관여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기술적으로, 또한 시스템적으로 무언가를 강제할 수 있다는 뜻은 아니다.

    일반 유저들은 감히 비교할 수조차 없는, 그런 압도적인 무력을 토대로 만들어진 관리팀.

    게임 내에서 뭔가 문제가 일어나면 특유의 무력으로 강제력을 만들어내는 조직이다.

    처리반은 다양한 일을 한다.

    협회 측에서 리그를 개최한다고 하면 필드에 존재하는 몬스터를 깨끗이 청소하거나, 게임 내에 버그가 발견되면 그것을 일정 규칙에 따라 삭제&소멸시키거나 하는 일이다.

    평소대로라면 늘 원칙에 따른 강제력을 집행하고 다니는 조직.

    하지만.

    오늘 처리반의 상태는 무언가 좀 이상하다.

    “…….”

    깔끔하게 정리된 사무실 안.

    검은 모자를 푹 눌러 쓴 여자 하나가 테이블 앞에 앉아 무언가를 곰곰이 생각하고 있었다.

    남세나.

    ‘처리 2반’의 반장.

    게임에 접속해 있을 때면 늘 검은 후드를 쓰고 다니는 마법사 유저이다.

    그녀의 앞에는 몇 명인가의 팀원들이 토의를 하고 있었다.

    “그래서, 카오 유저들을 어디까지 어떻게 규제해야 하냐고. 사망 패널티는 그냥 평소와 같게 하되 우리가 직접 나서서 죽일까? 아니면 단순히 사망 시 패널티를 더 크게? 나는 전자의 방식이 마음에 드는데…….”

    “으음, 현실적으로 보자고. 직접적인 규제 자체는 어려워. 이 게임은 자유도가 무척 높아. 웃기게 들릴지도 모르겠지만, PK(Player Killer: 다른 플레이어를 죽이는 행위)를 하는 사람의 권리도 중요하게 여겨지지.”

    “응, 그건 좀 웃기게 들린다. 그럼 PK에 제약을 걸지 말자는 거네?”

    “에이, 그건 또 너무 비약이다. PK의 제약은 이미 있잖아. NPC들의 경멸을 받게 되고 아이템 거래나 퀘스트는 거의 불가능, 더 나아가 다른 유저들에게 몬스터 취급을 당하게 돼.”

    “누가 그걸 모르나요. 그걸 감안하고도 PK를 일삼는 사람들이 많으니까 그런 거잖아요. 그것도 갖은 편법을 동원해서!”

    “맞아. 그들은 처벌을 받아야지. 하지만 우리가 직접 나서서 유저를 죽이는 것은 월권이야. 마을 자경단 NPC들이나 유저들이 자발적으로 모여 만든 길드, 파티 차원에서 근절시켜야 할 문제라고 생각해. 게임은 전적으로 유저들이 만들어 가야 하는 거야.”

    “하지만 현실적으로 그건 불가능합니다. PK를 일삼는 카오 유저들은 한둘이 아니죠. 그리고 또 전략적이기까지 합니다. 그들이 작정하고 일반 플레이어들에게 피해를 끼치면 그걸 누가 감당하겠습니까?”

    “조금 과격하지만 옳은 말이야. 마을 밖의 치안에는 관심 없는 NPC들이나 자기들 이익이 아니면 움직이지 않는 대형 길드들이 득도 안 되는 자정작용에 힘을 낭비할 리가 없어. 자칫하면 완장질로 변질될 수도 있고.”

    “전체적으로 뭐랄까. GM이 너무 소심한 것 같아요.”

    “그래도 초보자들이 PK를 당했을 경우 사망 패널티를 가볍게 조정해 주는 쪽으로 가야지 PK유저들을 우리가 직접 때려잡자는 것은 모순이야. ‘모두의 자유, 모두에 의한 자유, 모두를 위한 자유’라는 게임의 룰에 어긋나는 거라고.”

    “하! 그래서? 그래서 ‘프로리그 습격사건’ 때 아무것도 못한 거야?”

    결국. 한 팀원의 입에서 금기어가 나오고야 말았다.

    ‘앙신 조디악’

    그가 일으킨 한국 프로리그 습격사건.

    이때의 일을 계기로 한국의 모든 게이머들은 충격을 받았다.

    비록 마동왕과 고인물이라는 두 걸출한 인물이 사건을 해결하기는 했지만, 그것은 오히려 GM의 위신을 땅에 떨어트리는 결과를 낳았다.

    처리반 전원보다 마동왕이나 고인물 하나가 더 믿음직하다는 여론이 주를 이루고 있었다.

    각각 프로리그와 아마추어 리그를 대표하는 히어로.

    그들이 빛날수록 처리반의 존재는 더욱 더 궁색해진다.

    조디악에 의한 테러가 일어났을 때 변변찮은 대응을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

    그동안 말이 없던 남세나 반장이 검은 모자 챙 아래로 눈을 빛냈다.

    “지금 그거 나 들으라고 한 소린가요?”

    그녀가 묻자 팀원들 사이에는 갑자기 찬바람이 분다.

    방금 전까지 뜨겁게 고조되었던 분위기가 일순간에 잠잠해졌다.

    탁!

    남세나 반장은 매직을 들어 게임 월드맵의 한 귀퉁이를 짚었다.

    “독자적으로 추적한 결과, 앙신 조디악이라는 인물은 현재 남대륙 최남단 외곽을 향해 움직이고 있네요.”

    그녀는 좌중을 쭉 돌아보았다.

    다들 말이 없는 걸로 봐서는 남세나의 말뜻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눈치다.

    그래서 남세나는 굳이 한 번 더 설명을 길게 늘여야 했다.

    “‘살인자들의 탑’으로 가고 있다는 말입니다.”

