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2화 여덟 다리 대왕 (3)
콰쾅!
동굴의 좁은 입구가 폭파되었다.
오-오오오오오…!
여덟 다리 대왕.
동굴 밖으로 나온 초대형 몬스터의 포효가 밤하늘에 울러 펴진다.
우르릉… 콰쾅! 쏴아아아-
폭풍우는 부유섬 전체를 쓸어버릴 듯 거세게 몰아치고 있었다.
나는 얼굴, 아니 전신을 두들기는 소낙비를 느꼈다.
‘탈출이다!’
이 시원한 감각, 허공에 붕 뜨는 짜릿함.
드디어 그 좁고 역한 동굴에서 해방된 것이다!
나는 마치 쇼생크 교도소에서 탈출한 앤디 듀프레인처럼 두 팔을 활짝 벌렸다.
…하지만. 그 해방감은 아주 짧은 것이었다.
쿠당탕!
나는 허공에 붕 뜨자마자 바로 비탈길 아래로 굴러 떨어졌다.
“으아아아악!”
깜빡했다.
동굴 입구가 꽤나 가파른 경사로에 있었다는 것을.
나는 한참을 굴러 떨어지다가 비탈 중간에 튀어나온 뼈다귀에 부딪치고 나서야 겨우 멈출 수 있었다.
“드레이크! 나 좀 잡아 주지 그랬…….”
나는 투덜거리며 고개를 돌렸다.
하지만 불평을 채 끝까지 하기도 전에, 비탈길 아래로 데굴데굴 굴러 떨어지고 있는 드레이크가 눈에 들어온다.
“나, 나도 구르는 중, 어진.”
“…어휴.”
나는 한숨을 쉬고는 재빨리 손을 뻗어 드레이크의 발목을 낚아챘다.
이내, 경사로 굴러 떨어진 우리는 부유섬 끝자락에 서 있게 되었다.
쏴아아아… 콰쾅! 휘이이이잉-
쏟아지는 소나기, 내리치는 천둥, 미친 듯이 불어오는 태풍까지.
바다의 기세가 점점 심상치 않게 변해 간다.
우리는 섬의 연안까지 몰아치는 거대한 파도를 보며 아연실색했다.
“어째 섬에 올 때보다 더 심해진 것 같다.”
“그러게, 나도 날씨가 이럴 거라고는 예상 못했는데.”
하지만.
지금 가장 큰 문제는 폭풍이 아니었다.
[오-오오오!]
여덟 다리 대왕 큘레키움.
놈이 부유섬에서 가장 높게 솟구친 뼈다귀 산 위에서 이쪽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철퍽! 철퍽! 철퍽!
여덟 다리 대왕은 육탄 공격을 감행하기 전 수많은 다리를 휘저어 점액탄을 날렸다.
먹이의 움직임을 우선 봉인하기 위함이다.
쓸데없는 움직임에 에너지를 소모하지 않겠다는 의지가 느껴졌다.
“젠장! 저 큰 덩치로 참 효율적이기도 하다.”
나는 쏟아지는 점액탄 세례를 피해 언덕 중앙에 툭 튀어나온 뼈다귀 아래로 숨었다.
퍼퍼퍼퍽!
등으로 느껴져 오는 진동.
얼굴에 점액들이 튀었지만 데미지는 들어오지 않는다.
언덕의 경사가 워낙에 가팔라 여덟 다리 대왕의 공격은 더 이상 닿지 않게 되었다.
하지만 지금의 평화는 정말 찰나의 것. 놈은 곧 이쪽으로 직접 내려올 것이다.
그것도 그냥 내려오는 것이 아니다.
‘지금까지의 공격 패턴으로 봐서는 분명 무게를 이용해 육탄전을 걸어올 텐데…….’
저 높이에서 저 무게로 떨어져 내리면 파괴력이 상당할 텐데.
‘마치 운석이 떨어지는 것 같겠지.’
나는 어떻게 하면 여덟 다리 대왕의 몸통박치기에 저항할 수 있을지 고민했다.
그때.
“어진! 이쪽! 이쪽으로!”
드레이크가 저쪽 뼈다귀 언덕 아래에서 나를 향해 손짓하는 것이 보였다.
그쪽은 우리가 맨 처음 배를 타고 왔던 만(灣)이었다.
경사가 너무 완만해서 여덟 다리 대왕의 점액탄 공격을 피하기 어려운 장소다.
하지만.
“오! 그래! 그 수가 있었군!”
나는 드레이크가 굳이 그런 위험한 장소로 이동한 이유를 바로 눈치 챘다.
타타탁!
온 힘을 다한 도움닫기!
나는 그 자리에서 바로 점프해 드레이크에게로 뛰었다.
그리고 그런 나의 움직임을 포착한 여덟 다리 대왕 역시도 그쪽을 향해 다이브했다.
“이야아아압!”
내가 땅에 착지하는 순간, 드레이크는 한쪽 손을 뻗어 내 손목을 낚아챘다.
