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닳고닳은 뉴비-206화 (206/1,000)

207화 다리 많은 것들의 섬 (3)

지뢰찾기란 무엇이냐?

아마 이 게임을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컴퓨터를 사면 딸려 오는 기본 게임 중 하나이며 비디오 게임의 원시시대 때부터 존재했던 장수 콘텐츠.

제리맥 래티프가 개발한 ‘큐브’라는 게임을 원형으로 하고 있으며 거의 모든 컴퓨터 사용자들에게 보급된 국민 게임이다.

(이래봬도 게임물등급위원회의 정식 심사까지 거친 몸이다)

규칙은 간단하면서도 심오하다.

수많은 픽셀로 이루어져 있는 격자 판에는 숫자가 뜨는데 그 숫자는 해당 칸을 중심으로 3*3영역에 있는 지뢰의 숫자를 표시한다.

만약 선택한 칸 근처에 지뢰가 하나도 없다면 그 칸에는 숫자가 표시되지 않는다.

한 칸의 주변에는 최대 8개까지의 지뢰가 있을 수 있고 그 중 하나라도 밟게 된다면 그대로 게임 오버되는 것이다.

“…이 던전은 기본적으로 지뢰찾기의 룰을 따르고 있지.”

나는 곳곳에 도사리고 있는 굴거미들의 땅굴을 피해 가며 말했다.

피그말리온이 걸어 준 버프 덕분에 내 눈에는 안전한 땅과 함정이 구분되어 보인다.

물론 한눈에 모든 것이 다 보이는 것은 아니었다.

안전한 땅을 찾았을 시 그 주변에 있는 굴거미 굴의 개수가 숫자로 표시되고 그것을 기반으로 안전한 루트를 따로 찾아내야 하는 것이다.

무조건적으로 길이 보이는 것이 아닌 만큼 언제든 게임 오버될 가능성이 도사리고 있다.

따라서 머리를 굴려 가며 차근차근 공략해야 했다.

버프가 지속되는 시간 내에 말이다.

“자, 지금 이 칸에는 ‘5’라는 숫자가 보여. 내가 밟은 곳을 중심으로 3*3m 안에 5개의 굴거미 굴이 있다는 뜻이야. 그런데 아까 저기 2m 떨어진 벽 쪽에서 밟았던 칸에 2개의 굴이 있었지? 그렇다면 저곳과 이곳 사이에는 무조건 3개의 굴이 있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지. 반대편은 벽이니까.”

“그럼 빨간 깃발 세 개를 여기에 꽂아 두면 되나?”

“그렇지. 돌아올 때를 위해서.”

드레이크는 미리 준비해 온 일회용 깃발 아이템을 함정 위에 콕콕 박아 두었다.

이렇게 하면 나중에 던전을 나갈 때 함정에 빠질 일은 없겠지.

하지만 안전한 땅만 밟고 간다고 해서 늘 무탈하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갸아악!]

[구와악!]

가끔 길을 지나가다 보면 함정을 밟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깃발을 꽂아둔 곳의 옆 땅이 펑 터진다.

그리고 그럴 때마다 어김없이 배고픈 굴거미들이 튀어나왔다.

재수 없으면 밟은 곳을 중심으로 7마리의 굴거미가 굴에서 튀어나오는 경우도 있었다.

이렇듯 각자의 지뢰에도 사정이 있는 것이다.

놈들은 털투성이의 긴 다리, 날카로운 이빨, 여덟 개나 되는 붉은 눈을 드러내며 습격해 온다.

“에비, 에비.”

그럴 때마다 드레이크는 자루에서 커피 찌꺼기를 뿌려 댔다.

굴거미들은 몹시 배가 고픈 듯, 그토록 싫어하는 커피 가루를 뒤집어쓰고도 미련을 버리지 못해 우리 주변을 배회했다.

“그럴 때는 이렇게, 민트를 섞어 뿌려 주면 된다. 다들 냉장고에 민트 조금씩은 있잖아?”

“TV에 나오는 셰프들 같은 멘트로군.”

내가 커피 가루에 미리 준비해온 민트를 섞어서 뿌리자.

[웨에에엑!]

그제야 굴거미들은 완전히 단념하고 도망친다.