    그 말에 팀원들의 표정이 확 바뀌었다.

    지금껏 유저들의 일에는 개입하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하던 이들 역시도 표정을 딱딱하게 굳힐 정도였다.

    남세나는 착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자, 이제 인정할 때가 됐습니다. 자유도 중요하지만 그만큼이나 강제도 중요한 거죠.”

    GM 처리반의 노선이 정해지는 순간이었다.

    이제부터 게임 내부에 조금 더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방향으로 행동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보복이라고 하기는 조금 뭣하지만, 앙신 조디악에 의한 패널티도 강제적으로 집행될 가능성이 컸다.

    “제아무리 날고 기는 유저라도, 혼자인 이상 강제하는 것은 어렵지 않을 거예요.”

    남세나의 말에 모든 이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이 막 자리에서 일어나 각자의 게임 캡슐을 향해 움직이려 할 때.

    “반장님.”

    한 팀원이 손을 들었다.

    남세나가 고개를 돌리자, 팀원은 그녀에게 다가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저, 보고드릴 안건이 하나 더 있습니다.”

    “다음 회의 시작 전에 보고서부터 올리세요.”

    “아, 아뇨. 그렇게까지 오피셜한 건 아니고…….”

    “……?”

    남세나가 고개를 갸웃하자, 팀원은 우물거리는 태도로 말했다.

    “저, 다름이 아니라 ‘고인물’ 있지 않습니까.”

    고인물.

    그 이름이 나오자 남세나는 표정을 찌푸렸다.

    일전에 ‘프로리그 습격사건’ 당시에 먼발치에서 본 적 있다.

    그토록 골치 아프던 앙신 조디악을 결국 죽여 없앤 남자.

    그가 아니었더라면 욕을 열 배는 더 먹었을 것이다.

    하지만 반대로 그 때문에 처리반의 위신이 한층 더 볼썽사납게 추락한 것이기도 했다.

    “그 사람이 왜요?”

    남세나가 다소 가시 돋친 어조로 묻자, 팀원은 쩔쩔매며 말했다.

    “다름이 아니라, 그 사람이 저번에 크라켄을 잡은 것도 모자라서 이번에는 여덟 다리 대왕까지…….”

    “그만. 제가 유저의 사생활을 보고받을 이유는 없습니다. 그게 처리반의 업무와 무슨 연관이 있는지부터 말해주세요.”

    “그, 그게…스토리 팀에서 헬프 요청이 들어왔거든요. 뒷조사 좀 해 달라고…….”

    그러자 비로소 남세나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그 도도한 스토리 팀이 어쩐 일로 우리 ‘도깨비’들의 협조를 구하실까?”

    스토리 팀은 평소에 자기들이 갓겜의 세계관을 만들어간다는 것에 대단한 자부심을 가지고 있는 이들이다.

    (실제로 그 세계관을 보다 정밀하게 구현하고 실현하며 변주를 넣는 것은 딥러닝 AI이지만)

    남세나가 스토리 팀의 자뻑에 대해 조소를 날리자, 팀원은 머리를 긁적이며 대답했다.

    “…그게…그럴 만한 게…‘고인물’이라는 유저의 행보가 벌써 대격변 메인 시나리오의 코어(core)에 근접하고 있다는 보고가 들어와서…물론 그 사람이 알고 그러는 것일 리가 없겠지만…….”

    “…대격변에?”

    남세나는 진심으로 놀랐다.

    그녀 역시도 메인 스토리에 관한 자세한 것은 모른다.

    GM의 일원이기에 어렴풋한 단상 정도를 가지고 있는 정도에 불과하다.

    하지만 그것이 엄청난 것이라는 것쯤은 알고 있었다.

    남세나가 알기로 대격변은 약 5년을 주기로 일어나는 대규모 패치와 업데이트를 뜻한다.

    5년이라는 시간이 지나 유저들이 게임에 좀 질릴 만할 타이밍에 내놓기로 계획되어 있는 확장팩인 것이다.

    그녀는 손으로 턱을 짚은 채 잠시 생각했다.

    ‘……한데 그것이 고작 2년도 안 된 이 시점에 논해지고 있다는 것은?’

    남세나는 잠시 생각한 끝에 고개를 끄덕였다.

    “스토리 팀이 똥줄 좀 타겠네요.”

    강 건너 불구경.

    마치 다른 관할에서 터진 문제를 바라보는 공무원 같은 태도다.

    팀원은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어휴, 말도 마세요. 지금 그쪽 부서는 고인물 한 사람 때문에 아주 난리도 아닙니다. 심지어 17개의 서브스트림 중 두 개와도 약간이나마 얽혀들었어요. 게임 출시 2년도 안 됐는데 이게 진짜 무슨 날벼락인지…아무튼 이거 때문에 스토리 팀장님이 처리반의 협조를 꼭 구하고 싶다고….”

    “그거야 그쪽 팀 이야기지 왜 우리 반에 난리실까.”

    “으아아, 반장님. 저 좀 살려 주십쇼. 저 그쪽 부서에서 차출돼서 온 거 아시지 않습니까. 전 팀 동료들끼리 가끔 회식할 때 압박이 아주…….”

    “제 알 바 아니네요.”

    남세나는 피식 웃었다.

    그리고 울상이 된 팀원에게 한 마디를 추가로 던졌다.

    “하지만 ‘고인물’ 씨에게는 원래 개인적으로 관심이 조금 있었어요.”

    GM 처리반.

    게임 내부에 관여할 수 없다고 알려진 일반적인 GM들과는 다르게, 유일하게 게임 내에서 강제력을 집행할 수 있는 부서.

    그 중에서도 일 잘하기로 소문난 ‘처리 2반’의 반장 남세나가 고인물에게 본격적으로 관심을 드러내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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