그리고 그와 거의 동시에.
콰-쾅!
여덟 다리 대왕이 지면을 향해 운석처럼 떨어져 내렸다.
그리고, 예상대로의 결과가 일어났다.
[오-오오오!?]
여덟 다리 대왕은 땅에 온전히 착지할 수 없었다.
뚜둑! 우지지지직!
놈은 그대로 지면을 뚫고 땅 아래로 처박혀 버린 것이다.
그렇다.
그곳은 지면이 극도로 무른 곳.
드레이크가 배에서 내려 한 발을 내딛자마자 발목까지 푹 파묻혔던 곳이다.
가뜩이나 썩어 문드러지고 있던 대지인지라 여덟 다리 대왕의 몸무게를 버틸 수 있을 리가 만무하다.
풍-덩!
여덟 다리 대왕이 떨어져 생긴 구멍으로 커다란 물기둥이 치솟아 올랐다.
“세상에! 섬을 뚫고 바다까지 처박힌 건가!”
나와 드레이크는 정말 진심으로 놀랐다.
부유섬은 엄밀히 말하면 섬이 아니라 물 위를 떠다니는 부유물에 불과하다.
하지만 지면의 두께만 해도 상당한 것이 사실, 그 지면을 뚫고 부유섬 밑에 있는 바다까지 처박힌 것은 예상치 못한 상황이었다.
[크-아아아아아아악!]
저 구덩이 아래, 휘몰아치는 바닷물 밑에서 쩌렁쩌렁한 포효 소리가 들려왔다.
아무래도 놈은 아직 부유섬 밑에 갇혀 있는 모양이다.
여덟 다리 대왕은 현재 얼어붙은 호수에 난 구멍에 빠진 상태와도 같았다.
일단 한번 빠지면 바로 기어 올라올 수 있는 게 아니다.
차가운 바닷물에 의한 체온 저하, 그리고 빠르게 흐르는 급류 탓에 자기가 빠진 구멍을 되짚어 올라오는 것은 정말 어렵다.
나는 썩어 문드러진 구덩이 속의 파도를 들여다보며 말했다.
“좋았어, 시간을 조금 벌었다.”
이내, 나는 드레이크의 귀에 대고 말했다.
“너는 해변으로 가서…….”
“…아, 그런 계획인가. ……그럼 너는?”
“…나는 깎단으로…….”
폭풍우 속이라 서로의 대화가 잘 들리지 않았지만 드레이크는 내 당부사항을 전부 이해한 듯싶다.
그는 온 힘을 다해 배를 정박해 둔 곳으로 달렸다.
파도와 비바람이 휘몰아치고 있었지만 그 정도는 충분히 뚫고 갈 수 있는 레벨이다.
“…….”
혼자 남은 나는 구덩이를 계속 주시하고 있었다.
이윽고.
콰쾅! 철썩…
구덩이 속에서 격류가 터져 나오는가 싶더니 여덟 개의 다리가 툭 튀어나왔다.
“어이쿠!”
나는 뒤로 훌쩍 물러나 여덟 다리 대왕의 공격을 피했다.
이윽고.
전신이 바닷물에 젖은 여덟 다리 대왕이 시뻘겋게 충혈된 눈으로 나를 노려보기 시작했다.
[오-오오오오!]
놈은 나를 향해 거대한 다리를 휘둘렀다.
하지만.
차라라락-
나는 몸을 날려 공격을 피함과 동시에 새로 얻은 갑옷의 특성을 발동시켰다.
내 몸에서 뿜어져 나온 철조망이 여덟 다리 대왕의 뿔에 휘감겼다.
‘킬 체인’
내게 근접 공격을 한 적에게 휘감거나 부착할 수 있는 쇠가시 채찍.
하지만 이렇게 단순히 몸을 이동하는 용도로도 응용 가능하다.
나는 그것을 여덟 다리 대왕의 머리에 휘감은 채 위로 점프했다.
“좁은 동굴 속이 아니라면야!”
마치 타잔처럼, 나는 철조망 줄을 잡고 허공을 날고 있었다.
철조망을 몸에 휘감은 채 폭풍우 속을 알몸으로 활강하는 남자!
전신에 부딪치는 바람, 빗방울, 그래 이게 바로 나다!
‘…뭐, 자아도취는 잠시 미뤄 두고.’
나는 깎단을 들어 여덟 다리 대왕의 머리를 향해 휘둘렀다.
퍼억-
여덟 다리 대왕은 황급히 고개를 뒤로 틀었지만 눈 밑 애굣살을 한 뭉텅이 뜯기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하지만 내가 지불해야 하는 대가도 무거웠다.
콰쾅!
나는 여덟 다리 대왕의 커다란 주먹을 온 몸으로 감내해야 했다.
우지지지직!!!
전신이 터져나간다.
힘줄과 핏줄은 죄다 끊겼고 근섬유들은 모조리 찢어졌다.
뼈란 뼈는 죄다 가루처럼 부서지고 그것들은 살가죽을 뚫고 픽픽 삐져나온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살아남았다.