그것을 본 드레이크는 박수를 쳤다.

“거미들이 민트를 싫어하나?”

“글쎄, 치약으로 착각한 게 아닐까?”

나는 어깨를 으쓱하고는 계속해서 굴거미 굴에 깃발을 꽃아 나갔다.

그러나.

피그말리온의 버프는 완전한 것이 아니었다.

간혹 남아 있는 두 개의 길 가운데 어느 쪽이 굴거미 굴이 있는 방향인지 모를 경우도 있었다.

확률은 5:5

그럴 때는 어김없이 어둠 대왕의 ‘선택’ 특성이 발동한다.

확률이 50%일 때는 무조건 이득이 되는 쪽으로 이끌어 주는 특성.

지뢰찾기 맵에서는 정말 꿀 같은 특성이다.

나는 그렇게 해서 굴거미 굴을 피해 안전한 루트들을 뚫고 나간다.

이윽고.

귓가에 으스스한 알림음이 들려왔다.

-띠링!

<히든 던전 ‘부유섬 대왕로(大王路) 깊은 곳’에 입장하셨습니다>

<최초 방문자: 고인물, 드레이크>

나는 꽤 깊숙한 곳까지 들어왔음을 실감할 수 있었다.

단순히 알림음을 듣고 안 것이 아니었다.

여기서부터 풍경이 한층 더 살풍경하게 변했기 때문이다.

일단 굴거미들이 파 놓은 땅굴의 수가 훨씬 더 많아졌다.

원래 1~3정도의 숫자가 대부분이었던 ‘입구’ 쪽에 비해, ‘깊은 곳’은 기본 4~5의 숫자를 자랑한다.

(가끔은 8이라는 무시무시한 숫자도 보였다)

하지만 바닥의 함정들이 다가 아니다.

사람의 가슴이나 목 높이 정도 되는 위치에 수많은 철조망들이 쳐져 있었다.

질기고 단단한 쇠줄 와이어에 뾰족한 칼조각들이 다닥다닥 붙어있는 철조망.

살짝만 스쳐도 살이 베이고 약간만 닿아도 바로 엉켜 버린다.

그런 철조망들이 마치 길 없는 밀림의 수풀들처럼 빽빽하게 쳐져 있었다.

“세상에. 이게 다 뭐야?”

드레이크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많은 철조망들을 보며 입을 딱 벌렸다.

보통 철조망은 보안을 위해 담벼락이나 허공에 몇 가닥 꼬아 놓는 것이 고작이다.

하지만 이 경우에는 길이 아예 철조망들로 꽉 차 있다.

“저것들 때문이지.”

나는 고개를 들어 통로 천장에 붙어 있는 것들을 가리켰다.

몸이 회색으로 번들번들 빛나는 거미 몇 마리가 천장에 웅크리고 있었다.

<철거미> -등급: B+ / 특성: 독, 벌레, 즉사, 조망(罺網)

-서식지: 부유섬

-크기: 5m.

-망자 거미가 척박한 환경에서 더욱 억척스럽게 진화한 형태.

실의 은밀성과 접착성을 포기한 대신 강력한 공격력을 손에 넣었다.

몸이 쇳덩이로 이루어진 것처럼 번들거리는 거미.

놈들은 천장에 붙어 꽁무니에서 실을 자아내고 있었다.

끼긱- 끼긱- 끼긱-

철거미의 항문에서 뽑혀 나오는 실은 그야말로 철조망 그 자체.

끈적이지도 않고 은밀하지도 않았지만 질기고 단단할 뿐만 아니라 날카롭기까지 하다.

그렇게 생겨난 철조망들이 스프링처럼 빙글빙글 꼬이며 통로를 가득 메우고 있었던 것이다.

바닥은 땅굴 함정, 허공은 철조망.

외부인의 진입 자체가 불가능한 구조이다.

그나마 철거미들은 굴거미들과 달리 겁이 많고 소심한 성격이라서 먼저 공격해 오지 않는다는 것이 유일한 다행이랄까?

드레이크는 침음성을 삼켰다.

“젖거미는 비교도 안 되게 까다롭군. 이것들을 어떻게 뚫고 간담?”

철거미와 굴거미들이 도사리고 있는 통로.

하지만 나는 이미 파훼법을 준비해 놨다.

