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4화 파리 대왕(Lord of the Flies) (1)
데우스 엑스 마키나는 메인 AI가 스스로 사고하고 학습하여 업데이트와 패치를 진행해 나가는 가상현실게임이다.
세계관의 중추를 이루는 메인 AI 하나와 그것을 보조하는 17개의 서브 AI가 이 세계를 구성하고 유지해 나가는 역할.
그리고 그 17개의 서브 AI를 대표하여 이 세계에 직접 존재하는 이들이 바로 17마리의 고정 S+급 몬스터들이다.
현 세계관을 둘로 양분하고 있는 지배종 ‘악마’와 ‘용’
그리고 그 세력을 이끌고 있는 ‘일곱 악마성좌’와 ‘일곱 용군주’가 바로 대표적인 고정 S+등급 몬스터.
그리고 총 14마리의 용과 악마를 제외한 나머지 3마리의 고정 S+급 몬스터들은 각각 깊숙한 곳에 몸을 숨기고 그 정체를 드러내지 않고 있다.
고정 S+등급 몬스터,
그들은 그 자체로 완전하며 또 궁극적인 존재들이다.
“하지만 너는 아니지.”
나는 고개를 들어 부유섬의 마지막 대왕을 바라보았다.
여덟 다리 대왕 큘레키움 폴다운 모드.
놈은 분명 S+등급의 몬스터이지만 ‘고정’은 아니다.
따라서 이 세계에 영향을 줄 수 있을 정도의 힘은 없다.
큘레키움이 S+급의 힘을 낼 수 있는 시간은 고작해야 100초.
제아무리 온 세상과 맞서 싸울 수 있는 힘을 지녔다고 해도 상대가 저 멀리 도망쳐 버린 이상 방법이 없다.
[……!]
놈은 힘을 방출하려다 말고 멈칫했다.
그리고는 전신을 늘어트린 상태로 폭풍우 건너편을 쳐다보기 시작했다.
“……? 무엇을 보는 거지?”
나는 큘레키움의 시선을 따라갔다.
폭풍이 휘몰아치는 바다 저편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시력 좋은 드레이크조차도 아무 것도 보지 못했다.
결정적인 순간.
큘레키움은 전의를 상실한 듯 우두커니 섰다.
쿠르르륵…….
부유섬은 이제 몇 뙈기 남지 않았다.
가장 높던 뼈다귀 산도 이제 슬슬 물 밑으로 가라앉고 있었다.
검은 섬, 높게 솟구친 뼈의 산.
그 위에 홀로 오연히 선 여덟 다리 대왕이 불탄다.
전신에 옮겨 붙은 화마(火魔)가 마치 몸을 새롭게 휘감은 갑옷처럼 보였지만 그것도 잠시.
이내 시뻘건 홍염(紅焰)이 그의 마지막을 완전히 집어삼켰다.
[…….]
비명도 포효도, 그 어떤 단말마도 들려오지 않는다.
지글거리는 소리와 거세게 번지는 불바람 소리만이 바다 전역에 가득할 뿐이었다.
결국.
마지막까지 고고하던 뼈다귀 산 역시도 바다 밑으로 가라앉고 말았다.
여덟 다리 대왕 큘레키움이 폴다운 모드로 변한 지 정확히 100초가 지난 시점에 벌어진 일이었다.
나와 드레이크의 귓가에 요란한 알림음들이 쇄도하기 시작했다.
-띠링!
<세계 최초로 ‘여덟 다리 대왕’ 레이드에 성공하셨습니다!>
<보상이 지급됩니다!>
<이름을 남기시겠습니까?>
<레이드 랭킹 집계 중...>
<최초 정복자의 이름이 아카식 레코드에 기록됩니다.>
<‘여덟 다리 대왕’이 죽었습니다. 그가 부활할 때까지 전 대륙의 거미들은 자취를 감춥니다.>
<‘여덟 다리 대왕’이 죽었습니다. 그가 부활할 때까지 모든 다리 많은 것들이 의기소침해합니다.>
<‘여덟 다리 대왕’이 죽었습니다. 그가 부활할 때까지 아크레에는 풍랑과 물안개가 사라집니다.>
<전란의 중심부에 서 있는 두 대왕이 ‘고인 물’ 님에게 관심을 표합니다.>
길고도 짧았던 S+급 몬스터 레이드가 이렇게 끝났다.
비록 진짜 제대로 된 S+급 몬스터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크라켄 레이드에 필적할 만큼 힘들었던 시간이었다.
시스템 알림음들이 모두 끝나자.
-띠링!
상태창이 저절로 열렸다.
