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8화 다리 많은 것들의 섬 (4)
카라라라라랑!
동굴 안을 꽉 채우고 있던 철조망들이 두 갈래로 나뉘어진다.
수많은 가시와 갈고리들이 바짝 마른 뼈다귀에 부딪쳐 시뻘건 불똥을 튀겼다.
그 철의 파도 한가운데에서 튀어나온 것은 한 마리의 커다란 거미였다.
<거미 대모> -등급: A / 특성: 독, 벌레, 즉사, 킬 체인
-서식지: 부유섬
-크기: 15m.
-많은 사람들은 흔히들 생각한다.
‘이 징그러운 거미들이 세상에 이렇게나 많은 이유는 누군가가 뒤에서 그들을 몰래 보살펴 주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커다랗고 퉁퉁한 하반신에는 징그러운 털들이 숭숭 돋아나 있다.
곳곳의 기문들이 열리고 닫힐 때면 지독한 맹독 안개가 스멀스멀 피어오른다.
여덟 개나 되는 다리 끝에는 송곳과도 같은 침이 붙어 있었다.
하지만 그 몸에 붙어 있는 상체는 아름답고 가녀린 여인의 것이다.
매끄러운 살결과 아름다운 이목구비.
관자놀이에 자라난 두 개의 뿔만 아니었어도 인간 여성이라고 칭하기에 이질감이 없을 것이다.
여인의 상체와 거미의 하체는 심각할 정도로 분위기가 달랐다.
하지만 여인의 몸을 온통 휘감고 있는 것은 철거미 특유의 날카로운 철조망이었다.
분명 두 개의 몸은 하나의 생물을 이루고 있는 것임에 틀림없다.
[호호호호호!]
거미 대모는 고혹적인 웃음으로 나와 드레이크를 맞이했다.
차라라라락!
그녀가 손을 휘젓자, 몸을 감싸고 있던 철조망들이 뱀처럼 날아들었다.
“조심해. 저 녀석의 철조망은 끈적하기까지 하니까.”
나는 드레이크에게 경고를 하고는 잽싸게 뒤로 빠졌다.
날카로운 것과 끈적한 것은 언뜻 보기에는 별로 어울리지 않는 것처럼 보이지만, 막상 그 두 가지가 한데 모이게 되면 엄청나게 귀찮아진다.
차라락!
철조망 거미줄이 마치 살아 있는 것처럼 나를 추격해 왔다.
“헉!?”
드레이크는 기겁했다.
거미 대모는 그간 철거미들이 썼던 다양한 공격 패턴을 전부 사용하고 있었다.
[홋호호호호!]
여덟 개의 다리와 두 개의 손이 허공을 수놓을 때마다 철조망들이 다양한 형상으로 변화했다.
투망 같은 모양새의 철조망 그물, 굵은 밧줄 같은 철조망 채찍…심지어 어떤 철조망은 벽이나 바닥을 뚫고 올라오기도 했다.
게다가 바닥도 굴거미들이 만들어놓은 함정 투성이인지라 피할 수 있는 루트가 제한적이다.
콰콰콰콰콰콰!
철조망이 둥글게 모여 공처럼 변한 것이 엄청난 기세로 굴러 떨어졌다.
“젠장!”
드레이크는 이를 악물었다.
그리고는 벽면에 튀어나온 뼈다귀를 밟고 점프해 철구를 피했다.
바로 그때.
[홋.홋.홋.]
바로 귓가에 들려오는 목소리.
드레이크가 고개를 돌린 곳에는 바로 지척까지 따라온 거미 대모의 얼굴이 있었다.
“……!”
순간, 드레이크는 거미 대모의 얼굴을 보고 멈칫했다.
공격을 해야 하는데 손이 움직이지 않았다.
칼부림을 하기에는 거미 대모의 얼굴이 너무나도 아름다웠기 때문이다.
일전에 본 서큐버스보다도 더욱 더 고혹적으로 아름다운 얼굴이다.
그 큰 눈, 맑은 눈망울을 향해 누가 감히 적의를 표할 수 있으랴?
……하지만.
후욱-
코로 밀려드는 냄새가 드레이크의 정신을 번쩍 일깨웠다.
고기 썩는 냄새.
절로 구역질이 올라오는 입냄새가 거미 대모의 입에서 풍겨져 나오고 있었다.
누가 그랬던가? 매력적인 이성에게서 정이 뚝 떨어지는 순간이 입냄새가 날 때라고.
거미들에게 있어서는 그윽한 향기일 그 냄새는 인간 입장에서 보면 끔찍한 악취에 불과하다.