“흡!”

숨을 참자 씨어데블의 점액이 끈적하게 흘러내려 내 전신을 뒤덮었다.

그 상태에서 나는 크라켄의 ‘틈’ 특성을 발현했다.

꿀렁- 꿀렁- 꿀렁-

나는 철조망 사이를 거침없이 헤집고 들어갔다.

비록 알몸이지만 아무런 상처도 입지 않았다.

내 몸은 철조망과 철조망 사이의 작은 틈을 거침없이 비집고 들어가 구멍을 넓혀 놓았으며 내 몸에서 흘러내린 점액은 철조망의 날카로운 가시를 완전히 무력화 시켜놓았다.

“이리로 들어오도록 해.”

나는 철조망을 발로 밟고 손으로 밀며 틈을 만들어 냈다.

그리고 내가 흘린 점액의 길로 드레이크를 잡아당겼다.

“…….”

드레이크는 별로 내키지 않는 표정이었지만… 별 수 없다.

그 역시도 결국 전신이 점액으로 범벅이 된 채 철조망들 사이를 헤집어야 했다.

[챠르륵!]

우리가 철조망 가득한 통로로 들어오자 철거미들 사이에는 비상이 걸렸다.

놈들은 굴거미들과는 달리 겁이 많아 함부로 다가오지 못했다.

다만 꽁무니에서 짠 따끈따끈한 철조망을 투척하는 쪽으로 공격해 온다.

깔대기형 철조망을 만들어 던지는 녀석, 둥근 철조망 공을 만들어 던지는 녀석, 투망처럼 생긴 철조망을 던지는 녀석…….

철거미들은 저마다 다양한 패턴대로 공격해 왔다.

놈들의 철조망에는 즉사 특성이 붙어 있기 때문에 철조망에 콕 찔리는 것만으로도 죽을 수 있다.

비록 아주 낮은 확률이지만 조심해야 했다.

“젠장! 이 고철덩어리들은 커피도 안 먹히는군!”

드레이크는 저 멀리서 철조망을 뿌리고 도망가는 철거미를 보며 이를 빠득 갈았다.

끼릭-

그는 번개 같은 활시위에 화살 한 대를 걸었다.

수많은 철조망들이 빽빽하게 들어차 있는 공간에서, 미세하게 보이는 단 하나의 점을 향해 드레이크는 화살을 발사했다.

퍽!

놀랍게도, 드레이크가 쏜 화살은 그 수많은 철조망 사이를 헤집고 들어가 도망치는 철거미의 머리통에 박혔다.

[챠륵!]

철거미는 짧은 비명을 지른 채 그 자리에서 죽어 버렸다.

철조망을 치는 습성 때문에 고위험등급으로 분류되나, 정작 자기 자신의 개체값은 낮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나는 손으로 얼굴을 짚을 수밖에 없었다.

설마 이런 환경에서 화살을 쓸 수 있을 리가 없다고 생각해서 주의를 주지 않았건만.

“이봐. 이곳에서는 거미를 함부로 죽이면 안 돼. 내가 괜히 커피 찌꺼기를 가져온 게 아니라고.”

그렇다.

커피 농장에서 일일퀘스트를 깨며 몸 전체를 커피향으로 훈연한 것은 단순히 거미들을 쫓아 보내 시간을 절약하기 위해서 뿐만이 아닌 것이다.

드레이크가 고개를 갸웃하며 무언가를 질문하려는 순간.

쿠쿵!

요란한 진동과 함께 주변에 있던 철조망들이 미친 듯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드드드드드-

저 멀리 통로 건너편에서 무언가 거대한 것이 이쪽으로 접근해 오고 있는 것이 느껴진다.

호다다다닥!

굴거미들이 재빨리 땅굴 속으로 들어가 입구 뚜껑을 닫는다.

철거미들은 다리를 모으고 몸을 동그랗게 만 채 벽의 구멍이나 종유석 뒤로 숨었다.

“뭐야? 무슨 일이지?”

드레이크는 당황한 표정으로 물었다.

“…….”

나는 화살에 맞아 죽은 철거미 한 마리를 보며 머리를 긁적였다.

“애를 건드렸으면 부모한테 욕먹을 각오를 해야지.”

1