-<이어진>
LV: 62
호칭: 바실리스크 사냥꾼(특전: 맹독) / 메두사 킬러(특전: 마나 번) / 샌드웜 땅꾼(특전: 가뭄) / 어둠 대왕 시해자(특전: 선택) / 씨어데블 격침자(특전: 심해) / 대망자 묘지기(특전: 언데드) / 지옥바퀴 대왕게 잡이(특전: 백전노장) / 아귀메기 태공(특전: 잠복) / 크라켄 킬러(특전: 고생물) / 와두두 여왕 쥬딜로페의 펫(특전: 갹출) / 여덟 다리 대왕 참수자(특전: 불완전변태)
HP: 620/620
레벨이 12번 연달아 올랐다.
새로 얻은 호칭은 ‘여덟 다리 대왕 참수자’.
이에 따른 특전은 ‘불완전변태’였다.
드레이크 역시도 레벨이 42에서 46으로 급상승했다.
4번의 연속 레벨업.
기여도를 감안해도 엄청난 폭렙이 아닐 수 없다.
그 역시도 호칭을 얻었고 특전을 받았다.
‘여덟 다리 대왕 참수자(특전: 살금살금)’
숨을 죽이는 동안 움직여도 소리가 전혀 나지 않는 특성.
궁수에게는 꽤나 좋은 패시브 스킬이다.
하지만.
지금 우리는 속 편하게 상태창을 확인하고 있을 시간이 없다.
“노! 저어! 빨리!”
나는 있는 힘을 다해 노를 저었다.
드레이크 역시도 그렇게 했다.
우리는 온 힘을 다해 배를 몰아 부유섬이 불타 사라진 곳으로 향했다.
여덟 다리 대왕이 죽으면서 떨군 아이템을 손에 넣기 위해서였다.
이내, 바다 한가운데 환한 빛기둥이 보인다.
‘양손무기다!’
나는 눈을 빛냈다.
큘레키움은 고정 S+등급 몬스터가 아니었기에 최대 S등급의 아이템을 떨궜을 것이다.
빛의 색깔로 미루어 짐작건대 양손무기가 틀림없었다.
“건져! 무조건 건져야 해!”
나는 점점 사그라드는 빛을 향해 미친 듯이 노를 저었다.
오죽하면 쌍뿔칠흑을 소환해 따로 아이템을 수거하라고 명령할 정도였다.
…하지만.
꼬르륵-
결국 S급 양손무기는 여덟 다리 대왕과 함께 바다 속으로 사라져 버리고 말았다.
마지막에 거리를 너무 벌려 놓은 것이 화근이었다.
“아아아아…세상에…S급 무기를 …이렇게 날려 버리다니…….”
드레이크는 두 손으로 머리를 감싼 채 절규했다.
하지만.
“…….”
나는 전혀 아쉬워하지 않았다.
다각- 까각- 끼기긱-
다만 깎단을 들어 S급 아이템이 사라진 곳의 위치를 배 난간에 새겨놓을 뿐이다.
“……뭐 하나?”
드레이크는 황당하다는 듯 물었다.
각주구검(刻舟求劍).
강을 건너던 도중 칼을 강물에 떨어뜨리자 뱃전에 그 자리를 표시해 놓고 나중에 그 칼을 찾으려 한다는 뜻으로 상황 변화를 생각하지 못하고 멍청하게 행동하는 것을 뜻한다.
하지만 나의 경우는 조금 다르다.
내가 배에 새겨 놓는 것은 이 아이템이 가라앉은 곳의 위도, 경도 좌표 값이었으니까.
“(36.2,146)인가. 꽤나 깊겠군.”
장소만 알면 반드시 건져올 수 있다. 다만 시간이 문제일 뿐.
드레이크는 황급히 물었다.
“지금 가서 바로 건져올까?”
“……아니, 우리 둘만으로는 가기 힘든 구역이야. 다음을 기약해도 충분해.”
어떤 무기가 떨어졌는지 알 수 없기 때문에 무작정 탐사할 수는 없었다.
까딱하면 비효율적인 탐사과정 탓에 시간과 자원을 낭비할 위험이 있었으니까.
“조만간 수거하러 올 거야.”
나는 좌표값을 잘 기억해 둔 채로 노를 저었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바다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그런 나를 보고 드레이크는 고개를 갸웃했다.
“……뭘 찾나?”
“…으음, 아직 수거하지 못한 게 남았는데.”
나는 말을 하면서도 계속해서 수면 위를 살핀다.
그때.
둥실- 톡!
물 밑에서 떠오른 무언가가 노에 부딪쳤다.
나는 두 눈을 크게 떴다.
“찾았다!”
바다 위에 둥둥 떠다니는 것은 덩어리진 버터처럼 생긴 누런 고체였다.
-<여덟 다리 대왕의 응고된 점액> / ?
큘레키움이 타락하기 전 마지막으로 뿜어낸 점액이다.