드레이크는 바로 정신을 차렸다.
그리고 바로 지척까지 추격해 온 거미 대모를 향해 단검을 휘둘렀다.
푹!
연한 살점이 파이는 소리와 함께 시퍼런 피가 튀었다.
거미 대모의 옆구리에 깊은 흉터가 패였다.
그것을 본 드레이크는 눈을 크게 떴다.
“엇? 이 자식, 물리방어력이 상당히 낮…….”
하지만 그는 말을 끝까지 이을 수 없었다.
차라라락-
쇠사슬 돌아가는 소리와 함께, 거미 대모의 몸을 휘감고 있던 철조망이 움직였다.
그것은 엄청난 속도로 뻗어나와 드레이크의 허리를 휘감는다.
“헉!?”
드레이크는 경악했다.
그와 거미 대모는 철조망으로 연결된 상황이 되었다.
마치 줄다리기라도 하는 것처럼 말이다.
콰긱!
거미 대모는 드레이크의 허리에 감긴 철조망을 엄청난 힘으로 잡아끌었다.
콰쾅!
드레이크는 벽에 튀어나온 뼈다귀들에 몇 번 부딪친 뒤 무시무시한 기세로 끌려갔다.
뿌드득-
철조망의 날카로운 가시가 드레이크의 살을 파고들어 근육들을 왕창 끊어 놓았다.
나아가 척추뼈 사이사이의 틈에 갈고리를 걸고 갑옷과 피부, 근육들을 죄다 걸레짝으로 만든다.
결국 철조망은 드레이크의 허리를 통째로 절단해 버렸다.
……내가 드레이크의 몸에 미리 뿌려 놓은 점액이 아니었더라면 분명 그렇게 되었을 것이다.
철퍽!
나는 거미 대모의 얼굴에 점액을 뿌려 시야를 가렸다.
[흐앳!?]
거미 대모는 눈을 부비적거리며 뒤로 물러났다.
처음 보는 물질에 경계심을 표하는 것이리라.
추가 딜을 먹일 수 있는 찬스였지만, 나는 일단 뒤로 물러났다.
맹독 피는 대체로 벌레 특성 몬스터에게 통하지 않으니 패스.
일단 드레이크를 구해 내는 것이 급선무이다.
나는 드레이크의 몸에 휘감긴 철조망을 벗겨 내며 충고했다.
“‘킬 체인’ 특성을 조심해. 자신에게 근접 물리 데미지를 입힌 상대를 도망가지 못하게 가까이 붙잡아 놓는 능력이야. 아주 골치 아프다고.”
드레이크는 상대의 능력을 파악한 즉시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면 원딜로 잡아야 한다는 말인데, 지형이 험난해서 힘들겠군.”
“그래서, 지금부터 대비책을 알려 줄 거니까 잘 들어.”
내 말을 들은 드레이크는 깜짝 놀라 고개를 돌렸다.
“이 상황에서도 대비책이 있나?”
“당연하지. 거미 대모의 철조망 공격을 피하는 방법은 의외로 간단해. 나를 따라 하기만 하면 참 쉬워.”
참 쉽다는 말이 나오자 드레이크는 바짝 긴장하는 눈치였다.
나는 그런 드레이크를 향해 차근차근 설명을 시작했다.
“자, 잘 보라고. 지금 거미 대모가 철조망 투척을 준비하네. 공격 패턴은 이제 대충 익혔지? 약 3가지 정도야.”
“철조망으로 공 만들어 굴리는 패턴, 철조망으로 그물 만들어 던지는 패턴, 철조망을 채찍처럼 휘두르는 패턴. 다 겪어 봤지?”
“철조망이 날아오는 순간을 잘 보면 그것들이 교차하는 간격은 매번 일정한 것을 알 수 있지. 거미는 황금비율에 입각해 극도의 효율성을 유지해 가며 그물을 짜는 생물이거든. 어떤 경우에도 철조망의 패턴은 동일해. 공 굴러오는 것만 빼고.”
“철조망들끼리 교차하는 간격은 1미터, 2미터, 3미터…방점으로 찍어서 표현하자면 가로 9개, 세로 9개…즉 9*9의 형태인데 이때 1, 2, 3의 숫자를 각각 3진수로 대입하다 보면 철망 하나의 패턴마다 9 바이 9 스도쿠 형태를 띠고 있는 게 딱 들여다보이지.”