HP가 1 남은 상태로!
풍덩!
나는 그대로 바닷물에 처박혔다.
‘샌드웜의 가죽’으로 만든 망토가 ‘앙버팀’ 특성을 발현해 주었기에 겨우 살았다.
‘바실리스크의 심장’ 갑옷을 착용했더라면 반사 데미지를 꽤나 묵직하게 먹여 줄 수 있었을 텐데 아쉬운 일이다.
딸각-
포션 병을 열어 급하게 한 모금 들이켰지만 바닷물과 빗물에 섞여 농도가 많이 희미해졌는지 HP는 별로 오르지 않았다.
[갸오-오오오오!]
여덟 다리 대왕은 나를 향해 엄청난 속도로 달려들었다.
첨벙! 첨벙! 첨벙! 첨벙!
나는 해안을 질주했다.
육지로 가면 조금 더 빠를 수도 있지만, 굳이 몸이 바닷물에 반쯤 잠기게끔 하며 도망치는 것은 이유가 있다.
-<심해마귀 씨어데블의 발가락> 신발 / A+
익사 직전에 놓인 이가 마지막으로 치는 발버둥.
그 필사적인 간절함이 담겨있다.
-이동 속도 +200% (특수)
-물 속 이동 속도 +300% (특수)
-특성 ‘마찰계수’ 사용 가능 (특수)
내 신발은 물속이라면 이동속도가 3배 빨라진다.
나는 필사적으로 질주했다.
물에서라면 여덟 다리 대왕이라고 해도 내 도주속도를 따라잡기 어렵다.
“깎단은 이미 먹였으니 도망만이 살길이지!”
나는 여덟 다리 대왕의 자연 회복력을 계산하며 달렸다.
달리고 또 달리자, 바닷물이 깊게 들어오는 해만 구석에 우리가 타고 온 배가 보인다.
“어이! 이쪽이다!”
드레이크가 횃불을 흔들어 보이고 있었다.
어둠 속, 빗발치는 소나기 속에서도 그가 흔드는 불빛은 내 눈에 똑똑히 보였다.
“오오오오! 성공했나!?”
“새로 얻은 갑옷 덕 좀 봤지!”
나는 차오르는 숨 때문에 바로 자리에 주저앉았다.
드레이크는 그런 나를 부축하며 횃불을 들어 올렸다.
이내, 우리 앞으로 여덟 다리 대왕이 그림자를 드리운다.
놈은 마치 판결을 내리는 심판관처럼 여덟 개의 망치를 높게 들어올렸다.
사형 선고다.
콰콰콰콰콰콰콰쾅!
놈은 우리와 우리가 타고 왔던 배를 향해 총 공격을 퍼부었다.
그리고.
그것은 우리가 노리던 바였다.
철푸덕!
여덟 다리 대왕의 얼굴로 무언가 끈적한 것이 튀었다.
[……홋?]
그녀는 고개를 갸웃했다.
바닷물도 아니고 빗물도 아니다.
거미 꽁무니에서 나온 점액도 아니고 적이 흘린 핏물도 아니었다.
그것은 극도로 농축되어 있는 기름이다!
<부유하는 기름촉수 ‘오일텐타’> -등급: B+ / 특성: 물, 부유, 과식
-서식지: 부유섬 연안
-크기: ?m.
-물 위에 둥둥 떠다니는 것이 일상인 대형 해파리.
딱히 인간에게 해를 끼치지는 않지만 때론 볼락이나 정어리들을 너무 많이 잡아먹는 통에 어부들에게는 미움을 받는다고 한다.
해파리!
나와 드레이크의 뒤에 있던 커다란 것은 바로 오일텐타의 시체였다!
어둠과 소나기, 횃불의 역광 때문에 잘 보이지 않았겠지만 이 반투명한 해파리의 시체는 우리가 처음 여기 왔을 때부터 이곳에 있었다.
여덟 다리 대왕이 여덟 개의 다리로 난자했기 때문에 이 거대한 해파리의 시체는 갈기갈기 찢어지고 말았다.
그 탓에 해파리의 몸속에 저장되어 있던 대량의 생선기름이 사방팔방으로 튄 것이다.
[…….]
여덟 다리 대왕은 전신을 흠뻑 적신 기름이 불쾌한 듯 표정을 찌푸렸다.
그때.
“어이.”
허공에서 들려오는 목소리.
[……?]
여덟 다리 대왕은 고개를 들어올린다.
절벽 위.
툭 튀어나온 뼈다귀 끝에 철조망을 감고 타잔처럼 매달려 있는 내가 있었다.
(참고로 드레이크는 꽤나 로맨틱한 자세로 내게 안겨 있다)
“젖어서 춥지?”
나는 여덟 다리 대왕을 향해 말했다.
“몸 좀 녹이라고.”
그리고 손에 든 횃불을 아래로 떨어트렸다.
온통 기름에 절어 있는 절벽 바닥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