어지간한 온도가 아니고서야 녹지 않는다.
-? (특수)
기묘한 아이템.
예전에 어둠 대왕을 죽이고 얻은 ‘솔로몬의 목걸이’와 비슷한 느낌이다.
생긴 것은 아까 묘사한 대로 누런 버터 덩어리, 혹은 딱딱하게 굳은 벽돌 모양의 풍선껌 같은 외형이다.
여덟 다리 대왕이 죽으면서 떨군 아이템.
원래는 S급 무기와 함께 가라앉아야 마땅하지만 아이템 자체의 무게가 무척이나 가벼워서 물 위로 동동 떠오른 것이다.
“좋았어!”
나는 쾌재를 부르며 응고된 점액을 집어 들었다.
이윽고, 나는 드레이크에게 말해 인벤토리에서 다른 아이템 하나를 더 끄집어내게끔 했다.
-<크라켄의 껍질 방패> 방어구 / A+
크라켄의 질긴 가죽을 햇볕에 오랜 시간 말려서 만든 가죽 방패.
성능은 좋지만 유통기한이 짧다는 단점이 있다.
-방어력 +5,800
-화염 속성 방어력 +∞ (특수)
-내구도 1/1 (특수)
-수리불가 (특수)
그것은 크라켄을 잡은 뒤 드레이크의 손에 떨어졌던 아이템.
나는 점액과 방패를 나란히 둔 채 미소 지었다.
“좋아. 크라켄도 잡았고 여덟 다리 대왕도 잡았어. 준비는 끝났다.”
“……무슨 준비?”
드레이크가 의아한 표정을 지은 채 물어온다.
나는 심호흡을 한번 한 뒤 최대한 진지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대격변.”
모든 준비는 끝났다.
앞으로 나는 온 세상을 바꿀 것이다.
‘뭐, 밸런스를 생각하면서 하려면 몇 가지 사항을 주의해야….’
내가 머릿속으로 이런저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쏴아아아아…….
머리를 때리는 소나기가 점점 더 굵어졌다.
출렁- 출렁-
배 안에 물이 가득 차서 점점 고이기 시작했다.
“젠장! 이거 대격변 전에 배가 먼저 가라앉게 생겼네.”
나와 드레이크는 황급히 배 안에 고인 빗물을 퍼냈다.
하지만.
촤악-
높게 솟구친 파도가 퍼낸 물을 기껏 도로 고이게 만든다.
우르릉! 콰쾅! 쏴아아아…….
폭풍우가 점점 더 심해지고 있었다.
‘이상하다? 원래 여덟 다리 대왕을 죽이고 나면 날이 갠다고 들었는데?’
시스템 알림음에도 그렇게 떴었다.
아크레에 낀 물안개와 풍랑이 사라진다고.
“아니, 왜 오히려 날씨가 더 나빠지는…….”
그때, 나는 하던 말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
드레이크가 물을 푸던 바가지와 휘젓던 노를 멈추고 바다 한쪽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던 것이다.
참고로 그쪽은 아까 전 여덟 다리 대왕 큘레키움이 죽는 그 순간까지 물끄러미 바라보던 방향이었다.
“…? 뭐야, 저쪽에 뭐가 있….”
나는 자연스럽게 드레이크를 따라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그 순간.
“……!”
나 역시 그 자리에 얼어붙고 말았다.
쏴아아아아…
소나기가 내려 배 안에 가득 가득 고인다.
하지만 나는 노를 젓지도, 물을 퍼내지고 못한 채 그 자리에 얼어붙었다.
드레이크가 가늘게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어, 어진. 저게 뭐냐?”
지금 그가 바라보고 있는 것은 내 눈에도 보인다.
우르릉! 콰쾅! 쏴아아아-
천둥을 동반한 폭풍우.
바다가 미친 듯 널을 뛴다.
그리고.
그 비바람과 해일을 만들어 내고 있는 것이 먹구름 낀 하늘 위에 가만히 떠서 우리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저것을 도대체 무어라 묘사해야 할까?
긴급한 상황이니만큼 최대한 간결하게 설명하자면, 저것은 통통하게 살찐 한 마리의 파리였다.
유난히 거대하다는 것만 빼면 일반적인 파리와 크게 다를 것도 없다.
하지만.
나는 알고 있었다.
저 흉측한 벌레가 얼마나 무시무시한 존재인지.
<벨제붑> -등급: S+ / 특성: ?
-서식지: ?
-크기: 44m.
-이 세상의 모든 악마를 지배하는 일곱 성좌 중 하나.
질병과 부패를 지배하는 위대한 마왕.
“너. 네가 올라가 누운 침상에서 내려오지 못하고, 그대로 죽을 것이다.”
-벨제붑- <구약, 역왕기(疫王記) 하권,
역왕 1,3-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