“자! 이제 바로 현장 투입이다! 이 철망의 패턴만 딱 기억해 두면 스도쿠를 푸는 거랑 똑같아! 요 있네! 요 1, 8, 2, 4가 모여 있는 것 보이네! 여기가 규칙적으로 생성되는 빈틈인 것이야!”
“앗! 지금 봐! 라틴방진이다! 아랫줄 가운데에 철조망 가시 2개 튀어나온 것 보이지!? 다른 행이나 열에 2가 이미 존재하는 경우를 제외하고 남은 자리를 죄다 경우의 수에서 제외하면 우측 하단으로 피해야지! 이렇게! 슬라이딩! 착지 시 굴거미 굴에 꽂아 놓은 깃발 조심하고! 좋았어! 이제 좀 감이 오나!?”
나는 눈 깜짝할 사이에 철조망들의 빈틈을 샥샥 파고든다.
#자 모양으로 수없이 중첩된 철조망들의 그물.
하지만 나는 그 사이에 규칙적으로 발생하는 개구멍들의 패턴을 이미 알고 있는 상태이다.
몸을 둥글게 말고 장애물달리기를 하듯 앞으로 내달린다.
혹시나 조금 실수해서 몸에 스치더라도 상처는 나지 않았다.
중간중간 숨을 참아가며 씨어데블의 점액을 몸에 둘렀기 때문이다.
“…….”
드레이크는 잠자코 내 뒤를 따라오고 있었다.
입을 반쯤 헤 벌린 채로.
“어진. 혹시 수학 전공인가?”
“아니, 문과였는데?”
“그런가? 한국 교육제도는 특이해서 이과 출신이 아니면 수학을 잘 못한다고 들었는데.”
“원래 겜창들은 구구단은 못 외우는 한이 있더라도 가챠 확률이랑 몬스터 공격패턴은 잘 외운다고.”
나는 말하는 도중에도 거미 대모의 공격들을 요리조리 잘 피해 내고 있었다.
하지만.
레이드는 피하는 것이 전부가 아니다.
상대방의 공격을 모조리 피해 낸다고 해도 상대방에게 유효타를 먹일 수 없으면 의미가 없다.
나 역시도 현재 거미 대모를 공격할 수 있는 특별한 수단은 없었다.
거미 대모에게 깎단으로 근접딜을 먹이는 순간 어마어마한 수의 킬 체인들이 나를 일제히 휘감을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씨어데블의 점액과 크라켄의 틈 특성을 믿자니 그것도 불안하다.
마냥 숨을 오래 참을 수 있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맹독 공격도 상대방이 독 면역이니 효과를 보기가 힘들 것이다.
평소라면 3신기의 힘을 믿고 달려들었겠지만, 이렇게 협소한 공간에서 힘을 발휘했다가는 산 채로 던전 전체에 파묻힐 위험이 있다.
가능한 평화적으로 잡아야 한다.
“어진, 뭘 어쩔 생각인가?”
드레이크가 내게 물었다.
나는 이쯤에서 비장의 수를 쓰기로 했다.
“커피 찌꺼기 남았어?”
내가 묻자, 드레이크는 허리띠를 끌러 커피 찌꺼기가 든 자루를 내게 던졌다.
나는 자루를 받자마자 한번 흔들어 보았다.
사부작- 사부작-
커피 찌꺼기는 거의 남지 않은 상태였다.
배고픈 굴거미들을 상대하는 것에 너무 많이 소모한 탓이다.
“에라, 너 다 해라.”
나는 조금 남은 커피 찌꺼기들을 모조리 거미 대모에게 던져 버렸다.
파스스스-
갈색의 커피 찌꺼기들이 흩뿌려지며 거미 대모의 시야를 가렸다.
[호흣! 퉤엣!]
거미 대모는 잠시 움찔하는가 싶더니 이내 불쾌한 표정을 지은 채 다시 달려들었다.
당연한 일이다.
A급 몬스터가 이 따위에 데미지를 입을 리가 없으니까.
드레이크는 의아한 표정으로 내게 물었다.
“고등급 몬스터에게는 딱히 효과가 없는 것 같은데?”
하지만.
내가 준비한 비밀무기는 커피 찌꺼기가 아니었다.
웨엥-
내가 집어던진 커피 찌꺼기들 사이에서 요란한 날갯짓 소리가 나기 시작했다.
“……어엇!?”
드레이크는 두 눈을 크게 떴다.
조금 남아 있던 커피 찌꺼기들이 흩뿌려지자, 이내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붕붕붕붕붕-
자루 속에서 엄청난 수의 살육 벌들이 일제히 쏟아져 나오기 시작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